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_정의의 사도(3)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내게는 바닥이었던 곳이, 밑에 있던 사람들에게 천장이었던 곳이 무너져 내렸다.
보통 이런 경우 지하에 있던 사람들이 천장의 파편으로 인해 다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소보다 더욱 신경 써서 바닥을 부숴버린 것도 있지만,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간부급이었다.
어떤 조직에서든 간부급은 자신들만의 한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안녕들 하세요?”
나는 지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라이언 선배가 이들을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모두 멀쩡해 보였고, 주위는 포커 카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밖에 우리 애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지?”
내가 깽판을 친 상황에서도 당황한 기색도 없이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문을 했으면 대답해줘야 하기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려고 할 때였다.
“네···네놈은!!”
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있기에 고개를 돌려 확인해봤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이···이놈입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데, 상대가 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보자마자 내게 함부로 말하자, 내가 라이언 선배를 찾기 위해 왔다는 것도 까먹고 버럭 화를 냈다.
“언제 봤다고 이놈 저놈이야!!”
“아득! 네놈 때문에 우리가 이태원에서 얼마나 손해를 본 줄 알아!!”
상대가 이태원이라는 말에 기억났다.
분명 은빛 털의 늑대 인간으로 변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지? 분명 잡혀갔는데?”
“그건 네가 알바 아니고! 온몸을 잘근잘근 씹어 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놈은 그렇게 말하고선 늑대 인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변신하는 놈의 얼굴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깨깨갱”
개과 동물의 신음과 함께 놈은 그 한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역시 공격은 변신 중에 하는 게 최상의 크리티컬이었다.
내 주먹을 보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진중한 목소리의 주인이 말을 내뱉었다.
“뭐 이러나저러나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안 되겠군.”
그 말은 하고선 남은 다섯 사람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호랑이, 사자, 곰, 코뿔소, 쥐까지 이건 뭐 동물의 왕국이라서 나도 모르게 벙찌고 말았다.
그로 인해 변신 중에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크아앙”
“어흥~”
“베~어!”
“푸릉~”
“찍찍”
마지막 소리는 조금 걸렸지만, 이렇게 변신까지 했다는 것은 맷집이 좋아졌다는 걸 뜻했다.
그러므로 나도 조금은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힘 조절은 해야겠지만.
나는 양손에 포스를 싣고는 그대로 쥐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격에 벽과 키스하면 그대로 쓰러졌다.
그때 호랑이와 사자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나는 상체를 움직여가며 놈들의 공격을 회피했다.
예전에는 이런 회피를 감각적으로 하던 게 더 많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놈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눈으로 보였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말이 이걸까?
육감이 아니라 그냥 뒤에서 호랑이가 발톱으로 내 후두부를 공격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재빠른 움직임으로 놈들의 공격을 하나씩 회피해 가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위험한 감각이 들었다.
‘그실’
생각과 동시에 속으로 외쳤다.
쿠웅!
코뿔소가 언제 했는지 도움닫기를 통해 자신의 뿔로 나를 들이박았다.
그레이트 실드의 위력은 코뿔소의 공격을 손쉽게 막을 뿐만 아니라, 후속타로 공격하던 곰과 호랑이, 사자의 공격도 막아냈다.
놈들의 공격이 튕겨 나간 후 약간의 틈이 생겼고, 나는 포스를 주먹에 싣고는 그대로 내질렀다.
당연하게도 내 공격이 먹힐 줄 알았는데, 계속 뒤에 있던 곰이 사자와 호랑이를 밀어내고는 내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퍽!
곰이라서 그런가? 표정을 읽을 수 없어서 내 공격이 제대로 먹혔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최악의 수를 염두에 두고 회수한 주먹에 아까보다 딱 두 배 많은 포스를 담고는 포스에 회전을 걸어서 내질렀다.
퍼억!!
내 주먹이 곰의 복부에 꽂혔고, 곰은 바람개비처럼 회전을 하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콰지직!
벽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곰은 변신이 풀렸는지 다시 인간이 되었다.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자세히 바라보니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다는 걸로 봐서 죽지 않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시간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호랑이와 사자가 다시금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으로 호랑이의 손을 왼손으로 사자의 팔을 감싸 쥔 다음에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놈들의 공격을 서로에게 향하게 했다.
촤아악
푸우욱~
호랑이의 발톱이 사자의 어깨 한 움큼 뜯어냈고, 사자의 발톱이 호랑이의 배에 박혔다.
자신들의 공격이 서로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에 당황한 사이.
나는 양 손날로 녀석들의 뒷목을 가격해 기절시켰다.
“이게···되네?”
나도 모르게 활용한 이화접목에 어리벙벙해 있자, 등 뒤에서 코뿔소가 다시 한번 뿔을 앞세워 내게 달려왔다.
아무리 내가 딴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저렇게 거친 발구령으로 달려오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코뿔소가 내 지척까지 다가오자 그제야 손을 움직여 그대로 코뿔소를 벽면으로 밀어 넣었다.
이화접목의 묘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호랑이와 사자를 상대한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부드러운 감각은 아니었다.
콰아앙!
짧게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곰이 금을 낸 벽을 코뿔소가 부숴버렸다.
약간의 먼지구름이 피어올랐고, 코뿔소는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새X!!”
당연히 나한테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당장에 달려가서는 손바닥으로 코뿔소의 머리를 후려쳤다.
팡!
철퍼덕
나한테 욕한 게 짜증 나서 기절 직전까지 여러 대를 때리려고 했는데,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코뿔소 인간의 내구력이 딸리는지 단 한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오른손을 쥐었다 펴며 아까워하고 있을 때였다.
“거봐. 너 단순하다니까.”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라이언 선배가 보였다.
라이언 선배 뒤로는 험악하게 생긴 사내 세 명이 그림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선배 아직 죽은 사람은 없죠?”
내 말에 라이언 선배의 웃음이 지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깝게도 내 그림자들이 그렇게 재빠르지는 않아.”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뒤에 있는 저놈들은 뭐예요?”
라이언 선배는 자신의 그림자에 입까지 묶여 있는 놈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뭐야. 내가 정의의 사도니까 이놈들은 악당이지.”
요즘 부쩍 중2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라이언 선배가 부담됐지만, 어쩌나 나는 후배고 저기 있는 사람은 선배인데.
“아 그렇구나. 그럼 이제 쟤들 경찰 아니 기동대에 인계하면 끝인가요?”
“보통은 그렇게 하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면 이놈들 1년도 안 돼서 다시 나오겠지.”
“네?”
“네? 거리지 말고 왜 그럴 것 같은지 대뇌를 돌려봐.”
다시 나온다고? 마약 유통업자들 같은데?
나는 힌트를 달라는 눈빛으로 라이언 선배를 바라봤지만, 선배는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 나쁜 놈들 마약 유통하는 놈들 아닌가요?”
“응 맞아.”
“근데 1년 안에 나온다고요?”
“그래.”
전세계 어디에서도 중범죄로 통하는 마약 유통업자들이다.
그런데, 빨리 나온다? 무슨 든든한 백이···?!
“이놈들 백이 누굽니까?”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국회의원들.”
“역시 정치는 썩었군요.”
“국회의원들도 이놈들이 마약 하는 놈인지는 몰랐을걸. 그리고 알더라도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를 거고.”
“그럼···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신 이런 일 못 하게 해야지.”
그 말을 끝낸 라이언 선배가 악당을 향해 오른손을 들더니 서서히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당들을 구속하고 있던 그림자가 조여지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모습은 먹이를 눈앞에 둔 한 마리의 뱀의 모습이었다.
아나콘다는 먹이를 잡아먹기 전에 살아있는 먹이를 자신의 몸으로 둘둘 감은 후 조여서 온몸의 뼈를 부순 다음 삼키는 걸로 알고 있다.
우드뜩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그림자는 삼키지만 않을 뿐이지, 악당들의 뼈를 잘개 부수고 있었다.
저렇게 되면 삼켜지기 전에 최소한 사망이다.
“진정하세요!!”
내 말에도 라이언 선배는 계속 오른손을 오므리고 있었다.
이렇게 두면 안 된다.
“선배 조금만 진정하시고, 그렇다고 살인은 안 됩니다.”
애원 섞인 내 목소리에 라이언 선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유신아.”
“네 선배.”
“그냥 악당이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 해. 하지만, 저놈들은 악의 축이야. 저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사라졌는지 알아? 그러니 난 심판을 하는 거야.”
나는 라이언 선배의 손이 쥐어지기 전에 몸을 날려 선배의 손에 깍지를 껴서 더는 굽혀지지 않게 했다.
“네 손까지 아작 나기 싫으면 그만 손 빼.”
평소와 다른 냉혹한 얼굴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선배 제 얼굴을 봐서라도 살의는 거두세요.”
“너 저놈들이랑 엮였냐?”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냥 살인만 하지 말자는 거죠. 제발요. 네?”
내 간절함이 라이언 선배에게 닿았는지 라이언 선배가 깍지를 풀며 축 처진 어깨 보였다.
그 모습이 참 쓸쓸하다고 느끼며, 나는 주위에 굴러다니는 의자를 일으켜 세우며 라이언 선배에게 갖다주었다.
“일단 앉으세요.”
라이언 선배에게 자리를 권하는 동안 지금까지 그림자에 묶여 있던 악당들이 쓰러진 상태에서 외쳤다.
“이 새X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나는 라이언 선배가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한 후에 재빠르게 움직여서 그 말을 내뱉은 놈의 얼굴을 발로 찼다.
파악~
놈의 입안에서 누런 옥수수들과 함께 붉은 핏물이 뿜어졌다.
“한 번만 더 씨부리면 이번에는 내가 죽여 버린다.”
내 설득이 먹혔는지 악당들은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는 라이언 선배에게 돌아갔다.
“선배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으세요?”
“하아~ 뭔데?”
“저놈들이 죽일 놈들인 것은 맞는데 왜 이렇게 싫어하세요? 무슨 불구대천지원수 원수처럼 대해서요.”
“그래···맞아 저놈들이랑 나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약과 관계된 놈들은 모두.”
라이언 선배가 무언가를 후회하는 표정으로 말했고, 그 모습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레이지···”
“네?”
“레이지는 내 동생이야. 웬만한 정화 능력자보다 더 강한 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얼마나 정화 능력이 강하면, 병원에 고용돼서 세균 감염된 사람에게 정화 능력을 한 번 사용하면 나을 정도였어. 레이지 그 애의 꿈도 의사였고··· 그런데!”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이 된 라이언 선배가 악당들을 바라보자, 놈들은 기겁하고선 몸을 벌벌 떨었다.
“중증 마약 환자들에게도 정화 능력이 통하는 걸 알게 되자, 마약범들이 레이지를 납치했어.”
“찾으면 되잖아요.”
“찾을 수가 없어. 내가 동생이 납치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행방불명이야.”
라이언 선배에게 이런 슬픈 사연이 있다는 것에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무언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저놈들을 죽일 게 아니라, 심문해야죠.”
“벌써 했지. 그런데 고통을 줘도 아무런 것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 입을 열지 않아.”
“에헤이~ 이거 저한테 맡겨줄 수 있으세요?”
“무슨 좋은 수가 있어?”
나는 라이언 선배에게 빙긋 웃어주며, 질문에 대답했다.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르게 해야죠.”
그렇게 말한 나는 몸을 돌려 악당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죽도록 밟기 시작했다.
놈들은 내게 맞으면서도 신음만 흘릴 뿐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 또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놈들을 만신창이로 만든 나는 아공간에서 붉은 포션을 꺼냈다.
그렇게 한 다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사악한 표정으로 악당들을 바라봤다.
“내가 먹어봤는데,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더라고. 자 이야기는 다들 들었지. 정화 능력자야. 그리고 선배 성별이나 특징 좀.”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이언 선배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선배 동생분이요. 이름밖에 모르는데, 뭐 다른 거 있어요?”
“어? 어어 그러니까 여자애고, 갈색 머리에 키는 160정도고, 얼굴은···”
라이언 선배가 자신의 동생의 설명을 끝내자 나는 붉은 포션을 열었다.
퐁!
“이제 약 먹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