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_공항 테러(5)
B는 D와 접선이 끊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와 접선도 끈긴 걸 확인하고는 전용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알파에게 무전을 보냈다.
“모든 임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B는 빠르게 현재 상황과 유추할 수 있는 변수를 알파에게 전달했다.
“오호~ 노사 제자가 벌써 그 정도로 성장했다고?”
“어떻게 처리할까요? 윽!”
대화를 이어나가던 B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또 무슨 일이지?”
“방금 F와의 연결도 끊겼습니다.”
“흠…어쩔 수 없군. 플랜C로 간다. 너도 위험할 수 있으니 곧바로 움직여. 왕쟁에게는 내가 연락하지.”
“아…알겠습니다.”
현재 관제탑에 있는 왕쟁은 위험인물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알파만이 왕쟁을 통제할 수 있는데, 그 목줄을 알파가 직접 풀어 주려 했다.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한숨을 내쉰 B는 주위를 둘러봤다.
플랜C 상위 영웅 또는 전설급이 공항에서 테러를 해결하는 상황 대응법이다.
이게 발동되면 상황실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B가 마음을 다잡고 총을 꺼내 들었다.
프슉 프슉 프슉
상황실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인 B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
관제탑에 있던 왕쟁은 한 통의 무전을 받고, 온몸이 피에 젖은 채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왕쟁은 관제탑 직원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여직원의 머리카락에다가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겁에 질린 여직원은 눈물을 흘리며 왕쟁에게 애원했다.
“사…살려주세요.”
“나도 살려주고 싶지. 그런데 세계정부가 우리의 이 깊은 뜻을 테러라고 오인하고, 억압하잖아. 그래서 진짜 테러를 하기로 했어.”
“흐윽.”
왕쟁이 여직원의 턱을 잡았다.
여직원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지마. 예쁜 얼굴 망가지잖아. 아 그래 웃으면 내가 특별히 너만 살려줄게.”
“저…정말인가요?”
“그러엄~”
살 수 있다는 말에 여직원은 계속 눈물을 흘린 채 억지로라도 웃기 위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좋아 그렇게 웃으라고. 거봐 얼마나 예뻐?”
“가…감사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잠시뿐이었다.
왕쟁이 여직원의 목을 잡더니 그대로 꺾어버렸다.
우두뚝.
“물론 나는 살려주고 싶은데, 위에서 다 죽이라고 명령이 떨어졌어. 미안~”
죽은 여직원에게 장난스럽게 사과하던 왕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관제탑을 벗어났다.
“그럼 오랜만에 즐거운 사냥을 즐겨 볼까?”
***
유신은 리우와 함께 급하게 상황실로 향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는지 상황실은 이미 시체로만 가득했다.
리우는 자신들이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다면 이들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일반인들까지 이렇게 하다니.”
“리우씨 빨리 움직이죠.”
“……”
“여기 계속 있는다고 바뀌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한 명이라도 더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유신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 분노를 곱씹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우는 이를 부득 갈며 몸을 돌려 관제탑으로 향했다.
퐁!
그때 유신이 또 다른 붉은 포션을 열고는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리우는 기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저 포션을 먹을 때 온몸이 뜯겨나가고, 뇌가 뭉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포션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에는 유신이 자신에게 포션이 아니라 독약을 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깨어나고 보니 어깨에 입은 총상까지 말끔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바드득!”
“아니 그래도 고통이…”
“빨리 움직여야지 인명피해를 줄이죠.”
“…네.”
리우는 자신에게 먹인 것은 일반적인 포션이 아니라, 고문용으로 만든 포션이라고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현재 유신의 구겨진 표정과 함께 온몸을 떠는 게 보였다.
거기다가 이제는 걷는 거도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즉, 자신에게 먹인 게 불량품이나 고문용이 아니라, 원래 저런 포션만 가지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저 모습이 연기라고 볼 수도 없었다.
고통은 쉽게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후욱 후욱”
유신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리우는 모르겠지만, 유신은 A와 싸우면서 붉은 포션을 먹었다.
그로 인해서 회복된 몸으로 겨우 A를 이겼다.
그래서 붉은 포션을 복용할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현재 유신은 오른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덜덜덜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오른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도대체 속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리우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적에게는 더더욱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붉은 포션을 다시 마신 거였다.
“후욱 후욱”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으로도 오른손이 낫지 않는다면, 이자벨이 주었던 성녀의 축복인 깃든 포션을 사용할 생각도 해봐야 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 어떤 포션보다 효능이 좋다는 포션을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 성녀의 축복이 깃든 포션은 이제 막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했다.
게임으로 치며 라이프가 하나 더 있는 건데, 그걸 팔 때문에 사용하기에는 아직 아까웠다.
유신이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리우의 말이 들려왔다.
“유신씨 잠깐만 쉬어요.”
리우는 한시가 급한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 앞에 있는 유신을 걱정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유신씨는… 아프잖아요. 치료만 끝내고 움직여요. 네? 그 정도는…괜찮을 거예요.”
현재 이 상황에서 테러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유신이 유일했다.
리우가 보기에는 자신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저 포션을 먹는다?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유신은 포션을 먹은 상태에서 고통을 참으며 걷고 있었다.
“후욱 후욱”
짧게 숨을 몰아쉬며 유신이 자리에 멈춰 섰다.
유신은 리우를 돌아보며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무언가 아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신의 불안감이 점점 심해질 때, 숨어 있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불안한 파장이 리우 주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리우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렸다.
콰앙!
방금까지 리우가 서 있던 곳에 왕쟁의 공격이 애꿎은 땅을 부서뜨렸다.
“오호~ 감이 좋은 친군데?”
왕쟁이 바닥을 부순 클로를 회수하면 유신을 바라봤다.
멀리서 이들을 지켜볼 때는 리우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다.
유신은 가만히 놔둬도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리우는 노사의 제자였다.
전설의 제자.
다른 말로는 이름값을 한다는 거다.
그렇기에 이번 혁명이 실패한 이유가 모두 리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쟁은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생각을 바꿨다.
작전의 실패는 리우가 아니라, 저기 저 비실거리는 남자 때문이라는 것을.
“네가 C냐?”
유신의 질문에 왕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날 알아?”
“대충은 알지.”
“대충이라? 입이 싼 배신자가 있었군.”
“됐고. 하나만 물어보자.”
왕쟁은 곧 죽을 것 같은 놈이 자신 앞에서 당당하자,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뭐가 궁금하지? 저승에 가기 전에 궁금증은 해결해야지.”
“관제탑에 있는 사람들… 어떻게 됐지?”
“뭐야 그런 게 궁금한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왕쟁이 클로를 낀 두 손을 들었다.
손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모두 죽였지. 이 두 손으로 말이야.”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왕쟁이 점점 환희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 한 번에 죽이는 것보다 살려달라고 빌 때 죽이는 게 더 좋은데. 시간이 없어서 딱 한 명한테 밖에 못 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너희 차례야.”
살의와 기대감 가득한 눈빛이 된 왕쟁을 유신이 무심히 바라봤다.
유신은 오른손이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왼손으로 포스 검을 만들어서 허공에 휘둘렀다.
솨아아악
포스가 왕쟁을 스치고 지나갔다.
툭.
왕쟁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리기 위해 날린 탄검기였다.
하지만, 오른손잡이인 유신에게는 왼손 컨트롤이 쉽지가 않아서 겨우 팔 한쪽만을 날려버렸다.
“어?”
바닥에 떨어진 팔이 자신의 팔이란 걸 파악한 왕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뒤늦게 고통이 밀려왔다.
“크아아악! 이놈!! 쉽게 죽이지는 않겠다!!”
솨아아악
툭
유신이 이격으로 탄검기를 다시 날렸고.
이번에는 왕쟁의 얼굴이 땅에 떨어졌다.
“지옥에서 고통이나 받아라.”
왕쟁은 유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악행을 저지른 것에 비해 왕쟁은 너무나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유신이 왕쟁을 처치했을 때, 활주로에서 전용기 한 대가 떠올라, 상하이 푸동 국제 공항을 벗어났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전용기가 사라지자, 리우의 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됩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누구예요?”
“스승님입니다.”
“그럼 빨리 받아보세요.”
“넵.”
전화를 받은 리우는 노사에게 평소와는 다르게 인사말을 건네지도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네 스승님. 그렇게 됐습니다. 현재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테러범들을 사살 및 제압해 두었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노사와의 통화를 끝낸 리우가 유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공안과 함께 직접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기…그런데…”
갑자기 리우가 유신을 보며 말을 흐렸다.
“리우씨 왜 그러세요?”
“그게 아니라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이요? 먼저 들어봐도 될까요?”
“그… 형…아니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리우가 힘들게 말을 꺼내자 유신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와~! 이게 바로 중국의 따거 문화군요.”
“네? 그게 무슨?”
“아…아니에요. 네 좋아요. 아니지. 응 그래 리우야.”
“네 형님.”
“하하하하 동생이 생겨서 좋네.”
“저도 그렇습니다. 형님.”
유신은 새롭게 생긴 동생 리우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 후.
눈을 뒤집어 까며 그대로 기절했다.
급하게 리우가 쓰러진 유신을 안고는 통곡하듯 외쳤다.
“형님! 형님!!”
***
유신이 기절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사와 중국 공안이 상하이 푸동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노사가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본 것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막내 제자가 미라를 안고는 울고 있었다.
차후에 그 미라가 유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노사는 그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있는 중국에서 테러를 자행했다는 것에 화가 날 뿐이었다.
하지만, 유신의 상태를 보니, 13기동 타격대에 할 말이 없었다.
“그깟 TV출연이 뭐라고…:”
“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으흠. 아니다.”
원래 약속된 것은 자신이 직접 유신을 마중 나가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잡힌 TV 출연에 아무 일 없을 줄 알고, 리우를 대신 보낸 거였다.
이대로라면 할 말이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13기동 타격대 인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였다.
“어쩔 수 없군…”
노사는 품 안에서 반지함 크기의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함을 열자, 향긋한 냄새가 주위를 뒤덮었다.
“스승님. 그건 태극신단이지 않습니까?”
“맞다. 지금 유신을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아깝지 않느냐? 원래 너에게 주기로 하였는데?”
“형님께서 오늘 제 목숨을 두 차례나 구해주셨습니다.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어찌 아까워하겠습니다.”
“말년에 리우 널 제자로 둔 게 내 가장 큰 홍복이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우선 유신 형님 치료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노사는 유신을 반듯하게 눕힌 후, 입을 벌려서 태극신단을 먹였다.
유신의 입에 들어간 태극신단은 액체가 되어서 그대로 목구멍에 넘어갔다.
그런데 노사와 리우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유신의 몸 상태는 멀쩡했다.
단지, 하루에 연속으로 13기동 타격대의 극렬한 붉은 포션을 두 병 먹고 정신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평소의 노사라면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리우의 눈물과 유신의 초췌함이 노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유신은 새로운 기연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