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_전략(2)
사람들이 능력을 얻기 전 전쟁의 전략은 단순했다.
우선 전투기 또는 대공포 미사일로 폭격을 가한다.
그렇게 적들을 빈사 상태로 만들면, 병사들이 탱크와 총 등의 육상 무기를 들고 전진해서 잔당을 쓸어버리는 거였다.
능력이 생긴 이후에도 처음에는 비슷한 양상이었다.
하지만, 마왕과 마족이 나타나고, 몬스터들이 등장한 이후에는 이 방법을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한 곳에 일정량 이상의 폭격 또는 폭탄이 터지면, 차원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차원의 문이 열리면, 백에 구십구 마족이 나타났다.
그 이후로 인류는 폭탄과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지고 있던 무기까지 폐기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상황이 생겼다.
인류가 능력으로 폭격과 유사한 타격을 가해도, 차원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이들은 오직 능력과 총으로만 백만 오크 대군을 상대해야 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 바랍니다.
유신은 갑자기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볼뜨의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봤다.
수성전을 지휘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옆에 있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볼뜨는 전장이 한눈에 보이는 탑에 있었다.
“볼뜨의 능력 텔레파시네.”
“텔레파시요?”
“그렇다네. 볼뜨의 능력 텔레파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신이 지정한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지. 방금처럼 일방적인 명령도 가능하고.”
네르구이가 유신의 궁금증을 풀어준 사이 오크들은 성벽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네르구이님. 부탁드립니다.
볼뜨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그저 이름만 불렀다.
하지만, 이미 모든 작전 설명을 들은 네르구이가 고개를 끄떡이며 활을 들어 시위를 먹였다.
피이이잉
네르구이가 쏜 화살은 곡선 형태로 날아가 몰려오는 오크들 위로 뻗어나갔다.
“발리스타.”
날아가던 화살이 크기를 키워가더니, 아름드리나무 크기로 커졌다.
그렇게 큰 화살은 오크 군단 한복판에 떨어졌다.
콰콰쾅
충분히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몰려오는 개미 떼에게 연필 하나 던지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발리스타가 폭발을 일으킨 곳을 기점으로 불이 솟구쳤다.
그리고는 방어 형태로 길게 길을 만들어 뻗어나갔다.
“와~ 아저씨 화살로 파이어 월을 만드네요. 혹시 그 활을 당겨서 적을 맞추면 새로운 마법이 계속 발동하나요?”
순진무구한 유신의 질문에 네르구이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니네. 볼뜨가 저 밑에 길게 고랑을 파고, 기름을 묻어 뒀다네.”
살짝 기대감을 가졌던 유신은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아~ 화살로 만든 게 아니었구나.”
“…실망을 줘서 미안하군.”
대화하는 동안에도 불길은 길게 늘어져서 더 이상 오크들이 전진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미 불길을 건넌 오크들이 있었고, 그들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쏴라!!!
머리를 울리는 볼뜨의 명령에 성벽 위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궁사들이 화를 쏘기 시작했다.
화살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순식간에 수천에 달하는 오크들에게 적중했다.
그렇게 몇 번 발사한 화살로 불과 성벽 사이에 있던 오크들은 전멸했다.
하지만, 아무도 승리의 함성을 지르진 못했다.
수천의 오크를 죽였지만, 백만 대군 앞에서는 그렇게 티가 나지도 않았다.
-이때다. 모두 다음 작전으로 넘어간다.
성벽 위로 몇몇 궁수가 죽은 오크들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화살 아깝게 뭐 하는 거지?”
유신의 의문은 당연했다.
활을 쏘는 궁수들은 이미 죽은 오크들을 재차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전략이네. 활을 쏘는 궁수들을 자세히 보게.”
네르구이의 말에 유신은 유심히 궁수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화살을 애지중지하며, 최대한 화살촉에 옷자락도 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거기다가 최소 십인장 이상이 활을 쏘고 있을 뿐이었다.
“저 화살에 뭐가 있군요. 설마 독?”
“맞네.”
“아!”
뒤늦게 유신은 이들의 뜻을 파악했다.
오크들은 자신의 동료들도 식량으로 쓴다.
죽은 동료들의 사체를 가져간 오크들은 그걸로 식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크들에게 중독이라는 피해를 줄 수 있게 된다.
“알겠나?”
“네. 확실히 효과가 있겠네요. 근데 오크들은 후각이 예민한데, 괜찮을까요?”
유신의 지적은 정확했지만, 볼뜨는 그렇게 허술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화공과 같이 쓰는 거네.”
“네?”
“전투 전에 나눠줬던 마스크를 쓰도록 하게. 아무리 바람술사들이 이곳을 보호하고 있다지만, 저기 화염 벽 안에 마비를 일으키는 마비초가 타고 있다네.”
“태우는 거라서 그렇게 큰 효과는 없을 텐데요?”
“그렇지. 하지만, 후각과 약간의 미각 정도는 마비시키지.”
전략은 정말 대단했다.
솔직히 백만 오크 대군을 물리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오크들이 이곳을 공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이게. 저 볼뜨라는 분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요?”
“그렇다네.”
유신이 탑 위에서 전장을 둘러보는 볼뜨를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약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불이 서서히 힘을 잃었다.
오크들은 아직 다 꺼지지도 않았는데, 불길을 뚫고 전진했다.
연기 때문일까?
다가오는 오크들은 숯 검댕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취이이익!!”
갑자기 괴성을 지르던 오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벽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오크들이 죽어 있는 오크들을 살짝 넘어선 순간이었다.
-쏴라!!!
머리를 울리는 볼뜨의 목소리가 들렸고, 화살 공격이 시작됐다.
하늘을 가득 채운 화살들이 오크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오크들은 화살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 방패를 머리 위로 들고 또는 동료의 시체를 머리 위로 들고는 전진했다.
-이때다!!
볼뜨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명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언제 대기하고 있었는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던 화염술사들이 준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솔직히 겨우 백 명의 화염 공격은 오크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눈 감고 쏴도 오크가 맞을 정도로 오크가 많은데, 대부분의 화염 공격은 애꿎은 땅에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콰콰쾅
화염술사들이 공격이 내리꽂힌 땅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휘말린 오크들은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기마부대라면서요! 원체 원소술사가 일반 능력자들보다 더 파괴력이 강한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 파괴력이면 막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죽일 수도 있겠어요.”
네르구이에게 따지듯이 말하는 유신의 말은 당연했다.
그 정도로 공격에 이은 폭발은 대단했다.
하지만, 네르구이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부족하군.”
“저 정도 폭발이 부족하다고요? 화염술사들이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쏘면 되지 않을까요?”
“자네가 오해하고 있군. 방금 화염술사들이 맞춘 건 우리가 미리 묻어뒀던 마법 폭탄이었네.”
“아…”
“예상보다 피해가 적어. 그리고 오크들은 동료가 옆에서 죽어도 끊임없이 몰려오는군.”
오크들은 무대포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취이이익!!”
성벽에서 봐도 빼곡하게 있는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성벽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공포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건 다른 누구도 아니라 볼뜨의 텔레파시였다.
-토벽을 세워라.
붉은 띠를 두르고 있던 화염술사들이 뒤로 빠지고, 노란 띠를 두른 대지술사들이 앞으로 나와서 전장에 듬성듬성 토벽을 세워 오크들의 전진을 막았다.
앞은 막다른 길인데, 뒤는 계속 전진하는 오크들로 인해 선두에 있던 오크들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장은 난장판이 됐다.
-네르구이님 지금입니다.
볼뜨의 음성을 들은 네르구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강철 화살을 들어서는 시위를 먹였다.
그리고는 넓게 퍼져있는 오크들에게 쏘기 시작했다.
“발리스타 발리스타 발리스타……”
순식간에 수십 번의 발리스타가 발사됐다.
그런데, 아까와 다른 점은 발리스타가 폭발하지 않았다.
그저 전봇대처럼 땅에 박혀 있었다.
“하아 하악…”
한계치까지 능력을 사용한 네르구이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볼뜨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이번에는 푸른 띠를 두른 백여 명의 사람들이 성벽 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발리스타를 향해 뇌전을 발사했다.
철로 된 발리스타가 뇌전을 흡수하더니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발리스타에 전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장에 있는 모든 발리스타에 뇌전이 흡수되었고, 과부하된 뇌전은 주위에 있던 오크들을 감전시켰다.
“빨리 마정석!”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뇌전술사들에게 마정석을 가져다주었고, 그들은 건네준 마정석의 마력을 토대로 끊임없이 뇌전을 토해냈다.
콰르르릉 쾅 쾅
넓은 전장은 뇌전을 뱉어냈고, 그때마나 한 무더기씩의 오크들이 죽어 나갔다.
“췩.췩. 취이이익!!”
오크들 쪽에서 전장을 울리는 외침이 들렸다.
그제야 죽으면서도 앞만 보고 달리던 오크들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크들은 떠나면서도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시체를 하나씩 가져갔다.
그게 안 되는 오크들은 최소한 신체 부위 중 하나라도 가지고 후퇴했다.
“우와와와와와~!!”
후퇴하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함성을 내질렀다.
공선전 첫날이었고, 짧은 전투였다.
하지만, 백만 오크들은 백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도 끝내 성벽에 닿은 존재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기뻐할 때 다급한 볼뜨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치료사!! 빨리 치료사!!!”
후방에 빠져있던 치료사들이 다급히 성벽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뇌전술사들에게 광범위하게 치료를 걸기 시작했다.
“힐!”
지금 보니 뇌전술사들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연신 땀을 흘리거나 피를 토해냈다.
심한 뇌전술사는 양팔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전투는 끝이 났다.
오크들은 물러났고, 뇌전술사들 몇몇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거 말고는 특이점이 없는 대승이었다.
***
그날 밤.
볼뜨와 다른 천인장들이 모였다.
“작전이 먹혔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때 별동대를 조직해서 오크들을 괴롭혀야 합니다.”
볼뜨가 상석에 앉아 다른 천인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죄송함과 슬픈 얼굴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말이 별동대지 지금 조직하겠다는 것은 자살 특공대였다.
그래서 누가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은 바칠 수 있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부하들까지 죽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기마 부대원들에게 공지해서 지원자를 뽑겠습니다.”
볼뜨의 말에 천인장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때 부관이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볼뜨님 급히 보고드릴 상황이 생겨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아니네. 괜찮아. 그래 무슨 일인가?”
“그게 네르구이님과 칼님이 그레이트 울프를 타고 성벽을 벗어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