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_ 1 대 백만(1)
유신의 힘 조절은 경지에 올라갔다.
네르구이가 공중으로 던져진 후, 최고점에 도달하고, 1미터도 안 되는 짧은 낙하로 안전하게 성벽 위로 올라가게 됐다.
“너도 올라갈 거지?”
“끼이이잉~”
그레이트 울프는 유신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동물의 육감으로 유신이 뭘 하려는 지 파악했다.
그래서 잔뜩 겁을 집어먹어서는 살랑살랑 흔들던 꼬리가 내려가며, 뒤로 물러났다.
덥석
“어디가. 그리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는 그대로 그레이트 울프를 성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런데, 날아가던 그레이트 울프가 공중에서 발광했고, 그로 인해 운동 에너지가 약간 부족해졌다.
이대로면 그레이트 울프와 성벽이 찐한 키스를 하게 될 것이다.
탁
이 상황을 가장 먼저 눈치챈 유신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그레이트 울프의 옆으로 이동한 유신은 앞발을 붙잡고는 다시 한번 던졌다.
휘리릭 탁
그레이트 울프는 방금까지 겁에 질렸다는 것을 잊고, 성벽 위에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했다.
그리고 유신도 어느새 그레이트 울프 옆에 서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끼이이잉.”
앓는 소리를 내는 그레이트 울프를 유신이 쓰다듬어 주었다.
곧, 누가 봐도 위압감 있고 무서워 보이던 그레이트 울프가 꼬리를 뱅뱅 돌렸다.
“다.당신은 누굽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볼뜨가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유신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려고 했지만, 네르구이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교황청 소속의 칼 제라니로 나를 구해준 사람이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유신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화려하게 자기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오늘만 기회가 아니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마주 인사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전 이만.”
몸을 돌려 성벽으로 내려가려던 유신은 아직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그레이트 울프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그레이트 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저씨 말 잘 들어. 알았지?”
“컹 컹.”
말이 통했는지, 그레이트 울프가 짧고 굵게 외쳤다.
“아저씨도 이제 나이가 있으신데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나 말인가?”
네르구이가 자신을 가리키자, 유신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여기서 아저씨 말고 또 누가 있어요.”
“그. 그래 알겠네.”
짧은 작별을 마친 유신이 이제는 정말 이곳을 떠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볼뜨가 유신을 불러 세웠다.
“칼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어디긴요? 오크 잡으러 가죠.”
볼뜨는 어떻게 해서든 앞에 있는 유신을 붙잡으려고 했다.
자신의 은인이자, 상관인 네르구이를 구해서 온 것도 있지만, 잠깐 선보인 강함은 진짜였다.
한 명의 강자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기에 볼뜨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오크를 잡으러 가실 거면 굳이 힘들게 어디 가실 필요 없습니다. 오크 군단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전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유신은 자신에게 내려온 명령을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해도 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딱히 비밀도 아니기에 답해주기로 결심했다.
“오크 로드를 잡으러 가야 하거든요.”
“네?? 누구요?”
“오크 로드요.”
볼뜨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른 오크도 아니고, 오크 전사나 대전사도 아닌 오크 로드라고 했다.
오크 로드는 잡고 싶다고 쉽게 잡을 수 있는 잡몹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수많은 오크를 뚫고 가야지 만날 수 있는 게 오크 로드이고, 이건 상식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충분히 유신을 붙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으시다가, 기회를 잡는 건 어떠십니까?”
“으흠…”
유신은 볼뜨의 의견을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혼자 무작정 달려들기보다는, 방어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좋습니다. 아직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런데 혹시 능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왜요?”
“칼님의 능력을 안다면, 공성전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볼뜨는 유신이 오크 로드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말을 물어봤을 거다.
하지만, 선배들이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거다.
‘전략*전술은 약한 애들이나 쓰는 거야.’
유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에 웃으며 답했다.
“오크 로드는 제가 잡을 테니까. 공성전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볼뜨는 유신이 몬스터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네르구이의 은인이기에 마지못해 답했다.
“……네.”
***
볼뜨의 예상과는 다르게 도시로 향하던 오크들은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다.
그렇게 다른 곳에 들렸다가 돌아온 오크는 이틀이 지난 후에야 몽골 도시에 도착했다.
오크들은 뒤늦게 도착한 후에 공성 준비에 들어갔다.
“볼뜨님의 말씀대로 오크들이 저희가 도청 장치를 숨겨둔 곳에 진지를 펼쳤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오크들이 갑자기 다른 곳을 들린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봤나?”
“그게 언어 능력자의 말로는 학살자를 잡기 위해 잠깐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학살자?”
“네. 그런데, 오크들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으흠… 대체 학살자가 누구길래… 기마부대로도 돌리지 못한 백만 대군의 방향을 틀었을까?”
“죄송합니다. 아직 그건 파악이 안 됩니다.”
“아니네. 자네를 탓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바쁠 텐데, 이만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부관이 나간 후 볼뜨의 미간은 더욱 깊게 파였다.
‘이번 전쟁은 변수가 너무 많아…’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중국 쪽에서 일주일 안에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다.
즉, 이제 일주일만 버티면 됐다.
“볼뜨님! 오크들이 움직입니다.”
“뭐? 벌써?”
서둘러 밖으로 나온 볼뜨는 이미 성벽 위에 네르구이와 유신이 있는 걸 확인했다.
“늦었군.”
네르구이의 말에 볼뜨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른 업무를 처리하다 왔습니다.”
“됐네. 어서 명령을 내려주게.”
“제가 어찌 네르구이님께 명령을 내립니까.”
볼뜨의 말이 맞았다.
네르구이는 만인장이며, 볼뜨는 천인장이었다.
거기다가 볼뜨의 직속 상관은 네르구이였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실패한 지휘관으로서에 자각이 있었고, 수성의 지휘는 자신보다 볼뜨가 월등히 뛰어나기도 했다.
“나는 패장으로서 모든 걸 내려놨네. 그러니 볼뜨 자네는 날 장기말처럼 사용해도 되네.”
“하지만…”
“그래야, 우리가 하루라도 더 오크들을 막을 수 있을 거 아닌가?”
“…알겠습니다.”
짧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오크들은 성으로 다가왔다.
그때 옆에 있던 유신이 스트레칭을 하더니 성에서 뛰어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네르구이와 볼뜨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유신은 엄청난 속도로 오크들에게 쏘아졌다.
“네르구이님. 말려야 합니다. 저건 무모합니다. 아니 그냥 자살하러 가는 거와 같습니다.”
“어쩔 수 없네.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저렇게 하기로 했었으니. 일단 준비부터 하세.”
“…알겠습니다.”
성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유신은 재빠르게 달려가며 한 자루의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포스를 무작정 창에 때려 박아 넣고는 그대로 다가오는 오크들에게 집어 던졌다.
쇄애애애액
쾅
창은 일직선으로 날아가 오크 군단 한가운데 꽂혔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창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유신의 새로운 기술 포스 미사일의 발동이었다.
대폭발과 함께 오크들이 쓸려나갔다.
곧이어, 후폭풍이 일어나며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고, 오크들이 나뒹굴었다.
후폭풍의 위력은 멀리 떨어진 몽골의 성벽에도 약간의 바람을 일으킬 정도였다.
“저게 인간의 능력이라고?”
볼뜨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정말로 유신의 말대로 오크 로드를 단독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무모하게 혼자 오크 군대에게 뛰어들 때, 볼뜨는 유신을 버렸다.
그런데, 저 모습을 보니 유신이 죽으면 자신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력이었다.
“조무래기인 너희들 말고 대가리 나오라고 해. 그러니까 로드 나오라고!”
유신의 말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종족을 죽인 유신에게 분노했는지 오크들이 괴성을 질렀다.
“췩 췩 취익 취이이익!!”
시끄럽게 떠드는 오크들을 보며 유신이 새로운 창을 꺼내서는 냅다 집어 던졌다.
쿠콰콰쾅
창이 지나간 길에 있던 오크들은 꼬치 꿰듯 꿰였다.
그리고는 폭발을 일으켰다.
‘역시 차이가 많이 나네.’
처음 사용했던 포스 미사일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포스 미사일 자체가 어마어마한 포스를 잡아먹기에 첫 일격을 제외하고 유신은 전력을 다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현재 봉쇄의 목걸이를 1단계도 풀지 않는 상황이었다.
봉쇄의 목걸이 봉인을 풀지 않은 건 포스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로드가 언제 나타날 줄 몰라. 확실히 포스를 아껴야 해.’
유신은 검을 소환한 후에 오크들에게 쇄도했다.
촤아악
앞에 보이는 오크를 베어내자마자, 포위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포스를 사용한다면, 이럴 필요까지 없었을 거다.
아무리 유신이라고 해도 상대는 백만 대군이었다.
그렇기에 포스를 아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검기를 피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포스를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포위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창을 꺼내 집어 던졌다.
콰콰쾅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오크들의 시체가 작은 동산을 이룰 때쯤 가지고 온 창이 다 떨어졌다.
거기다가 검기가 맺혀있지 않는 검의 내구력도 한계에 치달았다.
챙그랑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
탄식은 유신에게 나온 게 아니었다.
멀리서 궁사의 눈으로 유신을 바라보던 몽골인들에게 나왔다.
하지만, 유신은 반토막난 검을 미련 없이 오크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콰콰콰쾅
새로운 검을 꺼내든 유신은 오크들에게 달려들기 전.
봉쇄의 목걸이를 매만졌다.
딸칵
봉쇄의 목걸이 봉인을 한 단계 풀자마자, 사용할 수 있는 포스의 양이 2배로 늘어나면서 온몸에 충만감이 가득 찼다.
“그럼 계속 해볼까?”
유신의 말에 오크들은 공포에 젖었다.
“취익 취이이익!”
“응? 학살자?”
갑자기 유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크의 말이 이해됐다.
그래서 무심코 팔찌를 바라보니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와~ 대박! 몬스터의 말까지 통역한다고? 지금까지 안됐는데? 왜 지금 되는 거지?”
통역 마법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기에 궁금증은 뒤로 미뤄뒀다.
아주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유신은 오크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오크의 목을 베어내며 주위에 있는 오크들에게 말했다.
“야 근데 내가 왜 학살자야?”
오크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당연한 거였다.
온몸에 동족의 피를 뒤집어쓰고, 옆에 있는 동료의 목을 날리면서 질문을 던지는데,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건 인간도, 오크도 그 어떤 몬스터도 불가능했다.
“취…이이익.”
거기다가 지금 오크들은 전쟁의 흥분 대신에 오직 공포심만 느끼고 있었다.
유신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오크들을 보며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오크들에게 유신의 미소는 학살의 징조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