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_변질된 영웅과의 생사투(3)
유신이 캔의 속도를 따라오게 된 것은 다 캔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캔이 몸을 강철로 변화시킨 상태에서 방어력을 덧씌우는 방식을 보고 오러를 몸에 덧씌운 거였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첫 번째는 속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직 캔보다는 느렸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캔에게 공격을 먹인 건 두 번째 효능 덕이었다.
실체화한 후에 흡수하지 못한 포스가 주변에 널려있었다.
이 포스는 아직 유신과 연결되어 있어서 캔의 이동 방향을 알려줬다.
“죽여 버린다!!”
원래 화가 많은 건지 마족이 된 후에 화가 많아진 건지 캔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왼쪽.’
포스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에 공격이 막히자 캔이 머뭇거렸다.
그 틈으로 연달아 오러를 뿌렸다.
촤아악
“크으윽!!”
모든 공격을 피하지 못한 캔은 왼손에 깊은 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내 발을 움직여 공격권에서 급히 몸을 빼냈다.
유신이 득을 봤지만, 이 수법이 언제까지 먹히는 건 아니었다.
공격에 조금만 늦게 대응하면 피해는 유신에게 다가왔다.
‘뒤.’
몸을 회전하며 오러를 뿌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캔의 손톱이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렇군. 모든 공격을 다 대응할 수는 없나 보군.”
캔이 할퀴고 간 등에서 피가 좀 많이 났지만, 기세등등한 모습이 꼴불견으로 보였다.
그래서 똑같이 상대해 주기로 했다.
“너도 모든 공격을 다 맞추는 건 아니잖아.”
“가면을 벗긴 후에 네놈과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 모두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에이~ 이미 나한테 그렇게 말했던 놈이 한두 명이 아니야.”
짧은 대화를 마친 그들은 다시 맞붙었다.
한 번 공격을 성공하면, 한 번은 피해를 당했다.
그렇게 지지부진해진 전투가 이어지면서 그들은 피투성이가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캔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유신은 느긋했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이제 포스가 얼마 안 남았어.’
유신은 크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도박을 하기로 했다.
슈우우웅
캔의 움직임이 포착됐지만, 이번에는 반박자 늦게 움직이고 말았다.
그러자 매번 할퀴고 지나가기만 하던 캔이 공세를 바꿨다.
푸욱
심장을 노렸던 오른손이 유신의 왼쪽 어깨에 손가락이 다 들어갈 정도로 깊게 박혔다.
단숨에 유신의 목숨을 끝장내려던 캔은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이 한 방으로 유신의 전투력이 반감되었다는 생각에 얼굴에는 미소가 꽃피었다.
미소는 이내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어깨에 박아 넣은 손이 빠지지 않았다.
“잡았다.”
캔은 뒤늦게 이게 유신이 노린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유신은 검까지 놓은 채 양손으로 캔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이게 네 노림수였다면, 이번에는 내 비장의 수다.”
우웅우웅
주위에 뿌려뒀던 유신의 포스가 울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캔이 서둘러 자유로운 왼손으로 유신을 공격했다.
“그실.”
그레이트 실드의 최대 충전량은 3번이고, 소모를 하게 되면 8시간에 하나씩 충전이 된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2번의 그실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남은 그실을 사용했다.
텅 텅 텅
모든 공격은 그실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놔! 놔! 놓으라고!!”
캔의 발악과 악다구니 속에서 주위에 퍼져 있던 포스가 무르익었다.
유신은 캔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가면 속에 가려진 입술을 오므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퍼엉.”
콰콰쾅
콰르르르르릉
쾅쾅쾅
야영지가 떠나갈 듯이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로 인해 기동대와 헌터들의 싸움도 잠시 소강상태로 변했다.
그들은 서로 암묵적인 시선을 교환한 후에 폭발음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기동대는 이 모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였다.
하지만, 헌터들은 캔이 이긴다면 기동대를 사살하는 데 힘이 덜 들 것이라 생각했다.
만에 하나 유신이 이긴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가야 하고 말이다.
“크아아아아악!!”
거대한 크레이터 중심에는 오른팔이 통째로 사라져있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마족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마족?”
기동대와 헌터들은 캔을 마족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캔은 마족과 같이 머리에 뿔이 달려 있었고, 거대한 덩치의 캔과는 달리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마족을 상대해야 합니다.”
호랑이 열하나 팀장의 말에 헌터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팀장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욕심을 이용하기로 생각했다.
“같이 잡는 것만 도와준다면, 헌터들에게 모든 전리품을 양보하겠습니다.”
통 크게 딜을 걸었지만, 헌터들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으흠. 믿을 수가 없는데? 그리고 그렇게 잡고 나서 너희가 우리 뒤통수를 치면?”
잘못되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 의심만 하는 헌터들을 보던 팀장은 인상을 구겼다.
“그럼 너희는 그딴 생각이나 하면서 있어. 우리끼리 처리할 테니. 그리고 전리품은 없을 줄 알아. 기동대 팀장들은 모두 전투 준비!”
“에헤이~ 왜 이렇게 성미가 급할까?”
헌터 중 대표격의 인물이 앞으로 나와 호랑이 열하나 팀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래라는 걸 해야지. 거래. 자 전리품과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른 죄을 모른 척 해줘.”
“마족을 막지 못하면 다 죽는다.”
“그러니까 해줄 거야?”
솔직한 심정으로 팀장은 거래를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마족을 죽이는 게 실패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최악이었다.
“…좋다.”
“오케이! 애들아 가자~!”
헌터들은 마족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족의 무서움을 몰랐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들은 전리품에 눈이 멀었다.
그렇게 마족을 향해 헌터들은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파상공세에 마족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크레이터는 더욱 깊게 파였다.
촤아악
갑자기 보라색의 실선이 헌터들의 주위를 한바퀴 휘감았다.
그리고 수십의 헌터들의 몸이 양분되며 그 자리에서 죽었다.
“뭐…뭐야?!”
깜짝 놀란 헌터가 외마디를 외칠 때였다.
외팔이가 된 캔이 그 헌터의 얼굴을 한 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터트렸다.
“배은망덕한 새끼들을 봤나. 기동대를 죽이라고 보내 놨더니 날 공격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헌터들은 앞에 있는 캔을 마족으로 오해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그게 다 네가 부덕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지.”
캔은 익숙한 비아냥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자신의 잘린 오른팔을 이제 막 몸에서 뽑고 있는 유신이 서 있었다.
“그 폭발에서 죽지 않고 살았군.”
“내가 목숨이 좀 질겨. 그리고 그건 내가 할 대사 같은데?”
“바퀴벌레 같으니.”
“왜 그래? 지금 머리에 더듬이 단 사람은 너야.”
더 이상의 대화를 하기 싫은 캔이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유신은 캔의 팔을 버린 후 검을 소환해 맞대응했다.
콰앙
한쪽 팔이 없다는 건 뭘 말하는 걸까?
바로 균형을 잃는다는 거다.
그런데, 캔은 한쪽 팔이 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여도 속도 하나는 빨랐다.
콰쾅
몇 번 부딪히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제는 캔의 공격을 쉽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유신이 이 짧은 전투를 통해 성장한 게 아니었다.
‘캔의 상처가 만만치 않다는 거네.’
그렇다고 쉽게 이길 수도 없었다.
괜히 3천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공격을 성공시켜 나갔다.
“크아아아악!!”
캔은 유신이 자꾸 미꾸라지처럼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가하자 괴성을 질렀다.
유신은 그런 캔을 보고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 끝내자!”
남은 포스를 박박 긁어서 오러를 만들었다.
서로가 이게 마지막 격돌이라 생각했는지 평소보다 더 조심하고 있었다.
탁
매번 캔이 움직이는 것에 반응해서 반격했던 것은 유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캔에게 검을 휘둘렀다.
캔은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하는 철판교 수법을 사용해 오러를 피했다.
그 상태에서 미끄러지듯 피하려고 했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유신의 포스가 캔의 발을 잡고 있었다.
“합!”
오러가 캔의 상체를 지나기도 전에 유신이 기합과 함께 검을 멈췄다.
그러자 캔의 상체 위로 오러가 불타올랐고, 유신은 그대로 검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촤아악
캔의 몸이 좌우로 양분되었다.
영웅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했다.
“허억 하악”
거친 숨을 내뱉던 유신은 아공간에서 붉은 보석을 꺼내 악력으로 부서뜨렸다.
그리고 캔의 육신을 바라봤다.
죽어서도 육신은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고 마족의 신체를 유지했다.
그렇게 호흡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헌터 중 얍삽하게 생긴 한 명이 유신에게 다가왔다.
“겨우 막타 날렸다고 마족의 육신을 다 가져가겠다는 건 아니지?”
유신에게 불만은 토로했지만, 사실 헌터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마족을 죽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지만, 마족을 물리친 앞에 있는 존재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쳐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되지도 않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거였다.
“하악~ 꺼져.”
숨을 몰아쉬며 말하는 유신을 보고는 헌터는 확신했다.
지금은 욕심을 부려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어이 형씨! 아무리 그래도 좋은 건 나눠 가져야지. 안 그러면 탈 날 수도 있어. 그리고 탈 나면 죽을 수도 있어.”
대충 호흡을 정리한 유신이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다른 헌터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욕심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귀찮다. 한 번에 다 덤벼.”
유신의 손짓에 헌터들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욕심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형씨 너무 그렇게 반듯하면 부러지고 말아. 그러니까…에잇!”
말하면서 기회를 엿보던 헌터가 유신에게 검을 휘둘렀다.
검을 슬쩍 피한 유신은 그대로 헌터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헌터는 얼굴이 납작하게 되면서 뒤로 날아갔다.
그때 다른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유신을 포위하려 했다.
그러자 기동대들이 재빠르게 움직여서 유신과 헌터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더 이상은 우리도 묵과하지 않겠다.”
기동대와 헌터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누군가의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어? 뭐지?”
그 소리에 모두가 공중을 바라봤다.
공중에는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는 푸른 금이 가 있었다.
챙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얀 플레이트 갑옷에 하얀 가면을 쓴 사람들이 나타났다.
헌터들과 기동대가 제 3자의 등장에 한참 긴장하고 있을 때 헌터 쪽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히익! 시.심판자?!”
스무 명 남짓한 교황청 소속의 심판자들이 게이트에서 모두 나올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가지 못할 기운을 뿜어댔다.
그러자, 헌터들도 기동대도 홍해 갈라지듯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심판자들이 천천히 유신에게 다가가 앞에 섰다.
“제 2심판대를 맡고 있는 비토 제라니입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이 시신을 교황청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비토는 유신의 뒤에 있는 마족이 된 캔의 사체를 바라봤다.
그런 후 유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그런데 2심판대가 왔다는 것은 선배가 힘 좀 썼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잠시지만 2심판대의 지휘권을 주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내릴 첫 번째 명령은…”
유신은 말을 흘리며 헌터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