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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26화 (126/300)

126화_변질된 영웅과의 생사투(4)

심판자들이 유신의 명령을 따른다는 사실에 모두 깜짝 놀랐다.

얍삽하게 생겨서 유신에게 형씨라고 부른 헌터는 지금이라도 심정지가 올 것 같았다.

“심판자님들 먼저 여기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 우선 기동대를 제외한 헌터들의 체포를 부탁드립니다.”

유신의 말에 비토는 오른손을 가슴 높이까지 올린 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제 2심판대는 지금부터 헌터들을 제압한다. 반항하는 자는 바로 즉결 처분이다.”

스무 명 남짓한 심판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헌터들도 처음에는 수적 우세를 믿었다.

하지만, 곧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겐 늙은 노모와 여우 같은…”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었다.

심판자들은 이미 무기를 겨눴던 헌터들을 가차 없이 제압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헌터들의 정리가 끝났다.

이백여 명 가까이 있던 헌터 중 멀쩡한 헌터는 양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였고, 대부분 사지 중 하나가 없었다.

“끝났습니다.”

흰 플레이트 갑옷과 어울리지 않게 피 묻은 검을 들고 비토가 유신에게 보고했다.

유신은 그런 비토의 모습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복귀 준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2심판대가 게이트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유신은 몸을 돌려 4기동 대원과 신평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예전부터 유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지내오면서 가볍게까지 느껴지던 언행으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문으로만 듣던 심판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

심판자들이 누구인가?

권력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권력, 힘 그리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존재였다.

그런 심판자를 움직이는 존재.

세계 최상위 권력자 중 한 명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을 때 유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이제 곧 복귀할 겁니다.”

“네. 네?”

신평이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런 신평의 모습에 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신평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레드. 본인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갈고 닦으세요.”

“아. 알겠습니다.”

한껏 얼어있는 신평의 모습에 유신은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꼭 헌터가 아니어도 됩니다.”

뒤늦게 유신의 말을 파악한 신평이 고개를 끄떡였다.

“가. 감사합니다.”

신평과의 대화를 끝낸 유신이 이번에는 실버를 바라봤다.

“캔은 지구상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자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

대답 없는 실버를 뒤로하고 유신은 몸을 돌려 심판자들에게 다가갔다.

게이트가 열리고 떠나기 전 기동대와 실버, 신평을 보며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듀~”

***

금발의 미남자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집무실 한쪽 벽면이 거대한 창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삐---

갑자기 통신기구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 남자는 살짝 인상을 쓰며 핑거 스냅을 했다.

딱!

그러자, 벽면에 있던 통신 구슬에서 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도미니크님. 실험번호 57번의 담당자입니다.

“제 독서를 방해했으니, 좋은 소식을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난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이렇게 말을 흐리는 게 더 싫더군요.”

도미니크는 읽고 있던 책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고, 상대는 바짝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실험번호 57번이 한 시간 전 각성을 했습니다.

“57번이라…3천의 영웅이라 불리는 캔 브레이커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각성과 동시에 사살당했습니다.

사살이라는 소리에 드디어 도미니크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사살? 그만큼 쓰레기였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두 개의 뿔까지 생겼습니다.

“뿔? 오호, 한 개도 아니라 두 개? 그럼 더욱 이해가 안 가는군요.”

-교황청 소속의 인물에게 사살당했습니다.

“교황청이라…그래 거기에는 그년이 있으니. 좋습니다.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능력이었죠?”

-자세한 사항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우선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캔은 약을 먹고 약 30분은 더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마족으로 변화했고, 본연의 능력인 방어가 강화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능력이 스피드가 생성되었습니다.

“스피드라…”

-네. 그런데, 특이사항은 방어력은 사라지고, 그 기운까지 스피드로 치중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에 도미니크의 올백 머리 중 몇 가닥이 이마를 덮었다.

그게 거슬렸는지, 도미니크는 손바닥을 사용해 머리를 넘겼다.

“으흠… 이번에도 실패인가?”

도미니크의 말에 통신을 하고 있는 상대가 안절부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아직 당신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럼… 전 다시 독서를 해야겠어요.”

통신을 끊으려고 다시 핑거 스냅을 하려고 할 때였다.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도미니크님.

“자꾸 제 독서를 방해하는군요. 또 보고할 게 있나요?”

-그게 실험체 28호가 오크 로드로 승급했습니다.

“네?”

차분했던 도미니크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패작이 거기까지 올라갔다니… 지금 실험체 28호는 어디에 있죠?”

-몽골에 있으며 현재 다른 오크 부족들을 통합 중입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실험체 28호에게 2차 투약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겼다.

도미니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책을 다시 덮었다.

핑거 스냅에 맞추어서 벽면 제일 아래에 있던 통신기에 불이 들어왔다.

-네. 도미니크님.

“57호 실험체를 죽인 게 교황청 소속이라는 건 들었죠?”

-네. 그렇습니다.

“혹시 성녀 마리입니까?”

-가면을 썼지만, 남성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도미니크가 갑자기 활짝 웃었다.

“일단 수소문해서 스카웃 해보세요. 그리고 거절하면…죽이고요.”

-알겠습니다.

통신을 끝낸 도미니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여 있는 술을 가져와 잔에 따랐다.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며 한껏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왜인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군요.”

***

“그렇게 해달라고? 정말 괜찮겠어?”

“네. 3천의 영웅은 언제나 그대로야 합니다.”

마리 입장에서는 유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분히 모든 공적을 챙길 수도 있고, 그렇게 싫어하는 캔 부자도 확실히 엿 먹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신은 캔을 타락한 영웅이 아니라 숭고하게 희생한 영웅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휴~ 그럼 정리해보자. 우선 캔과 네가 리자드맨을 처리하려는데, 마족이 나타났고, 캔은 죽고 네가 마족을 쓰러뜨렸다?”

“정확히는 캔이 마족의 오른팔을 자르고 피투성이로 만든 후 제가 막타만 친 거죠. 캔은 그 와중에 절 살리기 위해 죽었고요.”

유신이 만든 스토리를 듣고 마리는 이마를 찡그렸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영웅의 타락은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니까요.”

“그러니까 이해가 안 가. 어떤 영웅은 도박 빚에 허덕이고, 또 어떤 영웅은 큰 사고를 치고 감옥에 있어. 근데 왜 캔 편을 들어주는 건데?”

마리의 말이 맞았다.

3천이 넘는 영웅 중 사고를 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캔을 감싸는가?

“이해 안 될 수도 있지만, 지미가 불쌍하기도 하니까요.”

“원수라며. 아카데미에서 널 많이 괴롭히고.”

“그렇긴 하죠.”

“그리고? 설마 그게 다는 아니지?”

“뭐. 그렇기는 한데, 복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요.”

싱긋 미소를 짓는 유신을 보고 마리는 지쳤는지 그저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래 알았어. 그렇게 처리할게.”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임무 복귀 전에 오늘 하루만 쉬어도 될까요?”

“그래. 여기까지 온 거 며칠 푹 쉬어.”

“역시 마리 선배뿐입니다.”

엄지를 치켜세운 유신이 집무실을 나섰다.

마리는 문이 닫히기 전에 유신에게 들릴락말락하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영웅들의 체면을 살려줘서.”

유신은 마리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교황청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이동했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고고 힘들다.”

오랜만에 누운 침대는 극강의 편안함을 선사했다.

눈이 감기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 깜박한 게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뭐지?”

고민을 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찝찝한 상태로 잠들면 편안히 잠들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돌아다니며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요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일단 씻자.”

유신이 샤워하기 위해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그런데 상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꿰뚫린 왼쪽 어깨에만 희미하게 흉터가 있을 뿐이었다.

“마리 선배의 힐이 대단하기는 하구나.”

괜히 성녀가 아니었다.

그레이트 힐도 아니고, 고작 힐에 대부분의 상처가 나았다.

유신은 그 상태로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매를 한껏 감상한 후에 씻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머리를 감고 있을 때였다.

“아 맞다! 아람!”

며칠 전 아람에게 캔의 비밀 장부를 찾는 임무를 줬다.

캔이 죽고 자신의 의지대로 캔을 영웅다운 최후로 마무리 짓기로 했기에 그 비밀 장부는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서둘러 아람을 소환하기 위해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다가 지금 샤워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이미 늦은 거 조금만 더 늦어도 괜찮겠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샤워를 끝낸 유신이 머리를 채 다 말리지도 않고 침대에 앉았다.

“후우~하아~”

심호흡으로 마음을 정리한 다음, 오른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아람.”

위이이잉

손바닥에서 약한 회오리가 생기더니, 아람을 토해냈다.

자신의 몸보다 큰 노트를 들고 있던 아람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유신과 눈이 마주쳤다.

“휴~ 인간! 아주 잘했다.”

“응?”

아람의 칭찬에 유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밀 장부를 찾아서 나오는 중에 걸려서 도망치고 있었다.”

“아…그렇구나. 몸은. 괜찮니?”

유신의 말은 어색했지만, 아람은 눈치채지 못했다.

방금까지 아람은 목숨이 위험했다.

위급상황에서 유신의 적절한 소환 때문에 위험에서 벗어났고, 겨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주위를 둘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비밀 장부를 찾는 미션을 완수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자 여기 받아라.”

아람이 억지로 떠넘기는 비밀 장부를 유신은 얼떨떨하게 받았다.

솔직히 아람이 고생은 하겠지만, 비밀 장부를 찾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비밀 장부를 열어봤다.

“와~ 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캔과 연결이 안 된 사람이 없구나.”

“흥! 인간들이란. 자 그건 나중에 보고 빨리 선행 점수를 주도록!”

“으응.”

유신은 머릿속에 있는 도깨비 지식을 활용해 아람에게 풍족한 선행 점수를 주었다.

그렇지만, 선행 점수를 받은 아람이 인상을 찡그렸다.

“응? 1점? 인간 이딴 점수는 뭐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1점이라니?”

다시 집중해서 아람에게 선행 점수를 부여하지만, 더 이상 어떤 점수도 줄 수 없었다.

“왜 점수가 더 안 가지?”

“인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구나! 빨리 말해.”

아람이 으르렁거리며 유신에게 다가왔다.

유신은 그런 아람의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어떻게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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