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_패배 후의 훈련(1)
유신과 듀라한의 대치를 지켜보던 무혁은 갑자기 귀가 간지러운지 귀를 후벼팠다.
그 모습을 보고 강문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장 왜요?”
“누가 내 얘길 하는가 보지.”
“누구긴 누구겠어요. 노망만 늙은이지.”
“너도 참 대단하다. 노사를 노망난 늙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강문 너밖에 없을 거다.”
“과찬입니다~”
“후~ 그런데 언제 시작하지?”
무혁은 새끼손가락에 걸려있는 귀지를 입김으로 날리며 강문에게 물었다.
그러자 강문은 다리우스를 향해 외쳤다.
“다리우스 준비됐어?”
“막내 브로가 준비되면 나는 언제나 오케이~”
“유신아 아직이야?”
유신은 강문의 재촉에 포스 호흡법을 정리하며 두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천천히 뽑은 후에 듀라한에게 겨눴다.
“준비됐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할까?”
“넵!!”
내가 호기롭게 대답하자, 듀라한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어어억!”
듀라한의 갑작스러운 대검 공격에 나는 검기를 만들어 대응했다.
쾅! 쾅쾅쾅쾅쾅!!
듀라한의 대검과 내 검기가 부딪힐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와 듀라한은 순식간에 수십 합을 겨뤘다.
어느 한쪽도 우세를 점치지 못할 정도로 듀라한과 나의 실력은 비등비등했다.
듀라한이 자신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대검을 붕붕 휘둘렀고, 나는 대검을 회피하거나 검기의 힘으로 비껴 나가게끔 했다.
그렇다고 내가 방어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점술과 검기로 듀라한을 공격했고, 타격감도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안타깝게도 통하지 않았다.
듀라한이 어둠의 마나를 피어올리자, 그 마나가 내 검을 전부 막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열받는 것은 듀라한이 여차하면 유일한 약점이면서 가장 단단한 자신의 머리로 내 검기를 막기도 하고, 머리를 휘둘러 내 머리를 공격했다.
“제길···!”
몇 번이나 듀라한과 싸워봤지만, 다리우스 선배의 듀라한은 몬스터 백과사전에 나온 듀라한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특이했다.
듀라한이 매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최소 한 가지씩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마치··· 내 수준에 맞게 싸워주는 것 같았다.
의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이 됐고, 언데드에게 농락당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가 갈렸다.
그렇다고 듀라한에게서 이길 특별한 수단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이기고 싶은 열망이 강해지자, 단 하나의 방법이 머릿속에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처음에는 전투 중에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듀라한과 몇 합을 더 주고받자, 생각은 점점 그 기술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나갔다.
‘그래! 할 수 있다!’
쾅!
나는 듀라한의 대검과 부딪힌 충격을 역으로 이용해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최대한 회피에 집중했다.
집중이 되지 않더라도, 집중해야 한다.
‘일 단계 포스막 운용’
검에 포스막을 씌우며 듀라한의 대검을 회피했다.
대검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다면, 나 또한 듀라한처럼 몸과 얼굴이 따로따로가 될 뻔했다.
‘잡념을 버리자! 쏟아붓고, 압축한다!’
나는 듀라한의 대검 공격과 박치기 공격을 피하면서 검에 집중했다.
가만히 서서 집중한다면 4~5초면 오러를 만들 수 있었다.
전투 중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집중을 하려고 하니 10초 이상 걸리는 것 같았다. 아니 숫자를 셀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듀라한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잉
드디어 오러가 완성됐다.
나는 지금까지 듀라한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담아 오러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서걱’이나 ‘쑤욱’이 아니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오러가 막혔다.
듀라한의 대검에서 오러와 비슷한 기운이 솟아나서는 내 오러를 막았다.
콰앙!
순간 멈칫했던 게 패전이 되었고, 나는 이번에도 듀라한의 박치기에 당해 기절했다.
정신을 잃기 전, 듀라한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
약속은 약속이었다.
듀라한과의 전투에서 또다시 패전한 나는 아직 솟아있는 혹을 문지르며 다음 작전 지역까지 길을 뚫어야 했다.
촤악~
오늘도 어김없이 한참 수풀을 베어내고 있을 때, 드넓은 평지가 나왔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넵!!”
대장의 말에 유일하게 나만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렇다. 주저앉지는 않았다.
이틀 전 같은 상황에서 주저앉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긴장감도 풀렸고, 그날따라 몬스터도 많이 등장해서 피로도가 극에 쌓여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선배들은 얄짤없었다.
그날 철호 선배에게서 공격과 방어 외에 체력 단련이라는 훈련을 받았고, 또다시 그런 지옥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하유신 잘 버텼다.’
내 정신력과 체력에 대해서 스스로 칭찬하며 야영답지 않은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땅을 고르게 해서 강문 선배가 컨테이너 사무실을 꺼내기 좋게 했다.
나는 강문 선배가 소환한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서 커다란 냄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냄비를 가지고 다리우스 선배 앞으로 가자, 다리우스 선배가 워터 마법으로 냄비에 물을 채웠다.
워터 마법의 물은 미네랄을 포함한 여러 영양분이 부족하기에 영양분 캡슐을 물에 넣고 휙휙 저어줬다.
영양분이 물에 잘 녹아가는 동안, 땅을 파고는 근처에서 돌을 가져와 쌓으면, 유호 선배가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불이 지펴지는 동안 다른 냄비를 가져와 쌀을 씻고 불 위에 올려놨다.
“다 됐습니다.”
딱 여기까지가 내 일이다.
여기서 추가되면 내가 고기를 굽는 것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듯이 바비큐 파티도 이미 질린 상태였다.
다다다다닥
현란한 칼솜씨를 자랑하는 오늘의 요리사는 신무 선배였다.
내 할 일은 다 끝났지만, 나는 신무 선배를 돕기 위해 기웃거렸다.
“신무 선배 제가 뭘 도울 일은 없나요?”
“거기까지! 더는 다가오지 말도록.”
“네?”
신무 선배가 평소와는 다르게 정색까지 했다.
“유신! 더는 다가오지 말도록. 요리를 망치기는 싫다.”
“네? 저는 혹시나···”
“아니! 나는 내 요리가 독극물로 바뀌는 걸 원치 않는다.”
가슴을 후벼파는 신무 선배의 말이 내 마음에 스크래치를 줬다.
“제가 야채라도 씻···”
“돌아가!”
박력 있게 말하는 신무 선배는 고개까지 가로저었다.
나는 더는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누군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서는 날 끌고 갔다.
“어? 어?”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강문 선배였다.
“넌 밥하는 거랑 고기 굽는 거 외에는 요리 절대 금지야!”
“선배 전 돕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두 번 도왔다가는 우리 13기동 타격대가 너 때문에 굶어 죽을 거다.”
“제 요리가 그렇게 맛없어요?”
내 순수한 질문에 강문 선배의 발걸음이 멈추며 날 풀어줬다.
“유신아.”
“네.”
“넌 양심도 없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그래요. 제 요리가 맛없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전 조금이라도 요리를 돕고 배워서 선배들에게 맛있는···”
“그만!! 절대로 하지 마!! 넌 요리에 재능도 실력도 감도 없어! 그냥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내가 무릎 꿇고 부탁할까?”
“······”
강문 선배의 격한 반응에 내 입맛은 썼다.
나는 혹시나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신무 선배는 식칼을 들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를 견제했고, 그나마 평소 내 편을 들어주던 철호 선배와 라이언 선배는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우두둑 뚝!
유호 선배와 다리우스 선배는 주먹 관절을 풀고 있었다.
대장은···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날 쏘아봤다.
그리고 한 쪽에 가만히 서 있던 듀라한은 내 느낌일 수도 있지만, 날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서 포스 호흡법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강문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힘없이 컨테이너 사무실 앞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고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후흡~ 하~
선배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 포스 호흡법에 전념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절반 이상 비어있던 포스는 가득 찼고, 피로에 젖어있던 육체가 활기를 띠었다.
포스 호흡법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이미 식사 준비는 끝나 있었다.
“막내야 빨리 와서 밥 먹어라.”
“네 알겠습니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음식 앞에 장사는 없다.
나는 조금 전까지 선배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도 잊고는 해맑게 뛰어갔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계란 프라이였다.
물론 대식가들이 넘치는 13기동 타격대의 특성상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시골 가마솥 가득 끓어져 있었다.
계란 프라이도 한쪽에는 반숙으로, 다른 한쪽에는 완숙으로 산처럼 쌓여있었다.
밑반찬은 없지만, 목숨이 위험한 작전 지역에서 이렇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지덕지였다.
나는 대장과 선배들이 숟가락을 들어서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꿀꺽
국자를 이용해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덜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조금이지만, 선배들이 왜 그렇게 음식에 목을 매는지 알 것도 같았다.
쭈욱~
신무 선배의 김치찌개는 김치를 썰지 않았다. 하지만, 뭉글하게 끓여진 김치는 젓가락으로 손쉽게 찢어졌다.
나는 김치찌개 안에 있는 두툼하게 썰린 돼지고기를 김치에 싸서 한입에 집어넣었다.
매콤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음식을 음미했다.
그렇게 돼지고기의 육질과 찌개의 국물맛이 밴 김치의 콜라보에 빠져 음식을 씹다 보니 입안에 여유가 생겼다.
음식은 입안 가득 먹어야 하기에 바로 갓 지은 흰 쌀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쌀밥의 고소함이 느껴질 때쯤 나는 숟가락으로 쉼 없이 김치찌개의 국물을 입안으로 날랐다.
쓰읍~ 쓰읍~ 쓰읍~
국물의 감칠맛에 빠져 나도 모르게 찌개 그릇을 들어서는 입에 가져다 댔다.
꿀꺽꿀꺽~
“하~ 신무 선배 이건 김치찌개가 아닙니다. 예술이에요.”
나는 랩 하듯 빠르게 신무 선배의 김치찌개를 칭찬하고선, 찌개 그릇에 밥을 말았다.
이대로 김치찌개에 밥만 말아 먹어도 맛있겠지만, 화룡점정을 위해 반숙 두 장의 프라이를 위에 올렸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톡 건드리니, 노른자가 흘러내려서는 밥을 적셨다.
그 상태에서 숟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약간 질척하게 밥을 비볐다.
꿀꺽~
음식을 비비는 사이에 다시 한번 침이 넘어갔다.
나는 다 비빈 김치찌개 비빔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는 입안 가득 집어넣고, 반찬으로 완숙 계란 프라이를 집어 먹었다.
쩝쩝 꿀꺽~
쩝쩝 꿀꺽~
맛있는 음식이 앞에 놓여 있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이 발휘된다고 했다.
그렇게 오늘 나는 처음으로 목숨이 오가는 전투와 훈련 때보다 더욱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음식과 싸웠고, 이겼다.
꺼억~
내가 내뱉은 트림은 아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가 배를 두드리며 내뱉은 트림이었다.
평소라면 트림 소리가 귀에 거슬리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신아 김치찌개 맛이 어땠어?”
“강문 선배 최고였습니다. 이게 불효이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는 명함도 못 내밀 겁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이제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훈련할까?”
“네에?!”
훈련이라는 소리에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먹은 상태에서 훈련이라면, 필시 최악의 상황이 생기고 말 것이다.
“서···선배 소화는 시키고···”
“그건 걱정하지 마. 오늘 교육은 신무가 할 테니까.”
“일어나라 유신.”
내 기억 속의 신무 선배가 했던 교육은 십팔반병기로 날 두들겨 패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게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배부른 상태에서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김치찌개랑 계란 프라이가 내 최후의 만찬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