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_내면세계(1)
방금 닭다리를 뜯었는지 유신의 입가는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다리우스는 잠깐 걱정했던 유신이 멀쩡히 있는 것을 보고는 한 대 때려주기 위해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철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유신 괜찮나?”
“네? 뭐가 괜찮아요?”
“쓰러졌다고 들었다.”
“아 그거요. 푹 자고 일어나니 멀쩡해졌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신이 알통을 만들었지만, 닭다리를 들고 있어서 가벼운 느낌만 들 뿐이었다.
“막내 브로. 죽음을 상대한 것 치고 멀쩡하네.”
“죽음이요?”
“그래 죽음.”
“그게 뭐예요?”
“마을 앞에서 경계 서던 애들이 브로가 죽음을 산산조각 냈다고 하던데 아니야?”
다리우스의 말에 유신은 곰곰이 전투를 떠올려봤다.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을 때 몬스터 대백과사전에도 사진은 없고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데스 스펙터를 만나기는 했다.
무려 트윈 헤드 오우거와 같은 SS등급인데, 오러로 조각을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스 스펙터에게는 명확한 약점이 있었다.
“데스 스펙터 말씀하시는구나.”
“지구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잠깐 데스 스펙터라고?”
지금까지 가만히 듣기만 하던 디에고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어떻게 데스 스펙터를 상대했지?”
“상대가 아니라 물리쳤는데요.”
“그래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데스 스펙터를 물리쳤지?”
자연스러운 질문에 유신이 대답하려다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누구세요?”
“그게 중요해? 데스 스펙터를 말살한 방법을 말하라고!!”
유신은 다리우스와 철호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손쉽게 의도를 파악한 다리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브로가 부순 결계를 재건할 사람이야.”
“아···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는 됐고. 빨리 말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유신은 들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고 디에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몬스터 대백과사전을 보면 데스 스펙터는 스펙터의 상위 개체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작성되어 있지.”
“그래서 스펙터의 약점을 이용했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디에고는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유신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펙터는 5대력에 약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데스 스펙터를 물리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
“에이~ 상위 개체면 약점을 가린다고 했지만, 약점은 약점이죠.”
“데스 스펙터가 SS급에서 최상위 등급으로 분류되는 이유를 알고 있나?”
“제가 저술한 게 아니니 그건 저도 모르죠.”
“그래. 그럴 수 있지. 데스 스펙터가 위험한 것은 일반적인 5대력 공격을 흡수하고, 위험하면 자기들끼리 몸을 합쳐서 대단위 공격을 하기 때문이네. 그런데 무슨 약점이 있다는 건가?”
유신은 빙그레 웃었다.
디에고는 유신의 웃음을 보고 뭐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는 답변을 재촉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좀 알려주게.”
“정말 별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데스 스펙터를 죽인 건 강한 일격이죠.”
“강한 일격?”
우문현답이었다.
강한 공격에는 어떠한 적들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당연한 소리가 듣고자 디에고는 여기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식이 대답을 원하지 않는 디에고는 차라리 질문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지 말고 데스 스펙터와 어떻게 싸웠나?”
“싸움이요? 처음에는 검기를 휘두르는데, 검기를 잡아먹더라고요. 그래서 포스를 더 소모해서 검기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자기들끼리 몸집을 키워서 덮쳐오길래 오러로 공격했습니다. 오러는 통한다고 생각했던 게 스펙터의 약점이 5대력이잖아요. 데스 스펙터는 상위 개체니까 일반적인 5대력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오러를 사용했죠?”
“데스 스펙터는 오러에도 면역을 보이지 않던가?”
“아니요 전혀··· 아!! 오러를 약간 흡수하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오러 생성할 때보다 한 2배 정도 때려 넣었더니 지 혼자 터져 죽던데요.”
설명을 끝낸 유신은 목이 걸걸한지 옆에 놓여 있는 팜 와인을 들이켰다.
그동안 디에고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몬스터가 상위 개체로 진화하면 약점이 사라진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약점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감춰지거나 숨겨졌던 거였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유신의 말에 따르며 약점에 갑옷을 씌웠다면 갑옷째로 부수면 된다는 거였다.
‘약점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이야!’
디에고가 깨달음으로 인해 생각이 깊어지자, 유신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쩝쩝 선배들도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좀 드세요.”
“사양하지 않겠다.”
“역시 우리를 생각하는 건 막내 브로 밖에 없다니까.”
그렇게 13기동 타격대의 3명은 본인들이 무슨 일로 부두교 마을을 방문했는지도 잊고 식사를 시작했다.
다리우스와 철호가 오기 전부터 식사하던 유신이 가장 먼저 배가 찼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세요?”
오랜만에 고향 음식에 흠뻑 빠져 있던 다리우스가 유신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 홀로 생각에 빠져 있는 디에고가 있었다.
“옛날 나랑 같이 일했던 친군데. 이름은 디에고야.”
“디에고요?”
“응 지구에서 꽤 유명하다고 하던데?”
유신은 분명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번에는 유신이 생각에 빠져들려고 할 때 갑자기 디에고의 이름이 기억났다.
“디에고 레비?”
“응 브로~ 내가 성까지 말했던가?”
“정말 ‘몬스터 대백과사전’을 쓰신 디에고 레비님이에요?”
“응. 디에고가 그 책을 쓰기는 했지. 근데 그게 왜?”
“다리우스 선배. 기동대와 헌터 그리고 아카데미의 필수 책이 바로 ‘몬스터 대백과사전’이라고요. 거기다가 세계정부, 헌터 협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크 연합의 초창기 멤버이자. 3천의 영웅 중 한 분이 바로 디에고 레비님이에요.”
침까지 튀어가면 설명하는 유신의 눈에는 언뜻 광기까지 뿜어졌다.
다리우스는 그 모습에 아주 살짝 상체를 뒤로 뺐다.
디에고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드디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유신에게 다가가 닭다리 때문에 번들거리는 손을 꽉 잡았다.
“자네 하유신이라고 했나?”
유신은 자신의 손이 닭기름에 미끌미끌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조심히 손을 뺐다.
“디에고님 손이 더러워지십니다.”
“그게 뭐 대수인가?”
감동 받은 얼굴을 한 유신에게 디에고가 재차 말을 이었다.
“자네 덕분에 ‘몬스터 대백과사전’의 개정판을 낼 수 있게 됐어.”
“네? 제가 도움이 된 건가요?”
“그렇다네. 혹시 자네 뭐 필요한 거 있나? 내가 어떻게 해서든 보답을 하고 싶은데?”
유신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평소에 디에고 레비님의 팬입니다.”
“하하 여기서 내 팬을 만나다니 기분이 좋군.”
“다행이네요. 제가 도움을···”
그때 유신의 뇌리로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있습니다.”
“그래 뭔가?”
디에고는 이 잘난 유망주가 자신에게 어떤 부탁을 할까 기대감을 가졌다.
“혹시 괜찮으시면 싸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유신의 모습에 다리우스와 철호는 소리 내어 웃었다.
“브로~ 우리 막내는 다른 놈들이랑 다르게 욕심이 많지 않아.”
뒤늦게 유신이 말한 진위를 깨달은 디에고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원하는 만큼 해줄 수 있네. 대신에 나도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부탁이요?”
디에고는 유신의 전투를 통해서 인류가 더욱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아니 정확히는 몬스터들의 약점을 더욱 집요하게 찾을 수 있는 이론을 찾았다고 보면 됐다.
그리고 그 이론을 조금 더 앞당기기 위해서는 유신의 도움도 필요했다.
“별건 아니네. 나중에 자네가 몬스터들을 처치하게 되면 미리 어떻게 싸웠는지 적어놓은 다음에 내게 알려주면 되네.”
“아··· 설마 그러면 제 전투가 ‘몬스터 대백과사전’에 기록되는 건가요?”
“일부는 그렇게 되겠지.”
“네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유신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즉답했다.
그렇게 유신과 디에고의 거래(?)가 성사될 때였다.
갑자기 벌컥 문이 열리며 막시우스가 들어와 화를 냈다.
“지금 뭣들하는 게야!!”
막시우스의 발언에 앉아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이들은 제가 데리고 온···”
“됐다. 빨리 결계 작업이나 해라.”
다리우스의 말을 자른 막시우스는 성큼성큼 유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리우스도 몇 번 본적 없는 인자한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신이 너는 왜 서 있는 것이냐?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 되려고.”
“촌장님께서 오셨는데. 당연히 일어나야죠.”
“하하하핫 이렇게 예의 바른 청년이라니, 됐다. 유신이 자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빨리 앉아서 쉬거라. 아니 아예 누워있어도 된다.”
“저는 일개 손님일 뿐인데···”
“너는 손님이 아니다. 우리의 가족이다.”
막시우스는 한참을 유신에게 인자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다리우스와 철호 그리고 디에고를 보며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는 여기 와서 음식이나 축내고 있는 것이냐? 빨리 가서 결계 작업이나 시작해.”
부끄러움은 타인의 몫이라고 했다.
막시우스의 차별에 유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반대로 다리우스는 호기심을 느꼈다.
깐깐하기로 따지면 마을에서 제일가는 막시우스가 유신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보면 친아들은 자신인데, 유신을 아들 취급까지 하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아버지는 결계 작업이 끝나면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잠자는 아이를 말하는 것이냐?”
“네.”
“유신이 주려고?”
“그렇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네 놈한테 줄 것은 없어도 유신이에게 줄 것은 있으니.”
다리우스는 그 말에 약간의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유신은 귀까지 새빨개졌다.
***
학자이자, 마법사이며 지구 최고의 결계술사인 디에고와 결계에 조예가 깊은 철호가 힘을 합쳤다.
그 둘의 시너지 효과는 예상외로 뛰어났다.
결계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예상했는데, 단 사흘 만에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결계가 빈약한 것도 아니었다.
막시우스는 결계가 완성되자, 예전과는 다른 결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예전과는 어떻게 다르다는 것이냐?”
“네. 예전에는 자연재해라는 환상을 만들어서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물론이다. 공포는 최고의 방어 수단이고, 언데드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게 되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간혹 몬스터가 마을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길을 잃은 잔챙이일 뿐이다.”
디에고는 막시우스의 자신감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부서진 결계는 어느 지점을 통과하면 환상이 실제가 되어서 공격하는 결계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정석도 많이 잡아먹고 마을 사람들도 마을 밖으로 나가기 힘든 비효율적인 결계였다.
“이 결계는 다른 기능은 따 빼고, 마을에서 허락을 해줘야지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공격 기능은 빼고 누가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마을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막시우스는 지금 이 결계보다 전에 결계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철호가 막시우스에게 푸른 돌을 건네줬다.
“결계를 조정할 수 있는 돌입니다.. 평소에는 디에고가 말한 기능으로 움직이고, 돌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실체화된 공격이 다가오는 자들을 막습니다.”
“실체화된 공격?”
“네. 단지 그렇게 되면 마정석의 소모가 평소의 10배가 넘을 겁니다.”
“하하하핫!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서아프리카다. 마정석이 넘쳐나는 곳이지.”
막시우스가 다른 기능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때 사흘 동안 몬스터가 마을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다리우스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시죠?”
“걱정하지 말아라. 약속은 지켰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미 유신이 있는 방에 두었다.”
촌장의 집 안.
유신은 침대맡에 놓여 있는 팜 와인을 보고 기분 좋게 들이켰다.
그리고 서서히 졸음이 쏟아졌다.
“왜 이렇게 졸리지?”
그렇게 유신은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긴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