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_임시지만 교황청 소속입니다.(3)
유신과 그 외 무리가 게이트를 타고 도착한 곳은 로마의 교황청 지하였다.
마법진의 빛이 꺼졌고, 유신이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욱. 이건 어떻게 매번 적응이 안 되냐?”
조금 전까지 수백의 흑색 오크를 학살했던 사람이 유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강자가 게이트 멀미를 하자, 찰스는 인간미를 느끼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군. 처음에는 타기만 하면 토했는데 말이야.”
“아니에요. 지금도 겨우 참는 거예요. 아까 마을에 도착할 때도 참느라고 정말 힘들었어요.”
“하하 난 또 그나마 적응한 줄 알았네.”
찰스와 대화하는 동안 그나마 속이 진정됐다.
멀미가 두렵지만, 유신은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재빨리 한국지부의 좌표가 입력된 게이트 앞에 서며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난 이만 집에 갈게~ 다음에 보자~ 찰스 아저씨 부탁해요~”
유신이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앤과 얀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야 나한테 그렇게까지 인사 안 해도 돼!”
앤과 얀의 행동에 당황한 유신이 손사래까지 쳤다.
생각해보면 앤과 얀 앞에서 오늘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가끔 최상위 몬스터만 잡았지, 오늘처럼 임팩트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동료로서 저런 행동은 지양해야 하기에 난색을 표했다.
“정말 그러지 말라니까.”
그때 앤과 얀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바로 그 뒤로 쟌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성녀님께 인사드립니다.”
유신은 그제야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인사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13기동 타격대의 선배이자, 교황청의 실세인 성녀 마리가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응 그래. 수고가 많았어.”
“아닙니다.”
“유신아. 넌 지금 6개월 동안 급성장을 했어. 그 어떤 사람들도 너보다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거야.”
“과찬이십니다.”
쑥스러운 듯 유신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리는 그 모습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내 말을 제대로 듣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몸은 아끼면서 해. 찰스가 보내 준 영상 보니 이번에도 탈진했던데.”
“하하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서요.”
유신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파괴력은 쓸만하지만, 포스의 낭비가 심해. 좀 더 정제해야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마리는 유신에게 간단하게 조언한 후, 쟌을 바라봤다.
“쟌 아르켄시스.”
“네 성녀님.”
“자신의 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애송이인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두 번은 없다.”
“알겠습니다.”
쟌에게 짧게 훈계한 마리가 아직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스텔라 남매를 노려봤다.
스텔라 남매는 마리의 눈빛을 의식하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오늘 너희는 뭐 했니?”
앤과 얀은 서로 눈치만 보며 답변을 미뤘다.
그러자, 마리가 그들의 일을 덜어줬다.
“얀.”
“네?! 네…”
“뭘 그렇게 놀래? 잘못한 거라도 있니?”
“아.아닙니다.”
“그래. 아니어야지. 성자 후보가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그래 이제 말해 볼까?”
스텔라 남매에게 마리는 공포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유신이 보기에는 마리는 전혀 그런 이미지와는 달랐다.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고, 상과 벌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긴장하고 있는 얀이 이해되지 않았다.
“호.혹시 모를 사.상황에서 마.마을을 지.지키려고…”
“얀 네가 언제부터 말을 더듬었지? 똑바로 말해.”
“…신의 보호막을…펼쳤습니다.”
힘들게 말을 끝낸 얀을 보며 마리가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다니?”
“……”
“대답해.”
“네.”
팍!
아무런 전조 현상도 없었다.
그런데, 5급 성직자인 얀이 패대기 처진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짓눌렸다.
“크흑…죄. 죄송합니다.”
“조용히 해.”
“……”
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리의 중압감을 참았다.
그동안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호쾌한 앤이 벌벌 떨었다.
그리고 앤의 차례가 왔다.
“앤!”
“죄.죄송합니다. 성녀님 아니 스승님!”
시작과 동시에 앤이 숙이고 갔지만, 마리의 목소리는 아직도 냉정했다.
“네가 뭘 죄송한데? 일단 그건 둘째치고 넌 오늘 뭐 했니?”
“쟈…쟌에게 버프를 사용했습니다.”
“그래 6급 성직자가 겨우 버프만 사용했지.”
“그. 그건 쿠웩~”
변명하려는 앤 또한 얀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리는 스텔라 남매가 중압감을 받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너희는 오직 그것만 했어. 성직자라는 것들이 말이야.”
“크흑…”
중압감을 참던 얀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마리는 자신의 할 말을 계속 이었다.
“오늘 너희가 간 그 마을에 빌이라는 영국 왕실 수호 기사가 있었어. 그가 기절하기 전에 신호를 보내줬기 때문에 너희가 출동할 수 있었고, 수백 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었지. 그리고…”
잠시 말을 쉰 마리가 중압감을 풀었다.
그러자 스텔라 남매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빌은 말이야. 포션으로 겨우 응급처치만 된 상태였어. 그런데 성직자라는 것들이 그것도 성자와 성녀 후보라는 것들이 결백증과 귀차니즘에 빠져서 사람 살리는 것을 뒤로해?”
“모…몰랐습니다.”
“네 맞습니다. 몰랐습니다.”
스텔라 남매가 급하게 변명했다.
하지만, 변명은 마리의 화를 더욱 돋울 뿐이었다.
“그게 말이라…”
마리는 뒤늦게 냉정함을 고수했다.
아직 이 방에는 교황청 소속이 아닌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자신이 스텔라 남매를 질책했던 것은 교황청의 약점을 보여주는 거였다.
유신이야 직속 후배이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쟌과 다크 연합의 찰스가 이 자리에 같이 있었다.
“찰스. 미안하지만, 쟌과 유신을 데리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찰스는 신속히 한국지부로 갈 수 있는 게이트를 열었다.
이 게이트를 한 번 열 때마다 중급 마정석이 하나씩 소모된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경비를 세계 정부에서 내기에 찰스는 부담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위이이잉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게이트가 열렸다.
스텔라 남매는 유신과 쟌 그리고 찰스가 떠나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마리 몰래 유신과 쟌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 신호는 마리의 중압감에 바로 깨져 버렸다.
“쿠엑~”
유신은 그런 스텔라 남매가 불쌍한 듯 잠깐 쳐다봤다.
“마리 선배.”
“왜 그러니?”
말을 건넨 유신은 바로 후회했다.
13기동 타격대의 전통이 되는 훈련법과 벌칙에 대해서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자신이 말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스텔라 남매의 명복을 빌어줬다.
“아.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렴.”
그때 쟌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유신은 스텔라 남매와 마리를 위해 쟌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찰스는 사라진 유신과 쟌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리에게 인사했다.
“그럼 성녀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유신, 쟌, 찰스가 떠났다.
마리는 땅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스텔라 남매를 더욱 압박했다.
“오늘 너희들의 결백증과 귀차니즘을 뜯어 고쳐주겠어.”
“크흑…”
스텔라 남매는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압감 때문에 그저 잇사이로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
유신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너무나 울렁거렸다.
생각해보면 오늘 하루 네 번이나 텔레포트 또는 게이트를 탔다.
아침에는 한국 지부에서 교황청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교황청에서 영국으로 이동했다.
몇 시간 동안 흑색 오크를 잡고 영국에서 교황청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차 때문에 한국 지부는 한밤이었다.
“후~ 점심, 저녁도 건너뛰고, 야식 먹게 생겼네.”
유신이 식사를 걱정하고 있을 때.
전혀 다른 걱정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야 하유신!!”
쟌이 꽥하고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어? 쟌. 아직 안 갔어?”
“아직 안 갔어? 아직 안 갔냐고? 하~”
유신은 쟌의 비꼬는 듯한 말투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쟌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다.
“날 왜 한국 지부로 데리고 온 건데!!!”
“아 맞다! 너 집 프랑스였지.”
“프랑스였지?”
“응 근데 왜? 조심히 가~”
솔직한 심정으로 쟌은 유신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
아니 두들겨 패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눈앞에 있는 둔감하고 눈치 없는 놈 때문이었다.
이놈 때문에 오늘 하루 어쩔 수 없이 한국 지부에 묵게 생겼다.
“안가?”
툭
이 소리는 실제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오직 쟌에게만 들렸을 텐데, 옆에 있던 찰스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재빨리 이곳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유신.”
마리에 이어 쟌까지 한기를 풀풀 풍겼다.
그리고 쟌은 그 한기를 유신에게 발산하며 말을 이었다.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집이 프랑스에 있는 건 맞지만, 너처럼 마정석의 지원이 없어서 평소에는 교황청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지내.”
“아 그래?”
“바드득. 그래. 그런데 오늘 너 때문에 한국으로 오게 됐네?”
“미안해. 근데 돌아가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너랑 다르게 마정석 지원을 못 받아! 그리고 지금 빈털터리고.”
쟌의 아주 자세한 설명이 끝났다.
아무리 눈치 없고 둔한 유신이라도 쟌이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바보였다.
“내가… 큰 실수를 한 거지?”
끄떡끄떡
앞에 있는 쟌과 저 멀리 있는 찰스가 고개를 끄떡였다.
유신은 골몰히 생각하다가 핑거 스냅을 하며 외쳤다.
“그래! 내가 잘못한 것도 있는데, 돌아가기 전까지 내가 널 위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게.”
“한 가지 소원?”
“…두 가지?”
쟌은 엄지, 검지, 중지를 쫙 폈다.
“세 개나?”
“알라딘에서도 지니가 소원을 세 개는 들어줘.”
“그래 알았어. 들어주지. 그래 첫 번째 소원이 뭐야?”
호기롭게 외친 유신이 가슴을 펴며 쟌을 바라봤다.
그 모습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쟌은 잠깐 고민했다.
그러고는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내 첫 번째 소원은…”
***
유신이 집으로 가는 길.
호빵만큼 부풀어 오른 자신의 왼쪽 뺨을 매만졌다.
“어떻게 첫 번째 소원이 뺨 때리기야!”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쟌을 가까이하면 안 됐다.
아주 무섭고도 위험한 여자였다.
어떻게 예쁜 얼굴에서 그런 소원을 빌 줄이야.
띠링
그때, 유신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한국(1234)승인
하*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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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21:12
서울시크릿호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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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확인한 유신은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어떻게 숙박비로 백오십을 넘게 쓰는 거야!! 아니야 아닐 거야.”
혼잣말을 내뱉던 유신이 떨리는 손을 진정하며 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호텔 잘 들어갔어?”
-겨우 그딴 일로 전화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며칠 결제를 했길…”
“하루.”
“응? 하루?”
“언제 호출 올 줄도 모르는데, 돈 아깝게 며칠을 왜 끊어? 아무리 두 번째 소원으로 카드를 받았지만, 그렇게 막 쓰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으…응 그래.”
“그럼 내일 보자.”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신은 자신의 손으로 입술을 쳤다.
“내가 미X놈이지. 경제 관념이 달라. 경제 관념이.”
유신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울부짖었다.
“제에길!!! 제엔장!!!”
한껏 고함을 지르고 나니 유신은 마음이 진정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 쟌은 세 번째 소원을 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