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_서아프리카(2)
우리는 지프차의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지한 채 깜깜한 서아프리카 대륙을 달렸다.
운전하고 있는 다리우스 선배가 아직 멀었다고 몇 번이나 자라고 말을 했지만 쉽게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콰직!
방금처럼 약간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지프차가 서아프리카의 언데드를 치면서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누런 뼛조각과 뼛가루가 휘날리고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강심장일 것이다.
하지만, 내 심장은 여리디여린 근육일 뿐이...
“음냐~”
“막내 브로~ 일어나 봐~”
“네? 네. 저 안 잤어요.”
“침이나 닦고 말해.”
나는 스리슬쩍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았다.
“무슨 일 있어요?”
“잠깐 운전대 좀 잡아봐.”
“어? 저… 면허 없는데…”
내 말에 다리우스 선배가 이상한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브로~ 그래도 운전은 할 수 있지?”
“운전대도 만져 본 적 없습니다.”
“그래도 잡아. 안 그럼 위험하니까.”
“네?”
다리우스 선배가 턱으로 내 창 쪽을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간 나는 곧 거대한 눈과 마주치게 됐다.
“으악~!! 이게 뭐예요?”
“뭐긴. 치타지.”
“네? 치타가 이렇게 크다고요?”
우리 옆에서 달리고 있는 치타는 13기동 타격대가 쓰고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만큼의 크기를 자랑했다.
“...여기 서아프리카야.”
“아 맞다. 여기 서아프리카였지.”
“너무 쉽게 수긍하니까 그것도 좀 마음이 아픈데?”
“헤헤~”
내가 헤픈 웃음을 끝내기 전에 다리우스 선배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급하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지프차는 드리프트를 하면서 옆으로 방향을 틀었고, 우리가 있던 땅에는 치타의 날카로운 발톱 자국만이 남았다.
저 발톱이 지프차에 닿았다면, 지프차와 함께 내 몸은 양단되거나 짓뭉개졌을 거였다.
“다리우스 선배 어떻게 좀 해봐요.”
“브로가 핸들만 잡으면 어떻게 해줄 수 있다니까.”
“저 운전 못 한다니까요.”
“그럼 일단 포스라도 날려봐.”
나는 보조석 창문을 열고선 빠르게 쫓아오는 거대 치타에게 주먹을 뻗으려고 했다.
하지만, 앉아서 주먹을 내지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나마 포스가 원활히 움직이면서 빠르게 주먹을 뻗을 수 있는 각도를 찾고는 서둘러 주먹을 내질렀다.
퍽.
포스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치타의 맷집이 좋았던 걸까?
내 공격은 치타를 잠깐 멈칫하게만 했다.
“막내 브로~ 방금 공격은 실망인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가 운전대를 잡으려고 했었다.
아무리 불법이라고는 하지만, 교통경찰도 그렇다고 법규도 없는 곳에서 계속 안 잡기도 뭐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리우스 선배의 저 말에 오기가 생겼다.
“맛보기입니다. 맛보기.”
“그렇지 그런데 이제 맛보기는 그만하고 빨리해야 할 것 같아. 빨간불 들어왔어.”
“네?”
“기름 떨어졌다고.”
나는 재빨리 지프차의 계기판을 확인했다.
다리우스 선배 말대로 계기판에는 주유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아까부터.”
아깝지만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차를 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다리우스 선배. 차 버리죠.”
“강문 브로 꺼야.”
“네? 강문 선배 거라니요?”
“이 차가 강문 거라고. 그것도 완전히 아끼는.”
“아니 서아프리카 올 거면서 이걸 왜 빌려왔어요!!”
“말할 시간에 치타나 좀 막아봐.”
고개를 돌려 치타를 바라보니, 벌써 차량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는 제대로 자세를 잡고 치타를 향해 포스를 퍼부었다.
퍼퍼퍼퍽
다행히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는지 쫓아오던 치타가 멈춰 섰다.
하지만, 확실한 타격은 없었는지 치타는 더욱 흉폭하게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해봤자, 기름이 떨어지면 지프차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 나는 뒷좌석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검을 소환한 후 트렁크를 열었다.
그 상태에서 포스를 검에 때려 박은 후에 치타에게 집어 던졌다.
쇄애애액
팍!
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서 그대로 치타의 이마에 박혔다.
달리던 치타는 의식을 잃고 가속도의 힘으로 나뒹굴었다.
그렇게 치타를 처치하고 나니, 다리우스 선배가 서서히 차량을 멈춰 세웠다.
“막내 브로~ 진작에 그렇게 하지.”
“자세가 제대로 안 잡히면 포스에 제대로 힘이 안 실어지더라고요.”
“뭐 처리했으니 됐어. 일단 기름부터 넣고 가야겠다.”
“여기서요? 어떻게요?”
“이렇게?”
아공간에서 기름통을 꺼낸 다리우스 선배가 주유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막내 브로~ 주유하는 동안 잘 막고 있어.”
“네? 뭘요?”
“뭐긴 쟤들이지.”
첩첩산중이라고 다리우스 선배가 가리키는 곳에는 온갖 언데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언데드하면 대부분 인간형을 언데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아프리카에서는 인간형 언데드는 일절 보이지 않고, 모두 동물형 언데드였다.
“다리우스 선배 얼마나 걸릴까요?”
“두통만 다 들어가면 돼. 그때까지는 충분하지?”
“당연하죠. 기름이 다 들어가기 전에 언데드들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나는 호언장담을 하며 새롭게 검을 소환한 후에 언데드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이놈들한테 오러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포스를 이용한 검기만으로도 충분히 멱을 딸 수 있었다.
“좋구나~”
무의식적으로 구성진 가락이 나왔다.
다리우스 선배의 듀라한에게는 발렸지만, 꽤 오랜 기간 뼈다귀들과 싸워보니 가장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는 언데드였다.
그래도 인간형이 아니라 동물형이라서 그런지 나는 쉴 틈 없이 상하좌우 다양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바탕 검무를 췄더니 내 주위로 언데드의 목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부릉 부르릉
그 사이 다리우스 선배는 기름을 다 넣었는지 벌써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나는 경쾌한 엔진음을 들으며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리우스 선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브로~ 이제야 궁금한 거야?”
“헤헤~”
내 넉살 좋은 웃음에 다리우스 선배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던 곳으로 갈 거야.”
“아~ 그러면 다리우스 선배 집이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아직 한참을 가야 하니까 좀 자둬~”
“아휴~ 운동하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거대 치타를 처치하고, 연달아서 언데드를 상대했더니, 전투로 인해 끓어오른 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
이렇게 흥분된 상태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거였다.
***
“으아하~”
나는 따뜻함을 넘어 뜨거운 햇살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너무나 잘 잤다.
내가 자는 동안 다리우스 선배는 아침이 밝아왔는데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다리우스 선배 아직도 운전 중이었어요?”
“막내 브로~ 안 잔다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네요. 다리우스 선배도 좀 쉬어야 하는데, 저 깨우지 그랬어요.”
“브로가 너무나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지 못했어.”
“정말 죄송해요. 요즘 이상하게 자주 피곤하네요.”
다리우스 선배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럴 만도 하지 아직 적응이 안 됐으니.”
“네? 적응이요?”
“응 브로의 정신이 육체와 포스를 못 따라가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세요?”
“간단히 말해서 육체와 포스가 100인데, 그걸 조정하는 정신이 10도 안 된다고 보면 돼.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그래.”
“환골탈태하고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요?”
“지금까지 겨우 버틴 거지 뭐~ 그래도 걱정하지 마. 지금 가는 곳에서 정신력 강화를 할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대화 없이 또 한참을 달렸다.
동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해가 어느새 우리 머리 위에 떠 올라서야 차가 멈췄다.
“어? 벌써 도착했어요?”
“응 거의~ 이제부터는 차로 갈 수가 없거든.”
“아··· 허허벌판인데요?”
“일단 내리자. 브로~”
“넵.”
그렇게 다리우스 선배와 내가 차에서 내렸다.
나는 굳어있던 몸을 풀기 위해 길게 기지개를 켰고, 그동안 다리우스 선배는 아공간에 지프차를 집어넣었다.
그때 갑자기 의문점이 들었다.
“저기 근데 다리우스 선배.”
“왜 브로?”
“처음부터 여기로 텔레포트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브로~ 마법은 만능이 아니야?”
“네?”
“우리가 처음 텔레포트한 곳이 가장 안정된 곳이고, 우리가 거쳐온 곳이랑 이곳은 사기 때문에 마나가 불안정해서 텔레포트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걸.”
“아··· 이해했어요.”
“그래 브로~ 그것도 이해 못 하면 죽어야지. 일단 출발하자고~”
그렇게 다리우스 선배와 내가 허허벌판을 걷고 있을 때였다.
창이 땅에 박혀있고, 창 위에는 동물들의 두개골이 걸려있는 곳에 도착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는데, 다리우스 선배가 멈춰 섰다.
“브로~ 이제부터 걷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이상하면 그냥 가만히 있어. 딴짓하지 말고.”
“무슨 일이요?”
“응. 특이한 일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제자리에서 서서 가만히 있어.”
“위험하거나 그렇지는 않죠?”
“···응 그럴 거야.”
“네. 그렇게 할게요.”
나는 건성으로 다리우스 선배의 말에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허허벌판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저렇게 신신당부하니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뭔가 이상하면 정말 가만히 있을게요.”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서야 다리우스 선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었지만, 다리우스 선배가 말했던 이상한 일이 생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땅이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더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콰르릉.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들렸고, 조금씩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다리우스 선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조금 전에 다리우스 선배가 말하지 않았다면, 많이 놀랐을 거였다.
그때 안개가 더욱 진해지더니 앞에서 걷던 다리우스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우스 선배! 다리우스 선배!!”
한참을 불러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목소리에 포스를 섞어서 외쳤다.
“다리우스 선배!! 저 여기 있어요!!!”
순간 안개가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겨우 느낌이었다.
우르릉 콰쾅
하늘은 갑자기 더욱 큰 천둥소리를 내뱉었다.
천둥소리에 겁을 먹은 게 아니다.
그저 다리우스 선배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말이 상기돼서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리우스 선배를 기다리는 동안 안개는 물감통에 물감을 쥐어짠 것처럼 진해졌다.
안개와 함께 불안감이 나를 덮쳤고, 이제는 고개를 숙여도 안개 때문에 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데, 이러다가는 내가 정신적으로 지쳐 버릴 것 같았다.
“후읍~ 파!”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랠 겸해서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환골탈태한 후에 포스 호흡법은 새로운 경지에 들었다.
예전에는 사용한 포스를 다시 모으거나, 포스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속 포스의 순도 자체가 월등히 높아서 따로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내공이 아닌 포스로 단전을 생성한 후에는 세포 하나하나에 포스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한참 포스 호흡법을 운용해서 몸속에 그득그득하게 포스를 채웠다.
그러자, 이제 슬슬 몸이 근질근질했다.
“괜찮겠지?”
나는 누가 듣는 것도 아니지만, 괜스레 입 밖으로 말을 꺼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젠 안개 때문에 눈앞에 있는 것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선배~ 다리우스 선배~”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근질근질한 몸을 풀 겸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제자리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막 어디를 돌아다니거나 움직이면 문제지만, 정말 가만히 서서 기본 검술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다리우스 선배. 저 가만히 있을 거예요. 그냥 제자리에서 검만 휘두를게요.”
나는 검 한 자루를 소환해서는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한번 외쳤다.
“선배~ 대답 없음 진짜 훈련합니다.”
“······”
“무언의 긍정으로 알겠습니다.”
나는 자세를 잡고 포스를 집어넣어 검기를 만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검기가 간신히 검을 덮을 만큼만 만들었다.
이제 정말 제자리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
부두교 마을의 가장 큰 집.
화려한 장식을 한 흑인이 상석에 앉아 다리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다리우스는 로브와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상체는 거대한 검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근육보다 더 많은 상처가 그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막시우스.”
한쪽 무릎을 꿇은 다리우스가 상석에 앉아 있는 노인 막시우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제 돌아올 생각이냐?”
“아닙니다.”
“그럼 왜 여길 찾아왔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막시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의 아들 다리우스야. 부두교를 이끌어갈 존재는 너뿐이다.”
“그럴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데리우스의 자리입니다.”
“이미 죽은 아이가 어떻게 부두교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냐.”
“제가 살리겠습니다.”
다리우스의 말이 끝나고 부자의 대화는 끝이 났고, 한동안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 막시우스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잘난 다리우스야.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지?”
“잠자는 아이가 필요합니다.”
“그게 우리의 비전 물약인 것은 알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왔다.
“촌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결계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결계가 흔들리면서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막시우스와 청년의 대화에 다리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유신 브로~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