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_정의의 사도(1)
엄청난 굉음과 함께 쟌의 방패는 구겨진 신문지처럼 더는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방패는 자신의 효용가치를 다했지만, 쟌은 자신의 방패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하고 포스 대검 단 한 방에 정신을 잃고 뒤로 훨훨 날아갔다.
이대로 훈련장 벽에 부딪히면, 크게 다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이자벨과 노사가 나섰다.
“그래비티!”
이자벨은 가속도의 힘을 멈추는 중력 마법을 가해서, 쟌이 날아가는 속도를 늦췄다.
그렇게 쟌이 날아가는 속도가 늦어질 때 노사가 태극의 수법으로 기절한 쟌을 잡고는 돌려서 운동 에너지를 해소해서 멈춰 세웠다.
노사는 기절한 쟌의 팔목을 잡아 진기를 불어넣어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충격에 기절한 것뿐이야. 내상도 없고 말이야.”
나는 노사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나도 걱정됐다.
한 달 전에 싸웠을 때도 쟌은 내 포스 대검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런데, 나도 흥분했는지 내가 강해졌다는 걸 깜박하고 전력을 다해 포스 대검을 휘둘렀다.
이화접목을 배우기 이전에 스스로의 강함을 파악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아무리 대결이었다고 하지만, 단 한 방에 쟌을 이겨버리자 내가 민망해졌다.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노사가 쟌을 내려놓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갤 들게.”
노사의 말에도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네. 고개를 들게.”
아무리 미안하고 민망하더라도, 노사가 두 번이나 저렇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노사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은 아직 땅을 향했다.
“정당한 대결이었네. 그런데 승자가 그렇게 풀이 죽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축하하네.”
“네?”
노사가 웃으며 내게 축하를 건네자, 당황스러워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도 이제 랭커야. 계속 비공식이겠지만.”
랭커.
사람들은 언제나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랭커 시스템이다.
전세계 능력자들의 순위를 매기고 1만 명 안에 드는 사람들을 랭커라고 불렀다.
‘잠깐만! 쟌이 5700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내가···’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꿈에 그리던 랭커가 됐지만, 이자벨의 제자이자, 노사의 증손녀를 저렇게 만들었는데, 여기서 웃으면 저들에게 완전히 찍힐 게 분명했다.
그런데 비공식이라니?
“저기 노사. 질문할 게 있습니다.”
“그래 뭔가?”
“지금은 비공식이 맞는데, 계속 비공식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네. 자네는 영원히 랭킹에 오르지 못해.”
“네?? 왜요?”
방금까지 나보고 랭커라고 한껏 띄웠으면서 갑자기 영원히 랭킹에 오를 수 없다니··· 설마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갑질?
“오해는 말게. 13기동 타격대는 비밀 부대인데, 자네도 알다시피 랭커는 얼굴이 공개된다네. 그래서 비공식 랭커라는 거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식 랭커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가 강해졌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
세계평화 컨퍼런스가 앞으로 한 달 남았다.
한국 지부에서 개최하기로 한 세계평화 컨퍼런스에는 세계 대통령과 전설 그리고 각 지부의 대표 및 영웅들이 모이게 된다.
당연히 그들의 안전이 최우선 되어야 하기에 한국 지부 기동대에서는 난리가 났다.
호위 기동대인 2기동대의 전 인원이 동원되어도 호위와 경계 업무에는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지부 지부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아직 북한의 인류화 작업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인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최소 인원만 남겨놓고 파견 나간 기동대원들을 불러들였다.
거기에 공항 및 외부 테러 경계로 7기동대까지 동원되었다.
세계평화 컨퍼런스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지만, 도시 경계에 5기동대 전체인원이 비상 경계 태세로 전환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 지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나는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됐다.
“에휴~”
훈련 중에 임무라는 명목으로 잡혀 나온 것도 있지만, 강문 선배가 임무 전에 했던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무슨 한숨이냐?”
같이 움직이고 있던 라이언 선배가 내 한숨에 멈춰 서며 물었다.
“아~ 별거 아니에요.”
“음···”
라이언 선배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라이언 선배에게 바짝 붙어서는 임무 출발 전에 강문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번 네 임무는 감시야.”
“감시요? 누굴 감시해요?”
내 말에 강문 선배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라이언.”
“네? 라이언 선배요? 제가요?”
“그래. 라이언 쉐도우 감시가 네 임무야.”
“라이언 선배도 알고 있어요? 제가 감시하는 걸?”
“응.”
13기동 타격대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집단일까?
대놓고 후배가 선배를 감시한다고 하는데, 그걸 또 용인하고 있었다.
“제가 뭘 감시하는 건데요?”
“라이언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놔두면 되는데, 단 하나만 하지 못하게 하면 돼.”
“그게 뭔데요?”
“살인.”
강문 선배가 담담하게 말한 건 치고는 너무나 살벌한 단어가 나왔다.
“살인이요?”
“응. 살인.”
“강문 선배 솔직히 말해서 라이언 선배가 맘먹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제가 막을 수 있을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네?!?”
그런 연유로 지금 내가 라이언 선배와 함께 감시 목적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라이언 선배. 근데 우리 어디 가요?”
“어디 가긴 나쁜 놈들 때려잡으러 가지.”
“그냥 쳐들어가서 막 때려부수고, 체포하면 되는 거예요?”
내 말에 라이언 선배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니꼬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넌 무슨 임무를 다 때리는 걸로 귀결시키냐?”
“대부분이 그랬으니까요.”
“대부분?”
“네 빌런 잡을 때도 싸웠고, 마약상도 그냥 쳐들어가서 싸웠고, 북한에서도 몬스터들이랑 계속 싸우기만 한걸요. 그래서 뭘 해야 해요?”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저번에 놓친 마약상을 잡으러···”
라이언 선배가 임무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생각해보니까 이번 임무는 싸움보다는 첩보, 미행 등의 임무가 주를 이룰 것 같았다.
감시 임무가 주이지만, 이번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임무도 같이 할 것 같았다.
“아니다. 넌 그냥 다 때려 부숴 그러면 돼.”
“네? 아니 라이언 선배 왜 갑자기 그렇게 돼요?”
“그게 단순···아니 너랑 가장 잘 맞으니까. 아 그리고 절대 죽이면 안 된다.”
“절 뭘로 보시고, 저 사람은 안 죽여요. 그리고 선배도 알다시피 제 임무는 선배가 살인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인걸요.”
“그래. 나도 안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 그놈들이라면, 바드득 나는 살인을 하는 게 아니라 동물보다 못한 놈을 도살하는 거야.”
지금 잡으러 가는 놈들과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언 선배가 이까지 갈며 분노를 표출했다.
일 년 이상 13기동 타격대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게 있다.
선배들이 저렇게 분노했을 때 절대 말도 걸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말없이 걷는 라이언 선배를 쫓아 걷고 걸어서 외진 곳에 위치한 저택에 들어서게 됐다.
“자 유신아. 잘 따라와.”
라이언 선배는 그 말만 남기고 그림자가 되어서는 순식간에 저택으로 들어갔다.
나는 높다란 담을 한 번 쓱 둘러보고는 담을 넘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대문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냅다 대문을 발로 차서 부시려고 할 때였다.
끼이익
기름칠이 덜 된 듯한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문을 연 상대는 라이언 선배였다.
“거봐. 너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부시는 게 적성에 맞다니까.”
나는 들었던 발을 슬그머니 내리며 변명을 시도했다.
“오햅니다.”
“오해는 무슨.”
“그런데 왜 벌써 나오셨어요?”
내 말에 라이언 선배의 표정이 구겨졌다.
“놈들이 눈치챈 것 같아. 아무도 없어. 빠르게 움직여야겠는데, 따라올 수 있어?”
“절 뭘로 보고요. 저 이래 봬도 환골탈태한 사람입니다.”
“개나 소나 다 하는 환골탈태 가지고···”
“네?”
방금 라이언 선배가 개나 소나 다 하는 환골탈태라고 했다.
내가 이걸 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추억에 잠기려고 할 때 라이언 선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처지지 말고 빨리 움직여! 오늘 중으로 끝내야지.”
“네, 넵!”
나는 더 이상 생각을 거두고 라이언 선배를 뒤쫓았다.
처음에는 그냥 달렸다.
그런데, 라이언 선배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포스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포스로 다리를 강화하고, 발바닥에서 포스를 뿜어내서 쭉쭉 달려 나갔지만, 라이언 선배를 뒤쫓기에도 버거웠다.
나도 꽤 빠르다고 느끼고 있지만, 라이언 선배는 정말 앞뒤 사정도 봐주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달려서 두 번째 저택에 도착했고, 라이언 선배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림자가 되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후읍~ 하~”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대문으로 향했지만, 대문에 도착하기 전에 라이언 선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선배 왜요?
“여기도 꽝이야. 다시 이동한다.”
방금까지 내 앞에 있던 라이언 선배가 저 멀리서 점이 되어가자 나는 더는 지체하지 못하고 포스를 돌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세 번째, 네 번째까지 저택은 비어있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저택을 향해 달려 나갈 때, 체력보다는 속도가 문제였다.
라이언 선배는 비어있는 저택을 볼 때마다 속도를 높였다.
나는 그걸 쫓기에도 버거웠다.
멀어지는 선배를 보며 나는 발바닥에 뿜어내던 포스를 두 배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팡~
속도가 나지는 않고 그저 높이 뛰기일 뿐이었다.
이번에는 포스를 압축해서 뿜어내봤다.
퍼엉~!
속도는 올랐지만, 그만큼 소음이 크게 퍼져나갔다.
적들에게 내가 가고 있다고 소문낼 것도 아니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때 사이클 경주가 생각났다.
사이클은 공기저항에 싸우는 경주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몸을 검이라 생각하고 몸을 날카롭게 벼렸다.
실제로 몸이 날카롭게 된 것은 아니지만, 포스로 몸 앞에 예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쇄애애액
가속도가 점점 붙더니, 아까는 점으로 보였던 라이언 선배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언 선배는 내가 잘 따라오는 걸 확인하더니 더욱 속도를 높였다.
내가 아무리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달리고 있다지만, 저건 정말 따라잡기 힘들었다.
나는 지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라이언 선배를 쫓았다.
다섯 번째 저택 근처에 들어서자, 우리는 주위 숲에 숨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저택 주위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있었다.
“헤엑 헤엑~ 선배 이번에는 맞겠죠?”
“쉿!”
“흐읍~”
거친 숨을 내뱉던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최대한 가늘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은데, 호흡까지 조절하자 너무나 힘들었지만, 라이언 선배의 진지한 모습에 불평을 내뱉지 못했다.
“이번에는 잘 따라와라.”
“네?”
라이언 선배는 그 한마디만 내뱉고는 그림자가 되어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나도 저렇게 슉~하고 몰래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능력도 방법도 없었다.
전처럼 대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부시고 들어가면, 또 무식하다는 발언도 나올 테지만, 경계를 서는 사람들한테 손쉽게 걸릴 거다.
나는 들키지 않기 위해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한 후에 발바닥에 포스를 두 배 아니 세 배로 모아서는 발출했다.
팡!
그렇게 높은 담을 단 한 번에 뛰어넘어서는 저택 안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밑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나는 속으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최대한 멋진 자세로 착지했다.
“넌 뭐야!?”
몰려있던 사내 중 얍실하게 생긴 사내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사내를 중심으로 나쁜 놈들의 숫자를 빠르게 세어봤고, 약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넌 뭐냐고!?”
그래. 내가 누군지 그렇게 궁금하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허리를 똑바로 펴고선 나쁜 녀석들을 둘러보며 당당히 외쳤다.
“정의에 사도?”
물음표는 괜히 했나? 나쁜 녀석들에게 자신감이 조금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