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_내면세계(3)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여기서 몇 날 며칠을 있었지만, 잠도, 음식도, 그리고 성욕(프로이트는 배설욕을 성욕의 일부로 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기본 3대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공간이었다.
전부터 의문은 들었다.
그리고 여기가 결계 또는 이상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신은 이곳을 자신의 내면으로 생각했고, 스마일은 내면의 또 다른 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면이 적의를 드러냈고, 유신은 아무리 내면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드러낸 적을 마냥 봐줄 수는 없었다.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된다는 거군.”
“맞아. 유신. 내가 이기면 또 다른 자아인 내가 네 몸을 갖게 되는 거야.”
“내가 이기면 넌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긴? 알면서 왜 그래?”
스마일의 말처럼 유신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내면을 이기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유신! 빨리 시작하자. 잠든 육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좋아.”
유신과 스마일은 서로를 마주 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스 검을 이용한 발도술을 사용해 검을 부딪쳤다.
콰앙!
포스와 포스의 부딪힘은 일반적인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포스 검끼리 서로 닿을 때마다 포스는 공조하여 위력을 더해 갔다.
쾅쾅쾅!
처음에는 서로 기본 검술로만 상대했다.
그러다가 유신이 먼저 뒤로 물러나며 탄검기를 날렸다.
스마일도 탄검기를 날렸지만, 조금 늦었다.
콰앙!
포스 폭발이 스마일 근처에서 일어났고, 스마일의 자세가 무너졌다.
유신은 기회라 생각했고 포스 대검을 만들어서 달려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따라 하는 스마일이기에 이번에도 같은 수로 응수할 줄 알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스마일은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한 번 더 검을 휘둘러서 유신에게 탄검기를 날렸다.
달려들던 상태였기에 유신은 회피 대신에 포스 대검을 세워 막았다.
콰앙!
유신은 포스 대검으로 탄검기를 막을 때 꿋꿋이 버티기보다는 몸을 살짝 띄워서 뒤로 몸을 날렸다.
스마일은 포스 대검을 만들어서 그런 유신을 뒤쫓으려다가 그만뒀다.
“역시. 유신은 강하네.”
“스마일 너도 내 모습을 따라 할 줄만 알았는데, 임기응변도 할 줄 아네.”
“이겨야 하니까. 누굴 닮아서 지는 건 죽도록 싫거든.”
“그게 내 본심이었군. 난 져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당연하지. 우리는 지는 걸 죽도록 싫어해.”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이겨볼까?”
“아니. 내가 이길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한 유신과 스마일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같은 기술을 사용해서 맞붙기도 했지만, 다른 기술을 사용해서 허를 찌르기도 했다.
그렇게 유신과 스마일은 서로 무아지경으로 맞붙었고, 그럴수록 대련은 점점 치열해졌다.
둘 다 서로에게 치명상을 가하지는 못했다.
포스 검은 부서지고 재생을 반복했고, 그 파편으로 인해 점점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콰르르릉
쾅 쾅 쾅
콰앙!
포스 검을 서로 맞댄 상황에서 유신과 스마일은 서로 웃고 있었다.
아니 스마일은 지금까지 언제나 웃는 상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즐거워서 웃고 있었다.
“유신. 이기는 것도 좋지만, 너와의 대결이 정말 재밌어. 안 끝났으면 좋겠다.”
유신은 표정을 굳혔다.
스마일은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공격을 가해도 대비하는 방법이 보였다.
물론 유신의 공격을 스마일도 잘 대응하고 있었다.
이건 형식상 하는 대련이 아니라 결투였다.
그것도 생사투.
“나도 그래 스마일.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지?”
“유신의 말이 맞아.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지. 자 그럼 다시 간다.”
유신은 포스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는 스마일을 밀어냈다.
서로 적정 거리가 된 지금 유신은 스마일을 관찰했다.
흔한 검로 그리고 익숙한 기술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콰아아앙!
잠시 유신이 딴생각을 하는 동안 스마일의 공격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당연히 제때 반응하지 못했고, 큰 손해를 봤다.
“우웩~ 스마일 대단한데.”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 상태에서 막으면서 반격까지 할 줄이야.”
스마일의 말에 유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큰 내상을 입은 것에 반해, 스마일은 겨우 볼에 생채기만 났을 뿐이었다.
유신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포스를 운용했다.
그리고 스마일에게 대화를 시도해서 시간을 끌려고 했지만, 스마일이 먼저 눈치를 채고는 달려들었다.
콰앙!
“크윽!”
“유신. 그런 꼼수는 안 돼. 정정당당한 승부를 봐야지.”
유신은 머리를 굴리며, 스마일의 검격을 받았다.
속은 울렁거렸고, 내상으로 인해 입가에 피가 흘러나왔다.
순간 이 상황을 역전할 방법으로 오러가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스마일 앞에서 오러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스마일이 내 내면이라고 하지만 오러를 알까?’
솔직히 미지수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유신은 스마일이 포스 대검을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서 오러를 만들었다.
위이이잉
그리고 그대로 포스 대검을 향해 휘둘렀다.
쿠아아앙!
원래라면 오러가 포스 대검을 잘라버리고 스마일까지 잘라버려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오러가 막혔다.
어느새 스마일도 오러를 생성해서 유신과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난 너라니까. 네가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건 없어.”
“우에엑~”
유신은 한 사발의 피를 스마일의 얼굴에 뿜었다.
생사투라고는 하지만, 이런 비매너적인 행위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피를 토했는데, 스마일이 고스란히 피를 뒤집어썼다.
“유신. 이게 뭐야. 더럽게 이건 네 생각에 없었잖아.”
스마일의 말에 유신의 눈이 빛났다.
‘생각? 설마?’
약간의 가능성을 떠올린 유신은 아무런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지금까지 곧잘 대응했던 스마일은 한박자 늦게 내 검을 막았다.
“흥! 이런다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유신은 스마일의 말을 무시하면 점점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빨리했다.
쾅쾅쾅쾅쾅
오러와 오러가 부딪힐 때마다 유신의 속은 뒤집어졌다.
하지만, 스마일은 오러를 막는 것을 점점 버거워했다.
‘아! 지금까지 내가 싸우면서 생각이 많았구나.’
보통 결투와 싸움은 그냥 무작정 주먹을 내지르고, 무기를 휘두른다고 이기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어떻게 공격할지 그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계속 꾸준하게 생각을 해야 했다.
당연히 유신도 그런 수 싸움을 해왔다.
그런데 스마일은 유신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수 싸움에서 지고 가는 거였다.
“크아아악! 유신 생각해! 생각하란 말이다!!”
유신은 스마일의 발악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툭.
오러는 스마일의 오른손을 어깨째로 베어냈다.
스마일의 어깨에서는 피 대신에 포스가 흘러내렸다.
“왜왜!! 생각하지 않는 거냐!? 이건 네가 하던 싸움법이 아니야!! 원래 싸우던···”
악다구니를 쓰던 스마일은 유신의 무심한 눈빛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러더니 자포자기를 한 표정을 짓더니 무릎을 꿇었다.
“빨리 끝내라.”
길게 목을 내미는 스마일을 보고 유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넌 절대 내가 될 수 없어.”
유신의 말에 스마일이 고개를 들고는 유신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지?”
“겨우 손 하나를 잃었다고 자신의 목숨을 쉽게 포기하는 건 내가 아냐.”
“······”
“나는 오른손을 잃으면 왼손으로 싸울 거고, 왼손을 잃으며, 다리를 써서 싸울 거다. 그렇게 두 다리를 다 잃으면 널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거고.”
“흥! 그게 뭐냐. 그런다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는 거야.”
“······”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알기에 스마일은 반박할 수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 꿈은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이야.”
“그건 가장 멍청한 일이지.”
“그래 맞아.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바보 같다고, 멍청하다고 또는 호구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영웅 그리고 전설은 모두 평판으로 먹고사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냐!!”
유신은 스마일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말도 틀리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이기면 되는 거야. 절대 지지만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꿈이지.”
“궤변이다 하유신!!”
“스마일. 나는 너에게 지지 않았어. 아니 이겼지. 역사는 승자가 써 내려가는 거야.”
“크윽···”
패자가 된 스마일은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스마일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히 유신 앞에 섰다.
“하유신의 내면이자, 하유신이 지어준 이름인 스마일. 죽더라도 네 말처럼 당당히 죽겠다.”
스마일은 눈을 부릅뜨고는 유신을 바라봤다.
유신은 무심한 눈으로 스마일에게 오러를 날렸다.
쑤욱
날아간 오러는 스마일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스마일의 얼굴에 점점 금이 갔다.
“하유신. 날 기억해줄 것이냐?”
스마일의 질문에 유신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나는 너고, 너는 난데. 날 기억해야지. 그리고 한 가지 약속할게. 내가 싸우는 이유 중에 하나는 널 위한 거라고.”
“좋다. 그리고 고맙다. 하유신.”
유신은 전신에 금이 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스마일을 바라보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기 전, 유신의 생각을 읽게 된 스마일은 이름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깨져나갔다.
파칭
깨져나간 스마일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얀 빛이 되었다.
스마일은 그 상태에서 유신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유신은 그런 스마일에게 손을 내밀었고, 스마일은 그런 유신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아주 잠깐 유신의 손에 머문 스마일이 다시 몸을 띄웠다.
빛나던 스마일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어둠은 거의 보이지 않는 이 순백의 공간에서 스마일의 잔재만이 더욱 찬란히 빛났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유신이 눈을 떴다.
***
지하 벙커를 연상시키는 곳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여러 존재가 앉아 있었다.
중간에 앉아 있던 로브의 인물이 조용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등웨이가 원수께 말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원수가 고개를 끄떡이자, 등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대능력시대를 이끌어 갈 능력해방군의 수장께 감사함을 표하겠습니다.”
원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등웨이는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다들 아시겠지만, 세계정부에서 우리 능력해방군의 의견을 묵살하였습니다. 가이아께서 내려주신 우리의 능력을 갈고닦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대화가 아닌 힘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등웨이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인물 중 절반은 고개를 끄떡였고, 절반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네. 다들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 헛기침을 내뱉었던 인물 중 상석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등웨이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빌런들처럼 테러라도 하자는 거요?”
“네 그렇습니다. 가스파르 까네님.”
조용함을 넘어서 고요하기까지 했던 회의장은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모든 말을 듣고 있던 원수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파앙
그러자 어마어마한 파장이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등웨이 계속해봐라.”
“네 감사합니다.”
등웨이는 원수의 말에 주위 다른 로브인들에게 콧대를 세우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계속 세계 정부에게 억압받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의견을 제의한 것은 테러를 통해서라도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우리 능력해방군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생각해봤나?”
“네. 지금이라도 바로 제 밑에 있는 부하들을 보내려고 합니다.”
“장소는?”
“네. 제가 있는 중국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입니다.”
원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좋다. 지금 당장 시행하도록.”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