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_인간은 언제나 망각한다.(3)
포션을 몇 번 먹어보고, 직접 고통을 느끼면서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우리 13기동 타격대에서 사용하는 포션은 다친 부위에 더 강한 아픔이 온다는 거다.
나는 가슴과 복부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자, 거친 숨을 내뱉었다.
“허억 허억”
훈련장에 그대로 누워있고 싶었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션 덕택인지 몸의 활력은 넘쳤고, 반대로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졌다.
그때 훈련장 문이 열리고, 화려한 도복을 입은 젊은 사람이 들어왔다.
“누구세요?”
“허허~ 내가 처음 보는 젊은이구먼. 혹시 여기가 13기동 타격대가 기거하는 곳인가?”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세요?”
“아 별건 아니고, 무혁이와 약속이 있어서 왔네.”
화려한 도복을 입은 젊은이가 우리 대장을 지칭할 때, 무혁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반말로 우리 대장을 찾자 기분이 나빠졌다.
“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그래?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보군. 내 기다리도록 하지.”
“네.”
손님은 그 말을 하고선 가만히 서서 날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 행동이 날 너무나 뻘쭘하게 만들었다.
“저···”
“왜 그런가?”
“커피라도 한 잔 타 드릴까요?”
“허허~ 커피는 괜찮고, 용정차 있나?”
“용 뭐요? 그런 건 없고, 옥수수 수염차랑, 둥글레차 그리고 녹차는 있어요.”
“···녹차로 하겠네.”
“네. 이리 오세요.”
나는 손님을 컨테이너 사무실로 안내했고, 선배들은 언제 나갔는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손님을 자리에 앉힌, 나는 따뜻한 물을 끓인 후, 종이컵에다가 녹차 티백을 넣고, 물을 부어서 녹차를 만들어 대접했다.
“이··· 이게 뭔가?”
녹차를 갖다주기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 보니 손님 대접이 많이 미흡하기는 했다.
아무리 장유유서의 도리를 모르는 싸X지 없는 손님이라도 달랑 종이컵에 녹차는 너무 해서 나도 모르게 넉살을 떨었다.
“헤헤~ 지금 보니까 조금 그렇네요. 제가 금방 카페 가서 뭐라도 좀 사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솔직하게 말해서 앞에 앉아 있는 손님을 위해 카페까지 가는 귀찮은 수고를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손님이기에 예의상 물어봤다.
“끄응, 괜찮네.”
역시나 대답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너무 속이 보이기에 진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어봤다.
“아니 그래도 우리 대장님 손님인데, 이대로는···”
“정말 괜찮네. 그만 자리에 앉게.”
손님은 두 번 사양했다.
세 번 물어보면 진짜로 카페를 가야 할 것 같아서 이만 마무리를 지었다.
“하하. 네. 언제라도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알겠네.”
손님은 종이컵을 들어서 녹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지 다시 내려놨다.
“자네는 내가 누구인지 아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고, 황당한 질문이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자기소개도 하지 않아놓고선,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그리고 난 당연히 앞에 앉아 있는 손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당당히 말했다.
“모릅니다.”
“허허~ 그렇군. 뭐 내 이름을 밝혀 봤자, 모를 테고, 사람들은 날 노사라고 부르네.”
“노사요? 아 그래서 말투가··· 네?! 노사요??”
“그렇다네.”
내공을 5대력에 포함 시키게 만들고, 모든 무공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설 노사.
뉴스나 교과서에서 본 노사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내 또래다.
나는 이 위험한 발언을 하는 손님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저기···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친구들끼리 서로 그런 별명으로 부를 수 있지만, 함부로 지으면 안 되는 이명들이 있어요. 바로 전설들의 이명이죠. 알다시피 노사는 중국의 살아있는 전설이고, 자랑이잖아요. 그렇게 함부로 말했다가는 중국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히 안 놔둘걸요.”
앞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한껏 조언을 끝내고 나자 의구심이 들었다.
진짜로 대장의 손님일까? 그런데 대장의 성함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손님일 확률이 높기에 더는 그것에 대해서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끈질겼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가 노사라는 이명을 쓰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노사가 아니라는 말인가?”
“당연히 노사가 아니니까 노사라는 이명을 쓰지 말라는 거죠.”
내 말에 손님은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려다가 멈칫했다.
“자네 노사에 대해서 아나? 아니 최소한 인상착의라도 말일세.”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허허~ 그러면 이 늙은이가 부탁할 테니 한 번 찾아볼 수 있겠나?”
“아···네.”
앞에 있는 손님은 내 또래로 보이면서 자신을 늙은이라고 자꾸 지칭했다.
순간 정신이상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로 태클을 걸면 왠지 골치 아파질 것 같아서 군말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노사를 검색했다.
사진 속의 노사는 자글자글한 주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도복을···
앞에 앉아 있는 이 손님도 노사와 똑같은 화려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이 사람 정말 자신이 노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지금이라도 내 앞에 있는 젊은이가 정신을 차리라고 가장 잘 나온 사진을 휴대폰에 띄운 다음 자칭 노사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손님이 내 휴대폰으로 노사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컨테이너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대장과 다른 선배들이 들어왔다.
“대장 오셨어요? 저기 대장을 찾는 손님이 오셨는데.”
“손님?”
나는 대장에게 조심히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좀 이상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노사라고 하는데···”
“노사라고가 아니라 내가 정말 노사라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는데, 귀가 얼마나 좋으면 내 말이 들렸나 보다.
그때 신무 선배가 몸을 돌려 다시 컨테이너 사무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본 노사가 짧게 혀를 찼다.
“쯧! 미련한 녀석.”
대장은 노사와 신무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더니, 노사에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포권했다.
“환골탈태했다고 하더니 반로환동하셨군요. 노사.”
“!!!”
노사? 대장이 방금 앞에 있는 사람한테 노사라고 했다.
조금 전에 내가 인터넷을 통해 노사 사진을 확인했을 때만 해도 늙은 모습이었는데··· 환골탈태? 반로환동? 이게 다 뭐지?
“자네는 날 손쉽게 알아보는군.”
나는 노사로 의심되는 손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신분을 확인했다.
“저···정말 노사세요?”
“허허~ 반로환동하기 전 사진은 잘 봤네. 이참에 젊어졌다고 기자회견도 하고, 프로필도 새로 찍어서 인터넷에 있는 내 사진을 바꿔야겠어. 너무 옛날 사진이야.”
자글자글했던 주름이 펴지고, 머리가 검어진다면 정말 노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 다시 보니 이목구비가 완전 노사와 판박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팬입니다. 사인 한 장만 부탁드립니다.”
***
유신은 처음으로 달콤한 사탕을 맛본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미소 지었다.
퇴근길이기도 하지만, 지금 유신의 양손에는 일반 사람들은 절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인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에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유신의 오른손에는 이자벨 로메의 사인지가 있었고, 왼손에는 노사의 사인지가 들려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던 유신은 여기서 더 흥분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인지를 구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히 아공간에 사인지들을 집어넣었다.
“헤헤~ 이러다가 열세 장의 사인을 다 모으는 거 아니야?”
혼자만의 망상에 빠진 채 퇴근하는 유신을 뒤로하고, 무혁과 노사가 기동대 건물 옥상에서 기분 좋아하는 유신을 빤히 바라봤다.
사인 하나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혁을 바라봤다.
“저 아해가 자네의 새로운 동료인가?”
“네. 노사가 교육할 대원입니다.”
“허허~ 전세계에 수많은 재능의 아이들이 있는데 왜 하필 저 아이인가?”
“하유신 대원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노사도 알다시피 재능이 모든 걸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재능이야. 지금처럼 하유신 대원이 노력한다면 충분히 채울 수 있다 보고 있습니다.”
노사가 버릇처럼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려다가 수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손을 내려서 뒷짐을 지며 말했다.
“자네들과 내가 알려준다면 아무리 재능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강해질 수야 있겠지.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나?”
무혁은 옥상에서 바라보던 유신이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에야 노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유신 대원의 오리지널 재능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노오력가]입니다.”
“노력가? 그거 무능력자이잖는가.”
“노력가가 아닙니다. [노오력가]입니다.”
“잠깐! 자네 말은 자네와 13기동 타격대 인원들처럼 가이아가 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화들짝 놀란 노사가 재차 무혁에게 물었고, 무혁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 가이아의 말장난이 사랑 표현이라니 정말 우리들의 신은 재미있는 존재 아닌가?”
무혁은 두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노사는 무혁의 모습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언제 내게 맡길 건가?”
“3개월 뒤 세계평화 컨퍼런스가 끝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늦군. 그 전에 세계평화 컨퍼런스가 있을 때까지 몇 번 봐주도록 하지.”
“···그런···”
“신무 때문에 그런가?”
무혁은 노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자네 사람을 아끼는 건 변함이 없군. 하지만, 자네 대원이기 이전에 내 제자이기도 하네.”
“신무가 많이 불편해할 겁니다.”
“내가 잘 처신할 터이니, 부탁함세.”
노사의 간곡한 말에 무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
횃불이 사위를 비추는 동굴 안.
깊게 로브를 눌러쓴 여러 사람이 뱀 모양의 악마 형상에 절을 하고 있다.
한 번 절을 하자, 뱀의 왼쪽 눈이 빛났다.
두 번 절을 하자, 뱀의 오른쪽 눈이 빛을 뿜어냈다.
세 번 절을 하자, 뱀의 머리가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로브를 눌러쓴 사람들이 뱀의 형상에서 변화가 생긴 걸 알게 됐고, 맨 앞에서 절을 하던 늙은 노인이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오오~ 정의의 백작 안드로말리우스님이시여. 드디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셨군요.”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뱀 형상을 등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양팔 벌려 외쳤다.
“여러분 드디어 때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때 뱀 형상이 그 거대한 입을 벌려 노인의 어깨를 물었다.
콰직!
절을 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에 기겁하지만, 노인은 반대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 늙은이의 몸과 영혼을 선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입을 벌리지도 않은 뱀의 형상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내게 몸을 바친 인간이여. 너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영원히 고통받는데 괜찮겠느냐?”
“네. 정의의 백작이신 안드로말리우스께 이 늙어 빠진 몸을 드려서 죄송할 뿐입니다.”
“아니다. 네가 여기 있는 이중 가장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냐?”
“제 영혼이 불타 없어지고 영생을 고통받더라도 좋습니다. 인류에 거짓된 13명의 전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과 함께 진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약은 성립됐다.”
노인을 물고 있던 뱀이 말을 끝내자, 노인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뱀의 형상은 사라지고 앞에 있던 노인의 주름은 펴지고, 백발은 검은 머리가 됐으며, 빠졌던 치아가 다시 돋아났다.
그렇게 다시 젊어진 노인이 눈을 뜨자, 뱀의 눈동자가 보였고, 어느새 생겨났는지 한 손에는 뱀 모양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런이런 제가 마중이 늦었군요.”
갑자기 동굴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안드로말리우스는 동굴의 한쪽 구석을 바라보며 의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냐?”
자신의 정체를 손쉽게 들킨 도깨비 아람이 몸을 드러내며 안드로말리우스 앞에 나섰다.
“저는 도깨비 아람입니다. 정의의 백작이자, 72악마이신 안드로말리우스님.”
“도깨비라?”
안드로말리우스가 아람을 공격하기 위해 지팡이를 들 때, 아람이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저는 당신 편입니다. 보십시오.”
그 말과 함께 아람이 손에 검은 불꽃을 피워냈다.
“배덕자 도깨비였군.”
아람은 안드로말리우스의 말에 인상을 구겼지만, 곧 평소처럼 웃으며 응답했다.
“제가 백작님을 위해 아주 비싼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 소식이란 뭐지?”
“아주 손쉽게 계약자의 계약을 들어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저와 약속하시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