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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71화 (71/300)

71화_인간은 언제나 망각한다.(1)

수호 기사.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으로 오직 방패술 하나만 놓고 뽑는다.

그렇다고 많은 인원이 수호 기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수호 기사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채 30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호 기사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로 13인의 전설인 이자벨 로메이다.

쟌 아르켄시스는 이자벨 로메의 수제자이고, 9번째 수호 기사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훈련장에서 나와 쟌은 서로를 마주 봤다.

쟌은 풀 플레이드 갑옷을 착용했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었으며, 반대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완전무장한 쟌에 비해 나는 달랑 검 한 자루만 들고 있어서 빈약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 나도 티는 안 나지만 마도구로 분류되는 전투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럼 서로 준비된 것 같으니까 이제 시작해볼까?”

강문 선배의 말에 쟌은 방패를 앞으로 세웠고 나는 발검 자세를 취했다.

“준비··· 시작!”

시작과 동시에 쟌의 방패가 옅은 빛을 뿜어내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철호 선배와의 대련을 통해서 저게 실드 차지의 전조 현상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왼쪽으로 몸을 피하며 다가오는 쟌에게 발검했다.

내 검이 쟌의 어깨를 베어내려는 순간 쟌의 검이 움직였다.

캉!

쟌의 실드 차지는 철호 선배처럼 선회하지는 못했지만, 그 짧은 순간 스킬을 취소하고 검을 휘둘러 내 검을 막았다.

“비실이치고는 잘 피하는데?”

“저기 자꾸 비실이 비실이 거리는데, 도발하는 거라면··· 확실히 먹혔습니다.”

내가 검에 검기를 일으키자, 쟌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다.

그 모습이 공격해달라는 신호로 보였고, 나는 그대로 방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탕탕탕

한동안 쉴 틈 없이 방패를 두드렸다.

어떤 재질로 방패를 만들었는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방패가 내 검기를 손쉽게 막았다.

이대로 계속 공격만 한다고 변하는 건 없어 보였지만, 세상에 진리 중 하나가 있지 않은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캉!

몇 합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방패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쟌의 방패가 다시 옅은 빛을 뿜어냈고, 나는 훌쩍 뒤로 물러난 다음에 쟌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쟌은 내 행동에 실드 차지를 취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치사하게 싸우지 말지? 남자라면 정면 대결 아니야?”

자신의 주특기인 실드 차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쟌은 바짝 약이 올라 외쳤다.

“내가 왜?”

나는 그런 쟌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쟌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건 대결이다.

수호 기사와 정면 대결은 불리함을 안고 진행하는 건데, 내가 불리한 채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절대 나를 비실이라고 놀려서 그런 건 아니다.

난 그저 이 대결에서 이기고 싶고, 이겨야 한다.

그래야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럼 다시 간다~”

나는 쟌이 더욱더 흥분하기를 바라며, 놀리는 투로 말하고선 다시 달려들었다.

지그재그로 달리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돌고, 또는 오른쪽으로 돌며 쟌이 실드 차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약해 빠져서 계속 봐줬더니 안 되겠군.”

“네네. 약한 저한테 계속 방어만 하신 분의 소리입니다.”

“에너지 볼트”

“??”

에너지 볼트? 그건 마법 아닌가?

그때 내 머릿속으로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이자벨 로메는 인류를 수호하는 수호 기사 단장이자, 마검사들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그에 제자 쟌 아르켄시스는 최연소 수호 기사 이전에 천재 마검사이다.’

밝게 빛나는 에너지 볼트가 내게 빠르게 쏘아졌다.

나는 검기로 에너지 볼트를 베어내며 쟌에게 달려가려다가 멈춰 섰다.

쟌의 주위에는 수십 개의 에너지 볼트가 떠다니고 있었다.

“내가 왜 널 비실이라고 말했는지 이제부터 알아봐.”

쟌은 말을 끝내고 수십 발의 에너지 볼트를 내게 쏟아냈다.

솔직히 가장 저레벨 마법인 에너지 볼트를 맞아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쟌의 방패를 부수기 위해 계속 두드렸듯이, 저렇게 많은 에너지 볼트는 내 전투 슈트를 뚫지는 못하겠지만, 타격은 들어올 것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포스 막을 형성한 채 검으로 에너지 볼트를 하나씩 쳐 냈다.

팡 팡 팡 팡 팡

훈련의 성과 덕분인지, 아니면 죽을 고비를 하도 많이 넘겨서 그런지 에너지 볼트를 쳐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에너지 볼트를 모두 쳐내고, 다시 쟌을 바라봤는데,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쾅!

실드 차지에 가슴을 공격당한 나는 뒤로 세 바퀴 구른 후에야 멈춰 설 수 있었다.

쟌, 이 여자는 날 진짜로 죽일 생각이었나 보다.

“젠장!”

나는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쟌을 노려봤다.

포스 막과 전투 슈트가 아니었다면, 가슴이 으깨져서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대련이라고 했지만, 이건 대련이 아니라 전투에 가까웠다.

“비실이치고는 맷집이 있네.”

나는 쟌의 비아냥에 화가나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넘어진 순간 수십 발의 에너지 볼트가 쟌의 뒤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볼까?”

쟌이 검을 들어서는 나를 가리키자, 에너지 볼트들이 내게 쏟아졌다.

팡 팡 팡 팡 퍽!

에너지 볼트에만 집중한다면, 충분히 다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볼트를 신경 쓰면서 쟌의 실드 차지를 견제하려니 어쩔 수 없이 에너지 볼트를 몸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투 슈트 덕분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좀 버티네. 그럼 계속해 볼까?”

쟌의 말이 끝난 후 대련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의 연속이었다.

내가 에너지 볼트를 검으로 쳐내고, 방심하면 실드 차지가 들어왔다.

실드 차지를 견제하다 보면, 에너지 볼트에 얻어터졌다.

방패를 들고 있는 건 쟌인데, 정작 방어만 하는 건 나였다.

쟌의 마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이렇게 방어만 하는 건 내 성미에 맞지도 않았다.

그때 갑자기 철호 선배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살상력이 강한 기술은 자제하고 싶었지만, 지는 건 또 죽도록 싫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날아오는 에너지 볼트를 향해, 탄검기를 날렸다.

퍼퍼퍼펑~

쟌과 내 사이에 있던 에너지 볼트는 탄검기에 의해 말 그대로 사라졌고, 탄검기는 기세를 잃지 않고 그대로 쟌의 방패와 부딪혔다.

쾅~ 촤악!!

탄검기로 인해 쟌의 방패는 가로로 선명하게 파였으며, 한참을 밀려났다.

화들짝 놀란 쟌이 더 많은 에너지 볼트를 생성했지만, 그동안 나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나는 포스 대검을 완성해서 쟌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에너지 볼트가 다가오든 말든 그대로 무식하게 휘둘렀다.

콰아앙!

방패는 내 포스 대검에 우그러지면서 수명을 다했다.

쟌은 타격을 받고 훨훨 날더니, 물수제비가 되어서 훈련장 바닥에 튕겼다.

나는 속으로 승리를 확실하며 쓰러져 있는 쟌에게 외쳤다.

“내가 이겼죠?”

내 말에 자극받은 쟌이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흘러내린 코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무슨 소리야. 이제야 할만한데.”

“허세 부리지 마세요. 그러다가 정말 다쳐요.”

“고작 그딴 수 때문에 그래? 이거 나 때문에 수호 기사들이 얕보였군. 잘 들어. 이제부터 정말 전력으로 갈 테니까. 죽지 않게 몸조심해.”

포기하지 않는 쟌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실력 차를 보여주기 위해 포스 대검을 만들었다.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쟌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쟌의 몸이 밝게 빛나더니, 그대로 빛이 쟌에게 흡수됐다.

“디펜스, 샤프니스”

언제 꺼냈는지, 쟌의 새로운 방패와 검이 각기 빛을 냈다.

마검사인 쟌의 순식간에 4개의 버프 마법을 사용하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최연소 수호 기사가 됐는지 알려주도록 하지. 비실아.”

평소에 나라면 버프를 하고 있던 쟌에게 다짜고짜 공격부터 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쟌의 버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자꾸 비실이라고 놀리는 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나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쟌의 준비가 끝날 때 나 또한 충분히 준비를 끝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철호 선배를 바라보며 외쳤다.

“철호 선배. 이 여자가 제 오리지널 기술에 죽지 않겠죠?”

“그녀는 수호 기사다.”

“알겠습니다.”

나는 철호 선배의 말에 한 가닥 남아있던 불안감을 떨쳐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쟌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어디 그 기술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볼까? 윈드 커터!!”

위이잉~

바람 소리와 함께 쟌의 주위에 다섯 개의 윈드 커터가 생성됐다. 그리고 쟌의 방패가 빛났다.

쟌의 실드 차지가 오기 전에 윈드 커터가 먼저 내게 날아왔다.

윈드 커터는 곡선으로 날아와서 직선으로 날아오는 에너지 볼트보다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까다로워도, 강한 일격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쟌이 윈드 커터와 함께 실드 차지를 하며 내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허공에 검을 내리그으며 외쳤다.

“블레이드 샷!”

초승달 모양의 블레이드 샷이 쟌에게 날아갔다.

쟌에게 닿기 전, 블레이드 샷의 여파로 윈드 커터는 꺾였다

그런데, 실드 차지와 블레이드 샷이 부딪히기 직전 무언가 투명한 기운이 블레이드 샷에 부딪히는 걸 보게 됐다.

콰아앙!

블레이드 샷이 폭발했고 그 여파로 쟌이 김을 뿜어내며 뒤로 튕겨 나갔다.

확실히 이겼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갑자기 끼어든 투명한 기운이 신경 쓰여서 제 이격을 준비했다.

피이잉~

내가 쟌에게 달려들자, 이번에는 내게 투명한 기운이 다가왔다.

나는 검에 깃든 기운을 일점술의 묘리로 바꾸며 투명한 기운에 찔러넣었다.

파아앙!!

투명한 기운은 소멸했지만, 기운 뒤에 숨어 있던 새로운 기운이 내 복부를 가격했다.

내가 대비를 하고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뒤늦게 만든 포스 막은 와장창 깨져나갔고, 그 기운이 내 속을 진탕으로 만들었다.

나는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뒤로 한참을 밀려난 다음에 그대로 허리를 숙여 피를 게워냈다.

“우에엑~”

거짓말 조금 섞어서 한 바가지의 피를 게워낸 것 같았다.

무협 소설에서 보면 이렇게 피를 뱉어내면, 속이 개운하다고 한 건 다 뻥이다.

지금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속은 계속 메슥거려서 한 바가지의 피를 게워냈으면서 무언가 더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때 강문 선배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는 정신이 어지러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강문 선배가 화났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내가 중간에 막지 않았으면, 쟌을 죽이려고 했어.”

이자벨 로메의 목소리가 강문 선배의 말에 대꾸했다.

이제 보니까, 그녀가 블레이드 샷을 막고 날 이렇게 만들었구나.

“···제길···.”

아무리 전설이라고 하지만, 사인해 주는 게 그렇게 싫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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