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_서아프리카(4)
마을 사람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수백 아니 천 마리가 넘을 수도 있는 몬스터화 된 물소무리를 바라봤다.
뒤늦게 달려 나온 막시우스가 물소무리를 보고는 내 멱살을 잡았다.
“네 놈 때문에 우리는 다 죽게 생겼어!”
막시우스의 감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이들에게 걱정말라, 호언장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블레이드 샷을 백 번 넘게 사용하더라도 저 물소를 다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여기서 죽는다면 제가 제일 먼저 죽을 테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지금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냐.”
“네! 전 아직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요. 더 늦기 전에 놔주세요.”
내 말에 막시우스의 손에 힘이 풀렸다.
나는 막시우스와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저 멀리 다가오고 있는 물소무리를 바라봤다.
저렇게 군집 생활을 하는 놈들에게는 대장이 있다.
대장의 역할은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역할은 길잡이다.
그러니까 나는 꼭 물소들을 다 잡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대장을 건들어서 방향만 틀면 됐다.
“찾았다.”
나는 곧바로 대장 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당연히 대장 물소는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었고, 다른 물소들보다 덩치가 2배는 컸다.
절대로 대장을 죽이면 안 된다.
그저 성질을 건드려서 방향만 틀면 됐다.
“힘 조절. 힘 조절.”
나는 검을 집어넣고, 주먹을 말아쥐며 물소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우선 주먹에 약간의 포스만 담아서는 그대로 대장 물소를 향해 내질렀다.
퍽
실험 삼아 내지른 주먹이었지만, 대장 물소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딱 2배의 포스를 주먹에 담아 내질렀다.
퍽!
대장 물소가 나를 슬쩍 바라봤지만, 그게 다였다.
2배가 안 되면, 3배, 4배 계속 포스를 늘려가면서 포스를 뿜어냈다.
하지만, 대장 물소는 타격기에 면역이라도 된 것인지 이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그때 생각난 것이 양치기 개들이었다.
개들은 양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저 소리로 몰이를 할 뿐이다.
나는 아공간에서 한 자루의 검을 소환한 후 포스를 담아 그대로 던졌다.
쇄애액~
콰앙!
포스를 머금은 검이 대장 물소의 왼쪽으로 날아가 터져나갔다.
소리에 놀란 것인지, 파괴력에 놀란 것인지 대장 물소가 약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됐어!”
북한에서 죽창을 던졌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죽창이 없기에 아공간에 있는 검을 계속 소환해서 집어 던졌다.
쾅쾅쾅쾅쾅쾅···
검을 던진 만큼 내 아공간은 가벼워졌다.
그래도 검을 소모한 만큼 물소무리의 방향은 점점 틀어졌다.
순식간에 훈련용 검 37자루가 사라졌고, 물소무리는 마을에서 멀어졌다.
“크어어엉”
마을을 위험에서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물소들을 쫓던 사자들이 숨어서 호시탐탐 마을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들은 멀어져가는 물소무리보다는 가만히 있는 마을 사람들로 목표를 바꾼 것 같았다.
사자들을 블레이드 샷으로 한 번에 해결하고 싶지만, 녀석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내가 마지막 검을 소환해서 손에 쥐고 있을 때였다.
암사자 한 마리가 내가 아닌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온몸의 포스를 폭발시키듯이 사용해서 암사자 앞을 가로막고는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단 한 번에 암사자의 몸을 양분했다.
암사자의 피가 땅으로 떨어졌고,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제길!!”
다른 사자들이 산발적으로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대충 세어본 사자의 수는 약 십여 마리였다.
넓게 퍼져서 다가오는 사자들을 막기에는 내 몸이 그렇게 재빠르지는 않았다.
사자들이 아무리 몬스터화 됐다고 하더라도 동물이다.
약육강식이라는 동물의 본능을 믿으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내뱉었다.
“크아아아앙!!!”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포스의 조절 또는 여유를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뱉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포스를 뱉어냈고, 다행히 그게 효과를 발휘했다.
사자들이 꼬리를 말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솔직한 마음은 이대로 사자들을 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자들은 여기에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위험의 변수를 남길 수 없기에 사자들을 뒤쫓아갔다.
***
막시우스는 부두교 역사상 최고의 주술사였었다.
최고의 칭호는 근 20년 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데리우스와 다리우스가 태어나고 열다섯이 될 때쯤 최고의 칭호를 빼앗겼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막시우스는 웃으며 칭호를 넘겨줬다.
한때 최강자였던 막시우스는 물소무리를 사냥할 수는 있지만, 마을 사람들을 지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신은 물소무리를 처치한 게 아니라 몰이를 해서 방향을 바꿨다.
그 모습을 보고 기지가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막시우스가 놀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제는 단 일검에 코끼리를 잡았습니다.”
“잠도 안 자고 밤새 언데드를 물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유신에 대한 증언이 잇달았다.
저 모습들과 증언을 토대로 보니, 정말로 유신이 결계를 힘으로 부순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자를 쫓아간 유신은 단 10분 만에 마을로 돌아왔다.
온몸에 사자의 피를 묻힌 상태로 말이다.
“헥헥.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은 없었죠?”
“······”
“···역시 말이 없으시네요. 그럼 무언의 긍정으로 들을게요.”
유신은 그 말을 하고선 마을 입구에 털썩 주저앉아서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막시우스는 오자마자 사자의 피를 닦지도 않고 수련하는 유신을 보고 재차 놀랐다.
사람은 조금만 힘이 들면 쉬고 싶어진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면 유신은 어젯밤부터 한숨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았다고 했다.
꼬르르륵~
우렁찬 소리는 유신의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막시우스는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이 젊은 손님에게 식사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다.
“음식을··· 음식을 가져와라.”
“네? 음식이요?”
“그래.”
“아···알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유신은 배고픔도 잊고 포스를 끌어모았다.
다리우스는 유신에게 딱 일주일만 버티라고 했다.
일주일.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잠도 제대로 못 자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순간 마을 사람들도 그리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후읍~ 파~”
마지막으로 길게 포스 호흡을 내뱉으며 유신이 눈을 떴다.
그러자, 포스 호흡법을 운용할 때는 맡지 못했던 음식 냄새가 코안 가득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신 주위로 처음 보는 음식들이 널려 있었다.
“꿀꺽.”
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군침을 흘리면서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유신을 보고 막시우스가 음식을 권했다.
“뭐 하는가? 어서 먹도록 하게.”
“저 주시는 건가요?”
“그럼 누굴 주겠나?”
감동의 눈빛을 쏟아내던 유신이 갑자기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러나?”
“설마···이게 제 최후의 만찬인가요?”
“응?”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죽기 전에 주는 음식인가요?”
막시우스는 그런 유신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앞에 있는 유신은 싸울 때는 악귀 같으면서 또 이럴 때는 엉뚱했다.
“마을을 지켜준 보답이네.”
“아···”
“안 먹을 텐가?”
“아···아닙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유신이 제일 먼저 집어 든 음식은 닭다리였다.
닭다리는 우리가 아는 사이즈가 아니라, 유신의 팔뚝보다 컸다.
하지만, 아무리 큰 닭다리라고 해도 굶주린 유신에게 잡힌 순간 순식간에 얇은 뼈만 남겨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해도 될 만큼의 음식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유신이 식사하는 모습이 예전 13기동 타격대가 회식하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꺼억~”
마지막으로 달짝지근한 음료를 마시고 길게 트림을 하자,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와~ 이 음료 맛있네요.”
“팜 와인이라고 야자수의 수액으로 만든 음료네.”
“와인이요? 그럼 알콜이 있는 거예요?”
“신선한 팜 와인은 알콜이 없네.”
“하~ 다행이네요. 제가 술은 좀 약한 편이라서요.”
솔직히 막시우스는 마을의 결계를 날려버린 유신이 꼴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책임감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한 잔 더 할 텐가?”
“아뇨. 괜찮습니다. 이제 더는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배불러서요.”
유신이 자신의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자, 막시우스가 빙그레 웃었다.
“배부르다니 다행이군. 그만 들어가서 눈 좀 붙이게.”
“아뇨. 괜찮습니다.”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다고 들었네.”
“곧 해가 지잖아요.”
“언데드 때문에 그런 건가? 그건 걱정하지 말게. 여기는 부두교야. 죽은 자들과 가장 친숙한 곳이지.”
막시우스의 말에 유신은 그대로 고개를 끄떡일 뻔했다.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함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들어간다고 잠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이유는 단순했다.
멍청하고 호구 같지만,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하유신이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였다.
“정말 힘들다면 그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여력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의 고집인 건가?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네. 내 말 듣게.”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
막시우스는 고집불통인 유신을 보고 인상을 썼다.
유신은 해가 져서 막시우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억양과 뉘앙스로는 막시우스가 인상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쿠아아악.”
어젯밤 유신은 언데드를 끝도 없이 무로 돌려보냈지만, 다시 그에 버금가는 숫자가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후~ 저 그러니까 아버··· 아니 촌장님.”
“막시우스네.”
“네?”
“내 이름은 막시우스 트찰라. 그냥 막시우스라 불러도 되네.”
“아···그래도 선배 아버지이신데···”
“자네의 그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우리의 친구로 불릴 자격이 있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막시우스.”
“알겠네. 몸 조심히 갔다 오게.”
“넵!”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유신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럴까?
한껏 긴장했던 육체가 조금은 풀어졌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가 바로 하유신이다!!”
유신은 부끄러움도 없는지 크게 외치며 언데드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이튿날 밤이 지나갔다.
***
유신의 부두교 생활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몬스터화 된 동물들을 상대했고, 밤에는 언데드를 물리쳤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좀비에게 공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전투 슈트 덕분에 피해는 없었지만,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나흘째에는 낮에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었다.
언제 또 물소무리 같은 존재가 나타날 줄 모르기 때문에 막시우스에게 허락을 구하고 나무 한 그루를 베어와 목창을 만들었다.
다섯째 날에는 어제 하루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소보다 세 배 많은 숫자가 나타났다.
팔찌에 충전되어 있는 그레이트 실드를 전부 소모하고, 만들어둔 목창 덕분에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지금 여섯째 날.
유신은 몬스터화 된 동물들을 물리치고, 소모된 포스를 채워나갔다.
그런데,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는 건지 잠을 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육체와 정신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해가 지고 다리우스가 오기로 한 전날 그러니까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쿠어어억
다가오는 좀비들을 보며, 막시우스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나는 유신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정말 우리한테 맡기게.”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자네 이틀째 밥도 먹지 않았어.”
“뭘 먹···으면 너무 졸···려서요.”
유신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처참하기까지 했다.
다크써클은 눈 밑이 아니라,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명검 반열에는 들지 못하지만, 꽤 단단했던 리수진이 선물해 준 검은 여기저기 이가 나갔다.
거기다가 검에 피어오른 포스가 첫날과 둘째 날과는 다르게 너무나 미약했다.
얼마나 미약하면, 어린아이가 후~ 불면 꺼져버릴 것 같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 유신은 흐느적거리며 언데드에게 검을 휘둘렀다.
움직임이 예전만 못했지만, 검은 평소처럼 언데드를 조각내고 있었다.
그리고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언데드 중에서 온몸에 검은 연기를 휘날리는 존재가 지친 유신의 등 뒤에서 나타나 팔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