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_람의 책임(2)
“마나석이요?”
“그렇다네. 간단히 생각해서 마정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와~ 그럼 좋은 거네요.”
“좋기만 하겠나? 마나석은 마정석보다 더욱 비싸다네.”
찰스의 비싸다는 말에 유신의 귀가 쫑긋했다.
“왜요? 왜 비싸요?”
“마정석의 근간은 마력이네. 그런데 보통 이 마력은 대부분 마기에 오염되어있지. 그리고 그 오염도를 지우기 위해 정제 작업이 필요하다네. 반대로 마나석은 정제 작업이 필요 없지. 그래서 금액적으로 더욱 비쌀 수밖에. 거기다가 정제 작업을 하면서 흩어지는 마력도 마정석에 비해 적고 말이야.”
“보통 이 정도 마나석 하나면 얼마나 할까요?”
“마정석은 압축률로 따지지만, 마나석은 크기로 가격을 매기네. 이 정도면 하급보다 높고, 중급보다 조금 모자라군. 출력으로 따지면, 중급이라고 보면 될 거네.”
마정석의 가격은 보통 시세에 따라 달라졌다.
하급의 경우 하나에 300~500만 원을 호가하고, 중급은 거기에 0이 하나 더 붙는다.
상급은 중급보다 0이 두 개 더 붙고 말이다.
등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는 것이다.
“이거 작은 거 하나가 5천만 원 정도 한다고요?”
“이 정도 마나석이면 중급 마정석보다 더 비쌀거네.”
“네?”
“이러나저러나 마나석 자체가 발견되는 게 드물어서 마법사들은 사족을 못 쓰거든. 그래서 말인데 이거 나한테 팔게.”
마법사로서의 욕심을 내비치는 찰스의 모습에 유신은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연구를 안 하는 것 같지만, 찰스도 마법사는 마법사였다.
“그냥 드릴게요. 지금까지 절 도와주신 것도 많은데, 이 정도는 그냥 드릴 수 있어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찰스의 입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손은 마나석을 꽉 쥐고선 품에 얼른 넣었다.
아이 같은 찰스의 모습에 마나석이 그렇게 귀중하다는 것 알게 됐다.
그래서 찰스를 조금은 놀려 주고 싶어서 아공간에서 아까보다 세 배 더 큰 마나석을 꺼냈다.
“이건 어느 정도 할까요?”
유신이 꺼내 마나석에 찰스의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이…이건 상급 마나석? 딱 한 번 이게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네. 그때 1억 3천만 달러에 거래가 됐었지.”
“와~ 대박! 그럼 저 이제 부자가 된 거예요?”
“다…당연하지.”
찰스의 두 눈은 마나석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 혹시 거인들의 보물이라도 훔쳐 온 건가?”
“네?”
“아니면 강탈?”
“아니예요. 허락 맡고 가져온 거예요.”
“으흠…오해해서 미안하네.”
“그런데 이거 사실래요?”
갑작스러운 유신의 제안에 찰스의 머리가 급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내 포기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내 재산으로 그건 어림도 없네. 그래서 그러는데, 우리 단체에서 사고 싶은데, 시간 좀 줄 수 있겠나?”
“네. 대신에 조건이 있어요.”
“조건? 뭔가?”
“가격이 측정되면, 그걸 음식으로 받고 싶어요. 물론 모든 유통 과정은 거기서 부담한다는 조건이요.”
“알겠네. 잠시만 기다려주게.”
“네.”
유신에게 찰스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마나석을 찰스와의 거래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일부야 찰스와 거래할 예정이지만, 대부분은 마리를 통해 거래할 생각이었다.
경제를 보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있다.
수요가 적은데, 공급이 많아지면, 당연히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그래서 그 조절이 중요하다.
“이야기가 끝났네. 자네의 마나석을 우리가 구매하기로 했네.”
찰스의 말에 유신은 씽긋 미소를 지으며 가지고 있는 마나석의 10분의 1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장기 고객님이 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전부 구매할 의사가 있나요?”
“자…잠시만 기다려주게!”
유신의 말에 찰스는 허둥지둥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찰스가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받아보게.”
“누군데요? 전 모르는 사람이랑 통화하기 싫은데…”
“그렇게 모르는 사람은 아닐 거네.”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거래는 기세다.
그래서 찰스가 건네준 전화를 그대로 끊어 버렸다.
“하하 실수로 전화가 끊겨 버렸군.”
애써 찰스는 실수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실수가 돼버린다.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했다.
“실수 아닙니다. 거래는 서로 마주 보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크흠…그렇군. 내 바로 전달하겠네.”
“네 부탁드립니다.”
딱 한 시간 걸렸다.
찰스의 상급자가 아프가니스탄까지 오는 시간이 말이다.
“유신이 자네 너무 한 거 아닌가?”
텐트를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예상했듯이 익숙한 목소리였다.
“디에고 아저씨세요?”
“허허 그렇다네.”
“오랜만이네요.”
유신의 반가운 인사에 디에고는 웃으며 받아줬지만, 실질적으로 눈은 마나석이 쌓여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반갑네. 뭐 전화는…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이 많은 마나석을 어떻게 구했나?”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는 디에고였다.
하지만, 유신이 바보도 아니고 곧이곧대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영업 비밀을 함부로 누설할 수는 없죠.”
“그렇군. 그럼 질문을 바꾸겠네. 얼마나 더 구할 수 있나?”
“그건 오늘 거래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생각보다 중요한 자리였군. 그래. 듣기로는 모두 식량으로 바꿔 달라고 하던데, 그 정도면 양이 어마무시할 텐데… 우리가 배달까지 해주도록 하지.”
이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안 되겠다.
“거래. 없던 걸로 할게요.”
“응? 아니 오해한 것 같은데 이건 바쁜 자네를 위해서.”
“제가 빙다리가 데리고 있는 핫바지로 보이세요?”
“…그게 무슨 말인가?”
외국 사람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나이를 드셔서 그럴까?
디에고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물론 마도구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걸 수도 있고 말이다.
“호구로 보지 말라는 소립니다.”
“……그렇군. 교육은 확실히 됐어. 알겠네. 원하는 게 뭔가?”
“마나석의 절반 대금으로 식량을 구매해주세요. 그리고 남은 절반으로 그 모든 식량이 들어갈 아공간 주머니를 구해주시고요.”
“으흠… 그러면 우리 쪽에도 손해가… 알다시피 아공간 주머니의 가격이 꽤 나가지 않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예전이라면, 아니 정보가 없었다면, 디에고의 말에 충분히 수긍했을 거다.
하지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기에 쉽게 봐줄 생각은 없었다.
“디에고 아저씨가 속해 있는 곳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면 풀려있는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을 거고…”
상대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상태에서 제대로 승기를 가져와야 하기에 살살 달래주기도 해야겠다.
“그리고 거래는 일회성이 아닙니다.”
“……자네는 언제나 나를 놀래키는 군. 좋네. 대신 우리에게도 조건이 있네.”
“싫습니다.”
“응? 들어보지도 않고?”
“네. 안 들을 거예요. 듣기 싫어요. 거래하기 싫으면 마세요.”
유신은 방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그 모습에 디에고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도 디에고 아저씨랑, 찰스 아저씨 봐서 하는 건데 인맥이라고 너무 막대하시네요. 그냥 안 할래요.”
“하하하하하.”
텐트를 뚫고 들릴 정도로 디에고의 가식적인 웃음이 전해졌다.
디에고와 찰스가 속해 있는 다크 연합의 경우, 원하는 목표를 위해 살인, 납치도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할 거다.
근데 그래서 뭐?
유신에게는 가장 든든한 배경인 13기동 타격대가 있다.
“자네 후회 안 하나?”
“네. 그럼 반대로 아저씨는 후회 안 하시겠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디에고에게서 살기와 함께 강한 기세가 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은 유신에게만 집중됐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 웬만큼 강자라도 그 기세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이 누구인가? 13기동 타격대의 기세를 맨몸으로 받았던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안드로말리우스의 기운을 베어내기까지 했다.
“지금 기운으로 협박하시는 건가요?”
“……푸하하하핫.”
디에고는 기운을 거둬들이며 박장대소를 했다.
다시 바라봐도 유신은 자신의 기운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어리고, 정식 대원은 아니라고 하지만, 유신도 13기동 타격대의 인원이라는 걸 상기했다.
“내가 졌네. 대신에 이거 하나만 약속해주게. 거래는 꾸준히 가능하겠나?”
유신은 아공간에 다 챙겨오지 못해서 그대로 두고 온 마나석의 양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최소 1년에 한 번씩은 이 정도 양은 가능할 것 같네요. 못해도 10년 정도는요”
“좋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네 그럼 우선 대금으로 이 모든 마나석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열흘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주시고요.”
아직 대금을 준비하지도 못했는데, 유신이 마나석을 먼저 건네자 디에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네. 역시 인맥이 좋군.”
“한국에 이런 말이 있어요. 성공하려면, 혈연, 지연, 학연이라고, 간단히 말해서 인맥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거죠.”
“내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거군.”
“아 그리고 모든 음식은 가공 전으로 해주세요.”
“거인들이라도 먹여 살릴 생각인가?”
디에고가 멍청한 것도 아니고, 유신의 임무를 찰스를 통해서 들었을 거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힌트를 줬는데, 유추하지 못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했을 거다.
그렇다고 긍정해주는 건 또 다른 일이기에 못 들은 척 넘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상급 마나석을 꺼내 디에고에게 건네줬다.
“이건 뭔가 뇌물인가?”
“에헤이~ 뇌물이라뇨. 디에고 아저씨와 제 관계에 무슨 뇌물이 필요하다고. 그냥 선물입니다. 선물.”
디에고는 한참 말없이 유신을 바라봤다.
캐물어 보고 싶은 건 한가득이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서로의 신용과 연관되어 있으니.
그래서 당연하듯이 마나석을 받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안 될 거네.”
“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못 당하겠군.”
그렇게 계약을 일단락 지은 유신은 찰스와 함께 교황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리에게는 전후 사정과 함께 같은 걸 제안했다.
단지, 자신이 거인들의 왕인 람이 되었다는 것만 말하지 않았다.
“넌 이게 가능하다고 보니?”
“네.”
마리는 방 안에 있는 마나석을 바라봤다.
찰스와 디에고가 봤다면 놀라 기절할 일이었다.
유신이 꺼내 마나석의 양은 아공간에 있는 모든 마나석이었다.
거기다가 최상급 마나석도 3개가 섞여 있었다.
“지구에 있는 식량을 거덜 내려고 그러니?”
“왜요?”
최상급 마나석을 각기 하나씩 양손에 쥔 유신이 마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 최상급 마나석 하나로는 선배들한테 좋은 장비 보내면 되고, 이걸로는 맛난 것 좀 보내면 되죠. 그리고 나머지만 식량을 사려고요. 아! 식량 담을 아공간 주머니도요.”
“다크 연합과도 거래했다고 하지 않았니?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래서 마리 선배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교황청 이름이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솔직히 인연이 있어서 판 거뿐이예요. 정확히는 디에고와 찰스 아저씨한테 판 거죠.”
유신의 단순한 논리에 마리는 편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리는 그런 유신이 점점 13기동 타격대에 제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그렇게 할게. 그런데 시간 좀 걸릴 거야.”
“미국 쪽이 지금 식량이 넘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에이~ 마리 선배도 참! 뉴스 기사만 봐도 다 아는 내용인걸요.”
“그래 알았어. 그래도 조용히 준비하는데 1년 정도 소모될 거야.”
“그거면 충분합니다.”
거래를 순조롭게 진행한 유신이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있을 때였다.
마리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유신에게 건네줬다.
“이건 뭔가요?”
“뭐긴 임무지.”
“저 이제 막 왔는데요?”
“응 괜찮아. 보름 뒤에 작전 투입이야.”
“저 바쁜데…”
“네가 거인들한테 식량 갖다주고도 시간 남으니까 여유롭게 준비해. 참고로 이번에는 시간 좀 걸릴 거야.”
유신은 마리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어디 보자. 네? 여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