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_거인 프란시스코(3)
프란시스코는 창과 방패로 유신의 오러를 막았다.
얼마나 대단한 금속인지 아니면, 거인족 특유의 능력인지 모른다.
하지만, 무기로 오러를 막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오러의 파괴력에 기댈 수 없다는 거였다.
‘일단 블레이드 샷을 날린 후에…’
유신은 어떻게 공격하고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러면서 프란시스코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찬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어.’
프란시스코는 만만한 거인이 아니다.
아무리 계획을 짜고 머리를 굴려도 쉽게 이길 수도 없다.
거기다 그가 뜻대로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단 하나만 신경 쓰기로 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다시 전사의 눈빛이 되었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가겠습니다.”
“오게!”
프란시스코가 방패를 앞세우고 창을 머리 위로 들었다.
유신은 오랜만에 포스 대검을 만들었다.
“오호 포스로 대검을 만들어 간격의 불리함을 없애려고 하는군. 좋은 생각이다.”
“그저 잔기술입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잔기술이지만, 이게 프란시스코님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전사와 전사의 대결에 방심은 금물이지.”
‘괜히 말했다. 그냥 방심하지.’
후회는 짧게 끝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유신과 프란시스코는 다시 대치 상태가 됐다.
섣부른 공격은 금물이었다.
본능이 공격하지 말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프란시스코에게서 엄청난 위압감이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범 앞에선 연약한 초식동물이 된 것 같았다.
“합!!”
짧은 기합을 내뱉은 유신이 드디어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휘두르고 나자 망설임이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13기동 타격대 선배들 밑에 있을 때 이보다 더한 환상도 그리고 공포도 겪어봤다.
쾅
대검을 방패로 막은 프란시스코가 창을 찔러 넣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었지만, 전부 피하지는 못하고 볼이 살짝 베였다.
피가 튀는 상황이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검을 기울여서 마저 다가오는 창을 막았다.
쾅쾅
확실히 파워에서 밀렸다.
이대로는 아까처럼 볼썽사납게 뒹굴 수밖에 없을 거다.
반전의 묘미를 줘야 한다.
다가오는 창대에 대검을 걸고는 밑으로 향하게 했다.
쿠앙
창이 애꿎은 땅에 박혔다.
프란시스코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없었다.
재빨리 검을 회수한 후 일점술을 사용했다.
콰앙!
역시나 이번에도 방패에 막혔다.
프란시스코의 공방이 너무나 뛰어나서 전혀 틈이 보이지 않았다.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이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브로~ 더쎈 공격으로 부숴 버리면 되지!’
분명 다리우스 선배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지금은 전투 중이다.
불가능한 수단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옆으로 몸을 이동했다.
제자리에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프란시스코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콰쾅
근거리가 안되면 원거리다.
수십 발의 블레이드 샷을 날렸다.
프란시스코는 달팽이처럼 방패 뒤에 숨어 공격을 막기만 했다.
방패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프란시스코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블레이드 샷을 놓치지 않고 모두 막았다.
‘대체 저 창과 방패는 뭘로 만들어진 거야!’
속으로 불평불만을 토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고급 광물로 잘 제련된 무기라도 이 정도 충격을 받으면 부서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프란시스코의 창과 방패는 상처 하나 없었다.
‘잠깐! 이건 대련이 아니잖아.’
유신은 블레이드 샷을 날리는 걸 멈췄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친절하게 유신을 마중 나온 것은 프란시스코의 창날이었다.
슈슈슉
첫 번째 찌르기는 몸을 눕혀 피했다.
두 번째 찌르기는 검을 기울여서 흘렸다.
세 번째 찌르기는 검을 버렸다.
이 모든 행위가 생각한 게 아니었다.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프란시스코에게서 틈이 생겼다.
그렇다고 다 끝난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방패가 다가왔다.
탁 휘리릭~
다가오는 방패를 붙잡고는 그 반동으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드디어 만났다.
숨어있던 달팽이의 속살을 보자마자 기쁨의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크으윽.”
처음으로 프란시스코가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타이탄족의 제 1부대장이라고 해도, 맞으면 아픈 건 인간과 똑같았다.
하지만, 검까지 버려서 여기까지 온 건 이 한 방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유신은 빠르게 움직이는 족제비처럼 바닥을 기다시피 움직여서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퍼어억~
“크학!”
제대로 들어간 승룡권(어퍼컷)이 프란시스코의 비명을 만들었다.
부족하다.
만족할 수 없다.
아니 아쉽다.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아니 의식하지 못하고 방정맞은 효과음을 입으로 내뱉었다.
“아됴됴됴됴둇!”
거인은 거대해서 칠 곳도 많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었다.
쾅!
프란시스코가 땅을 발로 내리찍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웃.”
균형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른 얼굴만 한 주먹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드득
갈비뼈와 척추 뼈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상체를 비틀어서 겨우 주먹을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했다.
프란시스코의 주먹에서 와류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유신은 볼썽사납게 뒤로 나뒹굴었다.
피를 내뱉으며 프란시스코가 다가왔다.
“퉤! 하유신이라고 했나? 인간치고는 방법이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무슨 소리야? 이제 제대로 할만 한데.”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파이팅 포즈를 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리의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어? 왜 이러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2차전을 시작하고 단 한 번도 유효타를 맞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리고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삐----
뒤늦게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고작 권풍에 달팽이 관이 망가졌다고?’
유신은 프란시스코를 다시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죽일 듯이 공격한 것은 본인만이었다.
프란시스코는 방어적으로 그리고 제압에 의미를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기분을 더욱 최악으로 물들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프란시스코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프란시스코씨 당신은 타이탄 그러니까 거인족에서 몇 번째로 강합니까?”
“세 번째로 강하다.”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세 번째… 확실히 한 종족에서 이만큼 강하다면 이렇게 밀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고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인류 최고의 무기이자, 최강의 부대인 13기동 타격대의 대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정식 대원은 아니지만 말이다.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몸을 회복한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앤과 얀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하지 마. 아니 정확히는 날 회복시켜줄 생각하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전사의 결투야!”
앤의 욕설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큼하게 무시한 유신은 다시 프란시스코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이길 것 같습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다니 전사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요? 저랑 다르네요? 저는 전사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힘으로 상대할 수 없다.
아무리 포스로 근력을 강화해도 거인족의 타고난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유신은 몸을 최대한 부드럽게 풀며 춤을 추듯 프란시스코에게 달려들었다.
슈우웅
바람을 꿰뚫으며 창이 다가왔다.
프란시스코는 창을 내지를 때마다 연거푸 세 번씩 찌르는 게 패턴이었다.
첫 번째 창을 회피하고, 그대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촤아악
창에 남아있는 기운 때문에 손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본능적으로 창을 회수하는 프란시스코 덕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끌려가는 상태에서 발로 방패를 밟고 높이 점프했다.
그리고는 주먹에 포스를 담아서 쉴새 없이 움직였다.
타타타탕
대부분의 주먹이 방패에 막혔지만 상관없었다.
‘주먹은 훼이크다!’
유신은 날다람쥐가 나무를 타듯 방패를 타서는 프란시스코의 방패 뒤로 들어갔다.
그런 후 총을 쏘듯 포스를 발사했다.
푸욱
푹푹푹푹
포스가 프란시스코의 몸에 박혔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움직여서 포스로 프란시스코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아무리 요리조리 움직여도 회피에는 한계가 있었다.
파앙
이내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유신이 피를 뿜어내며 뒤로 튕겨 나갔다.
“우웩~”
“이번에는 좀 신경 쓰였다.”
프란시스코는 온몸에 유신의 포스가 박힌 채 담담히 말했다.
유신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그런 프란시스코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전사는 죽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주먹을 쥐었다.
피피피피핏
프란시스코의 몸에 남아있던 잔재 포스가 몸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프란시스코가 휘청했다.
유신은 주먹을 쥔 손을 다시 쫙 펴며 조용히 읊조렸다.
“펑.”
콰콰콰콰쾅
프란시스코의 몸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났다.
그리고 입에서 피 대신에 연기를 뿜어내고는 선 채 기절했다.
유신은 그런 프란시스코의 모습에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당신 또한 멋진 전사입니다.”
***
쟌은 앤의 힐을 받으면서 겨우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 유신과 프란시스코라고 자신을 밝힌 거인의 싸움을 말없이 지켜봤다.
아니 말없이 지켜본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질투했다.
자신은 어렸을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렇다고 그걸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난 언제나 최고였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그만큼의 재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에 맞는 제반 조건도 갖춰줘야 했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전설 중 한 명인 ‘이자벨 로메’를 스승으로 두었다.
그래서 그런가? 스무 살 이후로는 수련을 게을리한 것 같았다.
아니 남들에게 칭송받는 위치에 오른 이후에 그런 것 같았다.
그저 남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넌 달랐지.’
보통 힘든 임무를 하고 나면 쉴려고 하는 게 사람이다.
영국에서 흑색 오크 군단을 처단하고 온 날도 그랬다.
피곤해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도 수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컨디션 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신은.
‘훈련했지. 그것도 새벽부터.’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은 언제나 여지를 두었다.
흑색 오크와 싸울 때도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너는 중간에 넉다운이 될 정도로 싸웠지.’
거기다가 지금도 그랬다.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유신은 입에서 계속 피를 흘렸다.
최소한 자신과 같은 내상을 입었거나 더 심하다는 걸 뜻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계속 도전했다.
도전하고 도전해서 끝내는 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거인을 쓰러뜨렸다.
“넌 대체…”
쟌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반응한 것은 앤이었다.
“응? 쟌 그게 무슨 말이야?”
“응? 아. 아냐아냐.”
앤이 쟌을 약간 이상하게 바라보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서 유신을 바라봤다.
프란시스코를 무너뜨린 유신이 다가왔다.
그리고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까지 튀며 방정맞게 말했다.
“앤! 얀! 빨리 프란시스코씨한테 힐. 힐을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