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_람의 의식(3)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대중 앞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같은 종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성이 있다면, 부끄러워질 게 뻔했다.
“어? 뭐…뭐야!!”
유신이 놀라 황급히 자신의 손으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
하지만, 이미 볼 거인은 다 봤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유신의 벗은 몸을 보고 많은 여성 거인족이 얼굴을 붉혔다.
그만큼 유신의 몸은 조각상처럼 아름다웠다.
얼굴을 붉히는 거인이 있는 반면, 화를 내는 거인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타르였다.
“이…이놈!!! 인간은 성욕에 미쳤다고 하더니 람의 의식을 더럽히는 것이냐!!!”
타르의 욕설이 쉼 없이 쏟아졌다.
다행인 것은 유신이 지금 팔찌를 착용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뤼앙스만 따지면, 자신에게 욕하는 것 같지만, 무슨 욕을 하는지는 몰랐다.
유신은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급하게 외쳤다.
“전장의 땅님 팔찌라도 돌려주세요. 아니면 옷이라도 좀 주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간절함이 닿았던 걸까?
아니면 전장의 땅도 이대로는 신성한 결투가 진행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땅이 솟구치더니 유신을 덮었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봉쇄의 목걸이, 팔찌 그리고 전투 타이즈를 입은 유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지를 찢어 씹어 먹을 놈아!! 대체 우리 람의 의식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팔찌 덕분에 이번에는 타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려왔다.
“그건 오해라고!”
“오해는 무슨 람의 의식을 더럽힌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타르가 급하게 달려들려고 했다.
“잠깐!!”
타임을 외쳤지만, 타르는 유신에게 향하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유신은 주먹을 피하기보다 막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했기에 뻗은 손으로 타르의 주먹을 잡으려고 했다.
퍼억
봉쇄의 목걸이가 없다면 유신은 충분히 타르의 주먹을 막았을 거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전장의 땅은 유신에게 목걸이, 팔찌 그리고 타이즈까지 전부 돌려줬다.
그래서 유신의 반응속도는 한 템포 늦었다.
아무리 가품이라고 하지만, 봉쇄의 목걸이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크으윽… 치사하게 진짜!”
“닥쳐라!! 전사의 명예도 모르는 놈이!!”
유신은 타르를 흘겨보더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타르가 빈손인 것을 확인했다.
“타르라고 했나? 너 검은 어디다 뒀냐?”
“키마엘이 너에게 졌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군. 하지만 인간 따위를 상대하는데 무기까지 필요 없지.”
“에휴~ 저놈의 자존심.”
아공간을 연 유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 가장 크고 거대한 무기들을 꺼냈다.
거대한 양날 도끼, 글레이브 그리고 자신이 들기에는 크고, 타르에게는 작아 보이는 대검까지.
“뭐냐 인간?”
“나중에 무기가 없어서 졌다고 하지 말고, 원하는 걸 들어.”
“흥 필요 없다.”
“똥고집 부리지 말고.”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력행사를 하기로 생각했다.
일단 봉쇄의 목걸이를 풀어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꼭꼭 숨겨놨던 기세를 풀었다.
콰르르릉
유신의 기세에 콜로세움의 경기장이 울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타르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느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패배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티탄족 최강의 전사라는 타이틀과 높은 자존감이 겨우 타르를 버티게 했다.
“무기 들어.”
유신의 말에 타르는 유신이 놔둔 무기를 집을 뻔했다.
“원하는 무기가 없어? 그러면 구해올 때까지 기다릴게. 난 전사 대 전사로 정정당당히 싸우고 싶어.”
“…알겠다.”
타르가 티탄족이 있는 관객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어떤 거인이 타르가 사용하던 대검과 비슷한 크기의 대검을 던졌다.
휘리리릭
쾅!
대검은 날아와서 경기장 한가운데에 꽂혔고, 타르는 대검을 한 손으로 뽑았다.
그 모습이 유신에게는 지미와 겹쳐 보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고, 마지막 대결에서 지미를 이겼지만, 유신에게 지미는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휴우~”
깊게 심호흡을 한 후, 지미의 잔상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타르를 바라봤다.
타르도 준비가 끝났는지 유신을 바라봤다.
유신이 양손으로 검을 잡는 자세를 취했다.
휘이이잉
손에서 시작한 에너지는 모이고 모여 하나의 거대한 포스 대검을 만들었다.
타르는 유신이 만든 대검을 보고 생각했다.
‘크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기운으로 대검을 만들었지만, 너무 컸다.
자신의 대검보다 더욱 컸다.
‘검술은 별로인가 보군.’
타르의 생각은 타당했다.
검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그 검에 맞는 검술이 있고, 움직임이 있다.
자신의 키보다 큰 대검은 오히려 방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언할 생각은 없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프란시스코는 어떻게 됐지?”
“그는 위대한 전사였다. 그리고 포기를 몰랐지.”
“설마…죽인 것이냐?”
“죽여? 내가 아무리 피에 미친 티탄이라고 해도 그런 위대한 전사의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맙다. 그리고 방금 그 말이 널 살렸다.”
타르는 유신이 자꾸 자신을 밑으로만 보자, 기분이 나빠졌다.
기세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승부는 기세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 언제까지 말만 할 것이냐?”
“그렇군.”
유신이 포스 대검을 더욱 꽉 쥐었다.
그리고는 대검을 눕혀서 가로베기를 했다.
타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검을 보고는 앞으로 달려들며 마주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쿠다당
일격에 타르는 대검이 부서지며, 경기장 끝까지 날아갔다.
하지만, 거인족의 몸은 튼튼하고, 단단했다.
이내 타르가 부러진 대검을 옆으로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퉷!”
피를 뱉어낸 타르는 자신이 파워에서 밀린다는 것에 놀랐지만, 이내 인정했다.
“검 들어.”
관객석에 있는 티탄 족이 유신의 말을 듣고, 또다시 타르에게 대검을 날렸다.
휘리릭
탁
날아오는 대검을 그대로 잡아챈 타르가 이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유신을 바라보다가 달려들었다.
유신은 아까보다 절반 크기의 포스 대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타르를 향해 다시 가로베기를 시전했다.
타르는 아까보다 대검의 크기가 작아졌기에 다시 한번 맞상대를 했다.
콰아아앙
쿠당탕탕
폭발음과 함께 타르가 또다시 경기장 끝까지 굴렀다.
이번에도 역시나 대검은 부러졌다.
“검 들어.”
새로운 대검이 경기장에 떨어졌다.
아니 이번에는 한 번에 다섯 자루가 넘게 경기장에 꽂혔다.
타르는 그중 가장 단단해 보이는 대검을 뽑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쉽지 않을 거다.”
호기롭게 외쳤지만, 타르는 유신의 포스 대검이 아까보다 더욱 작아진 것에 긴장했다.
처음보다 조금 전의 충격이 더욱 강했기 때문이었다.
즉, 검이 작아질수록 파워가 올라간다는 거였다.
“안 오면 내가 갈까?”
유신의 도발에 타르는 이를 갈며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가로베기였다.
두 번이나 당했는데, 세 번이나 같은 수에 당하면 바보였다.
그리고 타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맞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유신의 검이 휘둘러지는 타이밍에 맞게 높게 점프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대검을 머리끝까지 높이 올려서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아앙
공격과 방어 중 누가 더 유리할까?
당연히 공격하는 쪽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타르는 경기장 끝까지 날아갔다.
“검 들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타르가 새로운 대검을 뽑아서 다시 달려들었다.
콰아앙
“검 들어.”
콰아앙
“검 들어.”
티탄족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대검이 부러졌다.
그리고 유신이 준 양날 도끼, 글레이브 그리고 대검까지 모두 부러졌다.
그나마 유신이 준 무기들은 이격까지 버텼다.
하지만, 삼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검 들어.”
타르는 유신의 무심한 말에 소름이 돋았다.
결투를 진행하는 동안 유신은 오직 저 말만 되뇌었다.
참다 참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타르가 외쳤다.
“대체 내게 왜. 왜! 왜!!”
“검 들어.”
“인간이 우리 거인들의 람을 정하는 의식을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뜨려도 되는 것이냐!!”
“검 들어.”
“더 이상…무기도 없다.”
유신은 타르의 말에 포스 대검을 없앴다.
그리고 양 주먹을 말아쥐었다.
“주먹도 하나의 무기다.”
말과 동시에 유신이 타르에게 쏘아졌다.
뒤늦게 주먹을 말아쥔 타르가 다가오는 유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유신은 날아오는 주먹을 회피한 후에 높게 손을 휘둘렀다.
키 차이 때문에 유신의 공격은 타르에게 보디블로가 되었다.
“크헉~”
일격에 숨이 막힌 타르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유신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쉼 없이 타르의 몸에 계속 주먹을 날렸다.
퍽퍽퍽퍽퍽
타르는 자신의 키의 절반도 하지 않는 유신의 주먹이 너무나 아팠다.
500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항복을 외치려고 했다.
“그…그만! 하…”
하지만, 유신은 항복을 받아주지 않았다.
점프까지 해서 타르의 아구창을 갈겨 더는 말을 내뱉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폭력이 계속됐다.
퍽퍽퍽퍽퍽
콜로세움의 관객석을 가득 채운 거인들은 유신의 폭력을 보며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유신이 타르를 때리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타르는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무서웠다.
아니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움직였다.
맞는 와중에 그리고 온몸이 쑤시는 상황에서 바닥을 기었다.
덥석
유신이 전신 타이즈를 입고 있어서 바지 가랑이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최대한 크게 외쳤다.
“크어어엉 람이시여. 이제 그만…그만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크아아앙. 너…너무 아픕니다. 크어어억.”
거인의 울음소리는 거대했다.
타르는 거인 중에서 큰 편이었고, 그 울음소리가 콜로세움에 울려 퍼졌다.
“크어어엉.”
유신은 타르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신은 반쯤 미쳐 있었다.
폭력이라는 것이 이렇다.
사람을 잠식시키고, 어둠으로 끌고 가는 게 폭력이다.
타르가 울지 않았다면, 유신은 폭력에 도취 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크어어엉.”
유신은 울부짖으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타르를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때였다.
콜로세움 전체가 노랗게 빛났다.
그러더니 시간이 멈췄다.
“뭐…뭐지?”
아람 그리고 가람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유신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땅이 꿀렁이더니 흙이 솟구쳤고, 흙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만들어졌다.
경계심이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오러를 생성했다.
그리고 그대로 거인에게 오러를 겨눴다.
“전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흙 거인의 말에 유신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걸 어떻게 믿지?”
“저는 람의 의지이자, 람의 부하입니다.”
아리송한 흙거인의 말에 유신이 미간을 구겼다.
“새로운 람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외롭고 힘든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응?”
“그러면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을 밝게 비추던 노란빛이 순식간에 유신에게 흡수됐다.
그리고 콜로세움은 처음 그 모습 그대로 일반적인 땅으로 변했다.
“방금 뭐였지?”
유신이 방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무사한 프란시스코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타르를 포함한 모든 거인이 프란시스코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람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프란시스코의 선창이 있자, 그 뒤에 있던 모든 거인이 공동이 떠나가라 크게 외쳤다.
“람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