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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29화 (129/300)

129화_백각(1)

아무도 없는 숲에 게이트가 열리고 유신이 툭 튀어나왔다.

“어후~ 이건 정말 적응이 안 되네.”

인상을 찡그리던 유신은 GPS를 통해 북한에 위치한 한국 지부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한국 지부 본부는 아비규환이었다.

“크윽… 살려줘.”

“제발 누가 좀 도와줘.”

“집에 가고 싶어.”

수많은 사람이 다친 채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있었다.

유신은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사람들이 다친 것으로 생각하고는 치료실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치료실 앞은 너무나 한산했다.

그때, 치료실의 천막이 열리며, 기동대원이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고 나왔다.

“감사합니다.”

기동대원이 나왔는데도 주위에 다친 그 누구도 치료실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신은 가장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인물을 안아서 치료실로 들어갔다.

“여기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사는 두 눈만 끔벅일 뿐 환자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중환자가 와서 놀랐다고 생각한 유신이 치료사에게 재촉했다.

“뭐합니까? 환자가 위독합니다. 빨리 치료 부탁드립니다.”

재차 유신이 말하고 나자 치료사가 답했다.

“이 사람은 헌터입니다.”

“네. 그래서요? 그게 중요합니까?”

“네. 중요합니다. 제가 헌터들을 치료한 순간 협정 위반이 됩니다.”

환자가 앞에 있는데도 이상한 말을 내뱉는 치료사의 말에 울컥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흥분한 목소리에 치료사는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몸을 돌려서 자신의 업무에 열중했다.

그러자, 유신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때 정신도 오락가락한 헌터가 유신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휴우~”

한숨으로 분노를 조절한 유신이 헌터를 바라봤다.

“조금만 있으세요. 제가 해결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책임자가 있을 것 같은 가장 큰 천막으로 향했다.

도착한 직후, 주위에 부상자나 다칠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봉쇄의 목걸이에 봉인을 한 단계 풀었다.

콰콰콰

사나운 기운이 유신의 몸을 통해 뿜어졌다.

평소라면 봉인을 풀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5단계까지 풀었다.

콰르릉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렸다.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이 5단계를 풀 때도 이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선배들은 전력으로 기운을 억제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신은 기운을 전혀 억제하지 않고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봉쇄의 목걸이를 풀었다.

쩌저쩍

천막이 기운에 흔들리고, 주위에 있던 땅이 갈라졌다.

그제야 천막이 열렸다.

“누…누구십니까?”

약간 어리바리해 보이는 중년인의 질문에 유신이 평소와는 다르게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었다.

“네가 여기 책임자야?”

“네? 네 저는 이곳의 책임자 중령 박고루입니다.”

박고루의 말에 유신은 기운을 최대치로 뿜어냈다.

“난 교황청 소속의 칼 제라니다. 그런데 강찬성 장군은 어디 갔지?”

유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고루의 뒤에서 강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전 여기 있습니다.”

순간, 유신이 한 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박고루가 중력의 힘을 무시하고 끌려와서는 유신에게 목이 잡혔다.

“강찬성 장군. 이자는 오늘 교황청 법정에 서게 될 거요.”

“네? 칼님. 갑자기 오셔서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강찬성의 말에 유신은 생각해둔 죄명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놈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헌터들을 치료하지 않더라고.”

“네? 그게 무슨?”

“여기 오다 보니 헌터들이 치료를 못 받더군. 자기들끼리 편 가르기도 좋지만, 그 치료비를 악용하는 게 분명하겠더군.”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강찬성이 잠깐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그건 의심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협약에 따라서 치료는 헌터와 기동대가 별도로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치료는 절대 간섭하면 안 됩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규칙을 누가 만들었지?”

유신의 냉정한 목소리에 강찬성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오른팔과 다름없는 박고루가 위험하기에 용기를 냈다.

“캔…캔 브레이커입니다.”

“그래. 캔 브레이커지. 그런데 말이야. 분명 강찬성 장군도 알다시피 그는 죽었어. 그리고 이곳에 넘어오기 전에 교황청에서 듣기로는 그 이후 위험 임무는 헌터들만 하고 기동대는 거의 임무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건 기동대도… 아니 당신이 교황청이면 다입니까?”

할 말이 없어졌는지, 강찬성이 버럭 화를 냈다.

유신은 그런 강찬성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강찬성은 유신을 마주 노려보다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나 그나 다를 게 없군.”

박고루를 한쪽에 집어 던진 유신이 그대로 강찬성의 목을 붙잡았다.

주위에 있던 기동대는 박고루가 잡혔을 때는 가만 있더니 강찬성이 잡히자 무기를 꺼냈다.

슬쩍 그들을 바라본 후에 강찬성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나한테 교황청이면 다냐고 말했던 또 다른 인물은 순교라는 이름으로 죽었지. 참고로 그는 3천의 영웅이라서 그런 것뿐이야. 근데 넌 한국 지부 장군 타이틀 말고는 없잖아.”

장군이라는 직책이 절대 낮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유신의 존재와 영향력은 한국 지부의 장군을 넘어서기는 했다.

거기다가 강찬성이 괜히 장군이 된 게 아니었다.

귓속말을 토대로 유신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래서 더욱 긴장됐다.

여기서 말실수하거나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캔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커컥컥…”

하지만, 목이 붙잡히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유신은 손끝을 살짝씩 움직였다.

그게 왜인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그대로 꺾어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하지만, 유신은 내팽개치듯 강찬성을 집어던졌다.

“커컥 허억…”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강찬성은 아직도 목이 아파왔지만,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헌터들을 치료하도록 명령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부상자는 차별 없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헌터들과 기동대의 임무를 바꾸도록…”

“아니 아니지.”

유신이 생각하기에는 강찬성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평등이야. 한쪽이 권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공존해서 이 몬스터화 된 북한을 최대한 안전하게 그리고 빠르게 정화하는 거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설마 방금 내 연설(?)에 감동받은 건가?’

유신 홀로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찬성이 유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신의 의도는 아직 파악하기 힘들 군요. 하지만, 저 또한 캔을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평…등하게 당장 시행 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강찬성이 천막으로 들어갔다.

***

강찬성은 유신과의 사건이 있었던 후 마음을 달리 먹었다.

본인의 장기이자 능력인 용병술을 제대로 사용하자, 북한 땅은 빠르게 인류화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기동대와 헌터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다 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더 이상의 악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이야~ 여기가 그 유명한 백두산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블랙.”

“레드는 어떻게 생각해? 한 번 올라가서 천지를 보고 올까?”

“하아 하악… 저는 괜찮습니다.”

백두산 초입에 유신과 실버 그리고 신평이 서 있었다.

평이한 대화와는 다르게 유신을 제외한 실버와 신평의 복장은 거지가 형님 할 정도로 추레했다.

특히, 신평의 옷은 여기저기 다 찢어져 있어서 거의 헐벗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거기다가 언제나 깔끔함을 자랑하는 실버도, 몬스터의 피와 흙먼지로 인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올라가 보자.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잖아?”

“블랙…쉬고 싶습니다.”

“레드 약한 소리 하지 말고, 강해지고 싶다메.”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전 그냥 살고 싶습니다.”

“안 죽어, 안 죽어.”

신평과 실버가 몰래 유신을 째려봤다.

유신도 그들의 눈빛을 파악했지만, 애써 모른척 했다.

“그리고 우리 꼴을 봐봐. 완전 상거지가 따로 없잖아. 혹시 알아? 천지에서 목욕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블랙. 그건 자제해 주십시오. 외국에서 살아서 모를 수도 있지만, 백두산 천지는 한국 사람들에게 영산입니다.”

실버의 말에 유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면 때문에 실버는 그 미소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모든 임무가 끝나도 이들은 유신의 정체에 대해서 모를 것이다.

당연히 유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아니 그럼 한국의 영산을 지금 몬스터들이 점령했다는 거잖아! 레드, 실버 안되겠다. 가자!!”

“…네.”

“후우~”

신평과 실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대면서 움직이는 유신을 그들은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백두산으로 향했다.

“자자~ 다들 힘내요. 백두산 천지에서 좀 씻고 휴식도 취하게요.”

“아니 저 거기는…”

“하아 하악…”

더는 유신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실버는 하던 말을 멈췄고, 신평은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거칠었다.

“등산은 즐거워~”

해맑게 웃는 유신과 지쳐서 숨을 몰아쉬는 신평과는 달리 실버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 이렇게 몬스터를 만나지 않는 것이 왜인지 폭풍전야 같았다.

실버의 걱정은 기우였는지, 백두산 천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휴 다행이다.”

“네? 실버 뭐가 다행이에요?”

“아닙니다.”

“싱겁기는… 뭐해요. 이런 진풍경을 그냥 놓칠 수 없잖아요. 앞을 보세요.”

유신의 말에 실버는 고개를 들어서 천지를 바라봤다.

백두산이라는 산꼭대기에 있는 큰 호수는 얼음 같던 실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백두산 천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화산호수이자, 가장 높은 칼데라호.

산봉우리 안에 있는 초록빛으로 빛나는 호숫물은 마음의 안정과 함께 피로를 씻어 냈다.

“앗 차가워. 와 물이 예상과는 다르게 차갑네요.”

아주 잠깐 천지를 보며 감동에 빠져있던 사이, 유신이 벌써 허리까지 천지에 몸을 담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왜요? 실버도 들어와 봐요. 차가워서 정신이 번쩍 들어요. 레드는… 기절했네요.”

실버가 고개를 돌려 신평을 바라봤다.

솔직히 3개월간 강행군은 강행군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신평은 정말 말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그렇다고 유신이 천지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나오십시오.”

“에이~제가 여기 오기 전에 알아봤는데요. 여긴 예전 고조선 때부터 신성시되는 장소였잖아요. 여기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우리 제사는 안 지내도 몸을 깨끗이 하고, 피로를 날려도 되는 거잖아요.”

“칼님 빨리 나오세요!”

“실버 칼이라뇨. 블랙이라고요.”

“뒤…뒤를 보세요!! 빨리요!! 에잇!”

갑자기 실버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서는 유신이 있는 뒤쪽을 바라봤다.

그제야 유신도 고개를 돌려서 뒤를 바라봤다.

뒤편 호수에는 머리에 사슴뿔을 달고 있는 백호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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