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_집합(2)
오크 전사가 겁나지만 그렇다고 내 목을 쉽게 내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오늘 죽더라도 최대한 많은 오크를··· 잠깐 꼭 싸울 필요가 없잖아?’
내가 할 일은 몬스터 사살이 아니라, 작전 지역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전투의 흥분 때문이었는지 나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솔직히 오크들에게 쫓기더라도, 강문 선배한테 까지만 가면 된다.
“휴우~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는 각오를 다지고, 끌어올린 포스로 대검을 만들며, 눈으로는 오크 전사들을 견제했다.
최대한 화려하게, 한 방 먹이고 도망쳐야겠다.
“취이익!”
아직 포스 대검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가장 앞에 있던 오크 전사가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내가 자세를 낮춰 글레이브를 피하자, 그 뒤에 있던 오크 전사의 글레이브가 내 얼굴로 다가왔다.
“제길!”
가까스로 오크 전사들의 합격술을 피하고는, 훌쩍 뒤로 점프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취취취이익~”
내가 제대로 공격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자, 오크들이 비웃는 것 같은 웃음을 흘렸다.
몬스터에게 놀림당한 사람은 내가 최초일 것이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오크 전사들은 그 뒤로도 쉴 틈 없이 나를 압박했다.
‘조금만 더! 포스를 모아야 하는데···’
더 시간을 끌면 내가 위험하기에 나는 글레이브를 피해 최대한 높이 점프해서 미완성된 포스 대검을 땅에 내리찍었다.
콰쾅!!
포스 대검이 포스가 불안정해서 마지막까지 포스를 쏟아부었더니, 평소보다 몇 배는 화려하게 포스가 터져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강한 일격이었지만, 이건 쓰면 안 되겠다.
예상과 다른 파괴력 때문에 그 여파가 나에게까지 왔다.
나는 속이 메슥거리더니 입에서 뭉텅이로 피를 쏟아냈다.
“쿨럭!”
피를 토하고 나니, 그나마 메슥거리던 속이 조금은 진정됐다.
나는 오크 전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두 발에 포스를 싣고는 폭죽이 터졌던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후미에서 유신의 전투를 구경만 하던 오크들은 유신이 먼지구름을 뚫고 도망가자 뒤늦게 쫓아갔다.
그렇게 일부 오크들이 떠나고, 포스 대검이 폭발해 비산했던 먼지가 가라앉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섯 마리의 오크 전사들이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처참히 분쇄되어 있었다.
폭발의 여파로 주위에 있던 오크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취···취익!”
“취취익”
포스 대검의 폭발에도 그나마 경미한 상처를 입은 오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겁에 질렸다
유신이 조금만 더 늦게 도망쳤다면, 후미의 오크들도 이 광경을 봤을 거고, 투쟁의 몬스터 오크라지만, 절대 유신을 쫓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저번에 유신이 상대한 오크 전사는 이 정도 공격에 약간의 피해만 보고 충분히 막았을 거다.
그때와 지금 다른 것은 저번에 싸운 오크 전사는 마기로 강화돼, 일반 오크 전사보다 최소 수배는 강했었다.
그리고 유신 본인은 몰랐지만, 며칠 전 라령이를 살리기 위해 포스와 근육을 한계까지 쥐어짠 것이 한계를 돌파해서 성장을 이루게 했다.
***
유신이 오크들에게 도망치며 강문에게 향하고 있을 때, 강문은 느긋하게 앉아 자신의 총기를 닦고 있었다.
강문이 의자로 사용하는 것은 숲속 최강 몬스터 중 하나인 오우거로, 미간이 뚫려 죽어 있었다.
총기를 깔끔하게 닦고선 만족해하는 강문 앞으로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며 새로운 오우거가 괴성과 함께 나타났다.
“크어어엉!!”
오우거는 날카로운 어금니를 앞세워 괴성을 지르자, 강문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
타앙!
강문이 말과 함께 총을 쏘자, 오우거는 괴성을 지르던 모습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총격에 당해 이제 막 쓰러진 오우거 주위로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강문은 죽은 오우거를 쳐다도 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쯧~ 대체 뭐하길래 다들 늦는 거야?”
혼잣말하던 강문이 총기를 닦으려고 꺼낸 손수건을 다시 집어넣으며, 남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쟤는 뭘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왔어?”
강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신이 저 멀리서 수십의 오크들에게 쫓기며 뛰어오고 있었다.
“강문 선배님! 저 좀 도와주세요!”
유신의 외침에 강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 화상 아직도 자기 능력을 몰라.”
유신은 쫓기고 있는 데다가, 강문과 자신의 거리가 멀어서 강문의 혼잣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감과 함께 다급함을 느끼며 울먹이는 표정으로 강문에게 애원하듯 외쳤다.
“선배 제발요!”
“아휴~”
강문은 한숨과 함께 총을 들어 쫓아오고 있는 오크들에게 겨눴다.
타앙! 타앙! 타앙! 탕탕탕···
쉼 없이 쏘아진 총탄에 미간이 꿰뚫린 오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탄창에 있는 총알을 다 소비한 강문은 재빠르게 탄창을 교체하고는 다시 총을 쐈다.
그렇게 새로운 탄창으로 두 번 교체하자, 유신을 쫓던 오크 중 살아있는 오크가 없게 됐고, 유신도 강문 앞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헥헥~ 강문 선배 정말 감사해요.”
“너도 참 한결같다.”
“네? 헥헥~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아니다. 숨이나 돌려.”
“네. 후~ 하~”
유신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정리할 때, 강문은 방금 소비한 탄창에 총알을 끼워 넣었다.
호흡 정리가 끝난 유신이 주위를 둘러보자, 그제야 강문 발밑에 죽은 오우거 2마리를 발견했다.
“선배가 직접 잡은 거예요?”
탄창에 총알을 넣으며, 강문은 눈도 돌리지 않고 무심히 대답했다.
“어.”
“정말 대단해요.”
“너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네? 제가요? 에이~ 선배 농담도 잘하셔~”
탄창에 총알을 다 끼워 넣은 강문은 유신을 흘끔 쳐다본 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요 선배?”
“아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면 되나요?”
“아무 데도 안 가.”
“네?”
“여기서 다 보기로 했어.”
“여기서요? 누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선배 무슨 일이죠?”
“이제야 왔네.”
“네? 대체 뭐가 온다는 거예요?”
“누구긴 누구야 우리지.”
땅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누구냐?!”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나는 긴장하며 사위 경계를 했다.
그때 내 그림자가 인위적으로 늘어났다.
“거기냐?!”
나는 검을 거꾸로 잡고 늘어난 그림자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그림자는 내 검을 유연하게 회피하고선 일정 거리를 둔 후에, 형체를 갖춘 사람이 됐다.
“저번 훈련의 복수냐?”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라이언 선배!”
“이제는 선배를 공격하네.”
“아 그게 아니라··· 헤헤.”
이러나저러나 변명할 거리가 없다.
내가 선배를 공격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난처해진 나는 넉살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할 때, 강문 선배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난 아까 도착했어. 네가 두 번째 오우거의 미간에 구멍 만들 때.”
“역시나 악취미군.”
“에헤이~ 다리우스만 할까?”
“헤이 브로~ 내가 뭐?”
선배들이 대화하는 동안 내 귀로 어설픈 한국어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리우스 선배가 양손에 붉은 피를 묻힌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우스 선배!”
“오~ 우리 막내 브로~ 아직 살아 있네.”
“옷 더러워지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해?”
“유호 선배!!”
유호 선배가 다리우스 선배의 거대한 덩치 뒤에서 나타났다.
“막내 반가워~!!”
콰쾅!!
유호 선배의 말과 함께 숲 한쪽이 터져나갔고, 나는 급하게 그쪽으로 검을 겨눴다.
하지만, 거기서 나타난 사람들은 방패를 앞세운 철호 선배와 십팔반병기를 등에 쥔 신무 선배였다.
“잡몹이 왜 이렇게 많아?”
“선배님들 모두 무사하셨군요!”
내 말에 선배들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고, 강문 선배는 아예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았다.
“크큭~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네 왜요?”
당연한 거 아닌가? 몬스터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선배들의 고생이 눈에 훤한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유호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 막내는 역시 정이 많다니까. 자 잘 봤지? 이게 바로 한국인의 정이야!”
“막내 브로~ 지구에서 우리를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야.”
“네?”
다리우스 선배의 과장된 말을 그냥 웃으며 넘기려고 할 때 강문 선배가 웃음을 정리하며 철호 선배를 바라봤다.
“대장님은?”
“좀 알아보신다고 먼저 출발하래.”
“그래? 그럼.”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강문은 아공간을 열어 오우거 사체를 집어넣었다.
“이제 갈까? 자 다들 준비됐지.”
“넵!”
강문 선배의 말에 나만 유일하게 대답했고, 다른 선배들은 눈빛으로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가자!”
그렇게 13기동 타격대는 작전 지역으로 향했고, 유신은 이날 진정한 13기동 타격대의 일각을 보게 됐다.
다른 말로는 개고생의 시작이었다.
***
13기동 타격대는 거침없었다.
몬스터가 보이면 말살하고, 도망가면 쫓아가서 죽였고, 굴에 숨은 몬스터가 있으면 굴 자체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13기동 타격대가 몬스터를 학살하며 전진할 때 유신은 지금까지 게으르고 시답잖은 농담만 하던 선배들을 다시 보게 됐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한 줄은 몰랐다.
좀 전에 내가 선배들을 걱정했을 때, 왜 모두 웃었는지 이제야 조금은 깨달았다.
“크하하핫! 브로 역시 이게 제일 재밌어!”
다리우스 선배의 두 손이 왜 피에 젖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마법사로 알고 있었는데, 다리우스 선배는 보이는 몬스터들을 두 손으로 찢어 죽이고 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찢었다.
특히, 회복력이 좋은 트롤을 찢을 때는 압권이었다.
“다리우스. 취미 생활은 이제 적당히 하지?”
“왜 브로~ 아직 시간 여유 있잖아.”
“여유는 있는데, 유신이 표정을 봐라.”
강문 선배의 말에 다리우스 선배가 이제 막 GPS를 설치한 나를 바라봤다.
“괘···괜찮습니다. 선배님.”
“오~ 우리 막내를 내가 깜박했네. 워터볼”
다리우스 선배는 마법으로 워터볼을 생성하고, 그 안에 손을 담가 피를 닦아냈다.
내가 알던 마법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에다가 손을 씻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손을 다 씻은 다리우스 선배는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워터볼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콰쾅!
“키에에엑!”
워터볼에 손을 씻길레 아무런 공격력이 없는 유사 마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리우스 선배의 기초 마법인 워터볼의 위력이 내가 알고 있는 위력과는 달랐다.
그리고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노리고 한 건지 다리우스 선배가 무심코 날린 워터볼이 또 어떤 몬스터를 잡았다.
“브로들~ 가자고!”
다리우스 선배의 말에 나는 거칠게 고개를 끄떡였고, 다른 선배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고, 모두가 조용히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유호 선배가 검을 쓰다듬으며 내게 다가왔다.
“우리 막내 괜찮아?”
“네? 뭘요?”
“저 힘만 쎈 마법사 말이야.”
“아~! 괜찮습니다.”
“정말?”
“네.”
유호 선배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저기 유호 선배님.”
“응 왜?”
“물어볼 게 있어서요.”
“오~ 우리 막내가 궁금한 게 있다니 내가 최선을 다해서 답해줄게.”
나는 유호 선배에게 물어보기 전에 머릿속으로 질문을 정리했다.
“제가 가끔 이상한 걸 봅니다.”
“이상한 거? 혹시 내가 검 뽑을 때 봤던 악귀 같은 거?”
“아···비슷하면서 다른 것 같아요.”
“뭔데?”
“특정 몬스터한테 검은 기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내 말에 유호 선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쏟아냈다.
“언제부터? 아니 계속 그래? 지금도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