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69화 (69/300)

69화_수호기사 부단장(2)

[속보! 13명의 전설 중 한 명인 이자벨 로메 한국에 입국!]

[유럽 최고의 미녀 한국을 찾다.]

[전설의 첫 방문지는 한식당? 평소에도 한식을 즐겼다는 이자벨.]

[제9수호 기사 쟌. 스승과 함께 백화점에 가다.]

[프랑스의 미녀 사제 한국에 들어오다.]

[이자벨 경호는 4기동대? 2기동대 경호 기동대로서 신뢰를 잃다?]

이자벨.

마왕을 물리친, 13명의 전설 중 한 명이다.

그녀가 한국 지부에 입국했고, 그녀의 움직임, 식사, 손짓 하나가 기삿거리가 됐다.

그렇게 하루 종일 서울 관광을 했던 이자벨과 쟌이 저녁이 다 돼서야 관광을 끝내고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왔다.

스위트룸의 방문이 닫히자, 거실 소파에 쟌이 몸을 눕히며 앓는 소리를 했다.

“오늘 완전 방전입니다.”

“쟌~ 그래도 생존 훈련보다는 낫잖아.”

“쇼핑보다 생존 훈련하는 게 제게 더 도움도 되고, 차라리 낫습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쇼핑의 재미를 모르는 거야.”

“차라리 모르고 살겠습니다. 그런데 단장님 남성용 시계는 왜 사신 겁니까?”

쟌의 말에 이자벨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단장님? 스승님이라고 하라니까!”

“네. 스승님 그러니까 남성 시계를 왜?”

이자벨이 쇼핑백에서 명품 시계 케이스를 꺼내 살짝 쓰다듬었다.

“시계를 좋아하는 누구한테 선물하려고.”

“선물이요?”

“응. 내일은 바쁠 거니까 쟌도 일찍 자.”

“설마··· 내일도 쇼핑입니까?”

“아니. 내일은 따로 갈 곳이 있어.”

“어디입니까?”

쟌의 말에 이자벨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기동대 본부.”

***

유신이 일점술로 철호의 실드 차지를 막았다.

파사삭

당연하게도 검은 유리가 깨진 것처럼 잘게 부서졌고, 철호의 이차 공격이 있기 전에 유신은 새로운 검을 꺼내 철호의 공격용 손방패를 막았다.

“검술은 늘지 않고, 아공간에서 검을 소환하는 속도만 늘었구나.”

철호 선배의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반 호흡만 늦게 검을 움직여도, 철호 선배에게 철저히 짓밟힐게 뻔했기 때문이다.

쨍강!

손방패를 막던 검이 부러졌다.

예전에는 이렇게 검이 부러지면 당황부터 했고, 그다음에는 나뒹굴었고, 끝은 기절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나도 성장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검과 함께 탄검기 형태로 부러진 검을 철호 선배에게 던졌다.

콰쾅!

약간의 충격으로 철호 선배가 멈칫했고, 아공간에서 새로운 검을 소환할 수 있게 시간을 벌었다.

새로운 검을 손에 쥐자, 철호 선배의 카이드 실드가 미약한 빛을 뿜어냈다.

이건 ‘실드 차지’의 전조현상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철호 선배의 실드 차지는 발동 전에 저렇게 미약한 빛을 뿜어낸다.

실드 차지는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두면 파괴력이 올라간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해서 알고 있다.

나는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며 일점술을 찔러넣어서 실드 차지를 막았다.

그리고 왼손에 새로운 검을 소환해서 그대로 휘둘렀다.

그때 처음으로 철호 선배가 방어가 아닌 회피를 하며, 내 검을 피하고선 내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대로 ‘실드 차지’를 발동했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포스 막과 전투 슈트가 막아줄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기에 그대로 검기를 휘둘렀다.

콰앙!

데구르르 탁!

오산이었다.

나는 충격에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유신! 전투 슈트를 너무 믿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으···으···”

철호 선배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 되겠군. 오늘은 여기까지다.”

갑자기 의문점이 들었다.

오후 훈련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훈련을 끝낸다고?

예전이라면 좋아했을 테지만, 강해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바뀌었다.

“괘···괜찮···습니다.”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다.”

“방금도 전투 슈트를 믿기는 했지만, 제 포스막을 더욱 믿었던 겁니다. 후우~ 이제···할 수 있습니다.”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철호 선배에게 가기 위해 한걸음 내디뎠는데, 하필 밟은 곳이 방금까지 내가 침을 흘렸던 바닥이었다.

쿠다당!

과연 본인이 흘린 침을 밟고 넘어지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몇 명일까?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그중 한 명에 내가 추가됐다.

“너의 의지는 알겠다. 하지만 회복이 더 중요하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다시 훈련하도록 하겠다.”

철호 선배는 그 말만 남기고는 그대로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하악~”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자, 아픔도 많이 가시고, 호흡도 정리됐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가부좌를 틀고는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철호 선배와의 대련으로 인해 사용했던 포스를 채우면서, 포스의 순도를 높여가고 있을 때, 여러 사람이 훈련장 주위를 에워싸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포스 호흡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장을 에워싼 사람들은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훈련장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단장님 여기에 그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는구나.”

분명 어디서 본 사람들이다.

실례인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그녀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이름을 읊조렸다.

“이자벨 로메···”

이자벨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네요.”

“···아 아닙니다.”

“먼저 온 게 아니면 뭔가요?”

“여기는 저희 13기동 타격대의 훈련장입니다.”

“···13기동 타격대요?”

이자벨은 우리 부대의 이름을 듣더니 방금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던 모습과는 다르게 서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순간 훈련장에 한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고, 어깨가 무거워졌다.

나는 전설에게 그것도 유럽 최고의 미녀 앞에서 축 처진 어깨를 보여줄 수 없어서, 포스를 회전해서 무거운 감각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이자벨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호~ 이걸 견뎠네요?”

“네?”

그때 컨테이너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문 선배가 이자벨을 보고는 외쳤다.

“뭐야? 네가 여긴 왜 왔어?”

“사신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노망난 영감탱이가 여기저기 다 말했군. 그래서 여긴 왜 왔는데?”

“당신에게 볼일은 없습니다.”

“볼일이라?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많이 컸어.”

강문 선배가 이자벨에게 시비조로 말하자, 이자벨은 가만히 있는데, 쟌이 분개해서는 끼어들었다.

“감히 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딴 소리를 해?”

“쟌 가만히 있으세요.”

“아니 단장님!”

“쟌!!”

이자벨이 강하게 말하자, 쟌은 한발 뒤로 물러나며 매섭게 강문 선배를 쏘아봤다.

“제자 교육이 엉망이군.”

강문 선배의 말에 쟌이 이를 부드득 갈았고, 나는 급하게 강문 선배 옆으로 다가가 귓속말했다.

“선배.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프랑스의 수호자 이자벨 로메라고요.”

내 귓속말에 강문 선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넌 눈치 좀 챙겨라.”

“네?”

내가 당황하는 사이 강문 선배가 이자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호자라? 참 거지 같네.”

“당신 많이 바뀌었군요.”

“그 고비를 넘겼는데 안 바뀌면 쓰나?”

“그러니까요. 사신이 이렇게 말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왜 왔는데? 계속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돌아가.”

“우리 수호 기사 부단장을 데리러 왔습니다.”

“우리? 뭘 잘못 알고 있나 본데, 에휴~ 내가 백날 말해봤자 뭐하냐? 철호야 손님 왔다.”

강문 선배의 말에 조금 시간이 지나서 철호 선배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와 이자벨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자벨 앞에 서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자벨은 철호 선배의 말에 금방이라도 진주 같은 눈물을 흘릴 것처럼 글썽이더니 철호 선배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이자벨의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호 기사 단장이자, 고고한 마검사로 불리는 이자벨.

그녀가 철호 선배를 꽉 껴안았기 때문이다.

나는 놀란 나머지 강문 선배에게 조용히 귓속말했다.

“강문 선배. 원래 프랑스 여자가 저렇게 적극적인가요?”

내 말에 반응한 것은 강문 선배가 아니라, 제 9수호 기사인 쟌이었다.

“이놈! 감히 우리 단장님이 그렇게 가벼운 여자인 줄 아느냐!!”

“저? 저요?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이라는 거냐!! 우리 단장님의 명예를 위해서 결투다!”

쟌이 갑자기 내게 결투 신청을 해서 당황하는 사이에 이자벨이 쟌을 불러세웠다.

“쟌!!”

“단장님!!”

“지금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네.”

이자벨의 말에 쟌은 화를 참으며 그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대충 상황을 정리한 이자벨은 다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철호 선배를 바라봤다.

“잘 지냈어요?”

“잘 지냈다.”

“다시 돌아가요.”

“······”

“예전처럼 제 옆에 있어 주고, 저만의 수호 기사가 되어주세요.”

“······”

짝!

갑자기 강문 선배가 박수 쳐 시선을 집중시켰다.

“남들 앞에서 그만 염장질하고, 둘이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저기서 못다 한 이야기나 하고 오는 건 어때?”

강문 선배가 가리킨 곳은 창문 하나 없이 문을 닫으면 밀폐가 되는 우리 13기동 타격대의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을 멈추기 위해, 자리에 앉아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포스를 마시고, 정제해서 돌···하~ 돌겠다.’

나는 집중을 해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에서 음란마귀가 떠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철호 선배와 이자벨 로메가 밀폐된 공간에서 공적인 이야기를 할 터인데, 왜 머릿속이 이런 나쁜 생각만 드는지 모르겠다.

포스 호흡법을 하는 동안에도 음란마귀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상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

유신이 머릿속에 있는 음란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검술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 철호와 이자벨은 강문이 자리를 비워준 덕에 컨테이너 사무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철호와 이자벨이 마주한 사무실 안은 고요함을 넘어 숨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정적이 유지되고 있을 때, 정적을 깨트린 것은 이자벨이었다.

“···여기서 생활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이자벨은 우울한 얼굴로 공사판 휴게실과 다를 게 없는 사무실 내부를 바라봤다.

“우리 수호기사단을 버리고 정착한 곳이 이런 곳인가요?”

“생각보다 지낼 만하다.”

“왜 지구에 귀환한 후에 기사단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죠?”

“······”

철호는 이자벨의 질문에 눈을 감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이자벨은 철호가 눈을 감으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에둘러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네요.”

“······”

“말을 하기 전에 사람부터 죽이던 사신의 그렇게 길게 말하는 건 처음 봐요.”

“······”

“그래도 가장 많이 변한 건 언제나 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던 당신의 눈빛이에요. 이제는 제게 아무런 감정이 없으시나 봐요.”

“······”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

쾅!

철호의 침묵이 계속 유지되자, 이자벨이 거칠게 탁자를 내려쳤다.

순간 컨테이너 사무실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고, 드디어 철호가 무심한 듯 눈을 떴다.

이자벨은 슬픈 것인지, 분노하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소리쳤다.

“이렇게 바뀌실 거면, 대체 왜 그때 저 대신에 목숨을 거셨어요? 네?! 대답 좀 해요!!”

넋두리하던 이자벨의 목소리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지 마시고, 말 좀 해보시라고요!!”

“미안하다.”

“뭐가요? 대체 뭐가 미안한데요? 정말 미안했다면, 지구로 돌아온 날 절 바로 찾아왔어야죠.”

이자벨의 말에 침묵으로 답변하던 철호는 품속에서 방패 모양의 펜던트를 꺼내 이자벨에게 건네줬다.

“수호 기사 부단장의 지휘를 반납하겠다.”

이자벨은 철호가 건네준 펜던트를 꽉 쥐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때 당신 대신에 제가 마왕을 붙잡고 있었다면, 아니 최소한 당신과 같이 마왕을 붙잡고 있었다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과거를 이야기 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대답해봐요.”

“······”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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