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_마족의 뿔(1)
수많은 몬스터가 우리에게 달려드는 급박한 상황에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선배들을 바라봤다.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라이언 선배가 땅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잠깐 꿀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몬스터들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덩치를 키우더니, 몬스터들을 삼켰다.
그렇게 라이언 선배를 중심으로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을 시작으로 다른 몬스터들까지 그림자에 먹히기 시작했다.
“취···취이이익!!”
“키키킥···”
“커···커컹ㅋ···”
몬스터들은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하고, 절반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라이언 선배의 다크니스 쉐도우는 화려하지 않았고, 조용했지만, 기술명 그대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다.
“어때 유신아? 내 다크니스 쉐도우가? 그럭저럭 쓸만하지?”
“라이언 선배 그게 무슨 말이세요? 그럭저럭 쓸만하다니요! 이건 혁명입니다.”
“그렇게 너무 띄워주지는 마.”
“아닙니다. 선배의 다크니스 쉐도우를 보고, 아직 제 스카이 블루 블레이드 샷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겠습니다.”
“아냐··· 너의 스카이 블루 블레이드 샷도 이름만큼 화려했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스카이 블루 블레이드 샷이 선배님의 다크니스 쉐도우만큼 강해지는 그 날까지 스카이 블루를 빼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괜찮은데···”
“이건 제 다짐입니다.”
라이언 선배가 극구 말렸지만,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꼴값들 떨고 있네.”
“···강문 브로~ 절대 라이언 브로랑 막내 브로랑 같이 임무 보내지마. 중 2병은 한 명으로 족해.”
***
라이언 선배의 다크니스 쉐도우 덕분에 남아있던 몬스터 군단은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는 몬스터 군단을 박멸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전진했다.
촤악~
나는 선두에 서서 몬스터 대군을 뚫었지만, 목표 지점까지 계속 선두에 서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가는 길에 더 이상의 하위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지점에 가까워지자, 간간이 등장하는 몬스터는 점점 내게 버거웠다.
그래도 시간을 들여 길을 뚫었지만, 이제는 몬스터보다, 식물이 문제였다.
“유신아 그 넝쿨 베면 안 돼!”
나는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얼키설키 널려 있는 넝쿨을 베기 위해 들었던 검을 내렸다.
“강문 선배 이번에는 또 뭔가요?”
“보라색 점박이가 있는 넝쿨은 베이면 독가스를 뿜어내고, 주황색 넝쿨은 불꽃을 일으켜. 따로따로 두면 별것도 아닌데, 둘이 같이 베면, 폭발이 일어나.”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그냥 넝쿨들을 베어내며 전진했다.
그러다가 마취독에 고생하고, 식인식물에 잡아 먹힐 뻔했다.
그렇게 몸으로 겪어보니 이제는 철석같이 선배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시무시한 넝쿨들을 피해 가려고 할 때 철호 선배가 어깨를 붙잡았다.
“네? 선배 왜요?”
“지금부턴 내가 하겠다.”
철호 선배는 우악스럽게 나를 뒤로 밀어버리고 등 뒤에 메고 있던 카이드 실드를 꺼내 들었다.
“유신이 훈련해야 한다니까.”
“훈련도 좋지만, 더 이상 지체되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에이 그래도~ 괜찮죠. 대장.”
김무혁 대장은 평소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철호 선배를 바라보자, 철호 선배가 말을 이었다.
“대장 혹여나 목표가 도망이라도 가면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군가는 목표를 쫓아야 합니다. 그게 강문일 수도 있고요.”
철호 선배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끄떡이자, 강문 선배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런 귀찮은 일을··· 대장 훈련은 차후로 미루도록 할게요.”
“양보해줘서 고맙다.”
철호 선배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대답했고, 김무혁 대장은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우리 대장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나처럼 우유부단한가?’
내가 잠깐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방패를 앞으로 내세운 철호 선배가 자세를 잡았다.
방패는 철호 선배의 능력에 붉은빛으로 휩싸였고, 철호 선배는 그대로 냅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붉은 궤적을 만들고 사라진 철호 선배는 목표 지점까지 일직선으로 길을 뚫었다.
철호 선배의 이적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들었고, 여기 작전 지역으로 와서 더욱 커진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잘난 선배들은 도대체 왜 나를 뽑았을까?’
정말 절실히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는 답변을 듣게 된다면···? 분명 겪게 될 좌절감 때문에라도 말할 수 없었다.
“유신아 또 전투 중에 잡생각이냐? 입에 벌레 들어가겠다.”
“아···퉤퉤 선배 뭐예요.”
강문 선배가 평소처럼 장난을 친다고 내 입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진지한 이때 이런 장난을 치다니 손가락을 깨물어버리고 싶지만, 그런 하극상을 하는 순간 내게 돌아올 게 무섭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혼자 다짐했다.
“출발하지.”
대장은 오랜만에 입을 열었고, 우리는 대장의 명령대로 출발했다.
콰콰쾅!! 콰콰쾅!!
붉은 궤적이 남긴 흔적과 소리를 따라 한참을 뛰었다.
그리고 그 위력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직선상에 있던 모든 것이 파쇄되어 있었다.
몬스터가 보이면 몬스터가 파쇄되어 있고, 사람보다 큰 나무도 파쇄되어 있고, 거대한 바위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호 선배의 능력이 파쇄라고는 하지만, 방패로 이 길을 만들었다는 게 더욱 놀랄 사실이었다.
한참을 뛰고 있을 때, 저 멀리 철호 선배가 멈춰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거대한 동굴 앞이었다.
고오오오오~
동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
끈적거리면서 불쾌한 감각이 내 몸을 자극했고, 동굴에서 홉고블린, 오크 전사, 오우거가 흘리던 것보다 더욱 거대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흘러나오던 마기는 동굴 앞에 쌓이더니 2개의 뿔이 달린 마족의 얼굴로 변했다.
“저···저··· 마···마···아···”
내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있을 때 김무혁 대장이 내 앞을 막아서더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마기 형상이 김무혁 대장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장 덕분에 마기가 사라지자 나는 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허억 허억~”
“뭘 봤지?”
“네?”
내가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김무혁 대장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어떤 형상을 봤지?”
“그러니까 뿔이 2개 달린 얼굴을 봤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줄 수 있나?”
“네. 그러니까···”
기억을 더듬으려고 하는데,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몸과 머리가 방금 그 기운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괜찮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도록.”
“후욱~ 후~ 후욱~ 후~”
“좋아. 잠깐··· 실례하지.”
대장이 내 팔목을 잡았다.
속으로 이게 뭐 하는 시츄에이션이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팔목을 통해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내 몸속에 있는 포스를 자극했고, 포스는 그 기운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대장의 기운과 내 포스가 함께 어울리며, 몸에 활력을 주자, 호흡이 잦아들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대장이 팔목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대장이 주입했던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몸속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기운 때문에 내가 당황한 사이 대장이 처음으로 내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령초를 잘 돌봐주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나는 대장의 미소가 참 환하다고 느끼며, 용기를 내서 기억을 더듬었다.
“뿔이 두 개 달린 마족의 얼굴이었습니다. 눈은 좀 찢어져 있었고··· 입은 광대 분장한 것처럼 거대했습니다. 아! 두 개의 뿔 중에 한쪽 뿔이 크윽···좀 작았습니다.”
“잘했다.”
“윽··· 그런데 대장님··· 몸이···몸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괜찮으니까 앉아서 포스 호흡법을 운용해.”
“포···스 호흡··법이요?”
“응? 포스 호흡법 몰라?”
“···네.”
더는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포스도 호흡법 그런 게 있나?
나는 뜨거운 몸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냥 편안하게 앉아.”
김무혁 대장은 내가 앉기 편하게 도와주면서 입으로는 포스 호흡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코와 입으로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고, 들이마신 숨을 포스에 보낸다고 생각해. 그렇게 포스와 숨이 닿아 어울려지면, 같이 합쳐서 온몸으로 회전을 넣어. 그리고 남은 숨은 찌꺼기를 뱉어낸다는 생각으로 입으로 천천히 뱉어내면 돼.”
내공은 심법을 통해, 마나와 차크라는 명상으로, 원소력은 깨달음을 얻으면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포스는 다르다.
오직 죽을 위기를 넘겨야만 키울 수 있는 게 포스다.
솔직하게 생각하면 이 포스 호흡법이 무슨 역할을 할지는 모르지만, 대장이 내게 처음으로 알려주는 것이니 일단 믿어야겠다.
‘호흡을 마시고, 포스로 회전시켜서, 내뱉고···호흡을···포스···내···’
대장의 말대로 꾸준하게 계속 포스 호흡법을 하다 보니 뜨거웠던 몸이 정상을 찾아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길게 호흡을 내뱉고는 두 눈을 떴다.
소설에서 보면 이렇게 눈을 뜨면 안광이 넘친다고 했는데, 안광까지는 모르겠고, 몸이 개운해졌다.
“으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곳에 몰려 있는 선배들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작은 통에서 각자 쪽지를 꺼내고 있었다.
“아싸~”
“브로~ 아깝군. 나는 탈락이야.”
“······”
제비뽑기를 통해 누군가를 정하는 모양인데, 확연히 누가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종이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강문 선배였다.
“귀찮게 됐네.”
투덜거리던 강문 선배는 일반 권총보다 총신이 2배는 긴 쌍권총을 꺼낸 후, 총신 길이의 두 개의 단도를 꺼내, 총신 하단부에 연결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강문 선배가 동굴 앞에 서서 양팔을 45도 각도로 아래로 쫙 뻗을 때, 외투가 펄럭였고, 긴 장발이 바람에 날리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말 멋있었다.
“대장 준비됐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강문 선배를 제지 시킨 김무혁 대장이 오른손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입김을 불어 넣었다.
대장의 입김이 오른손을 거쳐 밖으로 나오자 뿌연 연기로 변했다.
연기는 흩어지지 않고 강문 선배에게 날아가 들러붙었고, 그 주위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건 뭡니까?”
“10분 동안 기운을 감춰줄 거야.”
“5단계로 할 건데 이게 필요하나요?”
“여기서 그들이 더 경각심이 생기면, 다신 지구에 오기 힘들 수도 있다.”
“···쪼잔한 놈들. 지들이 5단계까지 허용했으면서···알겠습니다.”
강문 선배가 목걸이를 꺼내 숫자를 5로 바꿨다.
그러자 몸 주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연기에 막혀 은은한 빛으로 바뀌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단 한마디만 내뱉고, 강문 선배가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저기 선배님들 괜찮을까요?”
“무슨 소리야?”
“강문 선배요.”
“강문? 다른 사람도 아닌 강문을 걱정하는 거야?”
“네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연하긴 괜한 걱정이야.”
“네?”
타아아앙!
“이제 시작인가 보네.”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의 여유로운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며, 마족에 대해 아는 정보를 정리해 봤다.
마기로 인해 평범한 인간에게 무지막지한 디버프를 준다.
강인한 육체와 탁월한 전투 센스로 물리 공격력이 뛰어나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마기로 인해 마법 공격력도 뛰어나다.
거기다 잔인한 습성까지 갖춘 최악의 살상 병기를 마족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여러 책과 영상을 통해 마족에 대한 무서움을 설파했었다.
그렇기에 다 같이 가서 마족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강문 선배 홀로 간 것이 걱정됐다.
쿠르릉!
타앙! 타앙! 타앙!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동굴이 폭삭 무너졌다.
아직 저 동굴에는 강문 선배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무너진 동굴로 뛰어가 정신없이 돌을 헤치며 울부짖었다.
“강문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