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_내면세계(2)
부두교에서는 성인식 때 하나의 비약을 먹는다.
이 비약을 먹게 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간 잠을 자게 된다.
그래서 부두교에서는 비약을 잠자는 아이라고 불렀다.
잠자는 아이.
이 비약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극대화 시켜준다.
그래서 먹게 되면, 새로운 능력을 얻기도 하고, 또는 가지고 있는 능력이 강화되기도 했다.
단지, 꿈속에서 내면의 자신을 만나고 그와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 한다.
철호는 비약을 먹고 곤히 잠이든 유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다리우스 너도 먹었다는 거냐?”
“우리 부족 사람들은 열다섯에 능력을 얻으면 무조건 먹어.”
“너는 뭘 얻었지?”
“나? 근육!”
다리우스가 머슬맨 포즈를 취했지만, 철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 잠자는 동안 뭘 하는 건데? 유신은 어떻게 벗어나야 하지?”
“음… 그건 사람마다 달라서 내가 해줄 말이 없네.”
“다르다고?”
“응. 나 같은 경우는 내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데리우스는 내면의 목을 땄다고 하더라고.”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건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쉽지 않다.
거기다가 유신은 비약을 먹기 전에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철호의 걱정이 커져만 갈 때 방문이 열리며 막시우스가 들어왔다.
“허허 유신이를 걱정하는 것이냐?”
“막시우스 오셨습니까?”
막시우스는 방안에 향초를 피운 후 유신이 덮고 있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줬다.
“강한 아이다. 그리고 꼭 내면을 죽일 필요는 없단다. 내 경우에는 내면과 몇 날 며칠을 대화하다가 잠에서 깼지.”
“꼭 죽일 필요는 없다는 소리인가요?”
“그렇지 하지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내면을 이겨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면에 먹혀 평생 일어나지 못하지.”
“···유신은 이겨 낼 겁니다.”
“그래. 내가 인정한 아이다.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과연 이 아이는 무슨 선택을 할지 궁금하군.”
그렇게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유신을 걱정할 때, 유신은 어두운 공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흐아아암~ 잘 잤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유신은 당황스러웠다.
주위가 너무 어두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황도 잠시 잠이 들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분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팜 와인을 마시고, 졸려서 다시 잤는데··· 벌써 밤인가? 이상한데?”
유신의 시력은 이제 웬만한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 어둡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주위를 바라보면 모든 게 검게 보였다.
“뭐지? 결계에 있는 건가? 아닌데···”
혹시 모를 상황에 유신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크게 외쳤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철호 선배!! 다리우스 선배!! 막스우스 촌장님!!”
이렇게 크게 외치게 되면 최소한 약간의 메아리라도 쳐야 했다.
그런데, 지금 목소리가 뻗어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공간이 일렁이더니, 성인 얼굴 크기만 한 하얀 빛이 생겨났다.
성스러워 보일 정도로 밝게 빛나는 하얀 빛은 둥둥 떠올라서는 유신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빛을 매만지려고 했다.
그러자 빛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 해치지 않아.”
말을 알아들었는지 빛이 물러나는 것을 멈췄다.
혹시나 빛이 도망갈 수도 있기에 유신은 천천히 손을 뻗어서 빛을 어루만졌다.
“따뜻하다.”
기분 좋은 따뜻함에 유신이 미소를 지으자, 동그란 빛에 이목구비가 생겨나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 너도 웃는 거야?”
유신의 말에 빛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야~ 신기하다.”
“신기하다.”
갑자기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빛 때문에 유신은 깜짝 놀랐다.
“너 말도 할 줄 아는 거야?”
“할 줄 아는 거야?”
“내 말 따라 하지 말고.”
“따라 하지 말고.”
갑자기 어두운 공간에서 빛이 떠올랐고, 그 빛이 사람의 얼굴 형상으로 변한 후 자신을 따라 한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유신은 아무렇지 않았다.
빛을 만졌을 때의 따뜻함이 아직 손끝에 남아있었고, 앞에 있는 빛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너 이름은 뭐니?”
“이름은 뭐니?”
“음··· 네 이름을 스마일로 하는 건 어때?”
“스마일로 하는 건 어때?”
“이제부터 스마일이라고 부를게.”
“스마일?”
처음으로 스마일이 말을 따라 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응 네 이름은 스마일이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이 자신의 이름을 반복하자, 유신이 자신을 가리켰다.
“난 하유신이야.”
“하유신?”
“응”
“하유신 하유신 하유신 하유신···”
“그만해. 그런데 스마일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
“스마일. 하유신. 스마일. 하유신.”
“저기 이름만 말하지 말고 여기가 어디인지 좀 알려줘. 아니면 나가는 방법이라도.”
“나가는 방법?”
“응!”
유신의 대답이 끝나자 스마일이 하늘 위로 솟구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스마일! 스마일! 어디 간 거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스마일 때문에 유신은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기다려도 스마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에 가만히 서서 스마일을 계속 기다릴 수 없기에 유신은 이 공간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사방이 어두운 이곳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기에 유신은 신중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특별한 함정이 보이지는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유신은 포스 막을 만든 후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딱히 유신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포스 막을 띄운 상태에서 걷는 곳이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하얗게 빛나던 곳에서 스마일이 솟아났다.
하얀 공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스마일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방방 뛰었다.
그러다가 스마일은 하얀 길을 따라서 계속 움직였다.
“휴~ 아무것도 없네.”
포스 막을 유지한 채 계속 걸었던 유신은 답답함을 느꼈다.
함정도 없고, 몬스터도 없는 이 공간은 어디를 가나 어둡기만 했다.
그때 따뜻한 무언가가 유신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으악! 뭐야!!”
등에 붙은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해 유신은 오두방정을 떨었다.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봤다면 최소한 3개월은 놀림 꺼리고, 사진으로 찍었다면, 평생 써먹을 짤이 될 정도였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어떤 짓을 해도 등에 붙은 무언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유신은 강수를 두기 위해 몸 밖으로 포스를 내뿜었다.
파앗
하지만, 한참 포스를 내뿜고 나서야 등에 붙은 무언가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자신을 놀라게 한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유신이 한 손에 검기를 일으키며 뒤돌아봤다.
거기에는 스마일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헤롱거리고 있었다.
“너였냐?”
“헤헤~”
“넌 대체 뭐지?”
한껏 경계 어린 시선으로 유신이 스마일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스마일이 통통 뛰어서 유신에게 달라붙어서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떠··· 떨어져!”
유신의 외침에도 스마일은 떨어지지 않았다.
강제로 떨어뜨리기 위해 스마일을 잡으려고 할 때였다.
스마일이 자신의 손길을 피하더니 하얀 공간으로 들어가서 통통 뛰었다.
“어?”
그때야 유신은 무언가 바뀌었다는 걸 파악했다.
분명 이 공간은 어두웠다.
시각적으로 어두운 게 아니라, 그냥 모든 게 검은 물감을 칠한 방에 들어온 것처럼 어두웠다.
그런데,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그러니까 지금 스마일이 있는 공간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하유신 하얗다. 하유신 좋다.”
유신은 스마일의 말을 듣고는 주위를 돌아봤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은 아직도 어두웠다.
하지만, 자신이 지나온 길 그리고 방금 포스를 내뿜었던 공간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스마일. 잠깐 이리 와볼래?”
스마일은 유신이 불러도 그냥 하얀 공간에서 방방 뛰며 놀 뿐이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유신은 오른손에 포스를 내뿜으며 스마일을 다시 불렀다.
“이리 와 볼래?”
아까와는 다르게 스마일이 오른손의 포스를 향해 뛰어왔다.
그리고는 포스에 얼굴을 비비가 시작했다.
“이게 좋아?”
“스마일 좋다.”
“이건 포스라는 건데. 이 기운이 여기를 하얗게 만든 거야?”
“스마일 포스 좋다. 포스 좋다.”
“하~ 대체 얘랑은 대화가 안 돼.”
깊은 한숨을 내쉰 유신은 정체가 수상하지만, 스마일이 무언가를 알고 있을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일. 여기 나가는 길 좀 알려줄 수 있니?”
“포스 좋아. 포스 좋아.”
자신의 말은 무시하고, 계속 포스에 얼굴을 비비는 스마일을 보고 유신은 포스를 회수했다.
그러자, 스마일이 화가 났는지 거칠게 방방 뛰었다.
“포스를 더 느끼고 싶니?”
“스마일 느끼고 싶다!”
“알았어. 그러면 몇 가지만 알려줄 수 있을까?”
“스마일! 스마일!”
제대로 된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유신은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여길 나갈 방법을 아니?”
“스마일! 안다.”
“그래?! 방법 좀 알려줘!”
“스마일 포스. 스마일 포스!”
“알았어. 알았어.”
유신은 오른손에 포스를 끌어 올렸고, 스마일은 오른손에 폴짝 뛰어들어서는 얼굴을 비볐다.
어쩔 수 없이 유신은 포스를 끌어올리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스마일은 포스를 좋아한다.
제길! 그닥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다.
둘째, 포스는 이 공간을 하얗게 만들 수 있고 스마일이 그걸 좋아한다.
젠장! 아주 약간 도움이 됐다.
셋째, 하얀 공간을 많이 만들수록 스마일이 어휘력이 올라갔다.
그나마 이건 다행이었다.
원만한 대화를 위해 유신은 온몸에 포스를 끌어올리고는 어두운 공간을 달렸다.
시간의 개념도 그렇다고 공간의 개념도 없는 이곳에서 유신은 시도 때도 없이 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에 유일한 말동무인 스마일이 조금씩 똑똑해졌다.
그렇게 포스가 떨어지면 채우고 다시 달리고를 반복했다.
하얀 공간이 생겨나는 게 재미는 있지만, 계속하다 보니 슬슬 지겨워졌다.
“방법을 바꿔봐야겠다. 스마일 위험하니까 여기서 기다려.”
“알았다. 스마일. 유신 말. 잘. 듣는다.”
스마일은 말투가 어색했지만, 이제는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유신은 스마일이 다치지 않게 멀찍이 떨어지는 어두운 공간으로 갔다.
“휴우~”
길게 숨을 내뱉은 후, 포스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포스 검을 만든 다음, 검을 휘둘렀다.
포스 검의 궤적에 따라서 공간은 점점 하얗게 변했다.
일정 공간이 하얗게 변하자 이번에는 탄검기를 이용해 포스를 날렸다.
콰아앙
탄검기가 터져나갈 때마다 공간이 점점 하얗게 변해 갔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공간을 모두 하얗게 만든 유신은 곧바로 어두운 공간을 찾아 움직였다.
움직이면서 포스 대검을 준비한 유신은 도착과 동시에 포스 대검을 땅에 꽂았다.
쿠우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공간이 흔들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어두운 공간이 포스로 물들면서 하얗게 변했다.
“헥헥. 와 이것도 지치네.”
포스 검, 포스 대검, 포스 채찍, 탄검기, 포스 막, 블레이드 샷 등 포스로 이루어진 다양한 기술로 공간을 물들였다.
유신은 몸속의 포스를 다 소모하자, 자리에 주저앉았고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스마일은 그런 유신의 주위를 돌며 빤히 관찰했다.
한참 유신을 관찰하던 스마일에게 변화가 생겼다.
빠드득빠드득
스마일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변화가 마무리될 때, 유신은 포스 호흡법을 마무리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랐다.
이제는 어둠이 보이지 않는 하얀 공간에 자신과 복장까지 똑같은 하유신이 서 있었다.
“넌 뭐지?”
유신의 질문에 또 다른 유신이 고개를 돌려 유신을 향해 환히 웃었다.
“유신 드디어 일어났구나. 난 스마일.”
“스마일? 그게 무슨 소리지?”
“스마일. 유신이 좋아서 따라 했다. 봐봐.”
스마일은 그 말을 하고선 유신 앞에서 포스를 이용한 기술들을 사용했다.
한껏 경계 어린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던 유신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스마일이 자신의 모든 기술을 선보인 건 둘째치고, 자신의 버릇까지 따라 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유신은 소름이 돋았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 맞다! 유신 여기를 나가는 방법 알려달라고 했지?”
유신은 자신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어색하게 말을 더듬었다.
“으응···”
“알려줄 게 나가는 방법.”
“···그래? 뭔데?”
“날 죽이면 돼!”
그렇게 말한 스마일은 포스 검으로 발도 자세를 취한 후, 유신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