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_오크 학살자
아람은 쓰러진 유신을 보고는 갈등했다.
유신이 죽게 되면, 자신은 다시 자유의 도깨비가 된다.
이제 막 아기 도깨비에서 최하급 도깨비로 넘어갈까 말까 할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충분히 홀로 다시 대도깨비가 될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가 유신이 준 상급 마나석을 가지고 있어서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한 번에 중급 도깨비까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올라갈 수 있었다.
“아 몰라! 미운정, 고운정 들었나 보지. 나중에 꼭 보은해야 한다.”
아람은 기절해서 듣지 못하는 유신에게 말을 내뱉고는 상급 마정석을 꿀꺽 삼켰다.
상급 마정석의 기운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력으로 치환됐다.
이 상태에서 꾸준히 도력을 받게 되면, 중급 도깨비까지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람은 그렇게 하지 않고, 도깨비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유신을 중심으로 두고 둥글게 도깨비불을 피운 아람은 그 상태에서 화력을 올렸다.
그러자, 오크들은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때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람이 조절하고 있어서 도깨비불이 유신을 태우지 않고, 오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유신이 아람의 도깨비불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이건 뭐지? 도깨비 지식에도 없었는데… 그.그만!!”
도깨비불은 아람의 명령을 듣지 않고, 그대로 유신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아람이 매개체가 되어서 상급 마나석의 기운이 유신에게 몰아치듯 들어갔다.
그 기운이 엄청나 아람과 유신의 공간에 돌풍이 불었다.
돌풍 덕분에 오크들을 저지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아람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애써 유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급 마정석을 먹었지만, 그 모든 기운이 유신에게 향하자, 억울한 감도 들었다.
“크어어어억 그…그만….”
통로의 역할을 하다 지쳐버린 아람이 돌도끼가 되기 전, 그렇게 들어가기 싫은 유신의 아공간 팔찌에 강제로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도깨비불도, 폭풍도 사라졌다.
한차례 이벤트가 끝나자, 그 가운데에 유신은 아직 쓰러진 상태로 누워있었다.
도깨비불을 통해 상급 마나석을 흡수했다고는 하지만, 기운을 흡수했지 상처까지 치료되지는 않았다.
“취익? 취이이익!”
머뭇거리던 오크들은 유신의 모습을 보고 다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유신이 확실히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는 글레이브로 찌르려고 할 때였다.
파칭
유신이 쓰러진 공간 위가 깨어져 나가더니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노사와 리우 그리고 쟌과 스텔라 남매가 튀어나왔다.
노사는 땅으로 내려오면서 쓰러진 유신과 한쪽에 죽어있는 카리취의 사체를 재빨리 확인하고는 현재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유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곧장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극천하.”
순식간에 만든 극의가 다가오는 오크들을 압박했다.
그렇게 노사는 유신을 위험에서 구해주었다.
“유신아!!”
자신의 사랑스러운 손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오크 따위가!! 리우!”
쟌의 외침에 리우가 자신의 절기를 이용해 유신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와 동시에 쟌이 땅바닥에 방패를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땅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갈라졌다.
오크들은 흔들리는 땅에 균형 감각을 잃고는 이리저리 구르다가 갈라진 틈새에 빠져버렸다.
“쟌! 흥분하지 말거라!”
노사의 말에 쟌은 재차 땅을 가격하려다가는 이내 꾸욱 참았다.
그리고 방패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길을 뚫겠습니다. 어디입니까?”
“사방이 오크다. 일단은 유신이 의식을 찾는 게 먼저다.”
“알겠습니다. 실드 월.”
쟌이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크진 않지만, 가로세로 높이 약 5M 정도의 벽이 세워졌다.
“앤. 네가 치료를 내가 방어할게.”
“아니. 일단은 치료가 먼저야. 난 기도를 올릴 테니 그동안 유신의 상처를 돌봐줘.”
“알았어.”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앤은 평소와 다르게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얀은 그 모습을 잠깐 흘끗 바라보다가, 유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른 부위도 심각해 보였지만, 특히, 오른쪽 가슴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최소 오른쪽 갈비뼈는 다 아작이 났다는 거네. 힐을 쓸 수가 없겠어.”
힐은 찢어지거나, 다친 상처. 그러니까 외상에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거기다가 그레이트 힐의 경우에는 내상도 웬만큼 치료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갈비뼈가 움푹 들어갈 정도의 상처에 힐 또는 그레이트 힐을 사용하게 되면, 치료되는 과정에서 뼈가 이상하게 붙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레이트 힐.”
얀은 평소와는 다르게 세심하게 그레이트 힐을 사용했다.
유신의 오른쪽 갈비뼈만 제외하고 다른 부위의 치료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상처는 치료가 되었다.
하지만, 치유하는 과정에서 내장이 상한 것도 발견하게 됐다.
“완전 만신창이야.”
입으로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얀은 그레이트 힐을 쉼 없이 유신에게 주입했다.
그렇게 약 5분이 지나가고, 얀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에 맺혔을 때, 앤이 눈을 떴다.
“리커버리.”
앤의 몸에서 성스로운 빛이 뿜어져 나와서는 유신을 비추었다.
우둑 우두둑
그러자, 유신의 움푹 들어간 오른쪽 가슴에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슴이 평평하게 펴졌다.
거기다가 창백하게까지 느껴지던 유신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하…됐어.”
앤은 리커버리로 유신을 치료하고 지쳤는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리커버리는 6급 성직자 중에서도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회복을 넘어선 원상 복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유신은? 괜찮은 거야?”
“응. 상처는 모두 회복됐어.”
쟌은 앤의 대답을 듣자마자 유신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냅다 싸대기를 날렸다.
짜악~
단 한 방에 기절해 있던 유신의 고개는 돌아갔다.
자세히 보니 입술이 찢어져서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쟌이라고 해도 형님께 무슨 짓입니까!”
“깨워야지.”
“조금 전까지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식한 방법을 쓴다고 형님이 깨어날 것 같습니까?”
“응. 일어났는데?”
쟌의 대답에 리우는 고개를 돌렸다.
기절했던 유신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쩍 눈을 떴다.
“후~ 하~ 후~ 완전 악몽이었어.”
정신을 차린 유신은 주위를 둘러봤다.
거기에는 황당한 표정의 노사와 쟌 그리고 꿀이 떨어지는 리우의 눈빛, 당연하다는 듯한 앤과 얀의 표정이 보였다.
“뭐야? 다들 언제 왔어요?”
“형님. 괜찮으십니까?”
유신은 갑자기 와락 안기는 리우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끄떡였다.
“응. 조금 전까지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지금은 괜찮네? 너희들이 치료해준 거야?”
“당연하지. 너 하나 치료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앤이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고마워.”
“뭐…뭐냐?”
평소와 다른 유신의 반응에 앤이 볼을 붉히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유신은 그런 앤에게 미소를 지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노사에게 포권했다.
“노사를 뵙습니다.”
“몸은? 아니군. 괜한 걸 물었군. 하나만 묻겠네. 설마 자네가 공간이동 방해를 풀고 저 마족을 잡은 건가?”
노사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카리취의 시체가 있었다.
“의심이 가는 건 있지만, 상황적으로 말씀드리며, 카리취는 오크 로드에서 마족으로 변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렇군. 뭐 그건 나중에 차차 알아가도록 하지. 그런데 공간이동 방해는 어떻게 풀었나?”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그래? 사실 우리는 이틀 전부터 이곳으로 공간이동을 하기 위해 마법진을 준비했었네. 하지만, 누군가의 방해로 그걸 저지당했고.”
“그래요? 흠…”
마법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유신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카리취와의 전투 전에 봤던 사람들의 시체가 떠올랐다.
혹시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노사에게 자신이 봤던 것을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알겠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하고, 일단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지. 유신이 자네가 잘 알 것 같군.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만요.”
유신은 아까 떨어뜨린 글레이브를 집어 든 후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쪽으로 쭉 달리면 시민들이 있는 벙커가 있습니다. 그들을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노사는 유신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불가능하지는 않죠. 지금 본대는 어디까지 왔습니까?”
모든 걸 아는 듯한 유신의 말투에 노사는 괜스레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본대는 약 세 시간 뒤에 올 거네.”
“그럼 대략 대여섯 시간만 버티면 되는 거군요. 안내하겠습니다.”
변수를 최소화하고 싶은 게 노사의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위험에 빠진 몽골인들을 무시하는 것도 신화와 전설을 써 내려가는 자신의 격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떡였다.
“쟌. 이만 풀 거라.”
“네.”
쟌이 실드 월을 풀자마자 상위 오크들의 공격이 득달같이 쏟아졌다.
노사는 크게 팔을 휘둘러 양손을 단전에 모은 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화살, 창, 불, 물, 뇌전 등의 수십 가지의 능력과 무기들이 유신 일행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멈췄다.
그 상태에서 노사가 양손목을 돌리자, 능력과 무기들이 방향을 꺾더니 오크들에게 돌아갔다.
콰콰콰아아앙
오크들은 공격이 돌아오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고스란히 피격당했다.
“쟌!”
노사의 짧은 외침에 쟌이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노사가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하다고는 하지만, 돌파력은 쟌의 실드 차지가 월등했다.
앞으로 나선 쟌은 방패를 양손으로 잡은 후, 손잡이 부분을 누르자, 방패 모서리에서 해바라기 꽃잎 모양의 칼날이 솟구쳤다.
“실드 차지!!”
일반적인 실드 차지는 상대를 강하게 가격하여 돌파력을 구사한다.
하지만, 칼날로 덮어 씌워진 방패로 이루어진 실드 차지는 돌파력은 조금 약해졌지만, 절삭력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렇게 약 30미터 앞까지 쟌은 실드 차지로 오크들을 절단하며 돌진했다.
그리고 그 뒤로 유신 일행이 재빨리 뛰었다.
“취이익!!”
오크들은 잠깐의 패닉이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유신이 쥐고 있던 글레이브를 투창 형태로 쥐고는 그대로 던졌다.
퍼퍼퍼억
글레이브는 약 세 마리의 오크를 꿰뚫고 멈췄다.
유신은 이내 주위에 떨어진 아무 무기나 들고서는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그러자, 득달같이 달려들던 오크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고 흩어지려고 했다.
“응? 뭐지?”
“갑자기 오크들이 왜 이래?”
“오크…맞아?”
투쟁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오크들이 서로 물러서기 위해 자신들끼리 싸움까지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특이한 상황에 모두가 제자리에 멈춰 섰을 때, 유신이 검을 휘둘러 오크를 베어내며 외쳤다.
“뭐해요? 빨리 움직여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일행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오직 유신만 앞장을 섰을 뿐인데, 오크들이 물러서고 도망쳤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쟌의 의문을 뒤로한 채 일행은 아무런 싸움 없이 손쉽게 벙커까지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벙커 앞 상황은 최악이었다.
약 백여 명의 몽골 기마부대가 힘겹게 오크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서둘러 그들을 구하기 위해 노사와 리우 그리고 쟌과 스텔라 남매가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유신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더니 사자후를 터트렸다.
“크아아아악!!”
포스가 섞이지 않은 비명에 가까운 사자후였지만, 그 소리에 오크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취.취이익!!”
오크들은 유신의 모습을 보고는 다른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쟌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뭘 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