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_거인 프란시스코(4)
스텔라 남매뿐만 아니라 찰스 그리고 쟌까지 황당했다.
말을 하면서도 피를 토하는 유신이 자신에게 힐을 써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본인이 쓰러뜨린 거인에게 힐을 써달라고 했다.
“너부터 힐이 필요하겠는데?”
“난 이게 있잖아.”
유신은 아공간에서 붉은 포션을 꺼냈다.
그 모습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거 아프지 않아?”
“내성이 생겨서 그런가? 이제는 버틸만 해.”
퐁
벌컥벌컥
말을 끝낸 유신이 붉은 포션을 마셨다.
그리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분명 버틸만하다고 했던 건 거짓말일 거다.
바드득!
유신의 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신 괜찮아요?”
얀의 물음에 유신이 고개를 끄떡였다.
“으.응 나는 괜찮으니까 빨리 프란…시스코씨에게 힐을…”
프란시스코는 방금까지 적이었던 자였다.
그것도 유신이 몇 번을 도전해서 겨우 이긴 적이었다.
그런 적에게 힐을 걸어서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것은 왜인지 위험부담이 컸다.
그렇게 얀이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앤이 프란시스코에게 다가갔다.
“가이아여 이 어린 양을 굽어 살펴주소서. 그레이트 힐.”
앤이 유신의 말에 준비 해둔 그레이트 힐을 프란시스코에게 걸었다.
초록색의 치유 빛이 프란시스코를 덮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란시스코는 유신에게 당한 상처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렇게 유신이 포션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을 때, 프란시스코가 눈을 떴다.
“네가 날 살렸구나.”
프란시스코가 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거인족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유신뿐이었다.
그래도 언어에는 뤼앙스라는 게 있다.
앤은 눈치껏 프란시스코의 말을 알아듣고는 아직도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유신을 가리켰다.
“난 유신의 부탁으로 해준 것뿐이야.”
물론 그 눈치라는 것은 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프란시스코도 충분히 그걸 파악하고는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신 앞에다가 창과 방패를 내팽개치고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하유신. 너는 우리 타이탄족이 인정하는 진정한 전사다.”
포션의 고통이 점점 사라져가는 유신은 고통 속에서도 프란시스코의 말을 들었다.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다.
하지만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여기에 있는 사람 중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닙니다. 멋진 전사를 잃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니다. 전사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 하유신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라. 내가 최대한 들어주겠다.”
유신은 프란시스코의 말에 약간 안도했다.
프란시스코의 도움을 받는다면 연구원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구원을 구출하는 걸 도와주십시오.”
“불가하다.”
“네?”
너무나 빠른 확답에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분명 도와주신다고…”
“우리 거인족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아무리 전사의 약속이라고 해도 나 하나 때문에 우리 종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 미안하다.”
설명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빠른 시간 안에 연구원들을 구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납치 사건에는 골든 타임이 존재하고, 이미 그들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지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자신은 이렇게 고민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쟌!”
유신이 해맑게 웃으며 몸을 돌려 쟌을 바라봤다.
“쟌?”
“…응? 어. 어. 왜?”
쟌은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뒤늦게 대답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유신은 역시 리더라서 고민거리가 많다고 생각하며 부른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거인족은 이차저차해서…타이탄 그래서 티탄…네피림…연구원…이렇게 돼서 못 도와준다네.”
힘들게 모든 설명을 끝냈다.
그러자 쟌과 스텔라 남매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신의 말을 못 알아먹는 표정이었다.
“응 그래서?”
“응? 쟌 내 말 이해 못 했어?”
“이해? 그런 두서없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
쟌은 겉으로 화를 내며 그나마 속으로 안도했다.
자신이 바라본 유신은 무력도 강하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지만, 지능적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아니 그것도 이해 못 해?”
순간적으로 발끈할 뻔했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했다.
원래 아이들의 언어를 어른들은 알아먹기 힘들다.
“찰스 아저씨는 알아들었죠?”
유신이 우리의 표정을 보고 찰스에게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마법사라고 다를까?
“그러니까 유신이 자네 말은 거인족은 저기 있는 타이탄 족과 싸움을 좋아하는 티탄족 그리고 수수께끼의 네피림족이 있고, 연구원은 누가 납치한 지 모르지만, 타이탄 족은 아니라는 소리군. 거기다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인족의 맹약 때문에 저 거인이 그러니까 프란시스코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군. 그래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거고.”
찰스가 말을 하는 내내 유신은 맞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떡였다.
“네 맞아요. 거봐 찰스 아저씨는 내 말을 다 이해했잖아.”
쟌은 찰스가 그런 단편적이고 두서없는 말을 듣고 모두 이해하자 황당해서 유신에게 화낼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 다시 화를 내볼까 했지만, 본인만 우스워질 것 같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연구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 정도는 줄 수 있는지 물어봐.”
“오~ 역시 쟌!”
유신의 감탄사를 흘려들은 쟌은 그저 눈빛으로 재촉했고, 유신은 곧장 프란시스코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가능하기는 한데…”
“그래? 다행이네.”
“마을로 가야 한다는데?”
“그래? 그럼 출발하자.”
“그게…”
“왜?”
머뭇거리던 유신은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
“거기는 나만 갈 수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전사로 인정받아서 타이탄 마을에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데…너희는…”
뭘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한 쟌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득은?”
유신이 눈짓으로 프란시스코를 바라봤다.
“먹히겠냐?”
“어쩔 수 없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평소라면 쟌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본인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유신이 전투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마을에 들어가면 저런 거인들이 득실거릴 게 분명했다.
그때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면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게 뻔했다.
그리고 더는 프란시스코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앤의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벌써 저승에 있었을 거다.
“다시 원점이네. 어떻게 티탄과 네피림이 있는 곳이라도 알려달라고 할 수 없나?”
쟌의 말에 유신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불안감이 든 쟌이 유신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왜? 너 또 무슨 사고 쳤어?”
“헤헤~ 그게 나 혼자 간다고 했거든.”
“그게 말이 돼?!!”
“내가 후딱 갔다 올게.”
“하유신 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단체로 몰려가도 불안한 판국에 혼자 간다고?”
“혼자 가는 게 어때서?”
“위…”
아무리 거인들과 인류의 언어가 다르다고 하지만, 쟌은 외치듯이 하는 말을 멈추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위험하잖아.”
“왜? 그게 우리 일상이잖아. 솔직히 말해서 우리 임무 중에서 위험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갔다 올게.”
본인의 말만 내뱉은 유신이 프란시스코에게 다가갔다.
쟌과 찰스가 그런 유신을 뒤쫓으려고 할 때였다.
촤아악
프란시스코가 자신의 창으로 땅에 선을 그었다.
“#@#@@”
아무도 프란시스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유신이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선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그 안으로 들어가며 공격한다고 하네.”
참다 참다 쟌이 폭발하고 말았다.
“야 하유신!!”
원래 괴롭히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쟌은 선을 넘지 못했다.
유신의 뒤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소 눈알만 한 거대한 눈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쟌이 머뭇거리는 사이, 찰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나도 안되나?”
“네 찰스 아저씨도 안된다고 하네요. 금방 갔다 올게요.”
“그렇군. 그러면 잠깐만 기다리게.”
찰스는 유신에게 몇 가지 물건이 든 주머니를 던져줬다.
“이게 뭐예요?”
“자동 촬영 장비네. 그냥 공중으로 던지면 되는 거네.”
“아…네.”
붙어 다닌 기간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무언가 도움이 될 선물을 줄 줄 알았는데, 너무 비지니스적으로만 대하는 것 같아서 서운함도 들었다.
“서운한가?”
표정에서 너무 드러났나 보다.
찰스가 대놓고 물어봤기에 반만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
“조금 서운하기는 하네요.”
“촬영 장비 외에도 몇 가지 물건이 더 있으니 나중에 확인해보게.”
“여억시~!! 찰스 아저씨 최고입니다!!!”
“하하하 그럼 조심히 다녀오게.”
“네~”
그렇게 유신과 프란시스코는 빠르게 사라졌다.
앤과 얀은 그들이 떠나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얀 괜찮아?”
“응 괜찮아 앤. 그런데 문헌과는 다르네.”
“뭐가?”
“거인 말이야.”
“그렇기는 하네.”
스텔라 남매가 잡담하는 동안 쟌이 하던 생각을 마저 정리했다.
“찰스씨 부탁이 있습니다.”
“응?”
“교황청까지 갈 수 있는 게이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게이트라…거부하겠네.”
“네? 아니 지금 한시가 바쁩니다. 빠르게 움직여야 유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빨리 게이트를 열어주세요.”
매번 사람 좋아 보이던 표정을 짓던 찰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자네는 뭘 착각하는 것 같군.”
“잡설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정말…”
갑자기 쟌과 스텔라 남매에게 엄청난 중압감이 생겨났다.
중압감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찰스였다.
“자네에게 착각하지 말라고 한 가지 말해주겠네. 난 교황청에 소속되어 있지도, 그리고 자네의 동료도 아니네. 난 그저 내가 속한 단체에서 유신과 함께 있고, 유신을 도와주라고 있는 거지. 여기에서 나에게 무언가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신이 유일하지.”
모든 말을 다 쏟아낸 찰스는 존재감을 걷어내며 빙긋 웃었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게.”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호기심은 마법사의 좋은 재료지. 그래 뭐가 궁금한가 그 정도는 내가 대답해 줄 수 있지.”
“아까 그 거인 그러니까 프란시스코와 찰스씨가 전투를 벌이면 이길 수 있…아니 제압하실 수 있습니까?”
평소였다면 대답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대답해주기로 했기에 그리고 해준다고 그렇게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어서 솔직히 말해주기로 했다.
“제압은 솔직히 잘 모르겠네. 하지만, 사살이라면 가능은 하네.”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네. 나는 여기서 유신이 돌아올 동안 야영을 할 생각이네. 어떻게 같이 할 건가?”
쟌은 고개를 끄떡여서 긍정을 표했다.
스텔라 남매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스승님 곁이 더 심적으로 편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남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야영 준비를 하지 않는 건가?”
찰스의 단 한 마디에 평소에는 귀찮다고 가만히 앉아서 불평불만을 토하던 스텔라 남매가 두 손을 걷어붙이며 움직였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 빠르게 야영 준비를 끝낸 그들이 식사를 준비할 때였다.
평소처럼 찰스가 스프를 끓이며 조용히 쟌과 스텔라 남매에게 말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방금 있었던 일은 기억에서 잊어주게. 그리고 평소처럼 지내면 된다네.”
***
유신과 프란시스코는 슈퍼카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전설 속 드래곤도 들락날락할 정도로 거대한 동굴 앞이었다.
“이 안으로 계속해서 쭉 들어가다 보면 큰 공동이 보이고 가운데 길이 우리 타이탄들이 살고있는 곳이고 오른쪽은 티탄, 왼쪽은 네피림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정말 이 정도만 알려주면 되는 것이냐?”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자네의 부탁대로 그들이 오지 못하게 했는데, 왜 그런 건가? 특히, 나중에 온 그 인간은 나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보이던데.”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요즘 포스 컨트롤이 힘들어서요. 싸울 때 혼자 있는 게 더 편하거든요.”
“…알겠다. 그럼 출발하지.”
유신은 동료들이 있는 방향을 잠시 바라본 후에 동굴로 들어섰다.
그리고 유신의 목에는 13기동 타격대를 상징하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