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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62화 (62/300)

62화_마도구(1)

몬스터 백과사전에서 트롤은 무리 생활을 하고, 성인 두께의 나무를 부숴 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트롤의 가장 큰 강점은 재생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롤을 잡기 위해서는 머리를 박살 내거나 잘라내야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단번에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나는 나타남과 동시에 아직 괴성을 지르고 있는 맨 앞에 있는 트롤에게 달려들며, 발검했다.

서걱!

발검과 동시에 검기를 생성해서는 트롤 한 마리의 목을 잘라냈다.

아직 나만의 색을 가진 오러는 생성할 수 없지만, 오러를 만드는 연습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검기 생성이 재빨라졌다.

쿵!

내가 베어낸 트롤이 쓰러졌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남은 트롤들이 내게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트롤들의 공격을 일일이 막지 않고, 무리 사이에 뛰어들어서는 최대한 회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사악 사악 서걱!

첫 트롤을 물리친 것처럼 단번에 목을 베어낼 수는 없었지만, 일검을 휘두를 때마다 트롤 무리에게 꽤 큰 피해를 줬다.

거기다가 운이 좋았는지 트롤 한 마리의 팔도 베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트롤 무리는 상처를 입고 몸이 잘려 나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나를 포위했다.

트롤 무리가 합이라도 맞춘 듯 포위를 하고 일제히 나를 공격했다.

나는 포스 막을 피어올리며, 순식간에 생성한 포스 대검으로 트롤 무리의 공격을 막았다.

콰앙!

손쉽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

트롤들의 공격이 내게 생채기는 내지 못했지만, 힘으로 누른 충격에 어금니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벌써 반 이상 회복이 된 트롤 무리에게 당할 것이다.

나는 포위된 상태에서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며 탄검기를 사방으로 뿌렸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포위만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했던 기술이 어마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네 마리의 트롤들은 몸이 갈라지거나, 심장이 파괴되며, 전멸했다.

“하악~ 하악~ 하악~”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고,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던 나는 육체적 피로도보다, 정신적 피로로 지쳤다.

“끝났다.”

나는 호흡을 정리하고선, GPS를 확인했다.

그런데 GPS에서는 아직 여기에 몬스터가 있다고 표시되고 있었다.

“크아아아앙!!!”

저 멀리에서 또 다른 트롤의 엄청난 괴성이 들리자,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도 겁먹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떨고 있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다.

이건 몬스터의 괴성이 아니라, 네임드급 몬스터의 피어라는 거다.

후읍~ 파~

나는 몬스터의 피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몸속에 있던 포스가 회전하기 시작했고, 떨려오던 가슴이 진정됐다.

내가 가만히 있자, 자신의 피어가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한 몬스터가 나무를 쓰러뜨리며 곧장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는 포스 호흡법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 다가오는 몬스터를 향해 포스를 실은 사자후를 내뱉었다.

“크어엉!!”

내 사자후는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고작 다가오던 몬스터를 잠시 멈칫하게 했다.

하지만, 몬스터는 자신이 멈칫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더욱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직 어떤 몬스터인지 모르지만, 피어를 내뱉는 순간 상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머릿속에는 ‘오러’만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그렇지만, 현재 내게 오러는 양날의 검이다.

오러를 통해 타격을 입히면 단 한 번에 끝내 수 있을 터이지만, 실패하는 순간 도망치지도 못하고 목숨을 내놔야 했다.

우선 안전하게 공격하기로 한 나는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우지끈!

바로 앞에 있던 나무가 부서지며, 몬스터가 나타났다.

예상했던 대로 나타난 몬스터는 트롤의 상위종 트롤 킹이었다.

나는 트롤 킹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검을 밑으로 휘둘렀다.

파괴력으로 따지면 블레이드 샷이 더 강하지만, 트롤에게는 폭발 피해보다 날카로운 검기가 더 제격이기에 탄검기를 날렸다.

촤악~

탄검기가 트롤 킹에게 피해를 줄 수는 있어도, 이 한 방에 트롤 킹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또는 사선으로 쉼 없이 탄검기를 날렸다.

촤악 촤악 촤악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탄검기 한 방에 몸이 조각날 터인데, 트롤 킹은 가죽에 내구력이 높아서 깊은 상처만 주고, 절단에는 실패했다.

나는 탄검기 때문에 피를 흘리며 정신없이 자신의 몸을 재생하는 트롤 킹을 향해 달려들며, 일점술의 묘리를 사용했다.

푸욱~!

내 검이 트롤 킹의 심장에 꽂혔다.

나는 그 상태에서 검을 더욱 꽉 잡고 몸을 접은 다음 트롤 킹의 가슴에 두 발을 딛고선 점프하듯 뒤로 물러났다.

촤악~

심장에 꽂혀있는 검이 뽑혀 나가자, 트롤 킹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강인한 생명력과 재생력을 가지고 있는 트롤 킹이라도 해도, 심장이 파괴되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괜히 네임드 몬스터가 아니었다.

트롤 킹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포스 대검을 일으켜 트롤 킹의 주먹을 막았다.

쾅!

며칠 전에 나였다면, 맥없이 트롤 킹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윈 헤드 오우거와의 전투를 통해 어떤 전투에서도 상대가 쓰러지기 전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크어어···”

트롤 킹의 목숨은 정말 질겼다.

심장이 꿰뚫리고도 수십 번이나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전투하는 내내 내가 찌른 심장 부위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지 않았다면, 내 공격이 트롤 킹의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는 의심을 했었을 것이다.

쿵!

드디어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트롤 킹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검으로 찔러봤다.

트롤 킹은 정말로 죽었는지 검에 찔려도 미동도 없었다.

죽음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헤엑~ 헤엑! 끝났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GPS를 꺼내 주위에 몬스터가 더 있는지 확인해봤다.

다행스럽게도 트롤 킹이 강문 선배가 내게 내린 훈련의 마지막이었나 보다.

나는 GPS를 다시 품에 넣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깔끔하게 절단되어 죽은 다섯 마리 트롤과 상처가 난잡하게 난 트롤 킹 시체가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트롤 킹의 상처를 손으로 만져봤다.

“후우~ 아직 멀었네.”

역시 전투는 방심하면 안 된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트롤 무리의 공격을 오러 대검으로 막은 게 육체에 무리가 갔는지 온몸이 쑤셨다.

나는 어서 안전한 사무실로 돌아가 치료도 하고, 전투에 대해서 복기해보려고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걸음 걷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몬스터를 잡으면 간혹 마정석이 나온다. 마정석은 비싸다. 나는 방금 몬스터를 잡았다.’

왜 이제야 마정석이 생각났을까?

헌터들의 주 수입원은 몬스터를 퇴치한 후 얻은 부산물이다.

부산물 중에서 가장 비싸고, 몬스터를 잡는다고 다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이 마정석이다.

북한으로 와서 지금까지 내가 잡은 몬스터만 기백이었다.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 중에서 백에 한 마리만 마정석이 나왔어도···’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트롤들의 몸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그래. 나는 돈을 밝히는 게 아니라, 내 목숨을 위해서 하는 거야. 내 목숨을 구하려면 당연히 좋은 장비를 사야 하고, 좋은 장비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안한 유신은 트롤들의 시체에서 마정석을 찾기 위해 검을 들었다.

***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나는 우리가 야영하고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선배들이 정말 당연하게도 식사를 끝내고 쉬고 있었다.

온몸을 트롤의 피로 물들인 내 모습을 보고 강문 선배가 인상을 찡그렸다.

“야 겨우 트롤 몇 마리 잡고 오라니까 그 꼴은 뭐냐?”

“이거 때문에요.”

나는 품에서 다섯 개의 중급 마정석과 한 개의 최상급 마정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다섯 마리 트롤과 트롤 킹에게서 전부 마정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는 복귀하면서 계속 고민했다.

중급 마정석만 해도 최소 수천만 원은 받을 수 있고, 최상급 마정석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정석을 몰래 빼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다면, 나는 더 이상 13기동 타격대에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양심적인 행동도 한몫했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특이해서 그렇지 대장과 선배들은 나를 얼마나 많이 위하는가!

“뭐야? 겨우 마정석 때문에 그 꼴이라고?”

“네? 선배 겨우 마정석이라뇨? 무려 최상급 마정석입니다.”

“빨리 가서 씻기나 해.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취소다!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했던 그 모든 걸 취소해야겠다. 역시 선배들은··· 제길 씻으러나 가야겠다.’

“네···”

칭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씻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어디가?”

“강문 선배 말대로 씻으러요.”

“이거 가져가.”

“네??”

“네?는 뭐냐? 빨리 가져가. 첫 마정석인데, 기념으로 가져가서 용돈이나 해.”

“어··· 그러기에는···”

나는 마정석들을 한번 바라보고 선배들을 바라봤다.

“뭘 꾸물거려?”

“하지만···”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문 선배가 대장을 바라봤다.

“대장 괜찮죠?”

대장은 강문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됐지?”

“정말로? 정말로 제가 가져가요?”

“왜 싫어?”

“아뇨!”

나는 강문 선배가 말을 바꾸기 전에 마정석을 서둘러 챙겼다.

그리고 마정석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 대장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라.”

대장이 내게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상자였다.

마정석 때문에 손이 부족한 나는 다시 마정석을 내려놓고는 대장의 선물을 경건하게 받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대장은 내 두 손 위로 선물 상자를 올려놨다.

나는 선물 상자를 받은 후 잠깐 고민했다.

‘지금 바로 열어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혼자?’

내가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강문 선배가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뭐해? 빨리 열어봐.”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와서 대장이 내게 처음으로 한 선물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히 상자를 열었다.

달칵

상자 안에는 체인 형태의 얇은 은색 팔찌가 놓여 있었다.

대장이 주는 거라서, 엄청난 무기나, 값비싼 물건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일반 장신구라서 약간은 실망했다.

하지만, 실망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더욱 과장되게 미소를 지었다.

“우와~ 예쁜 팔찌네요. 바로 착용해 봐도 되죠?”

나는 팔찌를 꺼내려다가 내 몸이 피투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상자를 닫았다.

“왜? 선물은 바로 착용하는 맛이지.”

“맞아. 막내 브로~ 한 번 차봐.”

유호 선배와 다리우스 선배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우선 씻어야 할 것 같아서요.”

나는 상자를 마정석 옆에 내려놓았다.

“금방 씻고 오겠습니다.”

“막내 브로~ 가만히 있어.”

“네?”

다리우스 선배가 재빠르게 캐스팅을 끝내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시동어를 외쳤다.

“클린.”

원 모양의 하얀 빛이 내 머리 위에 생겨나더니, 천천히 내려왔다.

빛이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트롤의 피와 먼지로 인해 더러워졌던 내 몸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샤워를 한 것처럼 개운한 맛은 없지만, 그냥 씻으려고 했다면, 꽤 오래 걸렸을 묵은 때가 벗겨졌다.

“다리우스 선배 감사합니다.”

“천만에~”

다리우스 선배 덕택에 깨끗해진 나는 다시 상자를 들었다.

그리고 팔찌를 꺼내 들자, 상자를 들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묵직한 무게에 놀랐다.

“어? 꽤 무겁네요?”

“당연하지. 뭐해 빨리 착용해봐.”

강문 선배의 재촉에 나는 왼손에 팔찌를 착용했다.

그러자, 팔찌가 빛을 뿜어내더니, 손목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방금까지 느껴지던 무게감도 사라졌다.

“대···대장 이게 뭐예요? 갑자기 빛이 막···무게감도 없고···”

내가 횡성수설하자, 강문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마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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