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_굿바이(2)
“누구시죠?”
경계 가득한 리우의 물음에 한 남성이 앞으로 나오더니 어색하게 포권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로스 페리라고 합니다. 리우님 이신가요?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하유신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벨라님께서 찾으십니다.”
“벨라님께서요? 알겠습니다.”
리우가 아무리 명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전설이었다.
하지만, 모든 행선지는 자신이 정하는 게 아니었다.
“형님 우선 벨라님께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다음에 다시 보자.”
“네?”
유신은 본인의 말만 내뱉고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로스와 같이 온 경호원들이 유신의 앞을 막았다.
“유신님도 벨라님께서 찾으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간다고 말해주세요. 제가 지금 바빠서요.”
평소의 유신은 전설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하지만, 지금 감이 말하고 있다. 빠르게 선배들을 만나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선배들에게 가지 않으면 왜인지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좋은 말 할 때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로스의 협박성 말에 유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신은 로스의 행동, 말 그냥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중압감, 압박감이 유신에게서 뻗어 나왔고, 정면으로 그 기운은 받은 로스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벨라님은 지금처럼 절대 누군가를 핍박할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은 누굽니까?”
유신의 물음에 로스가 말을 더듬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 전 정말… 벨라님… 크흑!”
기운을 버티지 못한 로스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뒤늦게 로스가 자신의 기운 때문에 무릎을 꿇은 걸 알게 된 유신은 평소와는 다르게 그냥 그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리우가 재빨리 유신의 뒤를 따랐다.
“형님 멋있습니다.”
“리우야.”
“네 형님.”
“근데 어디로 가야 하냐?”
리우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
골든 써클 호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이 그러하듯 이곳도 지하에는 카지노가 있다.
유신과 리우는 어쩔 수 없이 벨라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 이곳으로 왔다.
“리우님은 여기서 기다려 주시고, 이건 유신님께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유신은 로스가 건네준 쪽지를 열어봤다.
[막내는 들어와서 시험을 통과하라.]
짧은 쪽지에 유신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슨 시험이라는 말인가?
역시 이런 장난들이 선배들다웠다.
“리우야 갔다 올 게 조금만 기다려.”
“네 형님!”
어깨를 당당히 펴고 유신이 카지노 문을 열고 홀로 들어갔다.
카지노 안은 어두웠다.
그때 조명이 들어왔고, 강철로 이루어진 사람 크기의 인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유신 들리나?
갑자기 스피커를 통해 강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강문 선배?”
-무슨 소리 나는 강문이 아니다. 나는 쏘루다. 자 지금부터 시험에 들어가겠다.
-강문 브로~ 나도 해보자.
-다리우스 내가 먼저야 기다려.
-유호 브로~ 이거 줄 이었어?
-응 그러니까 빨리 뒤로 가서 서!
며칠 보지 못했지만, 선배들이 아웅다웅하자, 그 모든 게 다 그리웠고,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저렇게 가만히 두면 난 여기 계속 서 있고, 자기들끼리 쉼 없이 이야기를 할 게 뻔했다.
이제 잡담을 끊고, 본론을 진행할 차례가 왔다.
“네. 강문 선배. 아니 쏘루님 뭘 하면 되나요?”
-그래 나는 쏘…아니다 됐다. 유호가 설명해 줄 거야.
-아싸! 막내 간단해 앞에 있는 강철 인형을 이기면 돼.
“알겠습니다.”
-아 맞다. 강문이 그러는데, 24시간 안에 통과 못 하면 13기동 타격대 자격 박탈이라고 하네. 그럼 행운을 빌어~
“네? 선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호 선배!”
유신의 외침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가만히 있던 강철 인형이 삐그덕 거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360도 한번 돌리더니 복싱 자세를 취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유호 선배와의 대련이 떠올랐다.
그래서 똑같이 복싱 자세를 취했다.
끼리릭
강철 인형에게서 녹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와 다르게 민첩하게 달려들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먹에 힘을 주고 그대로 강철 인형을 향해 내질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강철 인형의 오른팔이 짓이겨져 있었다.
톱니바퀴 같은 부품을 떨어뜨리는 강철 인형에게 회축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텅~
쿠웅!
꽤 힘을 줬는데도 강철 인형이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제대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손날로 강철 인형의 몸뚱이를 갈라 버렸다.
“휴우~ 어때요, 유호 선배? 저 이만하면 많이 발전했죠?”
-……
“저기 유호 선배? 선배!”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유신은 그대로 강철 인형을 지나쳐 다음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자, 작은 테이블 위에 황금색과 검정색이 섞인 칩이 하나 놓여 있었다.
-역시 유신이다. 빨리 통과할 줄 알았다.
“어 철호 선배세요?”
-유신 네가 할 일은 저 테이블에서 칩을 가져가는 거다. 그럼 행운을 빈다.
“저기 철호 선배! 선배! 아휴~”
한숨을 내쉰 유신은 터덜터덜 걸어가 칩을 집으려고 했다.
파지직!
“앗 따가!”
칩은 결계로 지켜지고 있었다.
유신은 주먹을 말아쥐고 그대로 결계를 두들겼다.
쾅 쾅 쾅
콰앙!
강철 인형과는 다르게 결계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휴~ 그래. 아직 시간은 많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포스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안드로말리우스의 중압감을 없앴던 그 감각을 떠올리며 검을 천천히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서걱
결계의 윗부분이 잘려 나갔고, 곧 깨져나갔다.
포스 검을 없애고, 걸어가 카지노 칩을 집어 들었는데, 밑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100만 달러 칩]
100만 달러. 한화로는 10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거금이어서 그런지 금전적으로 문제가 없는 유신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포스 검 때문에 칩에 이상이 없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껏 자신감이 붙은 채 새로운 문을 열었다.
“자 이제 뭐냐? 이 하유신이 다 해결해주겠다.”
호기롭게 외치면서 문을 열었지만, 곧장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한 발의 화살이 얼굴에 생채기를 내고는 벽에 박혔다.
유신은 볼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포스 막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화살이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
-이제 슬슬 누구 차례인지 알 것이다. 여긴 십팔반 병기를 든 강철 인형들이 있다. 유호의 강철 인형을 부쉈다고 호기로웠을 테지만, 여긴 다를 거다. 모든 무기에 인챈트가 걸려 있어서 방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잘하기 바란다. 해…행운을 빈다.
신무 선배의 방송이 끝나자 방 이곳저곳에서 강철 인형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각기 검, 도, 창, 활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끼리릭
유신은 강철 인형들이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는 손을 까딱이며 외쳤다.
“다 뎀뵤!”
분명 강철 인형들은 인지 능력이 없을 거다.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하나 같이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손쉽게 해치울 것 같았던 강철 인형들은 합격진으로 공격해왔다.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에서 서로 흐트러짐 없이 공격하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어째 난이도가 계속 올라가네. 뭐 난이도가 올라가야 시험이니.”
유신이 아직 여유로움을 느끼며 말을 내뱉고 있을 때였다.
검을 피하고, 도를 쳐냈을 때, 창이 가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포스 막을 믿어 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살짝 화끈거리는 볼 때문에 생각을 바꿨다.
그실
실드가 창과 함께 언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까지 튕겨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실드에 금이 갔다.
그걸 보니 무기에 적용된 인챈트를 허투루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실이 유지되는 동안 숫자를 줄여야 강철 인형을 상대하기 편하다는 걸 느끼고 포스 검을 만들었다.
그때였다.
챙그랑.
손도끼가 날아와 그실을 깨트렸다.
한 번 더 그실을 사용하려다가 말았다.
시험은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가오는 검을 포스 검으로 맞댄 후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도를 든 강철 인형과 부딪히게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공격을 회피하거나 맞대응하기보다는, 흘려보내는 수법으로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헥헥~ 아고. 아직 체력도 안 돌아왔는데, 너무 무리했네.”
한참을 싸운 후 주위를 둘러봤다.
망가진 열여덟 대의 강철 인형들이 서로의 무기에 치명상을 당한 후, 쓰러져 있었다.
‘잠깐? 쟤들이 쓴 무기 성능이 그렇게 좋았지?’
유신은 다시 몸을 돌려 강철 인형들이 쓴 무기들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강철 인형이 쓰던 검을 빼 들고, 경계하며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상대를 확인한 유신은 곧장 문을 벌컥 열었다.
“야! 너희들이 반갑기까지 하네. 오랜만이다.”
-유신 브로~ 이제부터 브로가 할 일은…
“저놈들을 다 물리치라는 거죠?”
유신이 오랜만에 보는 다리우스의 뼈다귀 군단을 보며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잡았다.
다리우스는 유신이 자신의 말을 가로챈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정말로 유신이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다 통과하면, 오랜만에 예뻐(?)해 주기로 생각하며 주먹을 풀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예전처럼 싸우고 싶지만, 오늘은 빨리 끝내자.”
유신이 자세를 잡은 뼈다귀들을 보며 그대로 연달아 블레이드 샷을 날렸다.
콰앙
콰아앙
쿠아아아앙
세 차례 날아간 블레이드 샷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바닥은 뼈다귀들의 가루로 수북이 쌓였고, 다리우스의 비명이 들렸다.
-브로~ 그런 기술을 건물 안에서 쓰면 어떻게! 건물 무너지라는 거야?
“앗 죄송해요.”
-에휴~ 알았어. 빨리 넘어가.
“네.”
다리우스에게 혼난 유신이 살짝 시무룩해져서는 다음 시험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는 세 병의 붉은 포션이 놓여 있었다.
-유신 미안. 하지만 여기는 고통의 시련. 다음 단계의 문을 열려면 저 세 병의 포션을 다 먹어야 해. 저 포션을 마시는 게 얼마나… 야! 한 번에 다 먹으면 어떻게 해?!
라이언이 주저리 설명을 하는 동안 유신은 포션의 뚜껑을 열고는 한 번에 전부 들이켰다.
“꺼억~”
트림과 함께 포션의 고통이 밀려왔고 유신은 손수건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유신아 포션 먹는 거로 안 끝나. 이제 너한테 공격이 들어올 거야. 고통을 받는 동안 공격을 버텨야 하는데 한 번에 세 병을 다 먹으면 어떻게 해!
유신은 라이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앞을 바라봤다.
그때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쇠구슬이 날아왔다.
쇠구슬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포스 막을 최대 출력으로 뿜어냈다.
팅팅팅팅팅팅팅
쇠구슬은 포스막을 뚫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이번 관문을 통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 서운해서 검을 세우고선 쇠구슬을 쳐내기 시작했다.
입에 문 손수건이 침에 흠뻑 젖어들 때쯤 포스 막에 닿는 쇠구슬이 보이지 않았고, 모조리 검에 튕겨 나갔다.
그렇게 붉은 포션의 효력이 끝날 때쯤 다음 문 앞에 도달해서 검으로 문을 갈라 버렸다.
“퉤~ 이 시험은 언제 끝나요?”
입에 물고 있던 손수건을 뱉어내며 선배들에게 말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오라가 깃든 주먹이 유신을 향해 날아왔다.
검을 곧추세운 후, 주먹 모양의 기운을 반으로 갈라 버리고, 앞을 바라봤다.
고오오오~
앞에는 검은 오라를 피어 올리고 있는 언데드가 있었다.
데스 나이트나 리치처럼 상위 몬스터도 아닌 언데드가 데스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미안한데, 빠르게 가자.”
유신은 최근 깨달음을 다시 상기하며, 오러를 일으켜서 언데드에게 달려들었다.
쾅쾅쾅
새하얀 오러와 검은 오라가 부딪혔고, 그때마다 유신의 오러는 더욱 밝게 빛났고, 데스 오라는 색을 잃었다.
그렇게 20합이 채 지나지 않아서 언데드는 온몸이 조각난 채 땅에 쓰러졌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유신이 힘껏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푸른 빛으로 빛나는 게이트가 있었다.
이번에는 방송도 쪽지도 없었고, 새로운 문도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의 시험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게이트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