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_수호 기사 부단장(3)
30여 년 전 인류는 마왕을 없애기 위해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마왕을 없애기 위해 인류의 작전은 최상위 능력자 300명이 마왕과의 전투를 위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단순 무식한 작전이었다.
단순하고 멍청한 이 작전을 위해 3만 명의 능력자들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서 기회를 만들어줬다.
마왕에게 가는 최단 거리의 길을 뚫기 위해 오천 명의 능력자가 몸을 내던졌다.
300의 결사대가 마왕과의 1:300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게 다가오는 마족과 몬스터를 막는 동안 또다시 만오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왕을 물리치고 살아 돌아온 13명의 최상위 능력자들의 퇴로를 만들기 위해 7천여 명의 능력자가 산화했다.
그렇게 해서 마왕과 싸워 살아남은 13명의 능력자를 사람들은 전설로 불렀고, 그 기회를 만들고 살아남은 3천 명의 사람을 사람들은 영웅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 30년 전의 마왕과의 최후 전투가 누군가로 인해 다시 회상되었다.
무혁은 뇌신이 되어 마왕과 수십 차례 부딪히다가, 마왕의 파괴 광선에 당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때 노사가 태극의 수법으로 안전하게 무혁을 받아서는 뒤로 물러났다.
“자네 괜찮나?”
노사의 말에 무혁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마왕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성녀는 아직입니까?”
“거의 끝나가는 것 같네. 그런데 자네 움직일 수는 있겠나?”
무혁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떡였다.
하지만 노사가 보기에는 무혁도 벌써 한계였다.
노사는 무혁이 다시 마왕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걸 제지했다.
“이번에는 내가 해보겠네.”
“하지만···”
“자네는 빨리 몸을 회복시키게. 마왕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일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사가 태극의 묘를 살리며 마왕에게 달려들었지만, 단 일격에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마왕은 노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격을 가했지만, 강문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마왕의 다음 공격을 막았다.
그때 신무가 재빠르게 노사를 챙겨 뒤로 물러났다.
강문은 마왕의 공격에 점점 수세에 몰렸다.
그때 유호와 리암 그리고 벨라의 합세로 강문은 겨우 물러설 수 있었다.
최소 3명에서 최대 10명이 번갈아 가며, 마왕의 공격을 막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300의 결사대의 수가 줄어 이제 겨우 두 자릿수만 남았다.
그때 이 처절한 전투와는 상관없이 수호기사단의 방패에 보호받으며 기도를 드리던 성녀가 드디어 기도를 끝내고 눈을 떴다.
“생츄어리”
성녀의 광범위 축복으로 인해 인류는 다시 힘을 얻고, 마왕이 처음으로 인상을 구겼다.
지금까지 마왕에게서 성녀를 지키고 있던 수호기사단이 방패를 치웠고, 수호 기사 단장과 이자벨, 철호가 무혁 앞으로 나섰다.
성녀는 자신의 허리 매듭을 풀어서 채찍처럼 쥐며 무혁에게 외쳤다.
“이제 다시 부활하지 못할 겁니다.”
“아직 조금만 더 힘을 모아야 해.”
“얼마나 붙잡고 있으면 되나?”
“1분··· 1분이면 된다.”
성녀와 무혁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수호 기사 단장이 방패를 앞세우며 앞으로 나섰다.
“알겠네. 그동안 우리가 막고 있겠네.”
수호 기사 단장과 철호 그리고 이자벨이 방패를 앞세우고 실드 차지로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왕의 파괴 광선에 단장은 넝마가 되었고, 이자벨과 철호는 뒤로 튕겨났다.
단 한 방에 상처투성이가 된 이자벨은 비틀거리면서도 방패를 앞세워서 다시 마왕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철호가 이자벨 앞으로 나섰다.
“부단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우선 단장님부터 챙겨라.”
“네?”
철호의 말에 이자벨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수호 기사 단장을 바라봤다.
마왕의 파괴 광선을 정면으로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시뻘겋게 화상을 입었고, 방패를 들고 있던 오른팔은 보이지 않았다.
“단장님!!”
이자벨이 단장에게 달려갈 때, 철호는 이자벨을 잠시 슬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방패를 더욱 꽉 붙잡았다.
“수호 기사 부단장이자, 최강의 방패인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실드 차지로 달려드는 철호는 방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철호가 마왕의 공격을 방패 하나로 막아낼 때, 성녀가 허리 매듭에 신성 오라를 가득 담아서 채찍처럼 마왕의 왼쪽 팔을 감아서 구속시켰다.
그에 맞춰 언제 다가왔는지 강문이 마왕의 등을 자신의 나이프로 찔러 넣었고, 신무의 검은 마왕의 오른팔에 깊게 박혔다.
마왕은 발구령으로 이들을 튕겨내려고 했지만, 라이언의 그림자가 마왕의 양발을 붙잡았다.
그러는 동안 1분이 흘렀다.
“뇌(雷)!”
뇌신으로 변한 무혁이 마왕에게 일격을 먹였다.
하지만, 마왕은 최후의 발악을 일으켰고 그 에너지가 파괴력을 가지고 뿜어졌다.
그때 다리우스의 흑마법과 알프레도의 원소 마법이 마왕의 기운이 퍼져나가지 않게 자신들의 원소력을 쏟아부었다.
마왕의 발악은 약 1분간 지속됐고, 끝끝내 마왕은 먼지가 되어 산화했다.
그리고 마왕과 직간접적으로 닿아있던 무혁, 성녀, 강문, 유호, 신무, 라이언, 다리우스, 알프레도 그리고 철호가 사라졌다.
입가에 피를 흘리는 노사가 겨우 살아남은 12명의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드디어 끝났군.”
이때 인류는 마왕을 죽였다.
하지만, 마왕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 소식은 20년이 지나고서야 이들은 알게 됐다.
***
이자벨은 너무나 단단한 철호의 마음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그 모습을 본 철호는 자신의 굳건했던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리를 박찼다.
철호가 컨테이너 사무실을 벗어나려고 하자, 이자벨은 철호의 소매를 꽉 쥐고 있었다.
충분히 이자벨의 손을 털어낼 수 있지만, 철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이자벨이 자신의 소매를 놓기 기다렸다.
“바보 같은 사람···”
“······”
“당신 잘 들어요. 전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절 뿌리치고, 버리더라도, 난 당신을 놓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꼭 제게 돌아와요.”
철호는 자신의 소매를 놓아줄 생각하지 않는 이자벨의 손을 살짝 잡아서는 놓게 했다.
“···난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사단을 잘 부탁한다.”
“돌아와요. 난 이 자리가 버거워요. 당신이 당연히 가졌어야 할 영광을 찾아가세요.”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제가 할게요. 아니 당신 옆에만 있게 해줘요.”
아무리 이곳이 남루한 공간이어도 뇌신에, 사신 그리고 하나같이 가볍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곳이다.
그녀가 13인의 전설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이곳에 들어오면 한밭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무리다.”
“흐윽······!”
이자벨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나 점점 멀어져가는 철호를 보며 비참한 마음을 추슬렀다. 이대로 그를 보내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전 무슨 일을 저질러서라도 당신을 놓지 않을 거예요.”
“···마음대로···.”
철호의 단호한 말에 이자벨의 심장은 날카로운 송곳에 뚫린 것처럼 아파왔다. 그녀는 무너질 것만 같은 감정을 버티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가실 거면 이거 하나만 약속해줘요.”
“나는 더 이상 약속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스승님이자 아버지를 대신해서 하는 말이에요.”
“···스승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날 거부하셨다. 하지만, 스승님의 마지막 약속을 이렇게 쓴다면··· 좋다.”
이자벨은 철호의 말에 잠시 슬픈 눈빛이 되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최대한 해맑게 웃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제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그거 하나만 약속해줘요.”
“···알겠다. 그리고··· 혹시나 오해할지도 모르니 말해두지.”
철호는 컨테이너 사무실 밖에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 대신에 마왕을 붙잡기로 한 것은 스승님의 명이 아니라, 내 의지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난 언제나 굳건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이자벨은 아직 철호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
세로 베기 천 번!
가로 베기 천 번!
마지막으로 찌르기 천 번!!
총 삼천 번의 기본 검술을 끝내고 나자, 철호 선배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자벨도 나왔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무실을 나오는 이자벨의 양볼이 살짝 상기 되어 있었다.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알았다.”
이자벨이 떠난다고 한다.
나는 뒤늦게라도 이자벨에게 싸인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에 이자벨이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하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철호 선배가 담담히 나에 대해 알려줬다.
“이번에 우리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온 막내다.”
“이번에 들어왔다고요? 그럼?”
“이자벨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
“오호 그래요?”
이자벨이 나를 신기한 듯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 내게 호기심을 보이는 이자벨에게 나는 정중히 부탁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싸인이요?”
“넵!”
“좋아요.”
해맑게 대답하는 이자벨의 말에 나는 용기가 생겼다.
“그럼 혹시 사진도 가능할까요?”
“그것도 좋아요.”
나는 겉으로 티내지 않고 속으로 ‘예스’를 외치고 있을 때, 이자벨이 입을 열었다.
“대신에 조건이 있어요.”
“네? 조건이요?”
“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나였다면 조건도 들어보지 않고 그대로 하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선배들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
함부로 약속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조건을 들어봐도 될까요?”
“저기 보이시나요?”
나는 수호 기사 단장이라는 이명과는 다르게 이자벨의 가냘픈 검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자벨만큼은 아니지만, 이자벨의 제자이자, 최연소 수호 기사가 된 쟌 아르켄시스가 서 있었다.
“저 소녀와 대련하면 됩니다.”
“네?!!”
“단장님!!”
이자벨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고, 쟌은 방금까지 나에게 결투를 외쳤으면서 이자벨의 지명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연실색했다.
“왜요?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그게···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아! 설마 제 제자이자 제 9수호 기사가 다칠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외통수다.
여기서 내가 대련을 거부하면 쟌 아르켄시스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 것이고, 대련하면 고작 싸인 때문에 대련까지 하는 놈이 된다.
‘잠깐! 고작이라니 하유신 정신 차려라!! 이자벨 로메의 싸인은 가보로 놔둘 수도 있고, 인터넷에 팔면 최소 수천만 원의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
“알겠습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자벨이 천사의 미소를 지었고, 순간 훈련장이 환하게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강문 선배가 나타나 이자벨에게 제안했다.
“거기다가 조건 하나씩 더 걸지.”
“사신이 내기도 하다니 정말 많이 바뀌셨군요.”
“과거는 그만 이야기하고 어때 할 거야 말 거야?”
“여기 하유신씨가 한 것처럼 저도 먼저 들어봐도 될까요?”
“듣는 건 어렵지 않지. 간단해. 유신이가 이기면, 우리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힘 좀 써줘. 대신에 지면 싸인이랑 사진은 날아가는 거고.”
“아니. 강문 선배!!”
이기든 지든 받기로 했던 싸인을 강문 선배의 말 한마디에 못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제발 이자벨이 거부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으흠··· 내기가 뭔가 좀 부족하네요.”
“그럼 원하는 거라도 있어?”
“네. 쟌이 이기면 하루 동안 철호씨를 빌려줘요.”
“뭐. 우리 막내가 이길 거니까. 오케이.”
그렇게 강문 선배와 이자벨이 내기에 대해 극적 타결을 했을 때, 대련을 하더라도 아무런 혜택이 없는 쟌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 하지 않겠습니다.”
“왜 쟌?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저렇게 비리비리한 남자와 싸우는 건 제게 아무런 훈련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안 할 거야?”
“네.”
쟌의 단호한 말에 이자벨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쟌이 이기면 그렇게 원하던 제로 차지 알려주려고 했는데···”
“거기 비실이 빨리 와. 금방 끝내야 하니까.”
이자벨의 말 한마디에 나와 쟌의 대련은 성사됐다.
그리고 나는 쟌 아르켄시스가 날 비실이로 불러서 조금 많이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