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_마도구(2)
평화로운 토요일 저녁시간.
하유신의 어머니인 박희선 여사가 식탁에 닭볶음탕을 내려놓으며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하씨 가문 남자들 빨리 와서 밥 먹어!”
그 소리에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고 있던 하유신의 아버지 하현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희선은 현도가 느긋하게 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현도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또 다른 하씨 가문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더욱 올라갔다.
“하유민! 안 나오고 뭐해?!!”
말이 끝나자마자 유신의 동생인 유민이 감지 않은 더벅머리에 배를 긁으며 방에서 나왔다.
“에이~ 엄마도 참 주말에는 늦잠 좀 자겠다니까.”
유민의 말에 희선은 등짝 스매시로 응수했다.
짝!
“아얏! 엄마 아프잖아.”
“벌써 해가 중천이다.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게을러! 최소한 네 형이 하는 모습에 절반이라도 닮아봐라.”
“한 달째 연락도 안 되는 형을 닮으려면 나도 한 보름 연락 안 돼야 하나?”
유민은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희선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금 기동대 활동으로 바쁜 네 형이랑, 술 쳐 먹고 다니는 너랑 같니?”
“엄마 나도 사회생활 때문에 술 먹는 거지.”
“대학생이 무슨 사회생활이야? 열심히 공부나 해야지.”
“엄마 형이 돈 잘 번다고 너무 그런다. 처음에는 기동대 가는 것도 반대했으면서.”
“당연히 반대하지. 어떤 부모가 자식이 목숨 걸고 일하는데, 반대를 안해?”
“그럼 지금은?”
“아들. 부모는 말이야. 자신이 한 번 시작한 일도 끝까지 믿어줘야 하는 거야.”
“······”
유민은 자신의 어머니 박희선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현도는 이대로 놔두면 닭볶음탕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자신의 와이프 박희선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면 중재했다.
“커험~ 그만하고 이만 밥 먹지.”
현도의 말은 박여사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장남 걱정은 나만하네. 당신은 걱정도 안돼?”
“응? 아니 나도 걱정되지. 그래도 별수 있나 믿어야지.”
희선은 현도의 말에 눈을 흘겼다.
그때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화 된 북한지역을 우리나라 기동대와 헌터들이 투입되어 인류화 하는 작업에 대해서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약 100여명의 사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기동대에서는 이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복귀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현도는 뉴스 소식에 식탁을 향해던 눈길을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돌렸다.
“북한에 사람들이 있었다니··· 거기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신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 걱정하는 거예요? 우리 아들 유신이 걱정부터 해야지!”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 유신이를 믿는다고. 나도 우리 큰 아들을 믿어.”
“···믿는 거랑 걱정은 다른 거예요. 나는 하루하루가 유신이 살아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느니···걱정돼 죽겠는데.”
부모님이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눈치 없이 닭볶음탕의 다리를 뜯고 있던 유민이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다.
“확인해 보면 되잖아.”
“확인?”
“응. 확인.”
“어떻게 확인 해보겠다는 건데?”
“에이~ 간단하지. 통장내역만 보면 되잖아.”
“통장 내역?”
“우리 박여사님 벌써 감 떨어지셨네. 간단하지. 잘 지내면 통장에 지출 내역이 찍힐 거 아니야. 저기 텔레비전에 나온 것처럼 북한에라도 간 게 아니면.”
“음···”
잠깐 생각에 빠져든 희선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만 먹고 빨리 네 형 통장부터 찾아봐!”
“엄마 먹고 해도 안 늦···”
유민은 매서운 살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어머니인 박희선 여사님이 숟가락을 들고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금방 찾아보겠습니다.”
먹던 닭뼈를 뱉어낸 유민은 통장을 찾기 위해 유신의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여기서 유민이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오늘은 친구들과 술집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홀로 병원에 누워 있었을 게 뻔했다.
***
유신의 월급 통장을 찾게 된 가족들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은행에 오게 됐다.
위이잉 치킹
ATM 기계는 쉴 틈 없이 유신의 통장을 정리해 나갔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통장을 뱉어냈다.
유신의 통장에는 지금까지 차곡차곡 받아온 월급이 모여 있었다.
지출이라고는 저번에 희선에게 보내 준 1억과 매달 유민에게 보내 준 용돈 내역···희선이 유민의 등짝에 스매시를 날렸다.
짝!
“앗! 엄마 갑자기 왜 때려!”
“네가 뭔 돈이 있어서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니나 했는데, 형한테 이렇게 풍족하게 용돈을 받고 있었구나.”
“아니 그게···”
변명을 하려던 유민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급하게 말했다.
“엄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형 최근 내역은?”
“좀 이따 보자.”
희선이 유민에게 눈을 흘기고는 다시 통장에 집중했다.
유신의 마지막 지출은 한 달 전에 어떤 가게에서 이천만원을 결제한 게 다였다.
“한 달 전이 마지막이네···”
희선이 말꼬리를 흐리고 있을 때 현도는 한 달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한 달? 설마?!!”
“왜요 여보?”
“기동대랑 헌터가 북한으로 파견된 게 한 달 전이라고 했잖아!”
“하유신 이 놈의 X끼!!”
***
은행 ATM 기계 앞에서 유신을 걱정하는 박희선의 분노가 터져 나가고 있을 때, 유신은 은색의 팔찌 착용을 막 끝냈다.
“마도구요?”
“그래. 마도구.”
“그게 뭐예요?”
“마도구를 몰라?”
“네.”
유신의 당당함에 강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지구에서는 무슨 도구를 쓰는데?”
“무슨 도구라뇨?”
“마법이 발동되는 도구가 없어?”
마법이 발동되는 도구?
나는 강문 선배가 당연한 걸 물어봐서 손쉽게 대답했다.
“마법도구야 당연히 있죠.”
“근데 마도구를 몰라?”
“마법도구를 마도구라고 해요?”
강문은 순간 헷갈렸다.
유신이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지구의 윗사람들이 정보를 차단한 것이지 말이다.
“나보다 다리우스가 더 설명을 잘할 거야. 다리우스 좀 알려줘.”
강문의 말에 다리우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막내 브로~ 진짜로 마도구를 몰라? 마법 도구는 알면서?”
“넵.”
“으흠~ 브로~ 브로가 아는 마법 도구는 어떤 거야?”
다리우스 선배의 말에 내가 알고 있는 마법 도구에 대해서 정리했다.
“검에 불꽃 데미지를 추가하는 파이어 소드, 위험할 때 실드를 생성할 수 있는 실드 링처럼 전투 계열이 있고요. 어마어마하게 비싼 아공간 마법도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브로~ 마법 도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마정석을 세공하고··· 마법을 새기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브로가 아는 건 마법 도구가 맞아. 그리고 마법 도구는 마정석의 마나를 통해 발동하고, 마정석의 마나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
“건전지처럼 마정석을 바꾸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브로~ 마법 도구는 잘 아는데? 그런데, 마도구는 말야. 기본적으로 자가 충전 기능이 있어서 마정석을 바뀔 필요가 없어.”
“네?!!”
다리우스 선배의 말이 맞다면, 지금 내가 착용한 팔찌는 천문학적인 가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 팔찌는 어떤 마법이 있는 건가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대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착용했던 거다. 기능은 별건 없고, 가로세로 10m 크기의 아공간이 있고, 8시간에 한 번씩 그레이트 실드가 생성 가능하다. 그리고 그레이트 실드는 최대 3개까지 저장이 된다.”
대장의 말대로 마법이 저장되어 있다면, 이건 천문학적인 가치를 넘어서, 한 국가의 국보나, 보물급이었다.
“이···이걸 제가 받아도 될까요?”
“힘든 작전을 잘 따라와 준 상이다.”
나는 대장의 말에 은색 팔찌를 쓰다듬었다.
지금 만져보니, 은색 팔찌는 자잘한 흠집들이 많았다.
이 모든 흠집이 대장과 함께 해왔던 세월의 흔적이라고 느끼니 선물이 더욱 감동스러웠다.
“마도구 발동 방법에 대해 알려주마. 우선 그레이트 실드는 그실이라고 외치면 된다.”
“그실이요? 어? 발동이 안 되는데요?”
“그실만 말해야 한다.”
“넵. 그실!”
우웅웅~
내 몸 주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성됐다.
“한 번 발동하면 약 1분 정도 유지가 되고, 강한 충격에는 쉽게 깨어진다. 보통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있는 힘껏 공격해도 3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다.”
이 마도구를 착용한 상태에서 트윈 헤드 오우거와 싸웠다면··· 비기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마도구를 통해 이겼다면, 그건 내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고 분명 선배들이 트집을 잡고 날 괴롭혔을 거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동안 대장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아공간은 인벤토리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육성으로 할 필요 없이 속마음으로 말해도 충분히 열린다.”
인벤토리는 게임 용어를 외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인벤토리’
대장의 말대로 속으로 외치자, 작은 창이 내 앞에 떠올랐다.
그 창 안에는 아공간 안에 있는 물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공간 안에 뭐가 있는데요?”
“그것도 선물이다.”
“아니··· 대장님. 마도구 팔찌까지 받았는데, 또 선물이라니요?”
“훈련에 필요한 것들로 준비해 놨다.”
갑작스러운 대량의 선물과 선배들이 나에게 잘해주자 나는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됐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잘리는 건가요?”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갑자기 너무 잘해주셔서요. 혹시나 이게 퇴직 선물이나 이별 선물로···”
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하면 정말 자르도록 하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13기동 타격대에 뼈를 묻겠습니다.”
내 말에 몇몇 선배들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지만, 너무 기쁜 마음에 그냥 넘기고 말았다.
“쉰소리 하지 말고 일단 꺼내서 확인해 봐라.”
“저··· 어떻게 꺼내나요?”
“··· 대체 아는 게··· 에휴~ 거기 보이는 물건을 꺼낸다고 생각해라.”
나는 대장의 말에 검은 타이즈로 된 상하 일체형 옷을 보며 꺼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검은 타이즈가 내 손에 잡혀 있었다.
“우와~ 진짜 신기합니다.”
“집어넣을 때는 그 물건을 들거나 만지고선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타이즈를 다시 집어넣고 또 뭐 집어넣을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트롤의 마정석을 보게 됐다.
트롤의 마정석들을 한 번에 들고 넣는다는 생각을 하자, 내 손에서 마정석은 사라지고, 작은 창에 중급 마정석(5)와 최상급 마정석(1)이 생겨났다.
신기한 마음에 다른 것도 넣고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강문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스리슬쩍 강문 선배에게 다가갈 때, 강문 선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아공간에 사람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냐?”
“······아니요. 설마요. 제가?”
“유신아. 우리 막내 하유신. 아닌 것 같은데?”
“강문 선배. 제가 무슨 그런 막돼먹은 생각을 했겠어요?”
“너라면 충분히 그러고 남지. 그리고 아공간은 기본적으로 무생물만 넣을 수 있어. 그래서 조리된 음식을 넣으면 그대로 유지가 되는 거고.”
“와~ 신.기.하.네.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국어책 읽듯이 대답을 해버렸다.
“이 새끼 진짜였어. 오늘 교육 철호 너였지?”
내 연기가 어설픈 것이었을까? 아니면 강문 선배의 눈치가 빨랐을까?
“그렇다 강문.”
“오늘 나랑 좀 바꾸자.”
“알았다.”
순식간에 강문 선배가 철호 선배와 교육 순서를 바꾸더니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오늘 유신이 네가 내 아공간에 들어갈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