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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48화 (148/300)

148화_제이미 레스넌(1)

오크들이 물러난 벙커 안은 부상자들로 인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성직자님. 제 친구 좀 봐주십시오.”

얀은 자신의 소매를 붙잡은 기마부대원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왼쪽 어깨가 뭉텅이로 뜯겨 나간 대원이 창백한 얼굴로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평소의 얀이라면 결백증 때문에 기마부대원의 손길을 피하고, 기겁부터 했을 거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 살짝 미소까지 지어줬다.

“걱정하지 마세요. 살릴 수 있습니다.”

동료를 안심시킨 얀은 부상자의 다친 어깨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레이트 힐.”

따뜻한 빛이 어깨에 스며들자, 부상자의 안색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얀은 원래 버프와 방어에 특화되어 있었다.

치료는 앤 전문이었다.

그리고 앤은 벌써 한 시간가량 움직이지 않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가이아시여. 당신의 어린양들을 보살펴주소서.”

기도가 마무리 지어졌고, 앤의 주변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기운이 생성됐다.

두 눈을 뜬 앤이 기도하는 자세에서 시동어를 외쳤다.

“포용의 힐링.”

은빛의 기운은 벙커 안을 넓게 뒤덮더니, 따스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빛은 다친 사람에게는 치유를, 멀쩡한 사람에게는 활력을 북돋게 했다.

그렇게 스텔라 남매가 성직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유신은 한쪽 구석에서 홀로 호흡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후읍~ 파!”

유신이 가부좌를 틀고 포스 호흡법에 집중하고 있다지만,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스를 오러로 치환한 후 사용한 유성 찌르기. 일점술과 순간 폭발력을 가미해서 섞었다고 했지만, 예상외의 파괴력이 나왔어. 내가 쓸 수 있는 기술을 그대로 놔두면 안 돼. 무언가 발전을 위해서는…기술을 점검해봐야겠어.’

그렇게 유신은 포스 호흡법을 유지하며 더욱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

오크 로드 카리취가 죽은 뒤, 오크들은 사분오열되어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아직 수십만의 오크가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중국, 러시아, 몽골 그리고 세계 정부와 세계 헌터 협회에서 오크들을 박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퍼억

우드둑

쟌의 방패에 가슴을 얻어맞은 오크는 갈비뼈가 몽땅 부러지면서 절명했다.

“벌써 이게 며칠째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리우가 태극의 묘리를 이용해서 다가오는 오크를 날려버리며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 말에는 긍정합니다. 조금은 쉬고 싶네요.”

그들은 입으로 불평불만을 토하면서 쉬지 않고 움직여 오크 무리를 토벌했다.

힘이 들었는지 쟌과 리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충 자리에 걸터앉았다.

“차라리 번갈아 가면서 오크를 상대하는 건 어떠십니까?”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오크들을 상대했던 리우가 쟌에게 건의했다.

“알았어. 대신에 네가 먼저 해.”

“알겠습니다.”

그들은 다음 목표가 되는 오크 부족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한 쟌은 풀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 모습을 흘끔 본 리우는 평소에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쟌의 대답을 뒤로하고, 리우는 검에 내공을 집어넣어서 검기를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오크 부족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검기를 날렸다.

콰콰콰아앙

순식간에 리우의 검기가 오크 부족을 학살했다.

그렇게 손쉽게 오크들을 처리한 리우가 쟌의 옆에 주저앉았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쉬면 되겠네요. 아! 다음 오크들은 쟌이 상대하시면 됩니다.”

쟌은 리우의 말에 불퉁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제발 유신이랑 다니지 마라.”

“왜 그러시나요?”

“완전, 치사해졌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

비토가 마리에게 작은 함을 꺼내서 건네주자, 마리는 그 상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열었다.

딸깍

상자 안에는 카리취와 캔 브레이커가 삼킨 것과 같은 알약이 들어 있었다.

“이 알약이 거기서 나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건물 잔해 밑에 깔려있던 시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신의 말대로라면 이 약이 마족으로 변하게 하는 거라던데요.”

“그건 조사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알약을 꺼내서 살펴본 마리가 형광등에 알약을 비춰본다.

“대체 이런 약을 만든 조직은 뭘까요? 혹시 시체들의 신원 조회는 끝났나요?”

비토는 마리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직 안 끝났나요?”

“아닙니다. 끝났습니다. 그게 조금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뭐가요?‘

“그게… 모두 실종신고가 되어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보고된 능력이 전부 전투 능력이 없는 일반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일반 능력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유신도 전투 능력 하나 없다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마리는 알약을 다시 함에 집어넣고는 비토에게 건네줬다.

“어떻게든 이 약의 성분을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유신은 어디에 있나요?”

“아직도 폐관 수련 중입니다.”

“매일 꼬박꼬박 가던 집에도 가지 않고 폐관 수련이라…조금은 곤란하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

마리는 비토가 유신과 엮인 이후로 점점 변하는 것 같아서 놀랐다.

그렇다고 바뀐 비토가 나쁜 쪽이 아니라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질문도 하시니 인간적이고 좋네요. 뭐 다른 게 아니라 아스본 레스넌이 자꾸 유신을 찾거든요.”

“세계헌터협회 회장인 카피 마스터 아스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가 캔 브레이커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신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비토는 살짝 표정을 굳히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꼭꼭 숨길 필요가 있나요?”

“하지만, 카피 마스터 아스본의 성격으로는 유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그 약이 중요합니다. 진실을 알려줄 테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아스본은 은원이 확실합니다. 정 안되면, 제가 베푼 은혜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것도 안 되면, 한동안 포션 제작을 중단해야죠.”

“그렇게 되면, 13기동 타격대에 보낼 포션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막내를 위한 건데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래도 차질이 생기면 안되니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볼까요?”

***

창문 하나 있지 않고, 사방이 막혀있는 연무장에 유신이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유신은 그 상태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고, 그렇게 한 번 검을 끝까지 휘두르고 나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아무 기운도 맺혀 있지 않던 검에는 포스가 피어올랐다.

포스는 이내 검기가 되었고, 검기는 오러가 되었다.

내공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검강으로 불리고, 포스를 다루는 사람들은 오러라 불리는 절대적 파괴력이 검에 맺혔다.

“후읍~ 파~”

포스 호흡법으로 솟아난 오러를 다루던 유신이 이내 휘두르던 검을 멈췄다.

그리고 오러를 압축하기 시작했다.

오러는 점점 압축되면서 푸른 빛이 되었다.

이내 그 상태에서 유신이 서 있던 바닥이 부서지더니 유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차차차차차창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지도 하지 못한 속도로 이동하는 유신의 모습은 그저 하나의 빛이 되어있었다.

바삭

사아아아악

하지만, 들고 있던 검이 먼지가 되어서는 소멸하고 말았다.

그제야 유신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하아 하악~”

거친 숨을 내뱉은 유신은 가루가 된 검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오러를 압축하는 것까지는 검이 버텼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몇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 검이 가루가 되곤 했다.

“하악~ 무기가 약한 건지, 포스 컨트롤이 문제인 건지 모르겠네.”

벌써 수십 수백 번도 넘게 훈련했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호흡을 정리하고 새로운 검을 꺼내서는 다시 천천히 훈련을 진행하려고 할 때였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연무장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유신은 자신의 훈련을 방해하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자신의 13기동 타격대의 선배이자, 이곳 교황청의 실권자 성녀 마리가 있었다.

“선배? 무슨 일 있나요?”

“그래. 임무다.”

“임무…미룰 수는 없죠?”

마리는 깜짝 놀랐다.

평소의 유신은 임무라고 하면 실전을 겪어 볼 수 있다고, 언제나 환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환영이 아니라,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안하지만, 안 돼!”

마리의 단호한 말에 유신은 꺼내던 검을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근데, 임무를 가기 전에 밥 먹을 시간은 있죠?”

“식당에다가 말해놓을게.”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집밥이 먹고 싶어서요.”

유신의 말에 마리가 생글 웃었다.

“잘됐네. 이번 임무는 한국 지부야.”

***

평소에는 따뜻한 햇살이 방 안 가득 비추는 도미니크의 집무실이 오늘은 암막 커텐이 쳐져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도미니크가 수정구를 향해 엎드리고 있었다.

“릴라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도미니크, 네가 무엇을 잘못했지?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으스스한 목소리에 도미니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20, 21 전투단을 허락 없이 움직여 전멸시켰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난 네가 심심풀이로 모든 전투단을 다 죽인다고 해도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아. 내가 화가 난 것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은 것 같은데, 너 혼자 가지고 놀려고 했다는 거야.

도미니크는 수정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땅에 머리를 찍으며 대답했다.

“죄.죄송합니다.”

-장난감의 소재는 파악됐나?

“최대한 빨리 파악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널 믿고 있는 걸 알고 있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아스본의 외동딸이 한국으로 간다고 하더군. 뭐 죽이라는 소리는 아니야. 아스본에게 경고하고 싶어.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수정구의 통신이 끝나고 나서야 도미니크는 고개를 들었다.

평소라면 아무리 땅에 머리를 박아도 멀쩡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능력을 억제해서 이마가 다치도록 해서 피가 흘러나왔다.

도미니크는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고 자신의 책장으로 가서는 책들을 찢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것들은 나랑 맞지 않아.”

도미니크의 태생은 밑바닥의 밑바닥이었다.

태어났을 때는 부모의 얼굴을 몰랐고, 입양돼서는 양부모에게 학대당했다.

거기다가 학교에서는 멍청한 도미니크, 냄새나는 도미니크로 불렸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우울하고 외롭게 지냈다.

그러다가 운명이 바뀐 건 15세가 됐을 때였다.

[차크라] [염력]

백인에게 드문 차크라 능력과 희귀 능력인 염력.

시작부터 다중 능력을 타고났던 것이다.

하지만 능력 검사 날 저녁. 양부모는 도미니크의 능력을 듣고는 더욱 좋아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차크라라고? 그럼 더 때려도 되겠네.”

“아.아버지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정말 아파요.”

“능력 때문에 덜 아플 거야.”

도미니크는 살고 싶고,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식탁에 있던 스테이크 자르는 칼을 염력으로 움직여 양부모를 죽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도미니크는 곧바로 자수했다.

“제.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경찰 조사가 있고, 무죄 처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살인자 도미니크로 불리게 되었고, 학생, 선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을 기피했다.

그날도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릴라가 도미니크에게 다가왔다.

“왜 그렇게 당하고만 사니?”

릴라의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길고 긴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도미니크는 사람들에게 악의를 가지게 됐고, 그녀의 도움으로 미국의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미니크가 책과 음악을 탐독하는 것은 예전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다.

핑거 스냅과 함께 10개의 통신구에 불이 들어왔다.

“명령이다. 레스넌의 딸. 제이미 레스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데리고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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