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_오크 로드 사살 작전(3)
노사는 쟌이 자신의 말을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오해로 인해 가슴 깊숙이 상처받았다.
“허허”
인자함이 묻어나던 웃음이 아니라, 허탈한 웃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도는 악의적인 소문이 떠올랐다.
‘노사는 위험한 임무를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그 임무에 꼭 제자 또는 지인을 선봉장으로 세워서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런 소문이 퍼져나갔지만, 진실은 달랐다.
노사는 자발적 임무 참여보다는 지인을 돕기 위해,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무에 참여했던 거였다.
그런데 소문이라는 것은 변형되어서 노사를 괴롭혔고, 지금도 괴롭히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제는 자신의 핏줄까지 의심하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씁쓸한 표정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쟌 아르켄시스. 당신이 아무리 노사의 손녀라고 하지만 지금 도를 넘어섰다는 걸 알고 있나?”
쟌의 말에 분개한 것은 노사가 아니라 그의 스물다섯 번째 제자인 마천리였다.
그리고 조용히 있던 리우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손녀라고 하지만 당신이 스승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만! 천리야 그만하거라.”
노사의 말에 마천리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속내를 꾹꾹 눌러 담았다.
정적이 흐르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아~”
길게 숨을 뱉어낸 노사는 주위를 둘러봤다.
마천리와 리우는 노사를 대신해 분노하고 있었다.
쟌은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숙였다.
스텔라 남매는 이 어색한 분위기가 싫은지 딴청을 피웠다.
“우리 손녀가 뭘 그렇게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아뇨. 걱정하지 않습니다. 전 인류를 수호하는 수호기사단의 솔로 넘버 제 9수호기사입니다.”
“그래. 하지만 뭘 잘못 알고 있구나. 오크 로드를 잡는 건 내가 아니란다.”
“네?”
마천리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오크 로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백이면 백 노사를 가리킬 것이다.
“이 늙은이가 선봉장이 되고, 너희들이 나를 도와 길을 뚫을 것이야. 그리고 오크 로드를 상대하는 건 하유신이란다.”
설명을 들은 사람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노사 할아버지.”
“스텔라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게나.”
“그냥 앤이라고 불러주세요.”
“허허~ 그래. 앤양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작전 시작은 나흘 뒤 아닌가요?”
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마천리가 대신했다.
“네. 나흘 뒤에 작전 개시입니다.”
“유신이가 그 안에 여기로 올 수 있나요?”
“교황청에서 작전 개시 전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뭐…교황청에서 그렇게 말했다면야…근데 유신이가 오크 로드보다 쎄요?”
솔직히 마천리도 그게 의심스러웠다.
이제 약관을 조금 넘어간 아이가 그렇게 강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하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유신을 추천한 게 스승님과 성녀다. 두 명의 전설이 보증했다는 거지.’
그렇게 마천리가 생각에 빠져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리우가 분개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앤에게 삿대질했다.
“지금 형님을 의심하는 것이야?”
“리우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형님은 충분히 오크 로드를 무찌를 수 있어.”
앤은 그저 무턱대고 유신을 믿는 리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리우. 너 그게 다른 말로는 뭔 줄 알아? 바로 유신의 무력이 노사 할아버지의 무력과 최소 동급이라는 거야.”
“……”
방금까지 분개했던 리우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거였다.
아무리 자신이 유신을 인정하고 좋아한다고 하지만, 스승인 노사와 동급으로 그러니까 같은 선상으로 두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거봐. 리우 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유신에게 오크 로드를 맡겨.”
노사는 리우와 앤의 대화를 들으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특히, 유신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지 않은 앤이라면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었다.
“허허~ 그건 걱정 말게.”
“네? 노사 할아버지 지금 완전히 중요한 것 같은데… 설마 누가 또 오나요?”
“아니 오지 않네.”
“거봐요 그러니까……설마….”
“맞네. 이미 유신은 전설급의 강자라네.”
“스승님! 정말입니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니라 리우였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형님이 전설급의 강자가 되었다는 소리에 리우는 본인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쟌은 가장 심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인가요? 정말로 유신이 전설급이 되었나요?”
“정확히는 이제 막 전설급에 들어왔다는 게 맞지. 그러니 충분히 오크 로드를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쟌은 복잡한 심정 때문에 생각이 깊어졌다.
당연했다.
또래 중 자신을 이긴 사람은 유신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유신은 저 멀리 가버렸다.
삐이이---
갑자기 3D 홀로그램 영상기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홀로그램은 오크 로드가 있는 대부족을 가리켰다.
오크들이 몽골이 있는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노사 아니 스승님.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보도록 해라.”
“차후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천리는 간단히 고개만 숙여 노사에게 인사하고는 황급히 트레일러를 나갔다.
노사는 마천리가 나가는 모습을 본 후에 변화가 생긴 홀로그램을 지긋이 바라봤다.
“무언가 안 좋구나.”
***
시대가 변했지만, 몽골의 풍습은 거의 그대로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몽골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등장이 그들을 다시 예전으로 돌려놨다.
몽골인들은 전투 능력을 얻게 되면, 대부분이 궁사와 투사의 능력을 얻게 된다.
거기다가 간혹, 그 희귀한 드루이드의 능력을 타고난 존재도 꾸준히 배출되기도 했다.
이렇듯 강한 전력이 있어도 상대는 100만의 오크였다.
그래서 몽골의 자랑인 1만의 기마대는 고민에 휩싸였다.
“네르구이.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1만 기마대의 수장이자, 만인장 네르구이를 재촉한 사람은 그의 오른팔이자, 천인장인 바타르였다.
“우리는 대칸의 후예입니다. 오크들을 몰살시킬 수는 없지만, 충분히 지원군이 올 때까지 저지할 수 있습니다.”
바타르에 말에 네르구이는 회의장에 모여 있는 다른 천인장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흉흉한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말을 몰고 오크들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모든 천인장들을 둘러본 후에야 네르구이가 입을 열었다.
“전사들이여. 세계 정부와 중국 지부에서 자중하라고 했다.”
하지만, 네르구이의 말에 천인장들은 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실망하지 말거라. 우리는 바타르 말대로 대칸의 후예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곳은 존재치 않는다. 자 모두 출전 준비에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천인장들이 네르구이의 말에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을 때였다.
구석에 있던 천인장 볼뜨가 자리에서 일어나 네르구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인장이신 네르구이에게 천인장 볼뜨가 한마디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 볼뜨. 평소처럼 뛰어난 계책이라도 있는 것이냐?”
네르구이를 포함해 대부분의 천인장들은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유일하게 볼뜨만이 전투 능력보다는 전략*전술로 천인장의 자리에 올랐기에 네르구이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볼뜨를 바라봤다.
“적은 백만 대군입니다. 아무리 저희가 뛰어나다고 해도 겨우 1만입니다. 세계 정부와 중국 지부의 말대로 러시아와 중국 지부가 올 때까지 방어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볼뜨. 나는 평소 자네의 말에 귀를 기울였네.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까지 겁쟁이였을 줄은 몰랐네.”
“네르구이시여. 위험합니다.”
“전사는 움직일 때 움직여야 하네.”
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볼뜨가 네르구이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볼뜨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볼뜨의 부대를 제외하고 우리끼리 움직이겠네. 원래 자네 부대는 전투보다는 보조가 더 적성에 맞으니.”
볼뜨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우치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9천의 기마부대가 오크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볼뜨는 자신의 백인장들을 불러 모았다.
“오크 군단이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하루 정도 남았다. 일단 모든 마법사와 땅 속성 원소술사들을 불러 모아서 흙으로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도록.”
“알겠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은 볼뜨의 부하들은 그렇게 무모하지 않았다.
그리고, 볼뜨가 현명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
네르구이와 9천의 기마부대는 꼬박 반나절을 달려서 오크 군대와 마주치게 됐다.
그들도 자신들의 숫자로 백만의 오크 군대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전을 짰다.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우리의 작전은 오크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활로 쏴서 도발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남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드는 게 우리의 작전이다.”
아주 간단하면서 쉬운 작전이지만, 목숨을 담보로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몽골의 기마대원들은 모두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네르구이가 말을 끌고 기마부대의 앞에 선 후, 장궁을 꺼내 오크 군단을 향해 겨누며 활시위를 당겼다.
“발리스타”
기술명을 외치며 시위를 놓았다.
작은 화살은 점점 초록빛으로 물들더니 거대한 발리스타가 되어서 오크 군단의 선봉에 내리꽂혔다.
콰콰쾅
“대칸의 후예이자, 전사들이여. 오크에게 몽골의 힘을 보여주자!”
“와아아아아!!”
그렇게 9천 대 백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전투 개시 후 전황은 기마부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오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마부대에게 다가가려고 달려왔지만, 기마부대는 멀리서 활을 쏜 후, 후퇴를 거듭했다.
그렇게 그들은 천천히 오크들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네르구이님. 작전은 성공적입니다.”
“역시 우리의 작전이 맞았다. 볼뜨가 괜히 겁을 먹은 거였어. 하하핫.”
몽골 지부의 기마부대는 전시 중에도 서로에게 칭찬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하지만, 전투는 그들이 원하는 데로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네르구이님. 더는 오크들이 쫓아오지 않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어떻게 합니까?”
“흠…”
처음 오크들은 자신들을 쫓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아무리 도발하고 공격하더라도 더는 기마부대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저 공격하면 공격하는 데로 받아주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네르구이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내가 다시 시선을 끌어 보겠다.”
“알겠습니다.”
네르구이는 한 번에 4개의 화살을 장전한 후에 오크들에게 발사했다.
“발리스타!”
쾅 쾅 쾅 쾅
화살은 오크들에게 닿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바타르 방금 오크들이 어떻게 막은 것이냐?”
“네르구이님 오크가 오크를 던져서 발리스타를 막았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는 진실에 네르구이가 당황하는 사이 기마부대의 뒤편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취이이이익!!”
오크들의 함성에 말들이 놀라 잠깐 난동을 피웠다.
하지만, 몽골의 기마부대원들은 태생적으로 말들과 친했다.
거기다가 드루이드들이 광역 버프로 곧바로 말들을 진정시켰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포위됐다고?”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네르구이는 한동안 인상을 구겼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다른 말로 죽으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내 욕심이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욕심이었습니다.”
“볼뜨의 말을 들었어야 했어.”
“네. 볼뜨는 겁쟁이가 아니라 신중한 거였습니다.”
네르구이는 주위를 둘러봤다.
점점 포위망을 구축하는 오크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바타르를 바라봤다.
“바타르. 가장 얇은 포위망은 어디냐?”
“저희가 왔던 북쪽입니다.”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던 네르구이는 장궁을 다시 들어 활시위를 걸었다.
그리고 9천의 기마부대가 모두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모두 북쪽으로 후퇴한다. 대칸의 후예이자, 전사인 네르구이의 마지막 명령이다. 꼭 살아남아라.”
말을 끝낸 네르구이가 시위를 놓았다.
“발리스타!”
콰콰쾅
북쪽 포위망을 향해 발사된 활은 오크들을 무참히 뭉개버렸다.
“지금이다!!”
그렇게 네르구이를 제외한 9천의 기마부대는 생존을 위해 달렸다.
***
네르구이가 살아남게 된 것은 정말 많은 운이 따랐다.
그 자리에서 홀로 활을 쏘며 장렬히 산화하려고 했다.
부하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사라진 후에도 네르구이는 죽지 않았고, 말과 함께 남쪽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네르구이가 지휘관인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가장 많은 오크를 사살해서인지, 수백의 오크 라이더가 그의 뒤를 쫓았다.
“히이이이잉”
십 년간 함께 했던 말이 지쳐 쓰러졌다.
그로 인해 낙마한 네르구이는 땅에 떨어지면서 바위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크윽…”
절로 신음이 나왔지만, 재빨리 일어나 활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낙마하면서 다친 어깨로는 활을 잡을 수 없었다.
“오늘 여기가 내 무덤이구나.”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을 때였다.
덜컥
작은 바위가 움직이더니 가면을 쓴 사내가 땅에서 튀어나왔다.
“뭐야? 잠 좀 자고 일어났더니 오크들이 왜 이렇게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