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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01화 (101/300)

101화_굿바이(3)

유럽 양식의 석조 건물 안.푸른 빛을 뿜어내는 게이트가 있었다.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던 게이트가 꿀렁거리더니 유신을 뱉어내고는 힘을 잃고 사라졌다.

유신은 새로운 공간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어떤 시험이 있을지 몰라 검을 세우며 주위를 경계했다.

끼이익 탁

경계심이 한층 깊어지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마리가 들어왔다.

“네가 하유신이야?”

“…누구세요?”

“내 질문에 답부터 해. 하유신 맞아?”

“네. 제가 하유신인데요.”

“그래? 따라와.”

“네?”

마리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선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유신은 마리의 박력에 더는 아무런 질문을 내뱉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검을 집어넣고 마리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마리를 따라 이동한 곳은 집무실이었다.

집무실에 들어온 유신은 뻘쭘하게 서 있기만 하자, 마리가 자리를 권했다.

“앉아.”

“…네…”

유신을 자리에 앉힌 마리는 그 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는 이 집무실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유신이 마리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저기 그런데 누구세요?”

“나? 마리 엘렌시아.”

“아 저는 아시다시피 하유신… 네?!”

자기소개하던 유신이 화들짝 놀랐다.

마리 엘렌시아.

13명의 전설 중 유일하게 이름과 성별만이 알려진 인물로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고 불렀다.

“성.성녀님이세요? 정말 성녀님 맞으세요?”

“그래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

“제가 팬입니다. 사인을 부탁해도 될까요?”

마리는 유신이 듣던 그대로라는 것에 미소 지었다.

“좋아. 한 번도 누군가에게 해준 적 없는 사인을 해줄게.”

유신은 누구에게도 해준 적 없다는 성녀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이게 꿈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기대는 순식간에 고민으로 바뀌었다.

“대신에 골라.”

“네? 고르다니요?”

“내 사인이냐 아니면 김무혁 대장의 전언을 듣냐? 그걸 고르면 돼.”

고민에 빠진 유신의 모습에 마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앞에 있는 하유신은 강문의 말대로 사인 따위에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에게는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유신에게 일생일대 선택의 순간이었다.

‘당연히 전언을 고르는 게 맞아. 맞는데…최초의 사인 이게 날 너무 잡아당긴다.’

인상을 구기며 고민에 빠져있던 유신이 천장 한 번 보고, 바닥 한 번 보고를 반복하다가 미간에 힘을 딱 주며 말했다.

“둘 다 갖고 싶습니다.”

마리는 유신의 말에 이제는 어이가 없기까지 했다.

분명 이지선다로 문제를 냈는데, 있지도 않은 세 번째 보기를 답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유신은 당당하게 말을 뱉어낸 것 치고, 마리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자신이 말해놓고 안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자.장난이었습니다. 당연히…전언이죠.”

유신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지만, 마리는 애써 그 눈물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태블릿을 조작해서 유신에게 넘겼다.

태블릿에서 무혁의 영상이 나왔다.

“13기동 타격대의 막내인 하유신 대원. 갑자기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네가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영상통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동영상인데도 유신은 무혁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는 일루시안으로 떠난다.”

일루시안?

유신은 처음 듣는 장소명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생각은 짧아야 했다.

아직 무혁의 동영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루시안. 처음 들을 테지. 그곳은 여기 지구가 아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마족과 인류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최전선 차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를 위해 그곳에서 마족들을 상대했다. 우리가 지구에 잠깐 복귀한 것은 지구에서 할 일이 있어서였지. 그러다가 유신이 널 만나게 됐다. 솔직히 가이아의 관심을 받았다고 하지만, 네가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남은 일은 마리에게 말해 놨으니 마리에게 듣도록.”

그렇게 영상은 끝났다.

유신은 무혁의 전언을 듣고는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선배들은 일루시안이라는 타차원으로 떠나는데 나를 두고 가겠다는 거야?’

지금 유신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린 아이의 투정 같지만, 그저 자신을 두고 간다는 게 서운하고 싫을 뿐이었다.

“지금 선배들은 그러니까 13기동 타격대는 어디에 있나요?”

“라스베이거스에 있어. 왜 만나게?”

“네.”

“불가능할 것 같네. 앞으로 23시간 뒤에 13기동 타격대는 일루시안으로 떠나. 거기다가 여기는 이탈리아야. 아무리 빠른 비행기를 타도 비행시간만 15시간이야. 거기다가 도착 후에 13기동 타격대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10시간은 더 걸릴걸.”

마리의 난색에도 유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원래 좋지 않은 머리였지만, 내면세계를 나온 후 그나마 지능이 올라갔다.

“포탈! 그러니까 제가 타고 온 게이트를 다시 열면 바로 갈 수 있지 않나요?”

“그게 가능하다고 봐?”

“도와주시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

유신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파악한 마리는 게이트를 열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게이트를 열려면 일단 최상급 마정석 1개가 필요해. 그리고 게이트를 잠깐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급 마정석 3개가 필요하고. 중급 마정석은 바로 구할 수 있지만, 최상급 마정석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사실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상급 마정석 1개와 중급 마정석 1개면 충분했다.

마리가 거짓말을 한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유신이 알게 되면 포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유신은 아공간에서 최상급 마정석 1개와 중급 마정석 5개를 꺼냈다.

“이거면 열 수 있죠?”

“아직 말 안 끝났어. 그 외에도 마법사도 섭외해야 해.”

“아…마법사… 얼마나 걸릴까요?”

마리는 유신이 시무룩해지자 솔직히 놀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런 유신의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는 심경의 변화가 생겼고, 마음을 다르게 먹기로 했다.

“좋아. 마법사는 내가 바로 섭외해 줄게.”

“가.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나고 게이트를 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게이트를 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준비 시작이 필요했다.

마정석을 가공하고, 게이트의 좌표를 확인하고 집어 넣는 데만 약 20시간이 소모됐다.

“성녀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공간 이동 계열의 마법사가 마리에게 보고했고, 계속 초조하게 기다리던 유신이 게이트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빨리 열어주세요.”

유신의 재촉에도 마법사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마리의 눈치를 살폈다.

마리는 그런 마법사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제야 마법사는 게이트를 열기 위해 캐스팅을 진행했다.

“오픈!”

지이이잉

마법사가 시동어를 외치자, 푸른 게이트가 열렸고, 유신은 게이트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마리는 그런 유신의 옆에 서며 말했다.

“가자.”

“네. 네?”

“왜? 나도 갈 건데?”

“아. 알겠습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마리가 먼저 게이트로 들어갔다.

유신은 그런 마리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

라스베이거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미국이 건설한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다.

미국은 이 건물을 일반인들에게 숨기기 위해 매년 1조 원 이상의 돈을 투자했다.

결계와 시설을 유지보수하고, 마정석을 갈아 끼우는 데만 1조 가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럼 왜 미국은 여기를 숨기는가?

그건 바로 이 건물의 심층부에 거대한 차원의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원의 틈은 아파트 3층 높이였으며, 불길한 느낌이 강한 검붉은색이었다.

13기동 타격대는 모두가 1개씩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는 차원의 틈 앞에 섰다.

“이제 출발할까?”

무혁의 말에 13기동 타격대는 지금까지 보였던 풀어진 모습과는 다르게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마족들이 있다.

아무리 13기동 타격대가 강하다고 하지만, 순간의 방심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곳이 일루시안이었다.

13기동 타격대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자,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쾅!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13기동 타격대의 막내 하유신! 이제 막 선배들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도착했습니다!!”

13기동 타격대는 갑자기 나타난 유신을 보고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지구에서 20시간 안에 여기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무혁의 뇌신강림이나 다리우스의 텔레포트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불가능을 뚫고 유신이 앞에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도 왔어요~”

뒤늦게 유신의 뒤로 나타난 마리의 설명에 13기동 타격대의 고개는 끄떡여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리가 도움을 줬다면 아슬아슬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배님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안돼!”

강문의 단호한 말에 유신은 멈칫했다.

“왜요? 제가 가서 선배님들 뒤치닥꺼리도 하고, 길도 뚫어야죠.”

“일루시안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우리가 널 지켜주지 못해.”

“저도 이제 많이 강해졌습니다.”

“몸이나 펴고 말하지?”

그제야 유신은 깨달았다.

선배들의 존재감에 자신이 무릎을 꿇기 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합!”

이대로 쉽게 물러날 수 없기에 유신은 기합과 함께 몸을 폈다.

몸을 폈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몰랐지만, 선배들의 존재감이 유신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대체 선배들은 얼마나 강한 거야.’

유신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몸속에서 포스를 최대한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13기동 타격대의 인원들은 유신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거봐. 우리가 존재감만 내뿜었을 뿐인데 버티기도 힘들잖아.”

“아. 아닙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거짓말 하지 마.”

“저.정말입니다. 강문 선배.”

“유신아.”

강문이 목소리를 깔며 유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유신은 강문이 한발씩 다가올 때마다 등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매번 컨테이너 사무실 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던 사람의 존재감이 아니었다.

“저도 13기동 타격대의 일원입니다!”

악을 지르듯 외치는 유신의 말에 다가가던 강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우리 막내 많이 컸네. 목소리도 높이고.”

순간 유신의 머릿속에 공포심이 피어났다.

지금 저렇게 웃고 있는 강문부터 시작해서 다른 선배들까지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전투를 벌이면 얼마나 무서운지 떠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기에 유신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최소한 한 사람의 몫은 할 수 있습니다.”

강문은 유신의 말에 떼를 쓰는 어린아이로밖에 안 느껴졌다.

그래서 호되게 혼내려는데, 가만히 있던 무혁이 앞으로 나섰다.

“하유신.”

“네 대장!”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일루시안에 가고 싶은 건 너뿐만이 아니다. 네 뒤에 있는 마리도 일루시안으로 가서 지구를 수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지 못하지. 각자의 영역이 있고, 모두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혁은 지금 어떤 말을 해도 유신을 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눈빛과 의지는 자신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자 한다.”

“대장!”

“대장 브로~!!”

강문과 다리우스 등 다른 대원들이 무혁의 말에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고, 무혁은 그런 대원들을 손짓 한 번에 조용히 시켰다.

“기회를 주겠다는 거다.”

“네? 기회요?”

“그래. 유신. 버텨라. 절대 무릎을 꿇지 말아라.”

무혁이 말을 끝내자마자 존재감이 솟구쳤다.

그리고 정말 순식간이었다.

유신이 정신을 차리고 나니 무릎뿐만이 아니라, 양손까지 바닥을 짚고 있었다.

“허억 허억.”

몰랐다.

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이렇게 무릎을 꿇은 것도.

“이걸 버티는 게 바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아 하악.”

유신이 무혁을 바라봤다.

“일루시안에는 방금처럼 존재감을 뿜어내는 마족이 득실거린다. 그리고 넌 이대로 가봤자, 짐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고.”

유신은 무혁의 팩트 공격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 무혁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3년 후에 재정비를 위해 여기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다시 시험을 보겠다. 그리고 그때에도 버티지 못하면, 13기동 타격대에 퇴출이다.”

“……”

무혁은 유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그저 포기한 줄 알았다.

그래서 몸을 돌려 일루시안으로 향하는 차원의 틈으로 향할 때였다.

“3년 안에 대장과 선배들이 놀랄 만큼 강해지겠습니다.”

걷던 무혁이 멈춰 섰다.

그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훗~ 좋다. 그동안 마리가 널 도와줄 거다.”

그렇게 무혁과 유신의 대화는 끝났다.

13기동 타격대는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차원의 틈으로 떠났다.

유신은 13기동 타격대가 떠난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에 고개를 돌려 마리를 바라봤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제가 뭘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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