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_연합전사(1)
캔이 좀생이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강찬성은 너무나 힘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몇몇의 인원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에휴~ 치사하다. 치사해.”
유신의 말에 같이 작전을 수행해야 할 동료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한 명은 캔에게 얻어터진 4기동 대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신평이었다.
그 외에 몇 명을 더 데리고 가라고 했지만, 유신이 거부했다.
이 이상 인원을 늘리면 유신이 보호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캔에게 찍힌 인물이었다.
“칼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네.”
4기동 대원의 말에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숲을 헤쳐나간 후 공터로 향했다.
거기에는 신평이 준비한 전투식량이 있었다.
전투식량 가끔 아주 가끔 먹으면 꽤 괜찮은 맛을 자랑한다.
하지만, 매번 같은 걸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또 이거네요.”
“입맛에 안 맞으시면 다른 걸 준비하겠습니다.”
유신의 불평에 식사를 준비한 신평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자 먹죠.”
“네.”
“알겠습니다.”
4기동 대원은 가면의 하관을 분리한 후에 식사를 시작했다.
신평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기에 편하게 전투식량을 먹었다.
그리고 유신은 입 부분이 열렸다.
디에고가 만든 이 가면은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함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저…”
“네.”
“넵.”
4기동 대원과 신평이 동시에 대답했다.
“호칭을 좀 정리하죠.”
“네?”
“서로 부르기 편하게요. 일단 저는 알다시피 교황청에서 온 칼입니다.”
유신이 먼저 자기소개를 끝내자, 신평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라이징 길드에서 온 신평입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끝낸 유신과 신평이 4기동 대원을 바라봤다.
그러자 4기동 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4기동 대원은 신분을 숨겨야 하고, 대원끼리는 따로 부르는 호칭이 없습니다. 그저 명령하는 존재와 명령을 듣는 존재로 나뉩니다.”
“왜 그렇게 비효율적이에요?”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이번 임무 동안만 사용할 호칭을 만들죠. 뭐가 좋을까? 생각해 둔 거라도 있으세요?”
“죄송합니다. 없습니다. 칼님이 정해주시면 그걸 사용하겠습니다.”.
4기동 대원의 말에 유신은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잠깐 사용할 호칭이라고 해도 막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식사하는 내내 생각하다가 불현듯 좋은 호칭이 생각났다.
“실버 마스크 어떠세요?”
순간 4기동 대원이 온몸으로 흠칫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호칭이 너무 길지 않나요? 급박할 때 실버 마스크라고 풀네임을 다 말하기는 힘들 텐데.”
신평의 눈치 없는 발언에 4기동 대원이 은밀하게 기세를 발했다.
하지만, 유신은 손을 흔들어서 그 기세를 중간에 잘라버렸다.
그러자 4기동 대원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러지 말아요. 서로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국에.”
“알겠습니다.”
실력이 부족한 신평은 자신에게 쏘아졌던 살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갑자기 대화 주제가 바뀐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신평…씨는 뭐가 좋을 것 같아요?”
“간단하게 실버 어떠세요?”
“오!! 전대물 같아서 좋은데요. 그러지 말고, 우리 모두 색깔로 이름을 부르는 건 어떠세요?”
“앗 좋습니다.”
역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평은 호응할 줄 알았다.
이래서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신평과 죽이 잘 맞았던 거였다.
“4기동 대원분은 실버, 그럼 저는 검은 가면이니까 블랙. 신평씨는…”
“저…저는 레드하고 싶습니다.”
“레드요?”
“네. 전대물의 꽃은 레드니까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유신과 신평의 대화를 통해 실버가 된 4기동 대원은 남모르게 한숨만 쉴 뿐이었다.
***
블랙, 실버, 레드의 임무는 간단했다.
한국 지부에서 지정해준 루트를 통해 전진하면서 몬스터를 섬멸하는 거였다.
그리고 확실히 실버는 포커로 4기동대를 취득한 게 아니었다.
은신, 정찰, 단검술 그 외 부가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신평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하아 하악.”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신평은 방금 홀로 오크 세 마리를 물리쳤다.
신평의 능력은 관통 하나뿐이지만, 예전에 비해서 창술도 많이 늘었다.
거기다가 선두에 있는 오크에게 짧게 점프 후 사용한 관통 능력의 파괴력은 꽤 대단했다.
단 한 번의 찌르기에 손쉽게 오크 머리가 꿰뚫렸다.
“이 근처에 오크 부락이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레드씨 괜찮으세요?”
“하아 하악. 네. 괘.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출발하죠.”
“네.”
“하악 네…”
지친 신평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리는 빠르게 이동해서는 오크 부락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신평은 지친 상황에서도 오크 부락이 보이자, 자신의 창을 고쳐 잡았다.
“아니요. 여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악. 괜찮습니다.”
“잠깐 숨 돌리고 있으세요. 실버씨가 레드씨 좀 챙겨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유신이 오크 부락으로 향했다.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신평은 나무에 지친 몸을 기댔다.
“하아 하악. 부럽네요.”
신평의 말에도 실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주위를 경계할 뿐이었다.
“후읍~ 하아~ 정말 대단들 하세요. 여기까지 쉬지 않고 몬스터를 잡으면서 달려왔는데,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다니…”
너무나 부러웠다.
자신도 노력한다고 노력했는데, 칼이나 실버와는 다르게 체력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아카데미 동기였던, 유신이 생각났다.
남들보다 자신이 언제나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노력해왔던 자신의 친구.
쾅쾅쾅
오크 부락에 칼이 도착했는지, 과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실버의 경계심이 더욱 올라갔다.
언제까지 쉬고 있을 수 없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친 오크가 나타날 수도 있고, 전투 소리에 다가오는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쉬어도 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실버의 말에도 신평은 애써 웃으며 창을 들어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전투 소리를 듣고 흥분한 세 마리의 멘티스가 오크 부락으로 날아가다가 실버와 신평을 보고는 몸을 돌려 다가왔다.
“이런 들켰습니다. 전투 준비하세요.”
“네.”
멘티스를 바라보며 실버가 단검을 던질 준비를 했다.
그때 하늘 위로 새하얀 검기가 세 마리의 멘티스를 지나쳤다.
후두둑
단 한 방에 세 마리의 멘티스는 몸이 양분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멘티스는 곤충류였다.
몸의 절반이 없고, 땅에 떨어진 충격에도 바로 죽지 않았으며, 그 상태에서 실버와 신평에게 다가왔다.
실버는 잽싸게 양손에 든 단검을 던져 두 마리의 멘티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가만히 있으면 실버가 분명 처리해 줄 거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평은 남은 한 마리에게 달려들며 창을 찔러넣었다.
퍼석
멘티스의 머리에 창이 틀어박혔다.
‘됐다.’
신평은 기쁨에 취해서 잠깐 방심했다.
어느새 멘티스의 앞발이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피하기도 그렇다고 막지도 못하고 몸이 굳어 버린 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멘티스의 약점은 머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곤충류의 몬스터들은 머리가 파괴되더라도, 신경이 살아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유신의 목소리에 신평이 슬그머니 두 눈을 떴다.
그리고 깜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으아아악~”
멘티스의 앞발이 신평의 눈앞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하악 제가 살았나요?”
“네. 살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레드도 실버처럼 원거리 공격을 하던가 약점 공격 후 곧바로 몸을 피해야 합니다. 아셨죠?”
“네. 넵!”
신평이 군기 있게 대답하자, 유신은 가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실버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검기 덕분에 쉽게 멘티스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에이~ 뭘요. 제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실버와 레드가 다 처리할 수 있었을걸요. 바쁜데, 이만 출발할까요?”
“네.”
유신과 일행들이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신평이 자신의 창을 내려놓고는 유신에게 절을 했다.
“어? 레드. 왜 그래요?”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네?”
“칼님이랑 4기동 대원님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실버가 신평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다가가려고 하자, 유신이 손을 들어 막았다.
“왜 강해지고 싶으신 건데요?”
“……”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유신이 다시 한번 물어봤다.
“강해지고자 하는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강함을 동경해왔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약속했습니다.”
“동경이야 그렇다 치고, 약속이요? 그 약속을 들을 수 있을까요?”
유신은 신평이 예전에 자신과 한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떠보는 느낌으로 물어봤다.
“칼님이 듣기에는…”
“블랙!!”
“네?”
“전 칼이 아닙니다. 블랙입니다. 블랙. 레드 자꾸 헷갈리지 마세요.”
신평은 이 상황에서도 전대물을 따라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칼의 비위를 맞추고 그보다 더한 일을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묵묵히 이 상황극에 동참하기로 했다.
“네. 블랙님.”
“님 빼요.”
“네. 블…랙.”
“좋아요. 이야기를 계속 이어볼까요?”
“이야기가 좀 길 겁니다.”
“괜찮아요. 시간 많아요.”
유신의 말에 실버가 흠칫했다.
지금은 작전 중이었다.
가는 길목에 있는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약속된 시간 안에 작전 지역으로 넘어가야 했다.
지금부터 쉼 없이 달려도 겨우 시간 안에 도달할지 미지수였다.
시간이 많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실버는 제지할 수 없었다.
지금 팀의 리더는 자신이 아니라 전대물에 빠진 블랙이었다.
“제 친구 중에 하유신이라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동기이기도 하고요. 그 친구의 능력은 [노오력가]입니다. 듣기에는 그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노오력가의 다른 말은 무능력자입니다.”
“하유신이라는 친구에 대해서 말하는 게 지금 이야기와 연관이 있나요?”
유신의 말에 신평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있습니다. 제가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가 그 친구 때문입니다.”
“친구 때문에요?”
“네. 그 친구는 아무런 능력이 없으면서 언제나 제 앞에 있었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불쾌했습니다.”
불쾌하다는 말에 유신의 주먹이 아무도 모르게 살짝 쥐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친구 하유신은 언제나 노력합니다. 한 번은 제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네 능력은 전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상처도 줬습니다.”
“으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나 보네요.”
“네. 블랙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미련하게 기본 검술을 연습하고, 몬스터 대백과사전을 달달 외웠습니다.”
“이야~ 끈기도 있고, 똑똑한 친구였나 보네요. 몬스터 대백과사전을 다 외우다니.”
유신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시도했다.
하지만, 신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자꾸 신평이 자신에 대해서 좋게 말하지 않자, 유신은 기분이 나빠졌지만, 다시 한번 인내를 발휘해 참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제 친구의 목표는 멋졌습니다. 이렇게 노력해서 강해지고 싶다고요. 강해져서 유명해지면, 사람들에게 무능력자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호~ 좋은 생각이네요.”
“아뇨.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후우~ 후우~”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그래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앞에 있는 신평이 자신의 베프라고 자꾸 되뇌었다.
“블랙님 왜 그러신가요?”
“아…아닙니다. 계속하세요.”
신평은 유신을 약간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친구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운동장에서 검술 훈련을 하면 몰래 체육관에서 창술 훈련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체육관에서 노력하면, 전 학교 뒷산에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점점 포기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대로 된 전투 능력자들과 차이가 벌어지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저기 칼님… 저도 강해질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강해지고자 하는데, 자신이 강하지 않다면, 그건 노오력이 부족해서다!”
“네?”
“오늘부터 특훈입니다. 레드의 관통을 갈고 닦는 방식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실버는 칼과 신평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게 이렇게 길게 할 대화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