151화_아스본 레스넌
아스본 레스넌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아스본을 향해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교…”
말을 이으려던 유신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13기동 타격대의 하유신입니다.”
“교황청이 아니라 13기동 타격대? 혹시 대장이 누구지?”
“김무혁 대장입니다.”
전설 중에서 김무혁 대장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보통 무혁의 이름을 팔면 대부분 좋게 넘어갔다.
아니 지금까지 좋게 넘어가지 않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스본에게는 다른 것 같았다.
“무혁이 놈 부하였다고…?”
“그리고, 전 습격자가 아니라, 습격을 막았습니다. 뒤에 계신 제이미와 소피에게 물어보시면 증언해주실 겁니다.”
유신이 친근하게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스본은 잠깐 인상을 찡그리고는 제이미와 소피를 바라봤다.
“이놈의 말이 사실이냐?”
“네 아빠. 사실이에요.”
“소피. 네 의견은?”
“아빠!”
제이미는 아스본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소피에게 의견을 묻자, 입술을 삐죽 내밀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유신은 제이미의 그 모습도 귀엽다고 느낄 때였다.
소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맞지만, 의심스러운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래?”
“네. 우선 아까 저희에게 소개할 때는 교황청 소속이라고 했고, 지금은…”
“13기동 타격대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신은 이대로라면 더욱 오해가 쌓일 것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죠.”
“조용!”
손을 들어 유신의 말을 저지한 아스본이 소피에게 계속 말하라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이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잠깐 보이지 않다가 저희가 위험한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겠지?”
“네. 마지막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강했습니다.”
“흠….”
아스본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더니 유신을 바라봤다.
“자네. 정말 13기동 타격대 소속인가?”
“네. 그렇습니다.”
“13기동 타격대를 상징하는 걸 보여 줄 수 있겠나?”
그 말에 유신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13기동 타격대를 상징하는 게 무엇일까?
그리고 이내 아공간에서 봉쇄의 목걸이(가품)을 꺼냈다.
“봉쇄의 목걸이군.”
아스본은 목걸이를 보자마자, 이게 무엇인지 바로 파악했다.
“그런데, 왜 착용하고 있지 않지?”
“일단 모양만 비슷하게 생긴 가품입니다. 여기.”
유신은 들고 있던 봉쇄의 목걸이(가품)을 아스본에게 건네줬다.
한참 봉쇄의 목걸이를 확인한 아스본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신이 계속 설명했다.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봉쇄의 목걸이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전투 슈트는?”
“아…그게 저번 전투에서 옆구리 쪽에 구멍이 나서 수리 중입니다.”
“13기동 타격대의 전투 슈트가 훼손됐다고?”
‘훼손’이라는 말에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찔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도구였다.
하나하나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하는 마도구를 자신이 약해서 망가뜨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봉쇄의 목걸이는 가품이고, 전투 슈트는 없다고 한다라. 이 모든 것들을 들어보니 더욱 의심이 가는군.”
유신은 아스본의 말을 듣고 자책을 멈췄다.
자책이야 나중에 해도 되고, 지금은 이 오해를 풀어야 할 때였다.
“마리 선배 그러니까 성녀님과 노사님이 제 신분을 보증해주실 겁니다.”
“시간을 벌 속셈인가? 하지만 그건 생명의 연장일 뿐이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유신은 몰아붙이는 아스본의 입가에는 미소가 점점 맺히고 있었다.
미소를 보니 확실하다.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으셨군요.”
아스본은 유신이 13기동 타격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최소한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비를 걸고 있다.
그 증거 중에 하나로 아까부터 계속 거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유신은 어쩔 수 없이 검병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뭘 원하시는지 대충 알겠습니다.”
“그렇게 눈치가 없지는 않군. 13기동 타격대라고 하니 봐주지 않겠네.”
아스본은 거검을 꺼내 들었다.
거검은 크고 널찍했으며, 다른 거검보다 더욱 커 보였다.
그리고, 투박한 거검을 공중에 가볍게 휘두르자, 묵직한 파괴력이 뿜어졌다.
“난 최선을 다할 건데, 자네는 아닌가 보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설마 그 검으로 날 상대할 생각인가?”
유신이 들고 있는 검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2억이 넘는 거금을 주고 산 명품이었다.
이 검은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내구력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구매했다.
거기다가 전설을 상대하기에 처음부터 오러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로는 내 옷자락도 베지 못할 거야.”
아스본의 말에 유신은 기시감을 느꼈지만, 이내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꽤 튼튼하다고 자부합니다.”
“아직 무기를 볼 줄 모르는군. 뭐 안다고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을 거야.”
“흠…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이 하던 말이 있습니다. 싸움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요.”
빠직!
평소의 아스본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도발이었다.
하지만, 유신이 그 말을 내뱉자, 안 좋은 추억이 떠올랐다.
“그 힘만 쎈 마법사와 검에 미친 놈의 후배답군.”
“아! 다리우스 선배와 유호 선배를 아세요?”
“13기동 타격대의 전원을 다 알고 있지. 아주 원수 같은 놈들이지!”
유신은 확실히 아스본이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을 싫어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2억짜리 검을 바라봤다.
‘수…수리는 되겠지?’
왠지 이 검과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이미 아스본은 기세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선수를 양보하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유신은 검을 집어넣고는 상체를 낮춰서 발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포스의 힘을 빌려 순간적으로 앞으로 쏘아졌다.
발검
일격필살의 힘과 함께, 쾌검이 아스본에게 휘둘러졌다.
쾅
아스본이 거검을 세우는 것으로 공격이 막혔다.
첫수부터 많은 걸 바라지 않았지만, 이렇게 쉽게 막힐 줄은 몰랐다.
우선 유신은 뒤로 몸을 회피했다.
“첫 수를 양보한 것 치고는 너무 뻔하고, 약하군.”
“…인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그 인사 잘 받았네. 그럼 잘 막아보게.”
아스본은 가볍게 거검을 휘둘렀다.
유신과 아스본의 거리는 5m가 넘었고, 검격이 닿을 거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전설이었다.
5m의 거리는 전설들에게 바로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아스본은 전투력만 따지면 전설 중 상위권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오러를 끌어 올려서 방어에 치중했다.
콰앙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유신이 뒤로 밀려났다.
다행히 검은 무사했지만, 유신은 그렇지 않았다.
거검의 파괴력 때문에 유신의 손바닥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내 인사는 어땠나?”
“잘못하면 오늘 몸이 양분돼서 죽겠는데요?”
“너스레를 떠는 거 보니 인사가 부족했던 것 같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자네 말대로 입보다는 몸을 움직이겠네.”
아스본이 거검을 움켜쥐고는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보통 덩치가 크거나 큰 무기를 사용하면 민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아스본은 달랐다.
그는 덩치와 무기의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쾅쾅쾅
오러와 검강이 맞부딪힐 때마다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유신은 불꽃을 피해 몸을 낮춰서는 아스본의 하체를 노렸다.
콰앙
고작 거검을 내려서 세우는 것으로 유신의 공격을 무위로 되돌렸다.
거검은 일격필살의 파괴력도 있지만, 검의 크기 때문에 방어에도 용이했다.
그리고, 유신은 그런 거검을 사용하는 아스본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아스본의 거검을 뚫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아스본이 유려하게 거검을 한 바퀴 돌려서는 유신에게 휘둘렀다.
옆으로 이동해서 거검을 회피한 유신이 그대로 파고들며, 일점술을 사용했다.
터엉
어느새 회수했는지, 아스본의 검면이 유신의 일점술을 막아냈다.
공격이 막혔지만, 유신은 이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아스본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텅텅텅
터엉
무의미한 짓 같이 보였지만, 유신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하지만, 아스본은 언제까지 방어만 하지 않았다.
쾌검-변형
유신은 쏜살같이 날아오는 거검을 바라봤다.
이미 피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어서 몸을 뒤로 띄우며, 검에 기운을 집중했다.
콰아아앙
한참을 튕겨 난 유신이 겨우 자세를 잡고 아스본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앞에 거검의 검끝이 있는 것을 보고, 무작정 옆으로 몸을 굴렸다.
파아앙
콰아앙
유신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거검에서 검강이 쏘아졌다.
공간을 찢고 지나간 검강은 구름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는 사라졌다.
“아깝군.”
아스본의 말에 유신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싸우기 전에는 전투라는 느낌보다는 대련이라는 생각으로 싸웠다.
하지만, 방금 한 수를 보고 나니, 이건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까딱, 실수하는 순간 자신은 얼굴 없는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하겠네.”
거검을 양손으로 잡은 아스본을 보고, 유신은 침을 삼켰다.
한순간의 방심은 목숨을 잃게 하고,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대체 선배들은 전설들한테 뭘하고 다녔던 거야!’
속으로 이 자리에 없는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을 욕한 유신이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힘과 기운에서는 확실히 아스본에게 밀렸다.
그렇다고 커다란 기술을 쓰기에는 여기는 서울 중심가였다.
조금만 힘의 컨트롤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경복궁이나 광화문이 날아가는 상황이었다.
“자세와 기세가 바뀌었군. 이제야 자네도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긴 것 같아.”
유신의 미간이 씰룩였다.
아스본을 상대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인지,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 뜻 모를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조심하십시오.”
검을 들어서 상단세 자세를 취한 유신이 온몸으로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 상태에서 땅을 박차며 검을 내질렀다.
유성 찌르기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유신은 짧지만 폐관수련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건 바로 기술의 부재였다.
기운을 끌어올려서 다채롭고, 파괴적인 공격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 기운을 효용성 있게 사용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렇게 수련의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완벽한 유성 찌르기가 오늘 현현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근처에서 유신과 아스본의 대결을 구경하던 제이미와 소피의 귀가 아파올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굉음과 함께 유신은 훨훨 날아서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기절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아스본은 제자리에서 기절한 유신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13기동 타격대인가? 검만 멀쩡했으면 위험했겠어.”
유신은 기절한 상태에서도 2억짜리 검을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2억짜리 검의 검신은 사라지고, 검병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