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_만인장 네르구이(1)
유신은 꼬박 하루 동안 땅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사흘 만에 자는 잠이기도 했고, 땅의 포근함이 유신을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네그루이와 오크 라이더가 다가올 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에 단잠에 빠져있던 유신이 강제로 일어나게 됐다.
“날 깨운 게 너희야?”
오크와 말이 통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유신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변명의 기회를 줬다.
“취익! 취이이익!!”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괴성으로 날려버린 오크 라이더들이 달려왔다.
유신은 옆에 있는 중년의 아저씨를 바라봤다.
“저놈들이 아저씨 괴롭혔어요?”
너무나 유아틱한 말투에 네르구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빨리 말해봐요. 쟤들한테 쫓기던 거예요?”
“그. 그렇다.”
“나이도 아니지. 연세도 있으신 분이 조심 좀 하시지. 여기 잠깐 있어 봐요.”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 반존대했으면서, 스스로 예의 바르다고 대견스러워하던 유신은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수백의 오크 라이더들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뭐 하는 건가? 그건 자살하러 가는 거와 같아.”
“네? 제가 왜요?”
“빨리 도망가게.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테니.”
“아저씨. 좋은 사람이시구나.”
“그게 무슨…?”
유신은 네르구이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그리고는 다시 수백의 오크 라이더를 향해 쏘아졌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다니. 이런 못난 것들!!”
초장부터 유신은 포스 대검을 사용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오크 라이더는 검을 휘둘러 피떡으로 만들며 날려버렸다.
그나마 근접한 오크 라이더는 땅과 혼연일체가 되게 망치질하듯 검을 휘둘러 곤죽으로 만들었다.
콰콰쾅
포스 대검이 땅을 가격하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순간적으로 오크 라이더와 울프는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하지만,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난 유신이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서걱
촤아아악
수십의 오크 라이더와 울프가 한 번에 양분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들의 피가 솟구쳤다.
유신은 앞에 있는 오크 라이더의 피가 솟구치고 땅을 적시기 전에 다른 오크 라이더의 멱을 땄다.
“한낱 미물 따위가 인간을 해하려고 그래!”
쉴새 없이 검을 휘두르고, 검기를 날려서 오크 라이더를 학살했다.
그러다가 다른 오크 라이더와 다르게 그레이트 울프를 타고 있는 오크 라이더와 눈이 마주쳤다.
“네가 우두머리구나!”
유신의 외침을 들었는지 우두머리는 글레이브를 유신에게 겨누며 명령을 내렸다.
“취이익! 취익 취익!”
이내 싸움은 소강상태가 되고, 유신은 오크 라이더들에게 포위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유신이 찬찬히 수많은 오크 라이더를 보며 혀를 찼다.
“쯧! 많기는 많네.”
준비를 끝낸 오크 라이더들이 한 번에 달려들었다.
사방팔방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보며 유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회전을 시작하더니 오러를 뿜어냈다.
번쩍
순간적으로 강한 빛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주 잠시간 시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 빛이 공격성도 가지고 있다면?
툭
후두두둑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반경 20미터 안에 있던 오크 라이더와 울프의 몸이 양분되었다.
그로 인해 포위망은 헐거워졌다.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유신은 우두머리를 향해 나아갔다.
촤아악
우두머리를 향하는 길에 앞을 가로막고 있던 오크 라이더를 베어냈다.
하지만, 어떤 오크 라이더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오크 라이더들은 우두머리를 보호할 생각도, 그렇다고 유신을 공격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유신은 이 전장의 완벽한 지배자였다.
아우우우우
울프들이 길게 울음을 내뱉었다.
하울링을 끝낸 울프들은 오크 라이더의 지시가 없는데도 전장을 이탈했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울프를 진정시켜야 할 오크 라이더들이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이 도망칠 뿐이었다.
“취…취이이…”
우두머리 오크 라이더도 도망가고 싶었다.
물론 가장 본능에 충실한 그레이트 울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유신의 살기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어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레이트 울프는 위에 자신의 주인을 태우고 있으면서 배를 벌렁 뒤집어 깠다.
“헥헥헥헥”
복종의 의사를 표하는 그레이트 울프를 무시하고는 낙마한 우두머리를 바라봤다.
그는 겁에 질렸는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저 거친 숨을 내쉴 뿐이었다.
유신은 아무런 말도 없이 검을 휘둘러 오크 라이더의 머리를 베어냈다.
툭
우두머리의 머리가 떨어졌고, 그제야 유신은 아직 남아 있는 오크 라이더들을 바라봤다.
“이제 끝내자.”
말을 끝내고 유신은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졌다.
***
유신의 전투를 구경하던 네르구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다.
수십이라는 숫자도 부족한 수백의 오크 라이더가 이곳에 있었다.
거기다가 오크 라이더들이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초원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면의 사내 혼자서 수백의 오크 라이더를 상대했다.
“…저…저게 말이 돼?”
물론 자신도 말과 충분한 거리. 그리고, 활만 있다면 가능하기는 했다.
하지만, 저 사내처럼 심적으로 오크 라이더를 압박할 수는 없었다.
이 싸움은 인간 대 몬스터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 대 개미의 싸움으로 비춰질 정도였다.
“크으윽…”
한동안 넋 놓고 전투를 구경하던 네르구이는 뒤늦게 왼쪽 어깨에 통증이 몰려왔다.
오른손으로 상처를 만져보니 피가 배어 나왔다.
그때 자신의 현명한 막내딸 마를이 힘들게 구해준 포션이 떠올랐다.
‘나도 늙었군. 이걸 잊어먹고 있었다니.’
네르구이는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반은 마시고, 반은 다친 어깨에 뿌렸다.
“취이이이익!”
치료를 위해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오크 특유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란 네르구이가 작은 단검을 꺼내서는 전투 준비하며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다시 믿기지 않는 광경과 마주치게 됐다.
“오크들이…그것도 오크 라이더가 도망을 간다고?”
오크는 전투 중 죽을지언정,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십 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절반이 넘는 오크 라이더가 죽었고, 남은 오크 라이더가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사내에게 말이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언제 다가왔는지, 가면을 쓴 사내가 몸에서 몬스터의 피를 뚝뚝 흘리며 옆에 서 있었다.
“다…당신은 누굽니까?”
“저요? 저는 블…아니 교황청 소속의 칼 제라니입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왜 이 위험한 곳에서 혼자 다니세요.”
“그게…”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럼 몸조심하세요~”
유신이 자신의 할 말만 하고 떠나려고 하자 네르구이는 다급해졌다.
“잠깐만 기다리게.”
“응? 왜요?”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네.”
“저 바쁜데.”
네르구이는 어떻게 해서든 유신을 붙잡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지만, 왜인지 이 청년과 함께 도시로 돌아가면 백만 오크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날 도시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겠나?”
“흠…”
잠시 생각하던 유신이 GPS 기계를 꺼내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시가…북쪽에 있네요. 제가 가는 방향이랑 같기는 한데, 전 비추해요.”
“비추? 그게 무슨 말인가?”
“아… 줄임말은 통역이 안 되네.”
잠시 작게 혼잣말을 내뱉던 유신이 네르구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비추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지금 이 도시로 오크 군대가 가고 있거든요.”
“나도 거기로 꼭 가야 하네. 그곳에 내 부하들…아니 내 가족이 있네.”
“위험해요.”
“방금도 위험했네. 자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었어. 아니 무조건 죽었을 거야. 꼭 좀 부탁하네.”
유신은 잠시 네르구이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몽골의 전통 복장을 하고 있고, 한 손에는 거대한 장궁을 들고 있었다.
도시까지 가는 길은 자신이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이곳 지리 잘 아세요?”
“그럼. 아주 잘 알고말고. 예전부터 뛰어놀던 곳이야.”
“알았어요. 같이 가요.”
“고맙네.”
“대신에 저 좀 도와주세요.”
“응? 그래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대답 대신에 돌아온 것은 거대한 백팩이었다.
“이게 뭔가? 그리고 어디서 이 큰 게 나왔나?”
“아공간 주머니라고 들어는 보셨죠?”
“이게 아공간 주머니라고? 이렇게 큰 게?”
“네. 맞아요. 일단은 저기 저 사체들을 여기에 집어넣으면 돼요. 빨리요.”
“아.알겠네.”
그렇게 몽골의 자랑인 네르구이는 유신과 함께 오크 라이더 사체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는 일을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이 일은 네르구이에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능력을 각성한 후, 언제나 로열이었다.
작은 화살을 폭발형 발리스타로 만드는 능력 덕분에 몬스터와의 전쟁을 언제나 유리한 판도로 이끌었고, 자신 밑으로 부하만 1만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절반 가까이 몬스터 사체를 집어넣자, 네르구이는 잠시 허리를 폈다.
먼지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그나마 깨끗했던 자신이 이제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게 됐다.
“휴~”
“한숨 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넣으세요.”
“아.알겠네.”
네르구이는 유신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지금처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이었다.
은인에게 그런 부담감을 주기 싫어 묵묵히 사체를 담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네. 물어보는 건 상관없는데, 담으면서 물어보세요.”
“아.알겠네.”
순간적으로 네르구이는 자신의 신분을 밝힐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시가 급한 것 같은데, 이건 왜 하는 건가?”
“당연히 돈 벌려고 하는 거죠.”
“응?”
네르구이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하는 아공간 주머니를 가지고 있으면서, 돈을 벌기 위해 사체를 담는다?
‘그것도 교황청 소속이?’
“아저씨. 이런 말이 있어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제 밑에 얼마나 많은 애들(거인)이 있는데요. 그 먹성 좋은 애들을 먹여 살리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해요.”
“그…그렇군. 내가 더 열심히 하겠네.”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유신을 보고 네르구이는 오해하고 말았다.
‘교황청 소속에 애들이라고 하면, 고아원이라도 운영하고 있나 보군. 하~ 네르구이 아직 멀었구나. 내가 권력에 취해 있을 때 저자는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있었어.’
이렇듯 오해는 깊어졌지만, 유신은 눈치채지 못했다.
쌓여가는 오해 속에 모든 사체를 담은 유신이 허리를 펼 때였다.
아직 한 쪽에서 배를 뒤집어 까며 혀를 내밀고 있는 그레이트 울프를 바라봤다.
놈은 죽은 것도 기절한 것도 아니라, 몇 시간 동안 계속 저러고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라고 하지만, 반항 안 하는 녀석을 죽이기도 그렇고…”
그레이트 울프를 어떻게 처리할까 유신이 고민하고 있을 때, 네르구이가 그 옆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는가?”
“저놈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입니다.”
“응? 자네가 거둔 거 아니었나?”
유신이 황당한 표정으로 네르구이를 바라봤다.
“아니 거두기는 뭘 거둬요? 그리고 몬스터가 애완동물도 아니고 어떻게 거둬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몇몇의 드루이드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몬스터를 거둔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몽골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드루이드를 보유한 곳이다.
“자네. 테이밍 능력이 있나?”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이 고생을 하겠어요?”
“그렇군. 그러면 모를 수도 있겠어. 저건 바로 복종을 뜻하는 거네.”
“복종이요?”
네르구이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테이밍과 드루이드에 대해서 유신에게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유신은 혹시나 싶어 그레이트 울프에게 다가가서는 손으로 배를 긁어줬다.
“헥헥헥헥”
“이게 좋다는 행동이라고요?”
“그렇다네. 내가 테이밍 능력은 없지만, 몇몇 테이밍 능력을 가진 드루이드를 통해서 들은 게 있네. 지금 그레이트 울프의 행동은 복종이네.”
“아~”
유신은 그레이트 울프를 바라봤다.
그레이트 울프는 성인 2명을 등에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저씨 제가 면허가 없어서 그러는데 운전 잘하세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