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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39화 (39/300)

39화_시간 싸움(1)

어스름하게 해가 지는 가운데 라령이와 아이들이 호숫가에 다가갔다.

호숫가 한쪽 구석에서는 마을 아낙들이 설거지와 밀린 빨래를 하고 있고, 남자 어른들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통발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아직도 호수가 무서운지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기웃거렸다.

그때 어린아이 무리 중 평소에도 물을 좋아하는 김자군이 용기를 내서 신발을 벗고 호수에 자신의 발을 담갔다.

“앗 차가!”

“자군아 일 없나?”

“일 없다. 내래 이렇게 많은 물에 들어온 건 처음이야.”

자군의 말에 용기를 얻은 아이들도 신발을 벗고는 호수에 발을 담갔다.

호기심에 호수에 발을 담갔던 아이들에게 호수는 아직 미지의 세계여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으면 그건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조금씩 걷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물장구를 치며 놀기 시작했다.

“라령아 거기서 혼자 뭐해? 날래 들어오라.”

물놀이에 열중하던 자군이 홀로 앉아 있는 라령이를 불렀다.

“아···알았다. 좀만 기다리라.”

라령은 자군에 부름에 다른 아이들처럼 호수로 들어가 놀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 몬스터가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했고, 호수라는 곳이 라령이에게는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호수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다.

마을에서 최고의 놀림거리는 겁쟁이고, 라령이는 겁쟁이가 되기 싫었다.

“케케켁케”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라령이는 소리가 들린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고블린이 머리를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

화들짝 놀란 라령이 당황해 말을 더듬을 때, 고블린이 긴 대롱을 입가에 가져갔다.

“도망치시라우!!”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사람들이 라령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걸 확인한 라령은 고블린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괴생물이라우! 빨리 도망치라우!”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고, 고블린을 발견하게 되면서, 호숫가의 평화는 산산이 부서졌다.

빨래하던 아낙들, 통발을 보수하던 어른들, 물장구치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자경단원들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뒤늦게 고블린을 발견해 호숫가로 달렸지만, 고블린과 마을 사람들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슈슉!

고블린이 대롱을 통해 독침을 발사했다.

대부분 맞지 않고 땅에 떨어졌지만, 가장 뒤에서 달리던 몇몇 아이들이 독침에 맞았다.

고블린의 독은 마비독과 사독으로 나뉜다.

마비독은 몸을 마비시키는데,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점점 몸이 굳어가고, 일주일 안에 사람을 죽게 만든다.

사독은 온몸에 고열이 끓으면서,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데, 보통 하루 안에 죽는다.

고블린의 독에 대해서는 현대인보다 마을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은 독침에 맞았다는 사실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얏!”

먼저 도망치던 어른들은 아이들의 비명에 뒤를 돌아봤다.

고블린의 독침에 맞아 아이들이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몇몇 어른들이 몸을 돌려 아이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안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고블린이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케케켁케”

날이 시퍼런 단검을 빼든 고블린들이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할 때 부채꼴의 푸른 빛이 고블린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분명 그렇게 들리는 것 같이 느꼈다.

소리가 들린 후 고블린들의 머리통이 땅에 떨어졌고, 또 다른 푸른 빛이 나타나 고블린들과 부딪혔다.

쾅!

흙먼지를 뚫고 유신이 포스를 일으키며 고블린들 앞에 나타났다.

유신이 뒤를 흘끔 쳐다보니 고블린의 독침을 맞은 어린아이의 피부에 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해맑은 어린아이들이 다치자 유신의 인상은 구겨졌고, 눈에는 광기가 가득 찼다.

“한 놈도 살아서 갈 생각 말아라!”

포스는 그 사람의 상상력과 상태에 따라서 일깨워지고 움직인다.

극도로 화가 난 유신이 뿜어내는 포스는 고블린들을 압박해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됐다.

수십의 고블린은 분노한 유신에게 공포심을 느꼈고,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조각난 사체만 남기고 전멸했다.

그렇게 유신이 고블린을 순식간에 정리했지만, 독침에 맞은 아이들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오마니···”

“아바이···”

두 명의 아이들이 허벅지와 정강이에 고블린의 독침에 맞은 상태였다.

유신은 빠르게 독침을 제거하고선 해독 키트를 꺼내 아이들이 독침 맞은 부위에 주사했다.

남은 해독 키트가 두 개밖에 없었는데, 더는 고블린의 독침에 맞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해독 키트는 빠르게 작용하였고, 아이들의 상태가 급속히 좋아졌다.

“휴우~”

상태가 호전된 것을 확인한 유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다친 사람은 없나요?”

유신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어봤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상태를 확인한 후에야 답해줬다.

“없는 것 같슴네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체 어디서 고블린이 나타난 거죠?”

“라령이가 처음 발견 했슴네다.”

누군가 라령이를 지목하고, 모두의 시선이 라령이에게 향했다.

갑자기 시선이 집중된 라령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사람들의 시선에 곤혹스러워했다.

유신은 검을 납검하고 라령이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시선을 맞췄다.

“라령아 괜찮아?”

“네 넵. 괜찮슴네다.”

유신은 아직 당황하는 라령이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혹시 괜찮으면 어디서 고블린은 발견했니?”

“저···저기입네다.”

라령이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은 리수진이 세운 장벽과 호수가 맞닿는 부분이었다.

호수의 얕은 부분으로는 키가 작은 고블린도 충분히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라령이 덕분에 큰 피해 없이 고블린들을 무찔렀네.”

“내래 한 게 없습니다.”

“아니야. 라령이가 고블린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알려줘서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었던 거야.”

라령은 유신의 칭찬에 해맑게 웃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유신이 쓰러지는 라령을 잡는데, 고열이 라령이의 팔에서 느껴졌다.

“라령아! 라령아! 괜찮아?”

유신의 말에 라령이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

“팔이 아파요··· 하아~ 하아~”

라령이는 말을 끝내고 거친 호흡을 내뱉었고,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유신은 급하게 라령이의 팔을 확인하는데, 오른쪽 삼두박근에 고블린의 독침이 있는 걸 확인하고 뽑아냈다.

라령이의 팔에서 독침을 뽑을 때 강문과 리수진이 현장에 도착했다.

“무슨 일 입네까?”

“라령이가 고블린의 독침에 맞았어요. 빨리 해독 마법을 걸어주세요.

“그···그건···”

리수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리수진씨 빨리요!”

“···해독 마법을··· 모릅네다.”

리수진의 말에 유신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6서클을 쓸 줄 아는 마법사가 2서클 기본 마법을 모른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능력에 해독이나 정화 없나요?”

“···없슴네다.”

“강문 선배 해독 키트나 포션 남은 거 있나요?”

“키트는 애초에 없고, 포션은 너한테 쓴 게 마지막이다. 네가 가지고 있던 키트는?”

“제꺼는 다 썼습니다. 어떻게···어떻게 안 될까요?”

“잠깐만.”

강문 선배는 한동안 라령이의 손목을 잡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놓았다.

“사독이군. 그런데 나는 안 되겠다.”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내공이나 포스를 독이 있는 부위에 주입하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독을 뽑아낼 수 있는데, 지금 이 아이의 몸 상태에서 내 거친 내공을 집어넣으면 쾅!하고 터질 거야.”

“그럼 저는요? 제가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아니 해야죠. 무조건 해낼 겁니다.”

내 확고한 말에도 강문 선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 알았어?”

“네!”

강문 선배는 라령이의 어깨와 손목을 가리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깨에 포스를 집어넣어.”

나는 왼손으로 라령이의 어깨를 붙자고 포스를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서 포스를 이용해 어떤 것도 어깨 위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아.”

라령이의 몸 안에 하나의 막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다른 손으로 라령이의 손목을 잡고 똑같이 해. 더 천천히.”

오른손으로 손목을 잡고 포스를 집어넣자, 라령이의 오른팔이 서서히 검게 변했다.

“집중해! 지금부터가 중요해. 양쪽에 있는 포스를 독침이 맞은 부위로 아주 천천히 이동해.”

강문 선배의 말대로 포스를 천천히 이동시켰다.

포스가 이동하자 포스로 인해 막혀있던 부위의 혈관이 울룩불룩 돋아났다.

그러다가 독침을 맞은 부위에서 검은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피가 흐를수록 검은 피는 점점 붉은 피로 바뀌었다.

“그만하고 포스를 회수해. 다른 사람의 5대력이 몸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

내가 라령이의 몸에서 포스를 다 회수했을 때 아픈 표정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리던 라령이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때야 사람들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라령이의 엄마가 다가왔다.

“우리 아 괜찮슴네까?”

라령이 엄마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강문 선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빨리 이동해서 해독 키트를 맞아야 해요.”

그 말에 라령이의 엄마가 울부짖었다.

“우리 아 좀 살려주시라요. 내래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우리 아 좀 살려주시라요.”

모성애가 내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라령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

“길어야 이틀?”

“응급처치를 계속하면요?”

강문 선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더 하면 이 아이의 혈관이 다 파괴돼서 죽을 거야. 방금도 네가 포스 컨트롤이 예상외로 좋아서 기적적으로 성공한 거야.”

“강문 선배. 여기서 1차 집합 장소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지금처럼 움직인다면 대략 1주일 정도 걸릴 거야.”

“죄송하지만 선배가 라령이를 데리고 움직이면요?”

“너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겠지.”

“네?”

“있어 그런 게. 아주 끈적끈적한 놈이 이 근처에서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굳어갔던 내 의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럼 제가 움직이면요?”

“······”

“선배!”

“정말 위험해.”

좀처럼 볼 수 없는 강문 선배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미소 지었다.

“가능하죠?”

“죽을 수도 있어.”

“가능하다는 소리네요.”

“휴~”

강문 선배가 한숨을 쉬고는 코트 안에서 손바닥만 한 레이더를 던져줬다.

“여기서 남서쪽 그러니까 거기 파란 점이 있는 데로 곧장 가면 돼.”

“감사합니다. 리수진씨?”

우리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리수진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네?”

“붕대 같은 것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알겠슴네다.”

리수진이 붕대를 구해주기 위해 수레로 향했다.

라령이의 엄마는 라령이를 꼬옥 안고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가 꼭 라령이를 구할게요.”

나는 라령이 엄마에게 등을 내밀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라령이 엄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라령이를 내 등에 업혀줬다.

“제발 우리 라령이를 구해주시라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라령이를 등에 업고, 리수진이 건네준 천으로 라령이가 흔들리지 않게 최대한 꽉 묶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쉰 후에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이제 내 두 발과 포스를 믿고 뛰어야 라령이를 살릴 수 있다.

나는 발바닥에 포스를 주입한 후 폭발하듯이 터트리며, 기동대가 있는 남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는 정말 시간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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