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_유성 찌르기(2)
비토는 속으로 다짐했다.
본인이 들어줄 수 있는 간단한 거라면 유신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그렇지만, 앞에 있는 유신은 평범하지 않은 부탁을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무슨 부탁을 할까?’
“제 부탁은 말 편하게 하라는 겁니다. 아니 형님. 생각해봐요. 누가 동생한테 그렇게 딱딱하게 말합니까? 그러니까 편하게 말하세요.”
유신의 부탁에 비토는 허탈함까지 느껴졌다.
솔직히 기대한 것도 있었는데, 겨우 그거였다.
그리고, 이런 부탁을 한 유신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선물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칼.”
“헤헤~ 네 비토 형님. 어? 근데 왜 갑자기 다시 검을 드세요?”
비토는 웃으며 검을 머리 높이로 들었다.
“이건 내 동생이 된 선물로 알려주는 거야. 잘 보고 익혀.”
유신은 비토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거기다가 혹시 놓칠 수도 있기에 두 눈에 포스까지 담았다.
5대력을 일으킨 비토가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푸른 잔상을 일으키며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쏘아졌다.
슈우우웅
찌르기를 끝낸 비토를 보고 유신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공격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방금 기술을 보고 떠오르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유성…”
“그래. 칼 제라니. 이건 너의 필살기이기도 했던 유성 찌르기야.”
유신과 비토 제라니가 형제의 연을 맺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유신은 비토의 조언을 들으며 ‘유성 찌르기’를 연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형님. 아직 부족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비토는 속으로 유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서로 호형호제하기로 한 것이, 일주일이다.
겨우 일주일.
그 일주일 만에 본인이 보기에 완벽한 ‘유성 찌르기’를 익힌 게 유신이었다.
그런데, ‘부족하다’ 말하고 있었다.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 이미 완벽하다.”
“아뇨. 그러니까 이게 더욱 빠르게 전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이 모습을 보고 비토는 유신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강해진 이유를 알게 됐다.
일주일간 쉬지 않고 연습하고, 부족함을 찾고 다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칼. 그만해라. 내일이면 다시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 오늘 푹 쉬어둬야지.”
“그치만…”
“칼!”
“…네.”
단호하게 말하자, 유신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 모습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여서, 비토는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유신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충분한 휴식 또한 수련의 한 부분이었다.
“칼. 일주일 동안 제대로 눈을 붙인 적은 있니?”
“일주일이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체력도 많이 붙어서 일주일은 쌩쌩합니다.”
“대체 어떻게 수련했길래…”
유신은 수련이라는 말에 예전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에게 받은 수련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고, 등에 소름이 돋았다.
부르르
겁에 질려 떠는 유신의 모습을 보고 비토는 무언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새로 생긴 동생을 위해 한 번 더 휴식을 권했다.
“네. 형님.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이틀 전처럼 몰래 나와서 수련할 생각은 하지 말고.”
뜨끔
속내가 걸린 것 같아서 순간 멈칫한 유신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에이~ 오늘은 정말 쉴 겁니다.”
“그래 믿는다. 칼.”
“헤헤.”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고 유신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제야 비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지치는군.”
유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비토는 유신이 수련하는 내내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
꽤 큰 천막에서 보통 오크보다 2배는 큰 오크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37개의 오크 부족을 통합한 오크 로드 카리취였다.
지금은 거대한 덩치의 오크 로드인 카리취였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카리취는 이렇게 크지 않았다.
아니 다른 형제들보다 작고 왜소했다.
오크가 새끼를 낳을 때 한 번에 보통 다섯에서 열을 낳는다.
카리취는 그렇게 열 번째 막내로 태어났다.
“취이익! 막내 카리취 먹을 거 내놔라!”
첫째부터 아홉 번째 카리취에게 언제나 자신이 힘들게 구한 음식을 빼앗기는 게 일상이었던 막내 카리취였다.
그의 어미도 막내 카리취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로 식량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식량이 없다. 취익! 이러다 다 굶어 죽는다. 취이익! 오늘 막내 카리취를 먹어야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막내 카리취는 천막 밖에서 어미가 형제들에게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그래서 그대로 도망쳤다.
“취이익! 거기서라 막내 카리취!”
도망치던 중 다섯 번째 카리취가 막내 카리취를 발견하고 불러세웠다.
평소의 말을 잘 듣는 막내 카리취였기에 그대로 멈춰 설 줄 알았다.
하지만, 생존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처음으로 막내 카리취는 형제 카리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난 살 거다. 취이익!”
막내 카리취는 왜소하고 연약했다.
당연히 체력도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 카리취들에게 붙잡혀서 두들겨 맞고는 천막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취이익! 막내 카리취는 내일 먹는다. 오늘 첫째 카리취가 사슴을 잡아 왔다. 취익! 오늘은 사슴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막내 카리취는 첫째 카리취가 잡아 온 사슴 때문에 겨우 하루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형제들이 사슴을 먹고 배가 부른 채 잠이 들었다.
“취이익 살고 싶다. 취익”
아무도 막내 카리취를 묶지 않았다.
하지만, 뼈가 부러진 것인지 막내 카리취는 구석에서 도망도 가지 못하고 흐느낄 뿐이었다.
그때였다.
“살고 싶니?”
막내 카리취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힘들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인간이 있었다.
인간. 우리의 식량 인간이었다.
저 인간을 잡으면 막내 카리취는 목숨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사이에 다른 형제 카리취가 또 사슴을 잡을 수도 있을 거였다.
뻐끔뻐끔
외치고 싶었다.
인간이 나타났다고, 빨리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막내 카리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묻겠다. 살고 싶니? 아니 네 형제에게 잡아 먹히기 싫지?”
어떻게 인간과 대화가 통하는지는 막내 카리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잡아 먹히기 싫다는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좋아. 내가 너에게 힘을 줄게. 그러니…”
순간 인간의 미소를 보고 막내 카리취는 소름이 돋았다.
마을에 있는 그 어떤 오크보다 사악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모든 형제를 잡아먹고, 괴물이 되렴.”
그렇게 말한 인간은 막내 카리취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보라색의 돌을 먹였다.
그리고, 막내 카리취는 형제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
“취익! 취이이이이이익~!!!”
오크는 천성이 무던하다.
하지만, 아무리 무던하더라도, 바로 옆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오자, 잠에게 깰 수밖에 없었다.
“취익! 막내 카리취 조용해라. 자꾸 시끄럽게 하면 취이익. 오늘 잡아먹겠다.”
아홉 번째 카리취가 막내 카리취에게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게 아홉 번째 카리취의 마지막이 말이 되었다.
우드득
막내 카리취가 아홉 번째 카리취의 목을 꺾었다.
그리고, 그대로 배고픔을 해결했다.
“취이익!! 나는 카리취다.”
열흘.
막내 카리취가 유일한 카리취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 어떤 오크도 떠받드는 오크 로드 카리취가 되었다.
“일어나라.”
단잠에 빠져있던 카리취는 누군가 자신을 깨우자 안 그래도 무서운 면상에다가 더욱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취이익! 감히 카리취를 깨우다니 죽고 싶냐! 응? 인간? 크하하핫 오늘은 취이익. 별미를 먹겠군.”
“역시 오크라서 머리가 좋지 않군.”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카리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앞에 있는 인간이 누구였는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취이익! 카리취는 은혜를 안다! 취익. 살려줄 테니 가라. 취이익.”
앞에 있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 앞에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 카리취였다.
그런 오크의 무식함에 그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임무가 먼저라는 것을 떠올렸다.
“오크. 강해지고 싶으냐?”
“취이익! 인간 나는 오크가 아니다. 위대한 취익! 오크 로드 카리취다. 그리고 카리취는 취익! 강하다!”
순간 앞에 있는 카리취의 머리를 박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게 되면 지금이야 기분이 풀릴 테지만, 곧장 자신의 머리가 박살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래. 오크 로드 카리취. 더욱 강해지고 싶지 않아?”
“취익!! 인간 머리가 나쁘다. 취이익 나는 강하다.”
그는 카리취와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힘을 개방했다.
“그만해라. 취이익! 인간. 취익. 이제 카리취도 참지 못한다. 취이익!”
“감히 오크 따위가!”
콰앙!
카리취와 인간은 맞붙었다.
그리고 단 한 방에 인간은 카리취에게 목이 붙잡혔다.
“취이익! 인간! 그러니까 살려줄 때 돌아갔어야 했다. 취이익!”
원래 그의 계획은 오크 로드 카리취를 순식간에 제압한 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약을 투약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가장 큰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오크 로드의 무력이었다.
“취이익! 인간 약하다! 취익! 카리취는 강하다!”
예전 영국에서 오크 로드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때 무려 두 명의 전설이 오크 로드를 사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바로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 아스본 레스너와 수호기사 단장인 이자벨 로메였다.
그들은 수많은 영웅과 헌터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크 군단을 무찌르고, 오크 로드 사살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영국 북부는 몬스터들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몬스터가 오크가 되었다.
“약한 인간이 취이익! 카리취를 강하게 해줄 순 취익! 없다.”
“크으윽”
그는 카리취에게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품을 뒤졌다.
그리고, 새로운 약을 꺼내 카리취에게 주려고 할 때였다.
“카리취 자비 베풀었다. 취익!”
우드득
순식간에 인간의 목을 꺾어 버린 카리취는 그를 한쪽 구석에 던져 버렸다.
간단한 운동을 끝낸 카리취는 다시 단잠을 자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어렸을 적에 자신이 먹었던 강해지는 돌과 같은 색깔의 약을.
“취이익! 인간 이걸 주려고 했냐?”
아무리 카리취가 무식한 오크라지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취이익! 카리취 먼저 공격했다. 취익. 죽어도 싸다. 취이익!”
그렇게 혼자 자문자답한 카리취는 보라색 약을 집어서는 입에 넣으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이건 강한 힘을 준다. 근데 아프다!’
카리취는 한동안 약을 빤히 바라봤다.
오크치고는 고민의 시간은 꽤 길었다.
그리고 간단한 결론에 도달했다.
“취이익! 카리취 강하다. 약 필요 없다. 취이익!”
하지만, 그냥 버리기에도 아까웠던 카리취는 허리춤에 그 약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