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_세계평화 컨퍼런스(2)
유신이 훈련장 가운데에 앉아 평소와는 다르게 훈련은 하지 않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유신의 손에는 세 장의 사인지가 놓여 있었고, 각기 크리스, 리암, 벨라의 사인지였다.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던 유신이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듯이 둘러보더니 조심히 사인지를 아공간에 넣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헤~ 정말 이러다가 13장 다 모으는 거 아니야?”
희망에 가득 찬 소리를 내뱉던 유신은 전설들이 들어간 컨테이너 사무실을 한번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인 후 평소처럼 훈련에 돌입했다.
그렇게 유신이 훈련하는 동안 컨테이너 사무실은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크리스, 리암, 벨라는 그저 반갑게 무혁을 만나기 위해 온 것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크리스가 평소보다 더 과장되게 웃으며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크하하하핫! 다들 있었군. 정말 오랜만이야.”
“······”
“어떻게들 지냈어? 다리우스! 마법사면서 근육이 더 커졌군.”
“······”
크리스가 한참을 떠들어도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 다들 왜 그래? 내가 안 반가워?”
그때 지금까지 쭉 가만히 있던 강문이 크리스를 돌아봤다.
“그럼 반갑겠어?”
“에이~ 사신 왜 그래?”
“정말 모르는 거야?”
“뭘?”
강문은 크리스가 평소에도 저런다는 걸 알고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모두 찬성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응? 뭐가?”
눈치 없는 크리스는 강문이 뭘 말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벨라가 조심히 크리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그 10년 전에 했던 협약 있잖아요.”
“크하하핫 1년 전도 기억 못 하는데, 10년 전을 어떻게 기억해?”
크리스의 말에 벨라가 괜히 한숨을 내뱉고는 13기동 타격대를 설득하기 위해 강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강문의 냉정한 눈빛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제야 알게 됐다. 사신이 앞에 있다는 것에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실수하는 순간, 친구를 만나러 왔던 게, 알고 보니 묫자리를 알아보러 온 게 돼버릴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저희가 철이 없었습니다.”
벨라가 13기동 타격대를 바라보며 사과하자, 리암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벨라 대체 왜 사과하는 거야? 그리고 너희도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그래? 대체 10년 전에 무슨 협약을 해서 그런 거야?”
크리스의 말에 벨라가 급히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강문이 손을 들어서 벨라를 저지시켰다.
“크리스.”
“오~ 사신 그래 뭔데? 뭐 때문에 그런 거야 좀 알려줘.”
“쟤들은 모르겠지만, 넌 바보라서 뜻도 모르고 찬성한 것 같아서 말해 줄게.”
“크하하하핫!! 역시 나한테 바보다. 눈치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너희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 이 부족한 나한테 말해봐!”
강문은 13기동 타격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목걸이를 꺼내서 크리스에게 던져줬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고 사는 크리스라고 해도, 눈앞에 최고급 마도구를 바라보자 눈을 빛냈다.
“이야~ 역시 우리가 지원해주니까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오~ 아공간에, 체온 조절 그리고 정신력 강화까지 너희 이런 것도 쓰는구나. 와 부럽다.”
“자세히 봐.”
“응? 뭐가 더 있나?”
의문을 표하던 크리스는 강문의 말에 더욱 유심히 목걸이를 바라보다가 점점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왜 능력 억제 기술이 들어가 있어? 이걸 착용하면 일반인이랑 다름없잖아.”
리암과 벨라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고, 크리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야? 대체 뭔데 너희가 이걸 착용하고 있어? 아무리 단계별로 능력 억제를 풀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다 풀어도 본신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걸 우리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너희 옆에 있는 저 쌍둥이들한테 물어봐야지.”
“벨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체 10년 전에 무슨 협약이 있었다는 거야?”
“그건···”
벨라가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사람 좋게 웃던 크리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빨리!”
크리스가 벨라를 닦달하자, 리암이 크리스와 벨라 사이에 끼어들었다.
“크리스 그만!”
“닥쳐! 네가 뭔데 나한테 그만하라 마라야! 대체 너희 쌍둥이 남매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래!”
자신의 능력처럼 불같은 성격을 가진 리암이 발끈해서 당장이라도 크리스와 한판 붙을 것처럼 온몸에 불을 피워냈다.
그러자, 크리스도 자신의 이명에 맞게 근육을 펌핑 시켜서 덩치를 키워나갔다.
“싸울 거면 여기서 싸우지 말고 나가서 싸워.”
강문의 외침에 크리스와 리암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능력을 억제했다.
아직 제대로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크리스는 강문에게 목걸이를 돌려주며 자신의 궁금증을 토로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사신 네가 말해 줄 수 있어?”
“뭐 어려울 것 없지.”
돌려받은 목걸이를 다시 착용한 강문이 냉소적인 미소를 선보이며 말을 이었다.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너희 협약 내용에는 이 목걸이를 착용해야 지구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과 지구에 복귀할 때마다 몇 가지 임무를 대신해 달라고 하더군. 그래야 목숨 걸고 지구를 지키고 있는 우리한테 지원해준다고 말했고.”
“처음 듣는 소리다. 내가 아는 사항은 우리 쪽에서 너희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게 다야.”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내가 알기로는 이 협약을 반대했던 사람은 쌩뚱맞게도 노사 그 영감탱이와 이자벨. 그리고 광···아니 성녀뿐이었다.”
“내가! 내가 다시 바꾸겠다.”
“그건 너희끼리 알아서 하고. 이만 나가봐.”
“알겠다!!”
크리스는 어떻게 해서든 이 협약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이 협약의 초안을 잡은 사람을 족치기 위해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리암과 벨라는 크리스를 쫓아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 무혁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기에 자리에 남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이라고 해도, 13기동 타격대의 눈 밖에 났고, 무혁은 쌍둥이 남매에게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벨라는 차마 무혁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크리스가 알게 됐으니 분명히 변화는 생길 겁니다.”
“필요 없어. 빨리 가 버려.”
“네···”
벨라가 나가고, 리암은 강문을 한 번 노려본 후에 벨라를 따라 컨테이너 사무실을 나섰다.
그들이 떠나자, 무혁이 아직 화가 나 있는 13기동 타격대를 쭉 둘러봤다.
“언제까지 뚱해 있을 거야?”
무혁의 말에 13기동 타격대 인원들의 표정이 평소처럼 풀어졌다.
그리고 강문이 미소를 지으며 무혁을 바라봤다.
“에이~ 대장. 이 정도는 해야지 제재가 좀 풀리죠. 아니면 지원을 더 해주던가.”
“···그래.”
***
한 시간 전.
세계국가 소속의 싱가포르 출신인 래플스의 사회로 컨퍼런스는 시작됐다.
처음은 미국과 호주에서 새롭게 발견된 몬스터에 대한 회의로 진행됐다.
다음으로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마법 도구인 광범위 몬스터 확인 GPS에 대한 성능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렇게 마법 도구에 설명을 끝내려고 할 때, 이자벨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들었다.
“네. 이자벨 로메님.”
“언제까지 일반인들에게 마도구에 대한 존재를 숨기실 건가요?”
이자벨의 말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세계 대통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자벨님. 일반인들이 마도구에 대해서 알게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마도구가 아니라 전시용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지금만 보더라도, 꽤 괜찮은 마법도구들을 수집하는 부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세계 대통령님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은 그럴 능력도 돈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호기사단에서 파악한 결과 암시장에 마도구들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거야 제재를 통해서···”
“마도구가 그렇게 흔한 물건이었나요? 차라리 대중에 공개한 다음에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건 다음에 다시 논의를 하시는 게···”
세계 대통령이 에둘러 말을 끝내려고 할 때, 이자벨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해도 되는 일 아닌가요? 아니면 암시장에 풀린 마도구에 대해서 세계 대통령께서도 관계가 있는 건가요?”
이자벨의 추궁에도 세계 대통령은 그저 모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스페인의 호킨스가 발끈했다.
“이자벨님 아무리 사람들이 추앙하는 전설이라고 하지만, 세계 대통령을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자벨이 냉소적인 미소로 호킨스를 바라본 후, 다시 세계 대통령을 바라봤다.
“세계 대통령님. 마도구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아직! 알릴 생각이 아니라면, 저희 수호 기사단에서 마도구 관련 수사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전 세계를 조율하는 세계 대통령의 자리는 어떻게 보면 허울뿐인 자리였다.
전설에게 치이고, 영웅들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면서 세계에 평화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통령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자벨의 말에 찬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를 조율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문제는 그렇게 쉽게 응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계 대통령님.”
“······ 이자벨님 그 사안은 다른 분들의 동의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동의 한다네.”
세계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노사가 손을 들고 동의 의사를 표하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이 문제는 바로 표결에 들어가도록 하지. 뭐 켕기는 놈들이 있다면 손을 들지 않겠지. 래플스 진행하게.”
노사의 말에도 래플스는 세계 대통령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러자 노사와 이자벨이 세계 대통령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세계 대통령은 두 전설의 무언 압박에 래플스를 향해 고개를 끄떡였다.
래플스는 허가가 떨어지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긴급 안건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투표는···”
“당연히 공개 투표로 가는 게 어떤가? 이건 모두가 싫은 일인데, 수호기사단에서 직접 맡아준다고 했으니 말이야. 괜찮지 않나 이자벨?”
“네. 괜찮습니다. 수호기사단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데, 당연히 임무를 기쁜 마음으로 받을 겁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래플스가 잠깐 눈을 감아 생각을 정리한 후, 말을 이었다.
“투표는 공개 투표로 진행하겠습니다. 암시장에 풀린 마도구에 대한 조사 및 회수를 이자벨 로메님의 수호기사단에서 맡아서 진행하는 것에 대해 투표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빠르게 투표는 진행되었고, 전원 만장일치로 끝이 났다.
여기서 손을 들지 않으면, 분명히 암시장과 연결되었다는 의심을 받기에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안건입니다. 현재 중국, 한국, 몽골에서 몬스터 땅의 일부를 인류화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가지 위급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현재 오크 로드로 의심되는 존재가 출연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회의로···”
드드드득
콰르르릉!
갑자기 회의장에 지진이 일어나더니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벽이 무너지고, 파편이 튀었지만, 세계평화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각국을 대표하는 능력자였기에 인명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단이 상황이 정리되자, 뒤늦게서야 사람들은 테러를 일으킨 존재가 허공에 떠 있는 걸 확인했다.
그는 낡은 로브 차림에, 왼손에는 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때 사회를 맡은 래플스가 그 존재를 향해 말했다.
“다···당신은 누굽니까? 왜? 세계평화 컨퍼런스 회의장을···”
퍽!
래플스는 더는 말을 이으지 못했다.
아니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그의 머리는 앞에 있는 존재에 의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72악마이며 정의의 백작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안드로말리우스다.”
안드로말리우스의 말에 이자벨과 노사를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