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_시간 싸움(2)
폭발하는 포스를 사용해 최대한 빠르게 호숫가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된 포스를 이대로 계속 사용해 달린다면, 야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포스가 고갈돼서 무방비 상태로 몬스터들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라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단거리 육상 경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을 해야 한다.
포스의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빠른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육체에 포스 양을 조절해가며, 최상의 밸런스를 찾고 있을 때, 호숫가를 벗어나 숲에 들어서자 적절한 양의 포스 소모를 깨우쳤다.
처음에는 몬스터도 만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달릴 수 있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젠장!”
처음으로 만난 몬스터는 사냥 중인 오크 무리였다.
“취익 취이익!”
서로 무시하고 갈 길가면 좋겠지만, 오크들은 그렇게 쉽게 나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직선상으로 계속 달리며 눈에 보이는 오크들의 멱을 따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쿵쿵쿵
오크 무리는 갑자기 다가온 인간이 동료 오크를 죽이고 떠나자 복수를 위해 발을 구르며 뒤쫓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유신은 오크 무리를 순식간에 지나쳐 사라졌다.
오크들은 유신을 뒤쫓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기에 그저 울분의 찬 소리만 내뱉었다.
“취이익!!!”
오크를 지나친 이후로 유신은 계속 몬스터를 만났다.
코볼트와 놀을 만났을 때는 부딪히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다.
고블린은 반대로 유신과 마주쳤을 때 자기들이 먼저 도망가기 바빴다.
실버 울프의 영역에 들어설 때는 놈들의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 실버 울프가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그러는 동안 등 뒤에서 느껴지는 라령이의 체온은 점점 올라갔다.
라령이의 체온이 올라가는 만큼 유신은 지쳐갔고, 마음이 다급해진 유신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라령아 조금만 버텨! 거의 다 왔어.”
실제로 유신이 레이더를 확인했을 때는 이제 막 10분의 1 움직인 상태였다.
“오마니···”
어린아이가 아프면 엄마를 찾듯, 고열과 독으로 인해 정신이 없는 라령이의 외침에 유신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걱정하지 마!! 이 오빠가 꼭 낫게 해줄게!”
대형 몬스터가 난리를 피우고, 무리를 진 몬스터가 쫓을 때도 유신은 피하거나 도망치며 전진할 수 있었다.
큰 특이사항 없이 움직이던 유신은 절반쯤 지났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우끼끼 우끼끼끽!”
레드 몽키와 마주치게 됐다.
레드 몽키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오지 않는다.
개체별 몬스터 등급도 D등급이어서 지금의 유신에게는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있는 헌터들에게도 기피 대상이며, 위험한 몬스터로 분류한 게 레드 몽키였다.
레드 몽키 영역에서의 놈들의 위험도는 A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최소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짓고, 한번 찍은 먹잇감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더라도 뒤쫓기 때문이었다.
“우끼이익~”
나는 레드 몽키가 던지는 돌을 피하거나 쳐내면서 전진했다.
레드 몽키들을 물리치거나 쫓아내고 싶지만, 일정 수의 레드 몽키를 사냥하면, 레드 몽키 킹 또는 퀸이 나타난다.
킹과 퀸은 하위이기는 하지만, 오우거와 같은 A급 몬스터다.
유신은 혼자일 때도 레드 몽키 영역에 들어서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데, 지금은 등 뒤에 라령이까지 있었다.
“너희 영역에 들어온 건 미안한데, 그냥 지나가기만 하면 안 될까?”
“우끼 우끼 우끼끽”
레드 몽키에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놈들은 더 날뛰며 돌멩이를 던졌다.
그렇게 한참을 회피하듯 움직였지만, 레드 몽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들어왔다.
“이익!!”
이를 악물려 레드 몽키의 돌멩이를 쳐내고 있는데, 갑자기 레드 몽키의 돌멩이가 멈췄다.
잠깐의 여유를 뒤로하고 라령이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고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레드 몽키의 영역에서 빨리 도망치기 위해 부족한 포스를 끌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보니 나무의 초록 잎보다, 레드 몽키의 붉은 털이 더 많아졌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빨리 레드 몽키들을 무찌르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우끼 우끼”
“그래. 많이 비웃어라. 얼마나 가는지 보자.”
내가 검에 포스를 끌어 올리자 비웃던 레드 몽키 무리가 조용해졌다.
“으윽.”
폭풍전야의 상황에서 라령이가 아파서 내뱉는 신음이 신호가 됐다.
레드 몽키 무리가 내게 돌멩이를 던지려고 하고, 나는 그보다 더 일찍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렸다.
푸확~!
포스는 전방 나무 위에 있던 레드 몽키 무리의 몸을 갈랐고,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레드 몽키 무리의 돌멩이가 박혔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검과 다리를 쉼 없이 움직였다.
발걸음을 내딛는 것보다 검을 더 많이 휘둘렀고, 레드 몽키의 붉은 피가 비산했다.
그러면서 포스로 감각을 확장해, 라령이에게 레드 몽키의 공격이 닿지 않게 신경 썼다.
“우끼 우끼끼”
괜히 몬스터 도감에서 레드 몽키 무리를 A급으로 둔 게 아니었다.
정말 끈덕지고 지칠 노릇이었다.
어느새 숲은 레드 몽키의 붉은 피로 뒤덮였다.
“우끼이이익!!”
숲 저편에서 레드 몽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리자, 레드 몽키 무리가 급하게 거리를 뒀다.
나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해서 앞으로 뛰어가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나무 위에만 있던 레드 몽키들이 땅으로 내려와 내 앞길을 막았다.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지더니 땅에 떨어졌다.
나는 급하게 몸을 옆으로 날려 그림자를 피했다.
콰쾅!
3미터 크기의 레드 몽키가 땅에 내리꽂히며 작게나마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레드 몽키 킹은 4미터 이상의 크기라고 했으니, 지금 나타난 놈은 레드 몽키 퀸일 것이다.
이제 정말 포스를 아껴서는 안 되겠다.
최대한 빨리 레드 몽키 퀸을 해치우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우끼이이익!!”
땅에 내려선 레드 몽키 퀸이 길게 울음소리를 내뿜었다.
나는 녀석의 울음소리와 함께 일점술을 이용해 포스를 날렸다.
분명 레드 몽키 퀸은 내가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또는 소설이라면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실전이다.
순간의 실수가 목숨과 직결되는 실전!
푸욱~!
내 일점술은 레드 몽키 퀸의 미간을 꿰뚫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간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쿵!
레드 몽키 퀸은 자신이 어떻게 당한지 알지도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우끼우끼”
“우끼끼”
“우끼 끼끼끽”
주위에 있던 레드 몽키들은 순식간에 레드 몽키 퀸이 쓰러지자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더는 레드 몽키 무리가 나를 쫓지 않길 바라며,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레드 몽키의 영역을 벗어나 평지에 도달하자,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악~”
지칠 수밖에 없었다.
포스를 달리는 데만 사용해도 부족할 판국에 레드 몽키 무리와 싸우면서 너무 많은 포스를 사용했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멈추고 잠깐 쉬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순 없다.
등 뒤에 업혀 있는 라령이의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우웩~”
나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한차례 신물을 뱉어냈다.
포스가 떨어졌다.
탈력감이 내 몸을 휘감고 있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아직 내게는 약간이지만, 체력이 남아 있다.
습관적으로 GPS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내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나는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던 검을 들며 자세를 잡았다.
그때 내 몸을 향해 빨간 레이저 빔들이 박혔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이 구질구질한 멘트를 들으니 나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만세~ 도착했다!”
***
한국 지부의 기동대는 총 10개로 이루어졌다.
처음 기동대에 들어오게 되면 10기동대에 배치받고, 1년 동안 기숙 생활을 하면서 피나는 훈련을 받는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 9기동대로 배치를 받아서 하급 몬스터 퇴치 및 외각 경계 및 대기 업무를 받는다.
이때 보통 5*6*7기동대의 인턴으로 차출이 된다.
그렇게 또 1년간의 임무가 끝나면 8기동대로 배치가 된다.
8기동대는 다른 기동대를 가기 전에 잠시 있는 곳으로 개개인의 특기를 살려 배치를 해준다.
보통 3달 안에 배치를 받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 이상 있는 곳이다. 8기동대에 길게 있으면 있을수록 전체적인 평가에서 저점을 기록한다는 거다.
한국 지부는 이런 기동대 구조를 만들어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 세계에서 상까지 받고, 타 지부에서 한국 지부의 기동대 구조를 모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소 2년은 훈련해야 정식 대원이 된다는 과정 때문에 한국 지부의 기동대는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렸다.
인력난으로 인하여 북한 지역 인류화 프로젝트에 한국 지부는 훈련대원들인 8*9기동대원들까지 임무에 투입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오크 무리에 뛰어들어서···”
“저기 선배님.”
“왜요 9기동대 후배님? 그런데 이름이···?”
“박지용입니다.”
“박지용 후배님 뭐 궁금한 게 있나요? 있으며 이 8기동대원인 문경일에게 편히 물어봐요.”
문경일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박지용을 쳐다봤다.
“그게 아니라 지금 저희 정찰 중 아닌가요?”
“그런데요?”
“정찰 중에 계속 떠드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박지용의 말에 문경일의 인상이 구겨졌다.
“야!”
“······”
“너 말이야 너 박지용 너!”
“넵. 선배님!”
문경일은 박지용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따귀를 날렸다.
짝!!
“너 지금 나 8기동대에 오래 있었다고 무시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정찰 중에···”
“와~ 이 미친X끼 보소. 안 닥치냐?”
“죄송합니다.”
박지용은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너 이번 임무 끝나고 두고 보자. 참고로 이번 프로젝트 간부 중 한 명이 우리 삼촌인 거 명심해라.”
문경일이 박지용에게 경고를 날리고 돌아서려는데, 어디선가 거친 호흡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악~”
“이게 무슨 소리야?”
“저쪽에서 나는 것 같습니다.”
“에이 씨팍! 대충하는 척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일단 대기! 다들 숨어.”
문경일의 말에 박지용을 포함해 모든 인원이 인상을 썼지만, 딱히 반박하지 않고 주위 환경에 은폐‧엄폐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넝마가 된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이 한 손에 명검으로 보이는 검을 쥐고, 등에는 어린아이를 업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걸어왔다.
남성은 유신으로 지금까지 몬스터를 죽이며 힘들게 여기까지 왔기에 극도로 예민했고 살기를 풍기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유신의 눈빛에 겁먹은 문경일은 뒷걸음질 치다가 나뭇가지를 밟았다.
바스락
문경일은 자신의 실수에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박지용과 다른 대원들이 총구를 유신에게 향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만세~ 도착했다!”
“가만히 있어.”
“네 가만히 있을게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유신이 살기 가득한 눈빛을 거두며 급하게 등에 있는 라령이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는 13기동 타격대의 하유신입니다. 이 아이가 고블린의 사독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니 해독 키트 좀 부탁드립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문경일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13기동··· 타격대?”
문경일은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기동대 구조에 대해서 생각했다.
1기동대는 초엘리트들이 들어가는 기동대이면서 소수이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비밀에 싸여있다.
2기동대는 중요 인물 및 요직에 있는 인원들을 호위하는 호위 기동대다.
3기동대는 빌런 체포를 중심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대인전과 수사에 특화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4기동대는 모든 기동대와 그 외 비리 등을 찾는 감시과다. 이들이 나타날 때는 언제나 은빛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5*6기동대는 일반 사람들이 아는 메인 기동대로 가장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 있고, 몬스터와 인류의 방어선을 담당한다.
7기동대는 지원 기동대로 인원이 부족한 기동대를 돕는다. 보통 5*6기동대를 지원한다.
8*9*10기동대는 기동대에 배치되기 전 훈련을 받는 기동대로 자신이 거쳐 왔거나, 또는 있는 기동대였다.
그 어디에도 13기동 타격대라는 곳은 없었다.
문경일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박지용은 유신을 경계하며 서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땅에 놓여 있는 라령이를 확인하니, 유신의 말처럼 독에 중독된 사실을 확인하고 급하게 자신의 해독 키트를 꺼냈다.
“중독된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24시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잠깐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유신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박지용은 그제야 해독 키트를 라령이에게 놓으려고 하는데, 문경일이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