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_1 대 백만(2)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소문은 빠르게 전파된다는 뜻이다.
물론 전장에서도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오크 로드를 포함해 오크 대전사들과 오크 대주술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취익 오크 로드 카리취시여. 저 다르취가 이번에는 오크 학살자를 잡아 오겠습니다.”
“취익 아닙니다. 저 센취가 하겠습니다.”
“저도 취익!”
“내가 강하다. 취익!!”
“무슨 소리냐 내 팔뚝이 취익 제일 두껍다. 물론 로드 빼고!”
오크들의 회의장은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그들은 서로 오크 학살자 유신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카리취는 그런 오크 대전사들을 둘러보며 대견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부하들이라고 해도 상대는 오크 학살자였다.
그가 나타났다고 잠깐 진군 방향까지 돌렸을 정도였다.
오크 대전사 홀로 보내기에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취익!”
카리취의 외침에도 회의장은 자신들이 더 강하다고 오크 대전사들이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화가 난 카라취는 발을 들어서 땅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지진난 것처럼 땅은 흔들렸고,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그제야 카리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취익! 혼자서는 학살자를 상대할 수 없다.”
카리취의 말에도 오크 대전사들은 눈을 빛내며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그때 젊은 오크 주술사인 타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취취익 로드 카리취시여. 그렇다면 다르취와 센취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취익.”
“그러냐 타취?”
“그렇다. 취익.”
고개를 끄떡인 카리취가 자리에서 일어나 타취에게 걸어갔다.
타취는 카리취의 칭찬 또는 선물을 기대했다.
하지만, 타취는 카리취에게 목이 잡혀 대롱대롱 매달렸다.
“왜? 췩! 켁. 켁.”
“타취! 취익! 나 로드다. 너 어린 주술사다. 취익. 근데 말이 짧다. 취이이익!”
“커. 커컥.”
“이번에는 취익. 다르취와 센취가 먼저 손든 거 기억해서 살려준다.”
말을 끝낸 카리취가 타취를 집어던졌다.
쿠타탕
볼썽사납게 넘어진 타취였지만, 재빨리 앞으로 엎드려 용서를 빌며 벌벌 떨었다.
“고 고맙…취익 감사합니다. 취익.”
타취의 말을 무시한 카르취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취이익 다르취, 센취, 그리고 타취가 학살자를 죽여라. 취이익!”
“취이익!”
“취익!!”
다르취와 센취가 기분 좋은 콧바람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반나절 동안 유신이 죽인 오크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백만 대군이다.
아무리 학살했다고 해도, 1명이 백만을 죽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유신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카앙
무념무상으로 검을 휘두르던 유신의 검이 처음으로 막혔다.
유신의 검을 막은 것은 다르취의 거대 양날 도끼였다.
“취익! 학살자 여기까지다.”
“학살자 취익! 센취가 잡는다. 취익!”
다르취와 센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유신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센취의 창이 유신을 꿰뚫기 위해 찔러 들어왔고, 다르취의 도끼가 유신을 짓뭉개기 위해 쇄도했다.
탁
처음으로 유신이 무기를 맞대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앞에 있는 오크들이 일반 오크가 아니라 대전사급이라는 건 유신도 눈치챘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난 건 아니었다.
잠깐의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유신의 재정비는 아주 짧게 진행됐다.
“빠르게 가자.”
유신은 미약하지만 5대력이 흐르는 오크 대전사들의 무기를 검으로 받아쳤다.
쩌저적
이번에는 검기까지 사용했는데, 유신의 검이 그들의 파워에 금이 갔다.
미련을 두지 않고 검을 집어던졌다.
역시 괜히 오크 대전사가 아니었다.
재빠르게 던진다고 했지만, 다르취가 거대 도끼의 옆면으로 공격을 막았다.
퍼퍼펑
하지만, 검이 부서지면서 포스 폭발을 일으켰고, 다르취가 뒤로 밀려났다.
재빨리 새로운 검을 꺼낸 유신이 창을 든 센취에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기가 맺혀있는 유신의 검이 센취 바로 앞에서 튕겨났다.
센취 앞에는 반투명한 막이 떠 있었다.
“취익 취취췩”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유신의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에는 타취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웃고 있었다.
그사이 뒤로 밀려났던 다르취가 다가왔다.
“이거 너희들한테 얕보였네.”
유신은 검기를 거뒀다.
그러자 다르취, 센취, 타취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위이이잉
순식간에 오러를 뽑아낸 유신이 오크 대전사들을 향해 오러를 뿌렸다.
서걱
단 일초식에 다르취와 센취는 무기와 함께 양분되며 운명을 다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타취의 미소가 사라졌다.
유신은 재빨리 타취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자른 후, 목을 움켜쥐었다.
“취. 컥. 취익 커컥.”
타취로서는 오늘 하루 로드와 학살자에게 연달아 목이 잡혔다.
그래서 그런지 공포심은 배가 됐고, 자신도 모르게 대소변을 쏟고 말았다.
“내 말 들리지?”
유신의 말에도 타취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 콧물, 침, 분뇨를 쏟아냈다.
불쾌한 냄새가 올라오자 유신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목을 놔주지는 않고 그 상태에서 기세를 끌어올렸다.
“내 말이 안 들리면, 넌 오늘 죽는 거야.”
생존 본능은 타취의 정신을 돌아오게 했고, 목이 잡힌 상태에서 고개를 끄떡였다.
“좋아. 로드한테 전해. 내가 아니 너희가 말한 데로 학살자가 왔으니 한판 붙자고.”
쿠다탕
유신이 타취를 집어던졌다.
타취는 오크 전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이곳에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신은 이내 검을 들고는 한쪽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지만, 일반 오크들은 유신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벌 떨 뿐이었다.
오크들을 무시하듯 유신은 아공간에서 생수통을 꺼내고는 목을 축였다.
벌컥벌컥
그렇게 갈증을 해소한 유신이 고개를 들어서 남은 물로 가면에 물을 부었다.
그러자, 유신의 주위로 오크들의 묵은 피가 벗겨졌다.
아무렇지 않은 그 행동이 오크들에게는 더욱 공포심을 자극했다.
부스럭부스럭
언제 꺼내 들었는지 이제는 에너지바까지 챙겨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에너지바 위에 떨어졌다.
평소라면 기겁할 유신이었지만, 모든 게 귀찮아서 그대로 씹어 먹었다.
꿀꺽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유신의 먹는 모습을 보고 본인들도 배가 고파졌는지 오크 중 한 마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눈치를 보다가 죽은 오크 시체를 짊어지고 오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장은 유신과 오크들의 핏자국만 남겨지고 휑하니 비었다.
“저게 말이 됩니까? 오크가 후퇴한다고요?”
“그게 놀랄 일인가? 홀로 오크들을 막았어. 한두 무리도 아닌 백만 오크를.”
“다른 몬스터도 아닌 오크가 겁을 집어먹다니…”
성벽에서 이 모든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
타취는 최대한 빠르게 카리취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한팔이 잘리고, 피투성이에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타취의 모습에 카리취는 인상부터 구겼다.
“취.취익 로드시여. 학살자가 로드와 싸…”
펑!
타취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카리취가 타취의 머리를 주먹으로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취익! 감히 위대한 오크 로드인 나에게 인간 따위의 말을 전하려 하다니 취익! 타취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취이익.”
주위에 있던 다른 오크 전사들은 카리취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취이이이익! 누가 학살자를 혼내줄 것인가? 취익! 아무도 없나?”
벌벌 떨고 있는 오크 대전사와 오크 대주술사를 바라본 카리취는 손가락으로 몇몇을 가리켰다.
“취익 너. 너. 너. 취익. 너. 너. 그리고 너. 너. 1만의 취이익. 오크 궁수와 1만의 오크 전사 취. 그리고 오크 스카우터를 주겠다. 학살자를 잡아 와라. 췩!”
“취익”
선택받은 오크 대전사와 오크 대주술사는 학살자도 무서웠지만, 흥분한 카리취가 더욱 무서웠기에 재빨리 대답하고는 전장으로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리취는 콧김을 내뱉더니, 자신의 왕좌에 가서 앉은 후에도 눈을 감을 뿐이었다.
‘취익 학살자를 잡기 위해서는 더욱 힘을 빼야 한다. 취이익.’
그렇다.
카리취는 학살자 유신에게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서 오크들과 부하들을 희생해서 유신의 힘을 빼놓을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오크 로드였다면, 이미 학살자를 잡기 위해 앞에 나섰을 거다.
하지만, 지금 오크 로드인 카리취는 이 자리에 올랐지만, 내면은 힘없고 약한 막내 카리취였다.
***
유신은 오크들이 물러나자 조금이라도 체력과 포스를 회복하기 위해 조용히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그렇게 사용한 포스의 10분의 1정도를 회복했을 때였다.
후퇴했던 오크 군대에서 소란이 일더니 오크 궁수들이 앞으로 나와서는 유신에게 활을 쏘기 시작했다.
슈슈슝
오크들의 조잡한 활과 화살은 파괴력과 제구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오크의 화살이 그 모든 걸 뒤집었다.
“그실.”
티티티팅팅팅
오크 궁수의 공격은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유신이 있던 곳은 빼곡한 화살로 뒤덮였다.
성인 키만큼 화살이 쌓였고, 유신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크와 사람들은 유신이 죽은 줄 알았다.
들썩
화살이 가장 많이 쌓여있던 중심부가 움직이더니 화살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거기서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위에 떨어진 화살을 한움큼 쥔 유신이 그대로 오크 궁수를 향해 비수처럼 집어던졌다.
파파팍
유신의 제구력은 오크 궁수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앞 열에 있던 오크 궁수들이 화살에 꿰뚫렸다.
“이게 바로 물반 고기반 아니, 공기반 오크반이구나.”
아무렇게나 던져도 오크들이 맞아줬다.
이건 그냥 던지면 오크들이 맞아주기 위해 다가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위험신호가 울려 퍼졌다.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카카캉
퍽
잘 제련된 강철 화살이 유신의 가면을 스치고 땅에 틀어박혔다.
지금까지 전투 중 단 한 번도 흠집이 나지 않았던 가면이 길게 긁혔다.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다.
연달아 화살이 날아왔다.
파파팍
서둘러 몸을 움직여 화살을 피했다.
그때 오크 전사들이 대형을 갖추고 다가왔다.
검을 뽑아 들고 오크 전사와의 한판을 준비하려고 할 때였다.
발밑이 꿈틀거렸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피하고 보니 그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넝쿨이 자라났다.
“취익! 학살자를 죽여 오크의 명예를 살리자!”
“취이이이익!!”
다가오는 오크 군단을 본 유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일반 오크들 위주로 상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가오는 것들은, 전사, 주술사, 스카우터 등의 상위 개체 오크들이었다.
그들이 무섭거나 겁이 나는 건 아니었다.
‘예상대로라면, 지금은 나타났어야 하는데…’
하지만, 아직 오크 로드의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보며 유신은 속으로 다짐했다.
포스를 아낄 때가 아니다.
혹시 몰라 멀리 떨어진 성벽을 힐끔 바라봤다.
여차하면 후퇴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여기서 오크 로드를 죽이지 못하고, 오크 군대가 성벽으로 다가오게 되면, 나도 저들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쇄앵
생각이 깊었던가?
기회를 노리던 오크 스카우터의 강철 화살이 또다시 가면을 긁고 지나갔다.
그 뒤로도 강철 화살은 계속 날아왔다.
이미 예상하고 있기에 강철 화살을 쳐냈다.
그리고 검기를 일으키고는 홀로 오크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