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_람의 책임(1)
람.
거인들의 왕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명칭이다.
지금까지 역대 람들은 언제나 거인이었다.
그리고 오늘 최초로 거인이 아닌 인간이 람의 칭호를 얻게 됐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프란시스코의 보고에 유신은 두통이 생겼다.
그저 얼떨결에 참가하게 된 람 계승식에서 살기 위해 싸웠다.
물론 욕심이 생겨서 열심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람이 되자마자 여러 골칫거리가 생겨났다.
“하아~ 원래 이렇게 식량이 부족하나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네피림 부족의 새로운 대표가 된 카마엘이 무릎을 꿇으며 프란시스코의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내게 울며 죽여달라고 했던 타르는 당당하게 날 바라봤다.
그 눈빛은 람이 되었으니 식량 문제를 해결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애써 손에 힘을 풀었다.
“우선 각 부족의 인원은 어떻게 되나요?”
질문에 대한 답은 카마엘에게서 나왔다.
“네. 람이시여. 우선 타이탄 708명, 티탄은 462명 마지막으로 네피림은 107명으로 총 1,277명입니다.”
“네피림은 수가 적은 편이네요.”
“원래 다른 부족에 비해 수가 적었지만, 키마엘이 실험을 위해 동족을 잡아다가 써서 그렇습니다.”
“네?!”
네피림 부족이 미친 건지 아니면 키마엘만 미쳤던 건지 모르겠지만, 실험을 위해 동족을 잡았다는 소리에 인상이 구겨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람 결정전에서 키마엘을 죽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대체 무슨 실험을 했나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타이탄에서 농지를 관리한다고요? 한 번 볼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유신은 프란시스코의 극진한 안내를 받으며 지하에 위치한 농경지로 향했다.
농경지는 의외로 거대했다.
그리고 이 정도 크기로 농사를 지으면 충분히 모든 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지 않나요?”
그때, 프란시스코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람이시여. 보통 인간들은 얼만큼 먹나요?”
“음…”
유신은 대략적인 크기를 상상한 후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만큼?”
“저희들은 보통 한 끼에 이 정도 먹습니다.”
프란시스코가 만든 동그라미는 유신이 만든 것의 다섯 배 정도 됐다.
“이것도 소식하는 편입니다.”
“하아~”
람이 된 후 유신의 한숨은 현재진행형이 되었다.
본인이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 그리고 차후에 벌 돈을 다 쏟아붓는다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었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역시 쟌이랑 찰스 아저씨한테 물어보는 게 최선이겠지?”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더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고민을 계속하다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타이탄족의 아이들이 내 주먹만 한 구슬을 들고는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거인들도 인간들과 다를 게 없구나.”
아이들의 키가 인간인 자신보다 컸지만, 비쩍 말라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은 지금 보릿고개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굶는다는 게 안쓰러웠다.
“애들아 이리 와봐.”
그제야 아이들은 유신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라…라.람을 뵈.뵙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대체 전대 람은 어떻게 했길래 남녀노소 모두가 무서워해?’
유신의 생각은 백프로 오해였다.
전대 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거인이었고, 평화를 사랑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아이들은 겨우 25살밖에 되지 않아서 전대 람을 본 적도 없었다.
거인들은 람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타르에게 행했던 유신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겁을 먹고 있는 거였다.
“배고프지?”
“아.아닙니다.”
“괜찮으니까 이리 와봐.”
여기서 유신이 모르는 게 있었다.
인간 사회에도 찌라시라는 게 있듯이 거인들의 세계에도 찌라시는 있었다.
그리고 유신에 대한 소문은 무시무시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앞으로는 구슬치기도 안 하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저는 비쩍 말라서 간에 기별도 안 갈 겁니다.”
유신은 다시 한번 속으로 전대 람을 욕하면 아이들에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그럼 저희를 안 잡아먹나요?”
“내가 왜 너희를 잡아먹어?”
“그게… 소문으로는 람께서 거인을 먹기 위해 주.주먹으로 다지듯이 두들겨 팬 후에, 새.생으로 자.잡아 먹는다고 해서요.”
아이들의 말은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 세 번째로 속으로 전대 람을 욕했다.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알았어?”
“……”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한숨을 쉬었다.
“하아~”
유신의 한숨에 아이들이 기겁하며 재빨리 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좋아. 잘 대답했으니까 상을 줘야지?”
아공간을 열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대량의 초코바를 꺼냈다.
“자 받아.”
아이들은 초코바를 받아든 후에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잘못을 파악했다.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손수 시범을 보이며 초코바의 포장을 벗긴 후 입에 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경계심을 유지하다가 이내 유신을 따라 초코바를 먹었다.
그리고 달콤한 세계에 눈을 떴다.
“마…맛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초코바를 먹어 치운 아이들을 보고는 유신이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였다.
가장 어려 보이는 거인 아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가.감사합니다. 람이시여.”
유신은 웃으며 자신보다 머리 하나 작은 거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움찔했던 아이가 이내 기분이 좋은지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주먹만 한 구슬을 꺼내 유신에게 건넸다.
“이. 이건 제 보물 구슬입니다. 람께 받치겠습니다.”
“응? 아니 괜찮은데…”
“저도 람께 받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께 더 큽니다.”
“제 구슬이 다른 구슬들을 제패했습니다.”
거인 아이들이 서로 자신의 보물 구슬을 유신에게 건넸다.
한사코 사양하던 유신은 순간 몸이 굳었다.
‘왜 이제야 눈치챘지?’
구슬에서 마정석과 비슷하면서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채고 더는 사양하지 않고 구슬을 모두 챙겼다.
그리고 떠나기 전 다시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초코바를 준 후, 왔던 길로 재빨리 돌아갔다.
“프란시스코! 카마엘!!, 타르!!!”
유신이 목청 올려 각 부족의 대표들을 소집했다.
“람을 뵙습니다.”
“이게 뭔지 알아?”
유신은 프란시스코, 카마엘 그리고 타르에게 대뜸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구슬을 보여줬다.
“구슬 아닙니까?”
“자세히 좀 봐봐.”
프란시스코는 구슬을 받은 후 이리저리 확인해봤다.
“돌 아닙니까?”
“휴~ 그래 돌이지. 그런데 혹시 이런 거 여기에 많아?”
“네. 굴만 파면 나오는 게 이 돌입니다. 보통 사용처가 없어서 아이들이 구슬로 깎아 놀기도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자 그러면 우선 이 돌과 같은 재질을 최대한 많이 모아줘.”
“네? 아.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내렸지만, 부족장들은 더는 군말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이 떠난 후, 유신은 찰스가 준 주머니를 열었다.
“분명 있을 텐데…”
찰스가 준 주머니에는 촬영용 드론부터 시작해, 마법 스크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하지만, 찾는 것은 그런 귀한 것이 아니었다.
“찾았다!”
유신은 작은 이어폰을 찾아서 귀에 끼운 후 바로 연결했다.
***
유신이 프란시스코와 떠난 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쟌과 스텔라 남매 그리고 찰스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이 떠난 후 찰스가 힘을 일부 내비친 후, 쟌과 스텔라 남매는 예전처럼 찰스를 대할 수 없었다.
“예전이 좋았는데…”
얀이 불쏘시개로 장작더미를 헤집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러니까. 그러게 왜 쟌은 찰스 아저…아니 찰스씨를 도발해가지고.”
“어? 그러면 이제 찰스 아저씨라고 못 불러? 씨라고 해야 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씨는 너무 먼 느낌인데… 아저씨라고 할 때가 친근한 느낌이었는데…”
“이미 멀어졌잖아…”
스텔라 남매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앤? 갑자기 왜?”
“생각해보니까 이상하잖아. 불편하게 된 건 우리가 아니라 쟌과 찰스 아저씨인데, 왜 우리가 불편하다고 느껴야 하지?”
“그것도 그렇네.”
“가자. 가서 평소처럼 아니 예전처럼 찰스 아저씨를 대하자.”
“그래!!”
스텔라 남매는 서둘러 찰스가 있는 텐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용기와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쉽사리 찰스가 있는 텐트를 건들지 못했다.
“얀 네가 열어.”
“아니 왜 나야? 앤이 가자고 했잖아.”
“유신이가 그러더라,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 누나 말 들어.”
“꼴랑 10분 먼저 태어났으면서 무슨 누나야!!”
그렇게 스텔라 남매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였다.
텐트 문이 열리며, 찰스가 밖으로 나왔다.
“자네들이었군. 무슨 일 있나?”
“아…아니…그게…”
무작정 오기는 했지만, 앤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더듬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얀은 더욱 도움이 되지 않았다.
3cm나 더 크면서 자신의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아니 저 그게… 찰스 아저씨…”
앤이 용기를 내서 찰스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이었다.
삐-----
갑자기 긴 신호음이 들렸다
찰스는 손을 들어 앤의 말을 저지한 후, 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착용했다.
“하유신군 잘 지냈나?”
-네 저야 뭐…아저씨는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일주일간 캠핑을 했다네.”
-재미있었겠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네.”
-그럼 지금 저번에 헤어진 그곳에 있나요?
“그렇다네.”
-그럼 제가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갈게요. 다섯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알았네. 그런데 말이야…”
-네. 뭔데요?
“아니네. 오면 그때 물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봐요.
그렇게 통신은 끊기게 됐다.
찰스는 이어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스텔라 남매를 바라봤다.
“유신이 다섯 시간 안에 온다고 하네.”
“네?”
“빨리 준비하게.”
“아.알겠습니다.”
유신은 찰스와 통화가 끝난 후, 아공간 가득 수상한 돌을 챙겼다.
그리고 깜박하고 있었던 연구원들과 그들의 호위 용병들과 함께 거인들의 세계를 떠났다.
거인들은 유신이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하자, 가는 길까지라도 호위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서 나보다 쎈놈 있어? 없지? 빨리 들어가서 수련이나 해.”
유신의 이 한마디에 거인들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선 몸을 돌려 돌아갔다.
연구원들과 호위 용병들은 갑자기 풀려나서 어리둥절했다.
거기다가 거인들이 유신에게 조심스러워하자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인들의 언어를 알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서 그런지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저기 다 왔네요.”
다섯 시간 만에 유신이 입을 열었다.
뒤에서 땅만 보며 걸어가던 인원들은 유신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러자 드디어 인원들은 거인들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눈물을 흘렸다.
“살았다!!”
***
쟌과 스텔라 남매가 납치된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을 때였다.
유신이 찰스에게 따로 독대를 요청했다.
“몸은 건강한 것 같군.”
“하하 걱정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네. 영상은 많이 찍었나?”
찰스의 말에 유신이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죄송해요. 사실은 정신없어서 깜박했어요.”
“으흠…”
“정말 죄송해요.”
“…아니네. 뭐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 사실은 이거 때문에요.”
유신은 아공간에서 구슬을 꺼내 찰스에게 보여줬다.
“이게 뭐로 보이세요?”
찰스는 구슬을 받아서 간단히 살펴본 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마정석 아닌가? 이 정도면 중급 정도는 되겠군.”
“다시 한번 잘 살펴보세요.”
“응?”
평소에도 유신은 엉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말하면 뭔가 있다는 걸 알기에 다시 마정석 구슬을 살펴보다가 놀랐다.
“…마정석 구슬이 아니군. 그렇군 이건…”
“뭔지 아세요?”
“이건 마나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