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_람의 책임(3)
다크 연합이 제대로 일을 해준 걸까?
아니면 디에고의 영향력이 강했던 걸까?
열흘이라는 시간에 맞춰서 식량이 든 총 10개의 아공간 주머니가 배달됐다.
“급하게 사들이느라 가격은 좀 비쌌네.”
“대체 얼만큼씩 들어 있는 겁니까?”
“각 주머니마다 내용물은 다르네. 우선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도축된 소, 돼지, 닭고기가 각각 10톤씩 들어 있네.”
“10…10톤이나요?”
“뭘 그렇게 놀라나? 자네가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나?”
솔직히 예상보다 많아서 놀라기는 했다.
“다른 것들은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주머니에는 참치가 들어왔네. 입항하는 원양어선을 싹 털어왔지. 그리고 여섯 번째부터 마지막까지는 쌀, 보리, 밀, 옥수수, 감자가 각각 200~300톤씩 들어 있지.”
고기의 양만 해도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는 다른 식량들까지 말하니 이건 거인들이 1년이 아니라 몇 년은 충분히 버틸 양이었다.
“참고로 이 음식들이라면 소국의 기아를 해결할 정도네.”
“가…감사합니다.”
“아니네., 대신에 꼭 약속 지키게.”
“약속이요?”
순간 디에고가 표정을 굳혔다.
유신은 사실 깜박하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상기했다.
“헤헤~ 장난친 거예요. 내년에 또 그만큼 구해올게요.”
“믿겠네. 우리도 미리 준비하면 더 많은 걸 준비할 수 있을 거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유신은 아공간 주머니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거인들에게 가려고 몸을 틀었다.
그때 디에고가 유신을 멈춰 세웠다.
“잠깐 기다리게.”
“네?”
“이거 받게.”
디에고가 던진 무언가를 유신은 공중에서 깔끔하게 잡아챘다.
그리고 확인하니, 온통 검은색에 얼굴을 다 덮는 가면이었다.
“이거 뭐예요?”
“이번 작전에는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들었네. 그래서 교황청에서 쓰는 가면과 비슷한 걸 준비했네.”
“절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공짜는 아니네.”
“네?”
“이번 작전부터 찰스가 못 간다고 들었네. 그래서 자네 맞춤으로 만든 촬영용 가면이네. 영상 촬영과 목소리 변조, 색깔 변환 및 외형 변환 정도의 기능이 들어 있네.”
역시 괜히 주는 게 아니었다.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진짜 다음에 뵐게요.”
재빨리 가면을 챙겨둔 유신은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거인들을 향해 뛰어갔다.
봉쇄의 목걸이를 착용하지 않고 있어서 그럴까?
유신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습~ 이제 나도 만만히 볼 수 없겠군. 찰스.”
“네 이사님.”
“작전에서 빠진 이유를 아나?”
“네. 성녀의 조치가 있었습니다.”
찰스는 평소처럼 크게 표정 변화가 없었다.
평소에는 웃는 얼굴처럼 보였지만, 언제나 저 모습이었다.
웃지도 그렇다고 찡그리지도 않는 그게 찰스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지만, 찰스는 다크 연합의 비밀 병기였다.
“내가 성녀에게 부탁했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사님?”
“이제 자네도 슬슬 복귀해야 하지 않겠나? 유신의 전투 자료도 충분히 모았을 테니까.”
잠시 고민에 빠진 찰스가 밋밋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일 처리 하나만 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뭔지 물어봐도 되겠나?”
“저도 유신과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깨달음을 제 껄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자네도 어지간히 유신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
찰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디에고는 그런 찰스를 보고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
1,277명이나 되는 거인들이 광장에 모여서 유신을 마중하고 있었다.
그때 대표로 프란시스코가 앞으로 나왔다.
“람이시여 이제 언제 오시는 겁니까?”
“언제 오긴 1년 안에 돌아올게. 그러니까 마나석도 많이 캐놓고, 든든하게 먹고 쑥쑥 커~”
지금 유신은 걱정하지 말라고 농담을 던진 거였다.
이 농담이 차후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고 말이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거인들이 다 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 유신의 말에 화답했다.
유신은 그런 거인들을 보며 아직 람이라는 칭호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돌아갔다.
새로운 작전 지역으로 가기까지는 이제 닷새도 남지 않았다.
그동안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들이 있기에 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찰스 아저씨. 저 왔어요~”
손까지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지만, 날아오는 건 불덩이였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지만, 호락호락 당할 유신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불덩이를 스텝을 밟아 손쉽게 피했다.
콰콰쾅
뒤편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거~ 찰스 아저씨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찰스는 유신의 농담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뇌전을 쏘아 보냈다.
유신은 피뢰침 효과를 내기 위해 검을 집어 던졌다.
콰르릉
퍼석
검은 뇌전에 튀겨진 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제야 유신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찰스 아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
하지만 이번에도 찰스는 말없이 새로운 마법을 전개했다.
새로운 검을 꺼내든 유신은 찰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놈의 정이 뭔지. 제길!!’
6개월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동안 같이 지낸 사람에게 칼을 겨누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환한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화난 거 같은데?’
찰스는 유신의 예상대로 화가 난 게 맞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중력 마법을 사용했다.
“큭…”
유신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무게가 5배 늘어났고, 그로 인해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바람의 창까지 날아왔다.
“그실.”
텅텅텅
실드가 찰스의 마법을 손쉽게 막았다.
한숨 돌리게 된 유신이 목소리를 높였다.
“찰스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무슨 일인 거예요?”
“……”
“대체 왜 공격하신 거예요? 아저씨!!”
외침이 소용이 있었던 걸까?
찰스의 행동이 멈췄다.
그리고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입이 열렸다.
“유신. 잘 들어라. 난 전투마법사다.”
“그건 알고 있었다고요.”
“그럼 이건 알고 있나? 전투마법사는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유신이 널 볼 때마다 전투의 본능을 자제하기 힘들더군. 하지만, 오늘 난 지금까지 참아왔던 달콤한 과실을 딸 수 있을 것 같군. 잘 들어라. 내 능력은 무영창이다. 이제부터 그런 안일한 모습을 계속 보이며 죽을 거네.”
유신은 찰스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또, 가지 않았다.
“꼭 싸워야 해요?”
“내가 죽거나 자네가 죽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격차로 날 제압하거나.”
솔직히 찰스를 설득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찰스의 눈빛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찰스 아저씨. 사나이였군요. 좋습니다. 전력으로 가죠.”
“좋다 와라!”
유신이 새로운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발검 자세를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실은 시간이 다 되어서 사라졌다.
그걸 신호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법과 검이 움직였다.
‘우선 중력 마법부터…’
포스를 눈에 집중해서 마나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몇 가닥의 마나결이 보였고, 그대로 발검했다.
솨아악
중력 마법이 캔슬되면서 사라졌다.
찰스는 고작 검으로 마법을 베어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란 건 놀란 거고, 준비된 마법은 그대로 발동했다.
위이이잉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이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돌풍이 되었다.
콰콰콰콰콰콰
토네이도는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며 다가왔다.
이 바람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토네이도였다면, 아직은 베어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마나를 이용해 만든 인위적인 토네이도였다.
솔직히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도망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니 맞붙고 싶었다.
‘앞에 다가오는 토네이도는 마법이다. 마법은 베어낼 수 있다. 아니 무조건 베어낼 거다!’
오러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5미터 길이의 오러가 생성됐고, 그대로 토네이도를 향해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중력 마법처럼 한 번에 사라지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상위 등급 마법일수록 마나결도 수식도 복잡했다.
그래서 일단 보이는 모든 마나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서걱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나결을 하나씩 베어내면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토네이도는 다시 미풍이 되어서 휘날렸다.
위이이잉
찰스는 분명 마법이 파훼 된 것을 알 것이다.
그래도 아직 먼지구름이 가라앉지 않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지금이 기회였다.
팡
땅을 거칠게 밟아서 앞으로 쏘아졌다.
그 상태에서 찰스 주위에 있는 마나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라라라락
아무리 고위 마법사인 찰스라도 모든 마나결이 잘려 나가자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찰스의 입가에서 한줄기의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위 마법인 토네이도가 이렇게 쉽게 파훼 당했는데, 데미지가 없을 리 없었다.
기회라 생각하고 이대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찰스의 손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검이 생성됐다.
챙
챙챙챙
보통 공격 마법을 위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를 전투 마법사라고 한다.
그런데, 찰스는 공격 마법뿐만 아니라,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검으로 한동안 검격을 교환했다.
간단하게 부딪히던 검격이 점점 격렬해졌고, 순식간에 수십 합이 지났다.
누가 신호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검술도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전투 마법사는 전투에 관련된 모든 게 뛰어난 사람이 전투 마법사지.”
“그렇군요.”
그리고 서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찰스는 검만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검술에서는 아직 유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법을 파훼하고, 검을 튕겨내며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찰스의 어깨를 향해 일점술의 검기를 쏘아 보냈다.
블링크
바로 앞에 있던 찰스가 사라졌다.
공간계열 능력자의 전유물이 발동됐다.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고 감이 외쳤다.
그래서 무작정 앞으로 굴렀다.
서걱
조금만 늦었으면 옷자락이 아니라, 등이 베였을 거다.
“무영창, 공간이동 그리고 저번에 보여준 사이코키네시스까지. 이중을 넘어서 다중 능력자네요.”
“정확히 말해주지. 무영창, 공간이동, 사이코키네시스 그리고 마나의 축복까지 가지고 있네.”
“와~ 찰스 아저씨. 금수저였어. 다 가졌네.”
역시 예전부터 생각해왔지만, 가이아는 편중적이다.
누군 다 주고, 난 겨우 [노오력가] 하나 주고.
“검술, 신의 눈 그리고 5대력 컨트롤. 거기다가 노력으로 얻은 포스에 오러까지 자네만 하겠나?”
찰스는 오해하고 있었다.
억울해서라도 오해를 고쳐 줘야겠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전 오직 [노오력가] 하나만 가졌는걸요?”
“응?”
“포스는 진짜로 몇 번 죽을 둥 살 둥 하니까 생겼고, 신의 눈? 그건 뭐예요? 한 달 전에 교황청에서 능력 검사기 돌릴 때도 [노오력가] 랑 [포스]가 전부였어요.”
찰스가 유신을 향해 겨누고 있던 검을 내렸다.
“그게 전부라고?”
“네. 그리고 그렇게 오해하면 진짜 억울해요. 전 정말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네.”
“의지가 생기네요. 전세계에 있는 [노오력가]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이길 겁니다.”
사실 전세계에 [노오력가]는 유신이 혼자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유신이 준비가 끝나자, 서로 다시 달려들었다.
뇌전, 불, 땅, 바람, 물 등의 창이 날아왔고, 그걸 일일이 쳐냈다.
그러자, 이번에도 찰스는 등 뒤로 블링크를 사용해서 다가왔다.
쩌쩡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포스막으로 견뎌냈다.
잠깐의 틈이 생겼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코키네시스.
염력이 내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동안 찰스가 멀리 떨어진 후, 상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 다리우스 선배. 역시 이 방법이 무식하지만, 확실한 것 같네요.’
포스를 실체화해서 온몸으로 발산했다.
그러자, 사이코키네시스가 흔들리면서 뒤로 밀려났다.
그 상태에서 포스를 오러로 바꿨다.
쩌쩡
솨아아악
콰아아앙
사이코키네시스는 금이 갔고, 마법들은 오러에 닿자마자 터져나갔다.
인간 병기가 된 상태에서 찰스에게 달렸다.
꿀렁
땅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스퀘이크가 발동됐다.
무영창.
확실히 어떤 마법이 날아올지 모르니 한순간도 경계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콰아앙!
발을 높게 들어서 강하게 땅을 내려찍은 다음 그대로 달려들었다.
쾅쾅쾅쾅쾅쾅
어스퀘이크를 일직선으로 뚫고는 그대로 전진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오러를 넓게 퍼트려서 마나의 흐름을 차단해, 공간이동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찰스의 목에 살짝 가져다 댔다.
“체크 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