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49화 (49/300)

49화_지피지기(1)

어두운 동굴 안.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가 얼굴이 터져 죽어있었다.

동굴의 어두운 공간에서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나오더니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오크 전사에게 향했다.

“취···취익!!”

손이 자신을 향하자, 겁에 질린 오크 전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하지만, 무형의 힘이 오크 전사를 옥죄어서 끌어와 얼굴이 손에 잡히게 했다.

손은 자연스럽게 오므려졌고, 오크 전사의 얼굴이 과자 부서지듯 터져나갔다.

죽은 오크 전사에게서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고, 그 힘이 손의 주인에게 흡수됐다.

“역시역시 악취미시군요.”

몬스터의 시체가 쌓여 있는 곳에 왼팔이 없는 아람이 앉아 있었다.

새하얀 손의 주인은 어둠의 공간에서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의 주인이자, 북한을 마계화 시키려는 마족이 모습을 나타냈다.

며칠 전과 비교했을 때 마족의 잘린 뿔이 절반은 자라나 있었다.

“도깨비 꼴이 말이 아니군. 지금이라면 나도 쉽게 잡을 수 있겠어.”

마족의 말에 아람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람의 미소를 비웃음으로 느낀 마족은 얼굴을 굳히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감히! 도깨비 주제에 마계의 귀족인 나 피그리온을 무시하는 거냐!”

“이런이런 오해를 하셨군요. 전 피그리온님을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 미소는 뭐지?”

“제가 원래 웃는 상입니다.”

“······”

피그리온은 아람이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에 살기를 일으켰다.

“아주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좋은 정보가 있는데, 자꾸 그렇게 적대적으로 나오시면 전 이만 가겠습니다.”

“그 몸으로 내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도망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피그리온님 그렇게 되면 제 비싼 정보를 받을 수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피그리온은 당장이라도 아람을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값비싼 정보가 궁금해 살기를 거뒀다.

“그래 그 비싼 정보는 뭐지?”

“전 분명 비싼 정보라고 했습니다.”

“그 어떤 정보도 네 놈의 목숨값보다는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이런이런 제가 방심했군요.”

피그리온이 언제 술수를 부린 것인지, 아람의 양발이 마기에 묶여 있었다.

“제 목숨값을 너무 싸게 넘긴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아~ 물론 절 잡아 드시면, 잘린 뿔은 다 나으실 겁니다.”

“매력적인 이야기군.”

“전 무서운 이야기군요. 그럼 이제 목숨값을 벌어야겠죠?”

아람은 잡혀있는 상태에서도 전혀 긴장된 표정을 짓지 않고, 도리어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제 정보는 인간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 그게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람이 생각하기에 피그리온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아무리 하급 마족이고, 뿔까지 잘렸다고 하지만, 피그리온은 마족치고는 상황판단 능력이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멍청한 마족과 오래 대화를 나누면, 자신도 멍청해질 것 같았다.

아람은 비싼 정보를 그저 그런 가격으로 낮추기 위해 사실을 일부 감추고 피그리온이 좋아할 만한 말로 포장해서 말했다.

“아~ 물론 아니죠. 꽤 강한 인간들이 옵니다. 잘린 뿔이 한 번에 다 자라고, 전성기의 힘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여러 명입니다. 생으로 먹고, 푹 고아 먹어도 남을 만큼의 인간들이 오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

“좋은 소식이라니 다행이군요. 그럼 이제 놓아주시죠.”

아람의 말에 피그리온이 피식 미소를 짓더니 아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네 목숨 값 치고는 너무 저렴한 정보야.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어. 내가 널 먹어도 뿔이 자란다고 말이야.”

“이런이런 약속을 어기시는 겁니까?”

“약속? 마족은 약속을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로 보거든. 다음부터 마족을 상대할 때는 약속보다는 계약을 맺도록 해. 아 오늘 나한테 먹히면 다음이 없나?”

피그리온이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기세를 피우자, 아람이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약속을 어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아람은 자신의 도깨비 방망이인 지팡이를 꺼내 들고선 땅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은 나와라. 뚝딱!”

피그리온은 갑자기 변한 아람의 변화에 기겁했다.

도깨비 아람은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약해졌던 기력이 회복하고, 순식간에 왼팔이 생겨났다.

“놀라셨나요? 놀라셨군요. 당연합니다. 도깨비방망이는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단지, 약속을 매개로만 사용가능하죠.”

“이익! 도깨비 녀석 감히 나 피그리온을 가지고 놀았군!”

화가 난 피그리온을 보며 아람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지고 놀다뇨? 약속은 하급 마족인 피그리온님이 지키지 않은 겁니다.”

“용서하지 않겠다!”

손톱을 세운 피그리온이 쏜살같이 아람에게 향하지만, 마기를 풀어낸 아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도깨비!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피그리온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동굴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모습을 감춘 아람의 목소리가 동굴 사방에서 들려왔다.

“제가 나타나면 이길 수는 있고요?”

“이익!!”

“그만 ‘이익’거리시고요. 아 맞다! 이건 제가 서비스로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 장소를 알려준 게 접니다.”

‘그리고 지금 그 몸으로는 절대 인간들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천 갈래 만 갈래 찢겨 죽어 주세요~’

아람은 뒷말을 속으로 삼키고 동굴을 떠났다.

동굴에 홀로 남은 피그리온은 도깨비 따위에게 당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한동안 동굴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렀다.

***

13기동 타격대의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는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는 흔적을 여실히 보여줬다.

구름은 그 흔적이 보기 싫은지, 달과 별을 가렸지만, 바람에 몸을 싣고 있는 구름은 움직일 수밖에 없기에, 별빛과 달빛이 바비큐 파티를 했던 곳을 비추게 됐다.

불판만 덩그러니 있어야 할 그곳에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눈을 빛내며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아악~ 까아악~”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울자 13기동 타격대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문이 나왔다.

타앙! 타앙! 타앙!

강문은 자신이 문을 열고 나오자 날아서 도망가는 까마귀를 보이는 족족 총으로 쏴서 떨어뜨렸다.

고기를 굽기만 하고 한점도 못 먹고 지쳐 잠든 유신이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적이다!!”

유신은 선배들을 깨우기 위해 크게 소리친 후, 검 한 자루만 챙겨서 컨테이너 사무실 문을 박차며 나섰다.

밖에 나오니 강문 선배가 일차적으로 적들과 싸우고 있는지, 계속 총을 쏘고 있었다.

“선배님 적의 급습입니까? 어디인가요?”

나는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는 적을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딱히 적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강문 선배의 총에 맞아 죽은 까마귀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죽은 까마귀를 보자, 적의 침습이라는 생각보다,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강문 선배를 향해 불순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강문 선배에게 물었다.

“강문 선배 뭐 하세요?”

“뭐하긴 까마귀 잡고 있지?”

나는 내가 던진 질문이 잘못되어서 강문 선배가 제대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었다.

“설마 내일 아침은 까마귀 고기인가요?”

“뭔 헛소리냐?”

“아니 한밤중에 까마귀를 잡으시니까요.”

내 당연한 말에 강문 선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신아!”

“넵.”

“까마귀는 주행성 동물이야. 간단히 말해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게 까마귀라는 거야.”

“아~ 그렇군요.”

강문 선배는 나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계속 총으로 까마귀를 쏴서 맞췄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주행성 동물이 밤에 돌아다니는 게?”

“듣고 보니 그렇네요.”

나는 강문 선배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에도 강문 선배는 마지막 까마귀까지 쏴서 떨어트렸다.

그리고, 죽은 까마귀 중 가장 큰 까마귀를 집어 들었다.

“패밀리어야.”

“패밀리어요? 그 마법사들이 동물을 수족처럼 부린다는 그 마법이요?”

“그래. 맞아. 이거 들고 가서 안에 있는 다리우스에게 전해주고.”

“이 까마귀요?”

강문 선배는 내게 까마귀 시체를 내밀며 고개를 끄떡이더니, 갑자기 저 멀리 숲 너머를 바라봤다.

“들어가서 제대로 복장 갖춰 입고 나와. 오늘 참 긴 밤이 되겠다.”

나는 급하게 죽은 까마귀를 들고 13기동 타격대의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갔다.

모두가 깨어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리우스 선배와 철호 선배만이 일어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막내 브로~ 이리 줘.”

“아. 네.”

다리우스 선배는 내게서 까마귀 시체를 받아들고는 캐스팅을 시작했다.

나는 방해되지 않게 내 자리로 돌아가 최대한 조용히 신속하게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무장을 완료하고, 이 소란 속에서도 아직도 꿈나라에 있는 선배들을 깨우려고 했는데, 철호 선배가 제지했다.

“쉿!”

철호 선배는 다른 13기동 타격대원들이 깨지 않게 손짓으로 나오라고 신호했다.

밖으로 나오자, 철호 선배가 조심히 문을 닫고선 등에 있는 방패를 앞으로 꺼냈다.

“적의 규모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맞게 철호 선배는 사태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내가 파악한 거라고는 까마귀 몇 마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때 까마귀 처리를 끝낸 강문 선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어막만 만들어줘.”

“방어막만? 그럼 적은 누가 막지?”

철호 선배의 당연한 의문을 강문 선배가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저 미소 정말 불쾌하다. 아니 정확히는 불안하다.

그러나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았다.

“유신이 있잖아.”

“유신이 혼자?”

“훈련이야 훈련.”

철호 선배가 강문 선배의 말에 긍정하기 전에 나는 이 황당한 모의에 반항하듯 크게 외쳤다.

“잠깐만요! 제 의견은 없나요? 그리고 한밤에 훈련한다고요?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그렇군. 알겠다. 유신이는 저기 저 앞으로 가도록 해라.”

“유신이 뭐해? 어서 가~”

강문 선배와 철호 선배는 내 말을 싹 무시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이게 역시 막내의 설움이라 생각하며 철호 선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은 지금 서 있는 곳과 숲 중간지점으로 다수의 적이 다가오면 쉽게 포위당하기 좋은 곳이었다.

“꼭 저기로 가야 해요?”

선배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였다.

왜 이럴 때는 서로 호흡이 잘 맞는 걸까?

나는 정말로 가기 싫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선배들을 바라봤다.

“안 속아. 빨리 가.”

“휴~ 알겠습니다.”

내 눈물 연기가 통하지 않았다.

솔직히 최근에 너무 자주 써먹은 느낌도 있었다.

‘그래 선배들이 날 죽을 자리로 끌고 가지는 않을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이 지정한 자리에 도착하고 뒤를 돌아봤다.

철호 선배가 방패를 머리 위로 들더니 그대로 땅에 내리찍었다.

방패가 땅에 3분의 1 정도가 박히자, 방패를 중심으로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빛은 방패를 중심으로 컨테이너 사무실까지 넓게 뒤덮으며, 반구형의 막을 형성했다.

“철호 선배 그게 뭔가요?”

“방어막이다.”

예전에 실드 능력자와 결계 능력자에 대한 논평을 본 적이 있었다.

실드는 즉발 형식이라서 빠르게 사용 가능했지만, 방어할 수 있는 크기가 극히 작았다.

결계는 형성하기 위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리지만, 대신에 대규모 크기의 방어막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철호 선배의 방어막은 실드와 결계가 합쳐져 있었다.

“결계? 아니 실드 인가요?”

“맞다. 실드다.”

“이렇게 커다란 실드를 만들 수 있다고요?”

“기본 아닌가?”

기본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았다.

“그러면 전 왜 여기 혼자 있나요?”

“싸워라! 이겨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네??”

“왔군. 건투를 빈다.”

철호 선배의 말에 숲 쪽을 바라보니 수많은 붉은 안광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 안광들이 나만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자, 등 뒤로 식은땀이 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몬스터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