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_1 대 백만(3)
유신이 처음 홀로 성벽을 벗어나 오크 군단에게 뛰어갈 때.
사람들은 하룻강아지가 오우거의 입으로 뛰어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몸이 오크의 피로 인해 검은 옷이 검붉게 변한 지금은 어떤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그 모습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블레이드 샷
강맹한 검기가 오크 전사들에게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오크 전사들의 일각이 무너졌다.
하지만, 유신이 원하는 만큼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블레이드 샷이 오크 전사들과 부딪히기 직전 넝쿨 벽이 자라나서 오크 전사들을 보호했었다.
오크 주술사부터 처리해야겠지만, 그들은 오크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완벽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포스 미사일
검에 한가득 마나를 담아 주술사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때 오크 전사들 사이에서 무식하게 큰 도를 든 오크가 뛰어올라서는 포스 미사일과 맞부딪혔다.
콰콰콰콰콰아앙
포스 미사일을 막았던 오크 대전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공중에서 포스 미사일이 폭발했다고는 하지만, 후폭풍과 폭발력에 오크 전사의 일각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사용한 포스에 비해 피해가 너무 없어.’
새로운 검을 꺼내 들고 오크 전사들에게 검기를 날렸다.
서걱
콰앙
날아간 검기는 또다시 생겨난 넝쿨 벽을 베어냈지만, 오크 전사의 방패에는 막히고 말았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딸깍
봉쇄의 목걸이를 돌려 봉인을 한 단계 더 풀었다.
그로 인해 유신의 포스 활용도는 높아졌고, 검격은 더욱 파워풀해지고 빨라졌다.
촤악
서걱
콰콰쾅
봉인을 푼 효과는 바로 나왔다.
상위 개체의 오크라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학살이 다시 시작했다.
아무리 두꺼운 갑주를 입은 오크 전사라도 유신의 검기에는 양분될 뿐이었다.
하지만, 간간이 날아오는 강철 화살과 주술사들의 주술 때문에 활동 범위는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다급함이 느껴졌고, 평소보다 더 많은 포스를 소비했다.
“너희들 말고 로드 나오라고 해!”
“로드 겁 먹었냐?”
“너희 로드가 있기는 하냐?”
팔찌의 통역 마법을 통해 오크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오크들은 대답이 없었다.
물론 오크 로드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공격하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불리한 것은 유신이었다.
포스도 체력도 언젠가는 마르고 만다.
“하아 하악…”
눈앞에 있던 1만의 오크 전사와 주술사 그리고 숨어있던 오크 스카우터를 몰살시키는데,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유신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가면은 여기저기 패이고 금이 갔다.
마도구인 전투복을 제외하고는 옷은 다 찢어져서 겨우 걸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총 5단계로 이루어진 봉쇄의 목걸이에 봉인을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4단계까지 풀었다.
‘이대로 로드를 만나면 내가 먼저 피해야 할 수도 있겠어.’
그때 오크 대전사 넷과 대주술사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유신이 호흡을 정리하는 동안 넝쿨로 유신의 하반신을 묶었고, 불덩이를 쏘기 시작했다.
유신은 다가오는 불길을 보며 검을 움직였다.
스르륵 탁
주술사의 공격을 베어내기보다는 이화접목의 수법과 포스의 활용을 이용해 상대에게 되돌려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소한의 포스로 상대를 공격하는 거였다.
그렇게 주술사를 견제했지만, 어느새 오크 대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유신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취이이익!!”
넝쿨로 인해 움직임의 제약이 있고, 상대의 공격은 코앞이었다.
유신은 어쩔 수 없이 왼손을 목걸이에 가져다 댔다.
달칵
콰르릉
콰콰콰콰콰
마지막 봉인이 풀려나자, 실체화된 포스가 뿜어졌다.
허리까지 감겨있던 넝쿨은 가루가 되었고, 다가오던 오크 대전사들을 밀어냈다.
자유가 된 유신은 그 상태에서 앞으로 쏘아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 대전사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창을 든 오크 대전사는 5대력을 일으켜 유신의 검을 막으려고 했다.
서걱
오러가 오크 대전사의 목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 상태에서 유신은 제자리에 회전하며 포스를 뿌려서 다가오려던 다른 오크 대전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리고 주술사들을 향해 연달아 3번의 검을 휘둘러 오러를 날렸다.
콰콰쾅
처음 오러는 주술사들의 방어를 부쉈다.
두 번째 오러는 주술사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마지막 오러가 작렬하고 살아남은 오크 대주술사는 보이지 않았다.
“췩. 취이익!”
그사이에 중상을 입은 오크 전사들이 유신을 공격했다.
유신은 살짝 몸을 피해서 공격을 회피한 후, 갑옷과 갑옷 사이의 빈틈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렇게 마지막 오크 대전사가 쓰러지자, 그 뒤로 오크 라이더 군단이 쇄도해 오고 있었다.
“쉴 틈을 안 주는구만.”
유신은 오크 라이더들에게 기세를 퍼뜨렸다.
하지만, 피와 광기 그리고 전투의 흥분 때문인지 저번과는 다르게 울프들이 겁을 먹지 않았다.
오크 라이더들은 유신을 짓밟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마주 달려갈까 하다가, 땅이 부서지도록 높게 점프했다.
그리고 왼손에 포스를 집중한 후, 그대로 오크 라이더에게 내질렀다.
콰콰콰콰쾅
주먹 모양의 크레이터가 생겼고, 그 안에 있던 오크 라이더들은 짓눌렸다.
땅에 내려선 유신이 그대로 앞으로 쏘아졌다.
눈앞에 오크 라이더가 보이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후두둑
오크 라이더와 울프가 피를 휘날리며 쓰러졌다.
유신은 그 상태에서 크게 원을 돌며 오크 라이더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대부분의 오크 라이더의 몸을 갈라버렸을 때였다.
척척척
오크들이 둥글게 유신을 포위했다.
“오크 라이더는 미끼였군.”
땅에 떨어진 오크 라이더의 글레이브를 발로 차 위로 띄운 유신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검의 탄력에 글레이브는 빛살처럼 오크들에게 날아갔다.
약 스무 마리를 꿰뚫고 여섯 마리의 오크를 꼬치처럼 꿰고 나서야 글레이브는 힘을 잃었다.
“후읍~”
최대한 깊게 숨을 들이마신 유신은 오크들을 향해 사자후를 내뱉었다.
“크아아앙”
전장에 유신의 사자후가 울려 퍼졌고, 근방에 있던 오크들은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조금 거리가 있던 오크들은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수적으로는 확실히 오크들이 우세했다.
약 이틀간 유신이 죽인 오크들의 숫자가 몇만 단위였다.
핵심전력인 오크 전사 부대와 오크 궁수 그리고 주술사들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백만에 가까운 오크들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가 아직 오크 로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꾸욱
더욱 강하게 검을 쥔 유신이 서늘한 눈빛으로 오크들을 바라봤다.
대부분의 오크가 유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숫자가 많으면 뭐 하는가?
전장을 지배하는 사람은 유신이었다.
***
끊임없이 밀려오는 오크를 죽이고 죽였다.
얼만큼 상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크들의 시체 때문에 자리를 이동한 것도 셀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어느새 마르지 않을 것 같던 포스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오른팔과 왼팔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길! 아직도 체력이 부족하다고?’
전투는 사흘동안 지속됐었다.
하지만, 유신에게 해가 뜨고 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아공간에 있는 마지막 무기까지 전부 소비하자, 오크들이 사용했던 조잡한 무기를 들고 싸웠다.
‘무기를 다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여기서… 여기서 살아남으면 부서지지 않는 검을 구해야겠어.’
무기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때였다.
감각에 위험 신호가 울려 퍼졌다.
얼마 남지 않은 포스를 박박 긁어모아 무게 중심도 맞지 않은 글레이브에 집어넣고는 성급히 방어 동작을 취했다.
콰징
유신은 뒤에서 날아오는 거대 글레이브를 가까스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글레이브는 부러졌고, 그 충격에 유신은 발고랑을 만들며 길게 미끄러졌다.
“췩! 취이익!”
공격이 날아온 곳에서 기분 나쁜 콧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2미터 크기의 오크가 있었다.
“…하아 하악… 드디어 만났네…”
“학살자, 취익. 오크 로드인 이 카리취가 상대한다. 췩. 취이익!”
자신만만한 표정의 카리취가 유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하들을 희생해 체력을 빼고 누가봐도 버드나무 잎처럼 위태롭게 흔들리자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 로드 카리취는 좋게 말하면 신중했고,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였다.
탁
발밑에 있는 이가 나간 검을 집어 들었다.
이 검으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포스가 바닥나 오러는 언감생심이고, 겨우 검기 몇 번을 쓰고 나면 끝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특히, 저런 비열한 놈에게는.’
유신은 카리취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속도가 너무나 늦었다.
그 모습을 본 카리취는 유신이 완벽히 지쳤다는 걸 파악했다.
그래서 모습을 드러냈고, 공격했던 거였다.
학살자를 처치하는 영광은 다른 오크 대전사가 아니라, 자신이 될 거기에 다가오는 유신을 향해 거대한 글레이브를 내리찍었다.
콰직
글레이브는 애꿎은 땅을 가격했다.
유신은 한 번의 스텝으로 손쉽게 피한 후, 일점술로 카리취의 심장을 노렸다.
심장을 향해 검이 다가오자, 카리취가 입을 벌리며 웃었다.
카리취는 글레이브를 놓고 심장으로 다가오는 검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챙그랑
퍼억
주먹은 포스가 깃든 검을 부러뜨리고, 유신의 얼굴을 가격했다.
텅텅텅
유신은 물수제비가 된 것처럼 땅을 튕겼다.
오크와의 전쟁 중 유신에게 제대로 피해를 준 유의미한 타격이었다.
“취이익!”
카리취가 흥분했는지 길게 콧소리를 냈다.
“카리취! 카리취! 카리취!”
전투를 구경하던 오크들은 유신이 당하는 모습에 카리취를 연호했다.
그 사이,
쓰러졌던 유신이 비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에고가 선물해줬던 가면은 반파되어서 유신이 민낯을 드러냈다.
“췩 췩 취이익!”
“취이이이이이익~”
오크들은 아직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카리취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화음까지 맞추기 시작했다.
유신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그래서 오크들의 기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걸음 걷기도 힘들어.’
방금 카르취에게 얻어맞고 잠깐 쓰러졌을 때 온몸의 근육이 이제 그만 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저 유신이 육신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췩!”
카리취의 콧소리에 오크들의 화음이 멈췄다.
그리고 카리취는 유신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유신은 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기다가 오른손은 손끝까지 피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크크취 취이익! 학살자 강하다. 하지만, 오크 로드인 카리취가 더 강하다.”
가슴을 두들기며 말하는 카리취의 모습에 유신의 불쾌감은 극으로 치달았다.
“겁쟁이처럼 숨어있었으면서.”
겁쟁이.
카리취에게는 금기어와 다름 없는 말이 나왔다.
과거의 막내 카리취가 떠오른 카리취는 흥분한 상태에서 양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곧장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힘 하나는 대단해.’
유신은 흥분한 물소가 되어 달려오는 카리취를 보며 다시 한번 자신을 가늠했다.
언제 다리가 풀려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근육은 혹사했고, 포스의 연결이 가닥가닥 끊겼다.
그때, 카리취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상체를 살짝 뒤로하고, 고개를 비트는 것으로 주먹을 피했다.
그 상태에서 반동을 이용해 돌려차기로 카리취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있는 힘껏 공격했지만, 카리취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도리어 화만 돋우었다.
카리취는 유신의 발목을 잡고는 그대로 들어 올려서 땅에 내리찍었다.
“커억~”
유신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더욱 흥분했는지 카리취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패대기를 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이제는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카리취가 유신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공중으로 떠올랐던 유신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였다.
“그래비티”
“레비테이션”
“사이코키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