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_서아프리카(5)
막시우스는 유신이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 유신을 가격하고 있는 존재는 죽음이었다.
세계정부에서 서아프리카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가 저 죽음 때문이었다.
죽음이 나타나면 그 마을은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막시우스는 자신이 끝까지 유신을 말리지 않고, 막지 않는 것에 대해서 후회했다.
텅
죽음이 유신에게 가한 일격은 예상했던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유신은 죽지 않고, 수미터를 튕겨 나간 후에 땅바닥을 굴렀다.
막시우스는 지금이라도 유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런데, 유신이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X바 드럽게 아프네! 넌 뭐야?!”
불평불만을 토하던 유신은 죽음이 있는 방향으로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콰콰쾅
“끼에에엑!!”
서아프리카의 공포인 죽음이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물론 막시우스도 홀로 죽음을 처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신처럼 저렇게 쉽고 간단히 죽음을 처치하지 못한다.
막시우스는 유신의 저력에 놀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빨리 피해!”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한 방 맞으니까 정신이 드네요.”
유신은 저 멀리 있는 막시우스와 대화하면서도 쉴 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언데드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나갔지만, 막시우스는 그 모습이 외줄을 타는 것 같아 더욱 애가 탔다.
“그게 아니네. 죽음은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네.”
막시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신의 주위로 수많은 죽음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연기냐?”
이제는 태평해 보이기까지 한 유신을 바라본 막시우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무리 유신이 강하더라도, 저 많은 수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세대에서 부두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자, 막시우스는 주위에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외치듯이 명령했다.
“빨리 애들을 데리고, 여기서 떠나게.”
마을 사람들 또한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촌장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떠날 준비를 했다.
“촌장님도 빨리 오십시오.”
“아니네. 나는 여기서 최대한 죽음을 저지하며 시간을 벌겠네.”
“촌장님···”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하지만···”
“빨리!!”
부두교 마을이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신은 자신을 둘러싼 검은 형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더럽게 많네.”
유신은 그 말과 함께 검기를 가늘고 길게 뽑아냈다.
채찍 형태의 검기를 형성한 유신이 죽음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끼에에엑!”
“끼에에엑!”
검기에 몸이 닿은 죽음이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연기로 화하며 흩어졌다.
유신은 그렇게 계속 검을 휘두르며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검기가 상대의 몸에 닿을 때마다 검기가 옅어졌기 때문이었다.
검기가 옅어지고 사라져 간다고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지체하면 죽는 건 본인이었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까 어디 마음껏 싸워보자.”
사방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보고 유신은 검에 포스를 더욱 집어넣었다.
포스를 이용해 아까보다 더욱 두껍고 긴 채찍을 만들어서 리본체조를 하듯이 움직였다.
특히,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해 채찍을 자신의 몸 주위로 돌리는 것은 과히 압권이었다.
죽음은 그럼 유신의 채찍에 분쇄되고 다시 재생성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유신과 죽음의 대결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 전투 중에 죽음에게서 변화가 생겨났다.
파편처럼 잘게 썰린 죽음이 안개처럼 주위에 퍼지더니 덩치를 키워나갔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유신과 그 일대를 덮어버렸다.
“···안 돼.”
막시우스는 유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자신의 데스나이트들을 소환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그때, 검은 연기 사이로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더니 검은 연기를 꿰뚫어 버렸다.
“끼에에엑!!”
“지가 무슨 전대물의 악당이야? 합체하고 있어.”
유신의 검에는 순백으로 빛나는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마무리하자.”
죽음은 유신의 말을 알아먹기라도 한 것인지 유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신보다 오러에게서 멀어지려는 모습이었다.
“널 해치울 기술인데, 기술명은 듣고 사라져야지? 정식 명칭은 오러지만, 나는 이걸 이렇게 부르지. 순백의 광검!!”
멀어져가는 죽음을 향해 유신의 오러가 작렬했다.
쑤욱
오러는 죽음에게 깊게 꽂혔다.
쩌어억
뭉쳐있던 죽음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유리창 깨지듯 깨져나갔다.
죽음이 사라지는 모든 과정을 본 막시우스는 세 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소환한 채 공격 명령을 내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막시우스가 놀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 유신은 평소처럼 남아있는 언데드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 오늘 밤도 길겠다.”
막시우스는 유신의 투정 아닌 투정을 듣고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빨리 저 아이를 도와서 언데드를 섬멸하거라.”
뒤늦게 데스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린 막시우스는 유신이 걱정돼서 서둘러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랐다.
며칠 동안 악귀처럼 싸우던 유신의 동공이 풀려 있었다.
지금 유신은 정신을 잃은 채 검은 휘두르고 있는 거였다.
“대단한 의지야. 이제 그만해도 된단다.”
가까이 다가온 막시우스의 말에 잠시 기절했던 유신의 정신이 돌아왔다.
“네?”
“그만 쉬어도 된다는 말이네.”
“빨리 돌아가세요. 여기 위험해요.”
“하하핫 나에게 위험하다고 피하라 말하는 사람은 다리우스와 데리우스 이후에 처음이군. 보통 내게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인데, 자네는 충분히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있네.”
“자꾸 무슨 소리세요?”
“하하핫 됐네. 이만 쉬게.”
“아니 아직 아침도 안됐는데 뭘 쉬어요.”
“주위를 둘러보게.”
막시우스의 말에 그제야 유신이 주위를 둘러봤다.
죽음의 오라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 세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언데드를 학살하고 있었다.
“저거 설마 데스나이트예요?”
“나와 평생을 함께한 놈들이지.”
“와 대박! 저 데스나이트 처음 봐요. 구경해도 돼요?”
“그건 나중에 하고 이제 정말 쉬게. 이 부두교의 촌장이 벌써 몇 번째 같은 말을 하게 할 건가?”
어제만 하더라도 유신은 막시우스의 권유를 정중하게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피곤함도 극에 달했기에 막시우스의 말이 더욱 달콤하게 들려왔다.
“저··· 그러면···”
“그래 말하게.”
“제가 자는 동안 언데드로 만드는 건 아니죠?”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산 사람을 언데드로 만들다니? 자네에게 우리 부두교가 그렇게 보였나?!”
유신은 막시우스가 화를 내자 더욱 아무 말도 못 하고 민망해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대체 우리 부두교를 어떻게 보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요.”
“말해 보게.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지.”
막시우스의 부추김에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우스와의 약속을 잊고 말을 내뱉었다.
“사실은 다리우스 선배가 떠나기 전에 제가 죽거나 잠들면 절 좀비로 만들 수 있다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했거든요.”
“···다리우스 이 새끼!!”
“아니 그게 아니라··· 다리우스 선배가 농담, 농담이었어요.”
급하게 유신이 변명했지만, 막시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다리우스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시우스는 이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그리고 마을의 영웅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나 막시우스 트찰라의 이름을 걸고 그럴 일은 없도록 만들겠네.”
“···가···감사합니다.”
“이제 가지.”
“네. 잠시만요. 잠깐만 데스나이트를 뒤로 물려주실 수 있으세요?”
“응?”
“잠깐이면 돼요. 잠깐이면.”
“알겠네.”
막시우스가 손가락을 부딪치자, 언데드를 학살하던 데스나이트가 재빨리 막시우스의 뒤로 시립했다.
유신은 북한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이미 수명을 다해 언제 부러져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태였다.
“마지막은 화려하게 가자.”
검은 유신의 말에 호응하듯이 잘게 떨었다.
마지막에서야 검의 말을 알아들은 유신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새하얀 오러를 만들었다.
오러는 평소처럼 새하얀색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더욱 밝게 빛났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유신이 아주 천천히 가로베기를 허공에 시전했다.
새하얀 오러가 지나간 길은 유성우의 꼬리처럼 길게 빛을 뿜어냈다.
사라락
검이 먼지가 되어 유신의 손을 떠났다.
그에 맞춰 전방에 있던 모든 언데드가 양분되어 갈라졌다.
“헤헤. 이게 진정한 오러구나.”
유신은 그 말을 내뱉고 그대로 기절하며 쓰러졌다.
다행히 막시우스가 재빨리 부축해서 유신이 철퍼덕 땅과 키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막시우스는 유신을 들쳐업고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리우스 말대로 정말로 해부해보고, 데스나이트로 만들고 싶은 아이군.”
기절한 상태의 유신은 막시우스의 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저 부르르 몸을 떨었다.
***
언데드의 사체가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는 부두교 마을 앞으로 지프차 한 대가 다가왔다.
마을의 경계를 서고 있던 청년들은 지프차를 보고는 자신들의 언데드를 소환하며 경계에 눈빛을 보냈다.
그때 지프차의 문이 열리며 다리우스가 차에서 내렸다.
“별일 없었지?”
청년들은 다리우스라는 걸 확인하고는 소환한 언데드를 집어넣었다.
다리우스는 사람들의 환대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일주일 전과 비교해서 마을이 조용하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늦게 내린 철호도 그 분위기를 느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유신은 어디 있어?”
마을을 지키기로 했던 유신이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운전석 문이 열리며 훤칠한 키에 잘생긴 중년 남성이 차에서 내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다리우스가 그렇게 칭찬한 막내라는 놈이 보이지 않나 보네? 뭐 둘 중 하나겠지. 도망갔거나, 죽었거나.”
“디에고 브로~”
“왜?”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다리우스의 살기 가득한 눈빛에 디에고는 입을 삐죽 내밀기만 하지 더는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그렇게 디에고를 조용히 시킨 다리우스는 경계를 서고 있는 청년들을 바라봤다.
“유신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은인께서는 현재 촌장님의 집에 있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경계를 서고 있는 청년들은 마을 밖의 언데드 사체를 가리켰다.
“하유신님이 6일 동안 홀로 마을을 지키시고, 지금은 쉬고 계십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막내가 뭘 어떻게 해길래 은인이 된 거냐고?”
다리우스의 말에 경계를 서던 청년 중 키가 조금 더 큰 청년이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유신의 활약상을 설명하던 청년의 눈빛은 점점 몽환적으로 바뀌어 갔다.
“유신이가 죽음까지 상대했다고?”
“네. 새하얗게 빛나는 검을 날리니 죽음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은인이라 칭해 질만 하네. 상태는 어떤데?”
“저는 마지막에 잘 보지는 못했지만, 막시우스 촌장님께서 업고 돌아오셨습니다.”
“알았어. 수고해~”
대화를 끝낸 다리우스는 유신이 걱정되어서 철호와 디에고를 데리고 빠르게 유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걷고 있을 때 디에고가 다리우스를 불러세웠다.
“다리우스 죽음이 뭐지?”
“죽음? 죽음은 말 그대로 죽음이지.”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잖아.”
“음··· 네가 정한 몬스터 등급으로 따지면 SS급에서 최상위일걸.”
“그게 말이 된다고···생”
“브로~ 대화는 이따가 하고 우선 움직여.”
다리우스는 디에고의 말을 자르며 빠르게 달려서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유신은 죽음을 상대한 것 치고는 멀쩡한 모습으로 걸신들린 것처럼 입안 가득 음식을 먹고 있었다.
“쩝쩝. 어~ 선배들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