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_오크 로드 사살 작전(2)
유신이 포스와 살기를 담아서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러자 식사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멘티스들이 이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쓰러진 멘티스를 향해 유신이 다가가서는 검으로 슬쩍 찔러봤다.
“죽지는 않았네. 정신을 잃은 건가?”
몇 번 더 검으로 찔러보다가 멘티스의 눈꺼풀이 열렸다.
깨어난 멘티스는 유신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대비하고 있던 유신은 멘티스가 움직이기 전에 검기를 일으켜, 멘티스를 조각냈다.
후두두둑
땅으로 떨어지는 멘티스의 사체에서 눈을 뗀 유신이 주위를 둘러봤다.
수십 마리의 멘티스가 정신을 잃고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야겠네.”
유신은 재빨리 움직이며, 멘티스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켰다.
대부분의 멘티스가 정신을 잃은 채 죽임을 당했지만, 간혹 몇 마리의 멘티스가 사지가 온전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발악했다.
그럴 경우, 유신은 멘티스의 사체를 더욱 잘게 나눴다.
“안전 제일이지…그런데 이렇게 놔두고 가면 또 다른 몬스터들이 오겠지.”
수백 마리의 오크와 수십 마리의 멘티스 사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GPS를 확인해서 오크 로드와의 거리를 계산한 유신은 아공간 팔찌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챙겨오길 잘했네. 그래.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지. 거인 녀석들이 워낙 먹성이 좋으니…”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수백의 사체를 홀로 아공간에 집어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신은 이 모든 사체를 모아서 팔면 거인들이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꼼꼼히 다 주웠다.
“그래. 이제부터는 몬스터를 잡는 동시에 집어넣는 연습을 해야겠다.”
순간 또 이상한 생각을 한 유신은 몇 번이나 아공간에 몬스터를 넣는 연습을 하더니 이내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유신이 떠나고, 전투가 있었던 곳에는 오크들의 핏자국과 멘티스의 체액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흘.
유신이 오크 로드에게 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동안 유신은 점점 거지꼴이 되어 갔다.
검은 코트는 피에 젖어 이제 검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답답한 가면은 벗은 지 오래였지만, 몬스터의 체액과 피 그리고 먼지 때문에 박희선 여사가 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와~ 그래도 많이 왔네. 그런데 좀 씻고 싶은데… 어디 물이 있는 곳은 없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둘러봤다.
여기서 물을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귀에 포스를 집중해 물소리를 찾아봤다.
솨아아아
풀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와 여러 종류의 벌레들이 우는 소리만이 들렸다.
어디에도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 몇 병 없는데…”
아공간에서 2리터짜리 물병을 소환한 유신은 단번에 목부터 축였다.
벌컥벌컥
3분의 1쯤 단번에 마셔서 갈증을 해소했다.
남은 물을 머리에 부어서 핏물과 먼지를 씻어낸 후, 가면을 꺼내 눈 부위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렇게 한 병의 물병을 다 쓰고 나니 그나마 얼굴이라도 깨끗해졌다.
유신은 그 상태에서 다시 가면을 착용한 후에 굴을 파기 시작했다.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굴을 판 유신은 발부터 굴에 들어간 후에 입구를 바위로 막았다.
“모레면 오크 로드를 만날 수 있겠어.”
사흘 만에 몸을 눕힌 유신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
평소 노사는 자신의 이동 트레일러에 많은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이동 트레일러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우선 노사 본인과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제자인 마천리. 그리고, 막내 제자인 리우와 손녀인 쟌과 스텔라 남매가 있었다.
“어떤가? 차는 입에 맞는가?”
노사가 용정차를 홀짝이는 스텔라 남매를 바라보며 물었다.
“후루룩~ 아뇨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달콤한 건 없나요?”
“앤!”
쟌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평하는 앤을 불렀지만, 앤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왜? 난 쓴 것보다 단 게 좋아.”
노사는 그런 앤을 바라보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쟌 이 할애비는 괜찮단다.”
“할아버지 그래도요. 이 용정차를 구하려면 같은 무게의 황금을 줘야 하는데요.”
“허허. 여기까지 고생해서 와준 친구들인데, 이보다 더한 것도 못 해줘서 미안한걸.”
“와~ 이게 그렇게 비싼 거였어요?”
스텔라 남매는 자신들이 마시는 차가 상상 이상으로 비싸다는 것에 찻잔을 애지중지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 잔도 비싸겠네요?”
“알X바바에서 구매했네.”
“어? 보통 이런 비싼 차를 마실 때는 비싼 잔에 먹지 않나요?”
“겉이 뭐 중하겠나? 그저 속이 꽉 차야지.”
앤은 버릇없게도 노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노사 할아버지는 복장도 화려하신데…”
“허허허 다음에는 달콤한 음료로 준비하겠네. 그럼 잡담은 이만하고 일 이야기를 할까?”
서둘러 노사가 말을 돌렸고, 기다리고 있던 마천리가 3D 홀로그램을 띄웠다.
거기에는 현재 오크 로드가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소개부터 하지. 난 중국 지부 인류화 작전의 총책임자 마천리다.”
“아~ 그래서 아까부터 있었구나.”
“앤!!”
쟌이 눈을 흘기며 앤을 나무랐다.
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계속 분위기를 망치는 앤을 조용히 하게 만들기 위해 쟌은 최후의 수단으로 복화술을 펼쳤다.
‘자꾸 그러면 성녀님께 다 일러바칠 거야.’
복화술이 통했는지, 앤이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입을 다물었다.
노사는 그런 쟌과 앤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허~ 계속 설명하게.”
“알겠습니다.”
마천리가 홀로그램을 줄이기 위해 양 손바닥을 좁히자, 오크 로드가 있는 지형이 나왔다.
“현재 오크 로드는 이곳에 있으며, 아직 딱히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크 로드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서쪽을 클릭하자, 20만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보시는 바와 같이 서쪽에서는 우리 중국 지부가 20만의 병력으로 오크들과의 대회전을 준비 중입니다.”
그 상태에서 동쪽과 북쪽을 눌렀다.
“보시는 바와 같이 북쪽에 위치한 몽골 지부에서는 1만의 기마부대로 오크들을 교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쪽의 러시아 지부에서는 5천의 특전사와 5백의 얼음술사를 파견해주기로 했습니다.”
마천리가 다른 곳은 다 말하면서 유신이 속해 있는 한국 지부를 건너뛰자 쟌은 질문을 던졌다.
“남쪽의 한국 지부는요? 그들도 현재 인류화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강철의 기사 캔 브레이커가 마족과의 싸움으로 인해 사망한 후,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지부의 지원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아직 압록강도 넘지 못했습니다. 설사 지금 압록강을 넘었다고 해도 여기까지 오는 데 보름 이상 걸릴 걸로 예상합니다.”
“그렇군요…”
쟌도 유신의 소식을 듣기는 했다.
캔 브레이커와 함께 마족을 무찔렀다는 소식을 말이다.
그렇기에 걱정됐다.
예전 세계평화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마왕 안드로말리우스는 무시무시했다.
아무리 유신이 강하다고 해도 아직은 마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우리 손녀. 작전 회의 도중에 뭘 그렇게 생각할까?”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 좀 했습니다.”
“허허 설마…”
노사가 뜸을 들이고 있을 때 얀이 손을 들며 외쳤다.
“쟌! 유신이 걱정한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교황청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친 데도 없고 멀쩡하데~”
“내가 왜 하유신을 걱정해!”
“그래? 그런 것 같았는데… 아니었군.”
“그래 아니야!”
얀은 쟌의 말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리우와 앤은 갑자기 같은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리우는 쟌이 유신을 좋아한다는 걸 파악하고는 그 둘이 같이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쟌 아르켄시스씨와 형님은… 어울리는군.’
이렇게 좋게 생각하는 리우였지만, 성녀 후보자 중 한 명이 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호~ 쟌이 유신을 좋아한다는 거네. 이거 잘하면 약점으로 써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트레일러에 모여 있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생각 또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마천리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삼면에서 공격이 이루어지면, 여러분의 임무가 시작됩니다.”
화제도 전환할 겸 그리고 유일하게 제대로 회의를 듣고 있던 쟌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뭘 해야 하나요?”
“천 명의 상위 능력자를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길을 뚫고 오크 로드를 사살하면 됩니다.”
“작전이 마왕전과 비슷하네요.”
“죄송합니다.”
마천리가 제시한 작전은 예전 마왕을 물리친 인류 최후의 작전이었다.
이 방법은 가장 적은 피해로 상대의 우두머리를 격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시다시피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구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목숨을 잃을 각오가 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길을 뚫고 버티는데,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떠올랐는지 마천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설명을 이어갔다.
“두 번째로는 무조건적으로 상대의 우두머리를 처치할 무력을 보유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두머리가 구심점이 되는 존재에게만 사용 가능합니다.”
설명을 끝낸 마천리가 노사를 바라봤다.
용정차를 모두 비운 노사는 소리나게 찻잔을 내려놨다.
“예전 흑색 오크 로드를 상대할 때 똑같이 이 작전을 사용했네.”
“할아버지!”
쟌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사를 노려봤다.
노사는 그런 쟌을 손짓해서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렇게 흥분하지는 말거라. 물론 이 작전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세요! 차라리 외부에서부터 오크들을 차근차근 공격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그렇게 장기전으로 가면 지는 건 우리가 될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잠깐의 설전이 오고 간 후, 노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찻잔을 어루만졌다.
그때, 마천리가 입을 열었다.
“쟌 아르켄시스씨의 방법은 틀렸습니다.”
“정확히 말씀하시죠. 틀린 게 아닙니다. 다른 거죠.”
“아뇨 틀렸습니다.”
마천리는 홀로그램 영상기를 조작해서 오크에 대한 설명글을 띄웠다.
“오크는 태어난 지 1년이면 성인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3년이면 완숙한 전사가 됩니다.”
“그게 어떻다는 거죠?”
“위성으로 오크 로드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그들의 규모는 약 97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105만이 넘었습니다.”
“새끼들이 태어났다는 건가요?”
“네.”
“하지만…아직은 새끼일 뿐입니다.”
“네. 오크 새끼들이죠. 하지만 이들이 1년 뒤에는 성인이 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태어난 오크보다 오크 로드의 탄생에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오크 로드를 사살하고, 오크들끼리 싸우게 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오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개체 수가 조절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식량이 부족하면 자신들끼리 전쟁해서 서로를 식량으로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오크 로드로 인해서 오크들이 단합하여,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말살하면서 식량을 충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건 너무 무모합니다.”
“쟌아. 나는 지금까지 총 서른이 넘는 제자를 두었다. 그리고, 이제 나와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제자는 몇 남지 않았지. 이게 뭘 뜻하는지 아느냐?”
쟌은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개인적으로 노사는 자신에게 정말 좋은 조부였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헌터와 지부 사람들을 평등하게 봤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작전을 진행할 때는 꼭 자신의 사람을 선두에 세웠다.
그래서 쟌은 슬픈 눈으로 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