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_유신 대 카리취(1)
칼 제라니의 독자적인 기술이고, 유신이 비토 제라니에게 배운 기술.
상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몸에 검이 꽂히게 되는 유성 찌르기.
유신이 알고 있는 기술 중 순간적인 돌파력이 가장 강한 기술이었다.
후두두둑
유신이 지나간 곳에 오크들의 피가 뿌려졌다.
충분히 피를 피할 수 있었지만, 유신은 그 피를 그대로 맞아줬다.
그리고는 피에 젖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다.
“취. 취익!! 학살자다. 취이익!!”
오크들은 방금까지 유신이 조금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신이 피에 젖은 올백 머리를 하자, 학살자라는 걸 알아보게 됐고, 겁을 집어먹었다.
그동안 유신은 왼손에 쥐고 있는 하급 마정석에 포스를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급 마정석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건 선물이야.”
휘리릭~
콰콰쾅
마정석의 폭발로 일단의 오크들을 처리한 유신은 하늘에 떠 있는 아람을 바라봤다.
“찾았어?”
“찾았다. 북서쪽으로 가면 된다.”
“오케이~”
유신은 아람이 가르쳐준 오크 로드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후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이동하면서 오크들이 길을 막으면, 유성 찌르기로 돌파했다.
멀리서라도 오크들이 보이면 마정석을 집어 던졌다.
그렇게 빠르게 오크 로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자네,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나온 건가?
볼뜨의 텔레파시가 유신에게 들려왔다.
“아직 살아 계셨네요?”
-빨리 내 말에 답부터 하게!
텔레파시를 통해서도 볼뜨가 잔뜩 흥분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민간인들을 살리기 위해 몽골의 전사들이 최대한 발악을 하며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신이 벙커에서 나왔다는 것은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어주거나, 벙커 문이 부서졌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안전하게 벙커 안에 있습니다.”
-뭐?
유신은 오크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볼뜨에게 사정 설명을 이어갔다.
***
벙커 문 앞에서 유신이 포스 호흡법을 이어갔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포스를 모으지 못했다.
시간도 부족했지만, 포스가 움직이는 길이 망가진 것 같았다.
특히, 오크 로드 카리취의 마지막 투창에 당한 복부에서는 포스가 한점 느껴지지 않았다.
유신은 급한 마음에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을 꺼내서는 그대로 마셨다.
“끄으윽…”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신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통을 참아가며 포스 호흡법으로 포션의 치유가 복부에 집중되길 바랬지만, 고통은 짧았다.
딱히, 치유된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녀의 축복이 깃든 포션’을 꺼내 들었다.
“이게 게임으로 치면 원 코인인데…”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걸 마시고 포스가 회복된다면, 여러 사람을 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원 코인이 그 이상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들이켰다.
벌컥 벌컥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우고 나자,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두근
혈액이 빠르게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뱉어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대로 입을 벌려서 뱉어냈다.
“우웩~”
뱉어낸 것은 검은 액체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검은 액체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포스를 날려서 검은 액체를 가격했다.
끼에에액.
실제로 비명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고, 검은 액체는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렇게 검은 액체를 처리하고 나자, 몸 안에 포스가 움직이는 길이 1차선에서 8차선 도로가 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유신은 서둘러 자리에 앉아,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후읍~ 파~”
지금까지 더디게 움직이던 포스가 빠르게 가속했다.
그 상태에서 유신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쌔애애앵
블랙홀처럼 주위에 있는 기운을 흡수하자, 약한 바람까지 동반됐다.
그렇게 끝없이 기운을 흡수하던 유신이 포스 호흡법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러자, 눈동자에서 잠깐 푸른 빛이 번쩍였다.
“확실히 비싼 게 몸에도 좋네.”
근육통도 사라지고, 삐거덕대던 관절도 멀쩡해졌다.
가닥가닥 끊기던 포스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흘렀다.
눈앞에 있는 두꺼운 강철문을 조각내기 위해 포스 대검을 만들 때였다.
“일어나셨군요.”
“응? 아… 안녕하세요.”
“네.”
노인이 유신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에 뒤에 있던 청년들이 배낭 3개를 유신 앞에 놓았다.
“이게 뭔가요?”
“말씀하신 마정석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등급별로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아…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유신은 배낭에 들어 있는 마정석을 확인한 후에 모두 아공간 팔찌에 집어넣었다.
“저…혹시 저 문을 부수고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네. 그럴려고…”
대답하던 유신은 말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강철문을 부수고 나면 사람들을 지켜줄 게 없어져 버린다.
즉, 이곳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거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준비하겠습니다.”
“네?”
“이렇게 겁에 질려 벌벌 떨기보다는 차라리 저희도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노인은 체념한 듯한 말투였지만, 뒤에 있던 청년들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만요.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정말 잠시만요.”
유신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던 중 아람이 떠올랐다.
“아람.”
포옹
귀여운 효과음과 함께 뾰로통한 모습의 아람이 나타났다.
“뭐냐? 유신.”
“혹시, 벙커 밖으로 나가서 문 열어줄 수 있어?”
“귀찮다.”
“중급 마정석.”
“응?”
아공간에서 중급 마정석을 꺼내 아람 앞에 흔들었다.
“아니. 상급 마정석. 저번에 보여줬던 그 상급 마정석을 줘라.”
“좋아. 대신에 밖에 나가서 오크 로드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줘.”
“진짜냐?”
“시간 없어. 빨리.”
“알았다. 약속이다.”
유신은 도깨비가 내기와 약속을 통해서만 움직이는 게, 남들을 믿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도깨비와의 약속을 허투루 할 생각도 없었다.
방심하는 순간 당하는 건 자신이었다.
“강철문에 흠집 하나 나지 않게 열고, 오크 로드 찾아서 안내하면 상급 마정석. 콜?”
“좋다. 내기는 성립이다.”
유신과 아람 사이에 푸른 빛이 번쩍였다.
그렇게 약속을 끝내자, 아람은 도깨비불이 되어서 강철문과 문틀의 보이지도 않는 틈으로 들어갔다.
철컥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문단속 잘하세요.”
벙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짧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유신은 쏜살같이 나아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유신을 배웅한 노인과 청년들은 창백해진 얼굴이 되었다.
“호.혼잣말하다가 문이 열린 거죠?”
“저. 정령이겠지. 정령은 눈에 안 보인다고 했어.”
“하.하핫.”
그들의 눈에는 아람이 보이지 않았다.
***
유신은 벙커를 나오게 된 배경을 간단히 볼뜨에게 설명했다.
물론 설명하면서 아람에 대한 내용은 빼고 말했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아. 문은 네르구이님이나 내가 없으면 절대 열 수 없었네.
“열리던데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볼뜨는 서둘러 벙커에 있는 노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하지만, 무언가에 막힌 듯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보통 이 경우는 상대가 죽었거나, 정말 유신의 말대로 1M가 넘는 벙커의 강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는 거였다.
-정말. 그들은 안전한가?
“네. 그렇게 걱정되시면 직접 가보시던가, 다른 사람들에게 벙커를 지키게 하면 되잖아요. 제가 왜 금방 밝혀질 거짓말을 하겠어요.”
-아니네. 믿겠네.
뒤늦게 볼뜨는 유신이 일정 방향으로 향하는 걸 파악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유신은 숨길 것도 없기에 볼뜨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설욕전을 하러 가요.”
-그게 무슨?
“이제 도착했네요. 그럼 지금부터 집중해야 해서.”
머릿속에 들려오던 볼뜨의 텔레파시를 강제로 거부하자,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야 대화할 여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집중할 때다.
순간의 실수가 승패를 좌지우지한다.
“여기.”
유신은 아공간에서 상급 마정석을 꺼내 아람에게 건네줬다.
아람은 상급 마정석을 받은 후 한참을 바라봤다.
“왜? 약속한 상급 마정석이잖아.”
“…아니다. 그럼 죽지 마라.”
“이야 웬일이야? 네가 내 걱정을 다 하고?”
“흥.”
하늘 위로 떠올라 사라지는 아람을 본 유신은 호흡을 정리했다.
심적으로 준비를 끝낸 유신은 당당하게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십 명의 시체가 오체분시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취이이이익!!”
화가 난 듯한 오크 특유의 콧소리에 유신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온몸에 피칠갑을 한 카리취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취이익! 학살자! 네가 인간들을 불렀군. 취익!”
“응? 내가? 아닌데?”
“취익. 후읍~ 크아아악.”
카리취는 괴성을 내지르고는 그대로 유신에게 뛰어가며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유신은 다가오는 글레이브를 상체를 숙여서 피하며, 왼쪽 대각선으로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카리취의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캉
어느새 카리취가 글레이브를 세워서 검을 막았다.
처음부터 카리취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옆으로 이동해 사각에서 검을 내뻗었다.
“취익!”
카리취가 짧은 기합과 함께 힘을 주자, 몸에서 검붉은 파동이 솟아났고, 유신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오러?”
보통 오크가 대전사의 자리에 오르면 5대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더 가공된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검붉게 타오르던 카리취의 오러가 유신에게 다가왔다.
오러를 막기 위해서는 같은 오러가 필요하기에 유신 또한, 오러를 뿜어냈다.
우르르릉
새하얗지만, 푸른 빛을 띤 오러와 검지만 붉은빛을 띤 오러의 충돌로 건물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유신과 카리취는 샐 수 없을 정도로 부딪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도 손해도 보지 못할 때였다.
카리취의 글레이브가 더욱 검게 물들더니, 유신의 검과 부딪혔다.
콰아아앙
단 한 수에 유신은 발고랑을 만들며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카리취가 재차 공격하지 않았다.
유신은 기회라고 여기며 유성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상단세로 검을 들어 올리자, 푸른 잔상이 길게 선을 그었다.
푸욱
처음으로 유신의 검이 카리취의 오러를 뚫고는 어깨에 박혔다.
유신의 오러가 카리취의 몸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크아아아아악!!”
갑자기 카리취가 괴성을 내지르자, 검붉은 오러가 더욱 솟구쳤고, 유신은 다가온 만큼 더욱 강하게 뒤로 튕겨났다.
콰아앙
“크으윽. 우웩~”
벽에 부딪힌 유신은 짧게 각혈했다.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눈의 초점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아직 전투 중이기에 애써 앞을 노려봤을 때였다.
카리취의 폭주가 멈추지 않더니, 드디어 건물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잔해를 바라본 유신은 오러를 온몸에 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가장 높고 커다란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먼지구름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