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_유성 찌르기(1)
그 고생을 하고 얻은 선행 점수는 고작 1점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람은 황당하면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인간!! 사실대로 말해라.”
유신은 아람에게 어떻게 말할까 생각했다.
‘거짓말할까? 아니면 돌려 말할까?’
숨기고 거짓말을 해봤자, 서로의 관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은…….”
모든 설명을 듣게 된 아람은 공중에서 발길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고생이 다 헛고생이네.”
“아냐 아냐 전혀 헛고생이 아니야. 이 비밀 장부를 토대로 해서 한국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해?”
아람의 말에 유신은 입을 다물었다.
일단 되는대로 말은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겠어.”
“고…고마워.”
“하지만 인간. 잘 들어.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으.응”
솔직히 아람이 내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헛고생을 시킨 건 맞기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응? 뭐가 더 있어?”
유신이 말을 끊자 아람이 매섭게 노려봤다.
“응 아냐. 계속 말해.”
“선행 점수를 제대로 못 받았으니, 대신 다른 걸로 받겠다. 이 몸께 메밀묵과 시루떡을 대령하도록.”
“알았어. 그런데…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인간. 자꾸 이 대도깨비…였던 아람을 실망시키는 군.”
“그게…여긴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 그러니까 로마야.”
로마라는 말에 아람이 입을 쩌억 벌리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도움이 안 되는구나.”
평소라면 아람의 말에 유신이 반박하거나 화를 냈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고생한 게 있기에 맞춰주기로 결심했다.
“미안. 일단은 쉬고 있어. 내가 메밀묵이랑 시루떡을 구하면 다시 부를게.”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난 이대로…”
아람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유신이 아람을 돌도끼로 변하게 한 후에 아공간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내가 나중에 진수성찬을 대접해 줄게.”
들리지도 않을 말을 내뱉은 유신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유신이 잠든 사이 포스가 저절로 움직이며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
한국 지부에 대혼란이 왔다.
기동대 임무 도중 캔의 난입과 함께 헌터들이 기동대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사건인데, 마족까지 등장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다행히 마족은 사살되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두 명의 존재가 사라졌다.
한 명은 3천의 영웅이자, 혼란의 중심에 있는 캔 브레이커였다.
“강찬성 장군님. 드디어 교황청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급하게 들어온 부하는 강찬성에게 교황청의 서신을 건넸다.
서신은 요즘 시대와 맞지 않게 밀랍으로 봉해져 있었고, 강찬성은 밀랍을 서둘러 뜯어낸 후 서신을 읽었다.
강찬성은 빠르게 서신을 읽어가다가 거칠게 구겼다.
“이게 말이 된다고? 그가 숭고한 희생을 했다고?”
“네?”
부하의 반문에도 강찬성은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헌터들의 지휘권을 내가 맡기로 했다. 그렇게 알고 현재 헌터들과 기동대의 작전 위치를 바꾸도록.”
“그렇게 하면 캔 브레이커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캔 브레이커는 사망했다. 그리고 지휘권에 관한 명령서도 곧 내려오기로 했으니 내 말대로 하도록.”
“…알겠습니다.”
부하는 강찬성의 오른팔이었다.
그만큼 강천성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캔 브레이커가 사망했다는 말은 의뭉스러웠다.
그렇지만, 토를 달지 않고 바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강찬성은 부하가 나가자, 혼자 조용히 읊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교황청은 세계 정부와 헌터 협회만큼 크고 강력한 곳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포션이었다.
포션은 여러 곳에서 만들어지지만, 가장 좋은 포션은 언제나 교황청이었다.
그리고 그 포션을 통해 교황청은 무력, 재력, 정보력 등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였다.
또한, 모든 게 맞물리며 돌아갈 수 있는 유능한 사람들도 많이 포진해 있었다.
유능한 교황청 사람들의 도움으로 캔 브레이커의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리님. 헌터 협회에서 캔의 사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캔의 사체는 아시다시피…”
“루카스.”
“네. 마리님.”
“그냥 마족에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세요.”
“하지만, 유품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족이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를 벗겨서 헌터 협회에 보내세요. 그러면 될 겁니다.”
마리의 명령에 루카스는 아직 남아 있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아스본 레스넌이 가만히 있을까요?”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더욱 좋은 일이죠. 전. 그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헌터 협회를 개편하기를 바라니까요.”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집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유신은 지금 뭐 하고 있나요?”
“도깨비와의 대화를 끝낸 후 잠에 빠져있습니다.”
“제가 비토에게 말해 놓을 테니, 유신이 일어나며 비토를 찾아가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예전 유신은 교황청에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임무를 하다 보니 유신의 명성은 점점 올라갔다.
유명세가 생기면서 알음알음 유신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3기동 타격대가 세간에 알려지면, 안 되기에 유신은 가면을 쓰게 됐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신은 교황청에서도 가면을 쓰기로 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제 2심판대를 맡고 있는 비토 제라니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아니 칼입니다.”
가명을 말하는 유신에게 비토가 미소를 지었다.
“하유신님이시죠?”
“어? 그러니까…”
“성녀님께 모든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 앞에서는 가면을 벗으셔도 됩니다.”
“아…그렇구나. 답답했는데 잘됐네요.”
비토는 유신의 맨얼굴을 확인한 후에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에 왜 오신지는 아십니까?”
“아뇨. 루카스라는 분이 마리 선배의 전언이라면서 저보고 여기로 가라고 전하던데요?”
“한 점의 의심도 없었습니까?”
“의심이요?”
“네. 혹시나 그 사람이 첩자이거나, 제가 암살자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으흠…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여긴 교황청이잖아요.”
교황청.
이 한마디에 비토는 자부심을 느끼며 고개를 끄떡일 뻔했다.
일반 사람들은 유신의 말대로 교황청에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
거기다가 비밀에 쌓여 있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앞으로는 다른 누구 앞에서도 가면을 벗지 마십시오.”
“아…”
유신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비토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유신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대답과 동시에 유신은 다시 가면을 썼다.
비토는 그 이후에 서류를 꺼내 유신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가면을 쓰게 되면 이게 하유신님의 신분입니다.”
서류를 펼쳐보자마자 유신은 비토를 바라봤다.
“칼 제라니? 비토 제라니의 하나뿐인 동생?”
“네. 그렇습니다. 그게 하유신님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제 동생은…임무 중…”
“형~ 비토 형~”
“네?”
갑자기 유신이 형이라고 말해서 비토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무리 거짓 신분이라고 해서 바로 저렇게 태세 전환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도…”
“왜요? 형 맞잖아요.”
비토는 여기 오기 전에 마리에게 들은 당부가 떠올랐다.
‘하유신은 그러니까 참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야. 그런데 그게 장점이면서 단점이 될 수도 있어.’
붙임성이 좋다는 말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직접 맞닥뜨려보니 마리의 말이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였다.
하유신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벽이 없었다.
“서류는 숙지 후 폐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형! 아니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고, 알겠습니다, 형님.”
살짝 두통이 오는 것 같았지만, 비토는 애써 무시했다.
“그럼 형님. 전 언제 임무로 복귀하나요?”
유신의 말에 비토는 이제야 본연의 임무를 하기 위해 검을 뽑았다.
“칼 제라니의 장기는 찌르기였습니다. 절 이기는 것까지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완숙한 찌르기만 보여주신다면, 바로 임무지로 복귀되실 겁니다.”
“비토 형님 좋습니다. 대신에 제가 이기면 부탁 좀 들어줘요.”
“좋습니다. 오늘 안에 절 이기시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네.”
기동대에서 쓰던 검은 아직도 유신의 아공간에 많았다.
하지만, 확실히 칼 제라니가 되기 위해 유신은 교황청에서 사용하는 검을 꺼내 들었다.
“형님. 제가 찌르기 하나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어디 구경해 볼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유신의 호언장담에 비토는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했다.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에 저만큼 강해진 것은 인정할만했다.
하지만, 검술 능력 하나 없다는 걸 알기에 자만심을 버리게 해줄 생각이었다.
쌔앵
아직 대련 전이었다.
그러니까 유신이 대련 전에 공중에다가 찌르기를 연습하는 모습만 보고 비토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저 공중에 찌른 것인데, 속도와 파괴력이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가 보통 저 나이대에는 화려함을 추구하고 몇 가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유신은 그렇지 않았다.
‘중심이 잡힌 하체. 최단 거리로 뻗어나가는 검. 그리고 집중력.’
어느 하나 부족할 게 없었다.
찌르기에 대해 가르치려고 했는데, 반대로 자신이 배워야 할 정도로 정석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 그럼 준비되셨죠? 갑니다.”
비토는 유신에게 찌르기를 알려주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 완벽한 찌르기를 선보였다.
자신이 가르칠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유신과 맞붙고 싶어졌다.
“살상력을 줄이기 위해 5대력 사용은 금지이며, 오직 찌르기로만 공격해야 합니다.”
“네. 형님.”
유신과 비토는 서로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검을 든 유신은 중단세 자세를 취했고, 비토는 검을 얼굴 높이로 들었다.
긴장감이 연무장에 잠식해나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앞으로 달려들며 찌르기를 시도했다.
쌔앵
쇄애액
쾅!
서로의 검끝이 부딪히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첫 공격에 유신은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내 검을 회수하고는 다시 검을 찔러넣었다.
쌔앵
쌩 쌩 쌩
유신의 찌르기는 거리만 유지된다면, 강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렇다고 짧은 간격의 찌르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거리가 짧다면, 다연발총을 연상하듯 쏘아졌다.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13기동 타격대의 라이언 쉐도우의 조언에 맞게 모두 일점술의 묘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쇄애애액
비토의 찌르기는 레일 건을 연상시켰다.
검을 자주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한 방의 힘이 유신을 상회했다.
그래서 유신이 견제 형식으로 짧은 찌르기를 선사하는 거였다.
콰앙!
다시 한번 서로의 검끝이 맞부딪혔다.
이번에도 유신은 뒤로 밀려났다.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면 불리해지는 건 유신이기에 다음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비토를 바라봤다.
그런데, 비토가 자세를 풀고는 유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형님 대련 중에 뭐 하십니까?”
“대련은 이 정도로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왜요?”
“제 갑옷을 보십시오.”
유신은 비토의 갑옷을 바라봤다.
자신의 짧은 찌르기로 인해, 갑옷이 여기저기 패여 있었다.
“아… 설마 맞춤 갑옷인가요?”
“네?”
갑자기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유신의 질문에 비토는 황당함을 느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 못 해줄 것도 아니기에 고개를 끄떡였다.
“네. 심판자들을 위한 맞춤 갑옷입니다.”
“그… 비싸겠죠? 수리비도 많이 들고…아니아니 괜찮아요. 저 이번에 돈 좀 벌었어요. 그리고 새로 생긴 형님을 위해 그깟 돈이 대순가요. 헤헤.”
해맑게 웃는 유신을 보고 비토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런 능력자가 다른 것도 아니라 돈을 걱정한다는 게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아니 그래도 제가 망가뜨렸는데…”
“서브 갑옷도 있고, 모든 비용은 교황청에서 나오니까요.”
“하~ 다행이네요.”
유신의 인간미를 느낀 비토는 호기심을 느꼈다.
“혹시 저와의 대련에서 이기면 뭘 부탁하려고 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못 할 말도 아닌걸요. 지더라도 부탁하려고 했어요.”
“……”
뻔뻔하기까지 한 유신의 말에 비토는 황당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제 부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