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_임시지만 교황청 소속입니다.(4)
띠리리릭
전자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고, 유신이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텔레비전의 불빛이 거실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아들 왔니?”
자신의 엄마인 희선의 목소리에 유신이 멈칫했다.
오늘 늦었지만, 여기서 머뭇거릴 수 없었다.
평소 자신의 엄마인 희선은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생기고, 능력 좋은 아들 왔습니다.”
다행히 희선은 유신을 바라보지 않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밥은?”
“먹었어요. 저 이만 씻고 잘게요.”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 아침 이후로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들어오기 전에 편의점에라도 들렀다가 오려고 했지만, 유일한 카드를 쟌에게 줬다.
어쩔 수 없이 무일푼이 되어서 집에 있는 것을 뒤져서라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희선이 깨어있기에 유신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래 엄마는 TV 좀 보다가 잘게.”
“네~”
정말 배가 고팠지만, 이 상태에서 밥을 차려달라고 하면, 부어오른 왼쪽 뺨을 희선에게 들킬 게 뻔했다.
그래서 그저 고픈 배를 부여잡았다.
평소보다 천천히 샤워를 끝내고 나온 유신은 부엌에 거하게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게 됐다.
“엄마 웬 진수성찬?”
“뭐긴 남은 음식이니까 먹고 자~ 치우기도 귀찮다.”
희선은 남은 음식이라고 했지만, 찌개도 밥도 모두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거기다가 생선은 이제 막 구웠는지 겉바속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빨리 먹고 자~”
무심한 듯 툭 내뱉은 희선에 말에 유신은 부모의 사랑을 느꼈다.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크게 밥을 한 숟가락 뜨는 걸로 유신의 식사는 시작됐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 보니 부모님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됐다.
정확히는 환골탈태하고 난 후였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더 이상 터치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연락만 달라고 했다.
‘엄마. 내가 꼭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
그렇게 유신의 늦은 식사가 계속됐다.
***
13기동 타격대가 일루시안으로 떠난 후에도 유신은 평소처럼 기동대 본부에 있는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출근한 후에는 언제나처럼 훈련장에서 훈련을 거듭했다.
예전에는 훈련장에서 검만 휘둘렀다면, 지금은 달랐다.
“후우 후욱~”
유신의 손목과 발목에는 각기 하나에 30kg이나 되는 금속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오직 근력으로 버티면서 검을 휘두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은 포스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띠디디 띠디디
한 시간이 지났다는 알람이 울렸다.
그때야 유신은 검을 내려놓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악”
예전이라면 이렇게 훈련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바닥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그렇게 나태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전설보다 강해져야 했다.
유신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검을 들었다.
그때 훈련장으로 찰스가 들어왔다.
“어제 그렇게 무리했는데, 오늘은 좀 쉬는 게 낫지 않나?”
“후욱 후욱 아직 부족합니다.”
“가끔 보면 자네는 자네를 너무 몰아치는 경향이 있어.”
“[노오력가]의 후욱~ 숙명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찰스는 그런 유신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을 때였다.
평소라면 유신과 찰스 외에 열지 않는 훈련장 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런지 유신의 고개가 문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검은 마스크와 검은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캡모자와 마스크를 벗으며 악을 질렀다.
“야!!”
“어? 쟌이었어?”
쟌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다녀야 한다는 게 기분이 나쁜데, 유신의 감정 없는 목소리에 화가 폭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뭐 하는 거야! 빠.빨리 옷이나 입어!!”
“응?”
유신은 그제야 자신이 윗통을 벗고 훈련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남자인 자신이 봐도 자신의 몸은 꽤 괜찮았다.
조각상을 깎은 듯한 완벽한 비율 그리고 근육질이지만, 마른 근육으로 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환상의 몸매였다.
“왜? 이 정도면 보기 좋지 않아?”
“닥치고 옷이나 빨리 입어!!”
유신은 순간 쟌을 놀려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남들 앞에서 맨살을 그렇게 막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가 가장 큰 이유는 후환이 두려웠다.
“밥은 먹었어?”
“지금 밥 먹게 생겼어? 난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세계법 상 허가 없이 다른 국가로 가는 텔레포트나 게이트는 금지야. 아니 불법이야!”
“그래? 그럼 뭐 먹을래?”
“아니 어디 나가서 먹지 못한다고!”
“훗! 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지. 나 씻고 올 동안 먹고 싶은 거 있음 생각해둬.”
유신은 미소를 지으며 샤워실로 향했다.
“아! 진짜 너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단지 쟌의 비명이 BGM처럼 깔렸을 뿐이지만.
***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온 유신은 아직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쟌을 바라봤다.
‘뚱한 표정이 귀엽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쁘면 단가?
성격이 강해서 누군가가 만나기 피곤할 스타일이었다.
뭐 그래도 쟌을 만나고 싶다는 남성만 줄을 세우면 일렬종대로 연병장 20바퀴는 거뜬히 채울 거다.
“메뉴 골랐어?”
“메에뉴? 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니? 내가 식당가서 식사하는 순간 얼마나 골치 아파지는지 알아?”
유신은 그런 쟌에게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이게 있잖아.”
“뭐 피자라도 시키게?”
“넌 한국을 너무 몰라.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야.”
배달 어플을 연 유신이 쟌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거기서 먹고 싶은 거 골라봐.”
휴대폰을 받아든 쟌은 화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유신은 쟌이 까다롭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쟌이 다시 휴대폰을 유신에게 건네줬다.
“나 한글 몰라.”
유신은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은 무혁 대장이 준 마도구 덕분에 언어의 문제를 겪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달랐다.
“아. 미안. 혹시 먹고 싶은 음식 있어?”
쟌은 골몰히 생각하다가 약간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치…맥?”
“치맥? 그 내가 알고 있는 치킨과 맥주?”
“응…”
평소와 달리 쟌의 자신감 없는 모습이 조금 색달랐다.
“한국 드라마 보니까. 매번 사람들이 치…맥을 먹더라고…”
“…그래 알았어. 시켜줄게. 잠깐만. 찰스 아저씨는 뭐 드시겠어요?”
“나도 챙겨주는 건가?”
“당연하죠. 같이 식사해야 줘.”
“고맙군. 내게 한국 치킨은 매우니 후라이드로 부탁하네.”
“네.”
유신은 어플을 열어서 점심시간에 연 치킨집을 찾았다.
그런 다음 후라이드 2마리, 양념 1마리, 간장 1마리 마지막으로 파닭 한 마리와 생맥주를 시켰다.
‘사람이 3명인데 5마리는 너무 적은가?’
고민은 잠깐이었다.
충분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다시 배달 어플을 열었다.
그리고 쟌에게 한국적인 음식을 맛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이 둘을 시켰을 때 절대 빠지면 안 되는 튀김까지 종류별로 시켰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올 거야.”
그렇게 유신과 찰스 그리고 쟌이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채 한 시간을 기다렸다.
제일 처음 온 음식은 쟌이 기대했던 치맥이 아니라 떡튀순이었다.
쟌이 실망한 모습이 보였지만, 유신은 괘념치 않으며 말했다.
“일단 에피타이저라고 생각하고 먹어.”
“이 많은 게 에피타이저라고?”
“응? 아! 쟌 너 소식하는구나.”
유신은 어깨를 으쓱이며 떡볶이를 집어서 먹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쟌이 조심히 떡볶이에 젓가락을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튀김을 집어 든 찰스가 쟌에게 말을 걸었다.
“쟌. 자네는 매운 거 잘 먹나?”
“네 잘 먹는 편입니다.”
“그래도 나 같으며 먹지 않을 거네. 그 음식 우리에게는 꽤 매울 거야.”
“네? 유신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는데요?”
“한국인 종특이지.”
찰스의 말에 반응한 건 유신이었다.
“오~ 찰스 아저씨 종특이라는 단어도 아세요?”
“하하하 요즘 한국말 공부하고 있네.”
쟌은 유신과 찰스가 한국말로 대화하자 약간의 소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유신을 바라봤다.
‘하나도 안 매워 보이는데?’
평소에도 쟌은 유신에게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서툴게 젓가락질하며 떡볶이를 집어서 입 안에 넣었다.
입 안에 들어간 떡볶이는 약간 매웠지만, 달콤한 말과 함께 떡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그때.
“쓰읍~ 무. 물!!”
평소에 매운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에게 매운 음식은 고난이었다.
아무리 쟌이 인내심이 강한 수호 기사라고는 하지만, 음식 앞에서까지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는 없었다.
쟌은 유신이 건네준 시원한 평화라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복숭아 향의 달콤한 음료가 매운맛을 중화시켜줬다.
“푸하~”
“어때 맛있지?”
유신의 말에 쟌은 부리면 안 되는 오기를 부렸다.
“괜찮네.”
“그래? 많이 먹어.”
순간 쟌은 자신이 자존심을 부려서 또다시 떡볶이를 집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쟌의 마음을 파악한 찰스가 유도리 있게 다른 음식을 권했다.
“그러지 말고 이 튀김이랑 순대라는 것도 먹어 보게. 난 떡볶이보다 이게 더 맛있더라고.”
“그래요? 네.”
쟌은 찰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세 명이서 떡튀순을 먹고 있을 때, 치킨이 배달왔다.
유신이 치킨의 포장을 풀려고 하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네 하유신입니다.”
-지금 당장 교황청으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마리와의 짧은 통화를 끝낸 유신이 찰스를 바라봤다.
찰스는 유신이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눈치껏 상황을 인지하고 게이트를 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출발?”
“응 마리 선배가 바로 오라고 하네.”
“…알았어.”
쟌은 치맥이 아쉬운지 흘끔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서 미련을 털어내고는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유신이지만, 쟌이 뭘 원하는지 알기에 아공간에다가 배달 온 치맥을 집어넣었다.
“임무 끝나고 다 같이 먹자.”
“그래!”
순식간에 해맑은 표정으로 바뀐 쟌을 보고 유신이 픽하니 웃음을 흘리고는 벌써 열린 게이트 앞에 섰다.
“그럼 갈까?”
“야! 이 팀의 리더는 나야.”
“네. 리더님 먼저 가시죠.”
쟌은 예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에 유신과 찰스가 서로 마주 본 후 어깨를 으쓱이고는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
“우욱.”
음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이트로 이동하니 유신은 평소보다 더 심한 멀미를 겪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힘들게 고개를 들어보니 앤과 얀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꼴이 가관이었다.
“어? 어떻게 하루 사이에 수척해졌냐?”
“……”
“설마…맞았니?”
얀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훈련했을 뿐이다.”
유신은 얀이 훈련이라고 말했지만,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 추론은 충분히 타당했다.
마리는 13기동 타격대의 인물이다.
그리고 13기동 타격대의 훈련은…
아주 잠깐 과거를 회상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녀님 기다리셔 빨리 와.”
잠깐 회상하는 동안 유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모두 지하실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유신은 팔뚝에 돋은 닭살을 비벼서 없애며 그 뒤를 따랐다.
“정 없게! 같이 가!”
그렇게 멤버들과 함께 마리가 있는 집무실에 도착했다.
서류를 읽던 마리는 우리가 들어오자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성녀님 이번에는 어떤 임무인가요?”
쟌의 질문에 성녀가 읽고 있던 서류를 쟌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번 임무는 구출이다. 장소는 아프가니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