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_뇌신(1)
나는 최대한 멋있게 오우거의 피어를 무효화시키려고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크아악’ 또는 ‘악!’, ‘크어엉’ 등 많은 소리가 있는데, 왜 ‘야’라고 했을까? 순간적으로 쪽팔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렇게 나와 오우거가 서로에게 기파를 발산하다가 누가 신호하지도 않았는데, 똑같이 끝났다.
그리고 2차전이 시작됐다.
“우리 막내 완전 짐승인데?”
“저게 짐승이야? 그냥 몬스터지. 아카데미에서 검술 배웠다며? 저건 검술이 아니라, 본능인데?”
“브로~ 그래도 재미있지 않아? 오우거의 피어를 피어로 똑같이 맞상대한다는 게.”
“그러니까 짐승이라는··· 아니 몬스터라는 거지.”
“막내 브로는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지?”
침을 꿀꺽 삼킨 다리우스가 눈을 빛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막내 브로 뇌를 열어보고 싶다.”
다리우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말을 할 때 유효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리우스 지구는 인체실험 금지야. 그리고 네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우리의 하나뿐인 막내야.”
“유호 브로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와~ 다리우스 그런 농담 하지 마. 네가 하면 농담 아니야.”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이 유신이 들었다면 기겁할만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유신은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신은 왼쪽에 있던 오우거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오른쪽에 있는 오우거의 발길질을 상체를 뒤로 젖혀 피했다.
나는 지금 오우거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아니었다.
오직 감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면서 포스 대검을 만들어 갔다.
오우거의 공격에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었지만, 오크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미완성된 포스 대검을 사용할 순 없다.
잘못 사용하면 내게 어떤 리스크가 발생할지 모르고, 지금 내 몸 상태도 오크 무리와 싸운 후의 내상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렇게 더는 회피할 공간이 없어져 갈 때 드디어 포스 대검을 만들어냈다.
“이제 내 턴이다.”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오우거의 주먹을 향해 포스 대검을 휘둘렀다.
쾅!
역시 오우거의 근력은 대단했다.
나는 힘에 밀려 뒤로 튕겨 날아갔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크아아앙!”
포스 대검으로 인해 오우거는 주먹이 박살 나서는 길게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다시 한번 오우거를 해칠 수 있는 기회라고 느낀 나는 오우거를 향해 포스 대검의 힘을 날렸다.
콰쾅!
포스의 거대한 기운이 다친 오우거와 부딪혔고, 오우거는 포스에 베인 게 아니라 찢겨나갔다.
전투 시작 후 순식간에 두 마리의 오우거를 처리한 나는 자신만만하게 마지막 남은 오우거를 바라봤다.
오우거가 거대한 나무를 잡고선 내게 휘두르고 있었다.
쾅!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오우거가 휘두른 나무에 직격당한 나는 그대로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땅에 추락하기 전, 철호 선배가 번개같이 방패를 빼서는 날아오는 날 막았다.
콰앙!
나는 오우거에게 당한 공격보다 철호 선배의 방패에 부딪히자,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으로 울컥 피를 토했다.
“우웩~”
한바탕 피를 토하고 겨우 두 발로 서서는 철호 선배를 바라봤다.
“철호 선배···왜···?”
“뭐가 날아오면 막는 게 버릇이다.”
나는 철호 선배의 말을 들으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군. 대신에 저 오우거는 내가 처리하지.”
철호는 기절해서 듣지 못하는 유신을 향해 말하고 오우거를 바라봤다.
오우거는 자신의 동료를 둘이나 없앤 인간이 쓰러지자, 기고만장해서는 거대한 나무를 철호에게 휘둘렀다.
“실드 차지!”
철호는 다가오는 나무를 무시하고, 오우거에게 그대로 달려들어 방패로 가슴을 밀어쳤다.
퍼석!
오우거의 가슴이 카이드 실드 모양으로 파이며, 그대로 절명했다.
순식간에 오우거를 해치운 철호는 방패를 다시 등에 장착하고, 품에서 붉은 액체를 꺼냈다.
“훈련을 방해했으니, 이 정도 핸디캡은 괜찮겠지?”
철호가 13기동 타격대원들을 바라보며 묻자, 모든 대원이 고개를 끄떡였다.
유신은 철호의 품에서 나온 붉은 액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극구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철호가 꺼낸 액체는 강문이 유신에게 먹였던 치유력은 극대화되지만, 그만큼 고통을 주는 포션이었다.
퐁~
맑은소리와 함께 포션의 뚜껑이 열렸고, 철호는 아직도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유신의 입에 강제로 액체를 부어 넣었다.
유신은 포션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우처럼 몸을 꺾으며 들썩였다.
“끄으으윽!”
기절했던 유신이 신음을 뱉어내다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구기며 손에 잡히는 흙을 꽉 쥐었다.
“꽈드득! 서···설마! 또 그 무···물약!!? 크아아아악!!!”
“처음이 아닌 건가? 그러면 곧 고통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철호 선배의 말에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어떻게 고통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고통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철호 선배에게 막말과 함께 온갖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고통 때문에 입에서는 그저 비명만 나올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악!”
“막내 브로~ 몬스터들 몰려오겠다. 쉿!”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다리우스 선배의 말이 내 귀에 내리꽂혔고, 나는 비명 지르는 것을 멈추고는 이를 갈았다.
“콰드득!”
“그래. 차라리 이를 갈아. 한 번만 더 시끄럽게 했으면 내가 막내 브로한테, 사일런스 걸 뻔했잖아.”
첫날 회식 때부터 알아봤지만, 역시나 13기동 타격대의 선배 중에서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포션의 치유 때문에 아픔을 참고 있을 때 강문 선배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지체한 것 같네.”
“우리 막내가 오우거 3마리를 10분이나 잡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군. 훈련은 나중에 미뤄야겠다. 다리우스가 막내 좀 돌봐주고, 나머지는 전투 준비!”
“오케이 브로~”
강문의 말이 끝나자 숲 이곳저곳에서 아까보다 몇 배나 많은 몬스터가 몰려왔다.
하늘은 멘티스들이 뒤덮고, 나무 위는 레드 몽키 무리 때문에 초록빛을 잃었다.
오크들은 모두 무장을 갖춘 오크 전사였으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숫자를 알 수 없는 미노타우로스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번쩍
푸른 뇌전이 13기동 타격대 앞에 꽂혔고, 천둥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우르릉 쾅쾅!
대장 김무혁이 몸에서 뇌전을 뿜어내며 13기동 타격대 앞에 내려섰다.
“늦었군.”
“유신이 훈련하면서 오고 있었거든요.”
강문의 미소 띤 대답에 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늦었으니 속전속결로 처리하지.”
무혁이 뇌전의 힘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검은 불이 떨어져 무혁을 집어삼켰다.
그 모습에 13기동 타격대원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장!!”
불길해 보이는 검은 불꽃이 무혁을 집어삼키자, 강문은 재빠르게 총을 꺼내 하늘을 향해 격발했다.
타앙!
총알은 몬스터 대군 위를 스쳐 하늘로 날아갔다.
팅~
아무것도 없던 공중에 검푸른 막이 생겨나며 총알을 튕겨냈다.
“누구냐?”
강문의 외침에 총알이 튕겨 나갔던 공간이 일그러지며, 하얀 턱시도에 중절모를 쓴 존재가 나타났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상태에서 미소를 지으며, 13기동 타격대를 향해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람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끝낸 아람은 중절모의 챙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타앙~
총알이 다시 한번 아람에게 날아갔지만, 아람의 1미터 앞 공간에서 총알은 튕겨 나갔다.
“이런이런 성격도 급하십니다. 아직 용건도 꺼내지 않았는데.”
“마족에게 영혼을 판 놈의 말은 신용할 수가 없지.”
강문의 비아냥에 아람의 표정이 굳었지만, 곧 여유를 되찾으며 미소를 지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영혼은 더러워졌어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습니다.”
“그래 너희 족속들은 약속을 어기지는 않지, 단지 장난을 좋아할 뿐이고, 안 그래 도깨비?”
“제 태생은 비밀로 남기려고 했는데··· 혹시 어떻게 아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름 듣고 알았어.”
“제 이름이요?”
“하람이 알려주더군. 꼭 죽여야 하는 형제가 있다고.”
“하람···하람!”
하람!!
저 인간들은 우리 일족의 배신자인 하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아람은 하람을 생각하자, 두 눈에 핏대가 서고, 가지런하던 치아가 들쑥날쑥 날카롭게 자랐으며, 온몸에서 검은 불꽃을 피웠다.
“하람!! 그놈이 지금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해!!?”
“워워 진정하라고 하람은 지구에 없으니.”
아람은 순간 체통을 잃고 감정이 격해진 것을 깨달았다.
도깨비인 내가 인간의 대답에 너무 흥분했다.
나는 위대한 도깨비 일족인 아람이기에 다시 원래 행색으로 돌아가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험험. 제가 못 볼 꼴을 보였네요. 거두절미하고,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그냥 돌아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목숨은 살려주겠습니다. 아 물론 하람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시고요.”
“거부하면?”
“아~ 저기 저분처럼 죽게 될 겁니다.”
아람이 가리킨 곳에는 무혁이 아직 불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서 아람은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의 검은 불은 생명체를 순식간에 태워서 재로 만든다.
대화를 시도한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불타고 있다?
“어떻게 된 거죠?”
아람의 의심에 강문을 포함한 13기동 타격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도깨비! 하나 말해 줄게. 난 선택권 없어. 선택권은 우리 대장한테 있지.”
그 순간 무혁을 태우고 있던 검은 불이 비산하고, 옷깃 하나 타지 않은 무혁이 나타났다.
“도깨비불은 오랜만이군.”
“오늘은 참 궁금증이 많이 생기는군요.”
“그 궁금증은 염라대왕을 만나서 풀어.”
무혁의 몸에서 푸른 뇌전이 생성되더니 땅에서부터 하늘로 솟구쳤다.
잠시 뒤, 솟구친 뇌전이 가라앉자, 전설의 기술이 현현했다.
뇌신강림
번개의 힘을 몸에 받아들여 번개 그 자체가 되는 것.
지금의 13기동 타격대의 김무혁 대장은 뇌신이 됐다.
“이건 아까의 복수다.”
뇌신이 된 무혁이 오른손을 들어 아람에게 향한 후 꽉 쥐었다.
번쩍
하늘에서 번개가 쳤고, 아람은 허무하게 재가 됐다.
무혁은 아람이 재가 되자, 무심하게 눈길을 돌려 몬스터 군단을 바라봤다.
“질보다 양이군.”
하늘 위로 한 손을 든 무혁이 그 손을 천천히 내렸다.
우르릉
아주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마른하늘에서 괴성이 터지더니 일대에 번개가 내리쳤다.
쾅쾅쾅!
천둥은 언제나 번개가 치고 난 다음에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이미 반 이상의 몬스터가 전기 통구이가 됐고, 뒤늦게 따라온 천둥은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벌벌 떨게 했다.
그리고 천둥소리와 함께 이제 막 포션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유신이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켰다.
번쩍! 번쩍!
우르릉 쾅쾅! 쾅쾅쾅!!
수십수백 발의 뇌전이 떨어지는 광경은 대단했다.
정녕 저게 사람의 능력인가?
푸른 뇌전에 둘러싸인 김무혁 대장이 손을 휘저으며 몬스터가 터져 죽고, 주먹을 쥐면,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기술 하나하나가 일격필살이고, 광역기다.
어떻게 보면 친절하기까지 했다.
고블린도, 오우거도 단 한 방이면 사이 좋게 지옥으로 향하니 말이다.
“이제 좀 괜찮냐?”
내가 경외감 가득한 시선으로 김무혁 대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강문 선배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는 강문 선배의 대답에 고개를 끄떡였다.
“네 괜찮습니다.”
유신의 담백한 대답에 강문은 깜짝 놀랐다.
평소의 유신이라면, 최소한 자신을 흘겨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신은 후유증에 대한 고통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저기 강문 선배.”
“으···응?”
변화된 유신의 모습에 강문이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 늦게 대답했다.
“대장님. 김무혁 대장님은 얼마나 강하신 거죠?”
“대장?”
“네.”
유신의 질문에 강문은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 대장은 신이라는 자리를 포기한 인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